『CGV』 2015.02.17.GV

베넷 밀러 〈폭스캐쳐〉 시네마톡

이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아마도 1984년도 LA올림픽이 있었을 것이고, 마크 슐츠(이하 마크)와 데이브 슐츠(이하 데이브), 두 형제가 금메달을 땄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영화는 1987년 3월부터 시작합니다. 구체적인 날짜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1987년 3월 17일에 마크가 초등학교에 가서 초라하게 연설을 하고 난 대가로 20달러를 받은 다음 햄버거 가게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햄버거를 산 후에 차 안에서 우걱우걱 먹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금메달은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그리고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은 아마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지라도 존 듀폰의 후원이 없었다면 똑같은 삶을 반복했을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마크에게 억만장자 존 듀폰(이하 존)으로부터 후원을 하겠다고 연락이 옵니다. 그런 다음 우여곡절을 겪고, 결국 데이브를 폭스캐처에 끌어들여서 차기 올림픽 준비를 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서울 올림픽에서 마크 슐츠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크는 존의 폭스캐처 농장을 떠났습니다. 영화는 이 대목을 매우 조심스럽게 찍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베넷 밀러(이하 밀러)는 플래시백을 버렸습니다. 이것은 첫째로 존의 시선으로 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즉 밀러의 인터뷰에 의하면 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 했습니다. 지금도 존이 왜 데이브를 죽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상할 정도로 <폭스캐처>라는 영화에 접근하고 있는 많은 국내의 비평들이 임상병리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존의 정신 상태 혹은 마크와 존 사이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설명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 실제로 접근했었던 범죄 심리학자들도 설명이 안 된다고 이 사건을 종결시켰고, 이 영화를 연출한 밀러 또한 이 살인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터뷰에서 대답하고 있는데 말이죠. 아마 여러분들께서 이 영화를 보시고 난 다음에 잘 설명이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면 이 영화를 올바르게 보신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설명이 된다고 생각할 때부터 이 영화의 서사를 억지로 논리에 끼워 맞춰서 뭔가 가짜 얘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 사건을 주관적으로 풀어나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어떤 사건을 마주했었을 때,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형적인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즉, 이 상황의 핵심이 뭔지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그걸 너희들에게 설명해 줄게 라는 방식, 그것이 플래시백 방식이겠죠. 또 하나는 난 존이라는 사람의 심리세계가 뭔지를 파고 들어가보고 싶어라는 주관적인 태도로 영화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밀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버렸습니다. 그러면 감독은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남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실제 사건을 영화로 찍겠다고 했었을 때, 팩트를 벗어나지 않고 영화를 전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연대기적으로 쫓아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밀러는 사건을 순서대로 다시 따라가면서 혹시 이 사건에 우리들이 놓친 어떤 고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밀러는 그 고리를 찾고자 <폭스캐처>라는 영화를 찍은 것입니다. 약간 얘기를 우회해서 진행해 보겠습니다. 밀러가 연출한 <카포티>와 <머니볼> 그리고 <폭스캐처>에 이르기까지,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팩트에 기반한 인물의 영화라는 것입니다. 밀러는 어떤 실제 사건에 연루된 인물에 항상 관심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 반드시 블랙홀 같은 것이 발견됩니다. 거기서 상상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픽션을 만들어서 논리를 짜맞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 블랙홀을 영화의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여기에 모든 답이 있을지 모릅니다. <폭스캐처>라는 영화를 여러분들께서 올바르게 감상하는 방법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존 듀폰이 왜 데이브 슐츠를 총으로 쐈는지 알았어가 아니라 존 듀폰이 데이브 슐츠를 총으로 쏘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어떤 대목이 블랙홀이야라고 밀러가 느꼈는지를, 이 영화에 연출방식, 편집 혹은 촬영, 사운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건드리고 있는지를 느껴보는 그 감흥에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폭스캐처>의 이야기를 별 문제의식 없이 쫓아가면 누구나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이야기를 다시 짜맞춰보면 이상할 정도로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야기가 의외로 복잡하게 꾸려져 있다는 걸 발견한 연유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얼핏 보면 연대기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진행됐다가 뒤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보통 연대기로 진행되는 영화들의 공통점이라 하면 일정한 시간적 리듬을 갖고 그 시간을 진행하고 있는데 반해, 이 영화는 일정한 시간적 리듬을 가진 채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어떤 대목에서는 이 시퀀스에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갈 때가 굉장히 촘촘하게 붙어있는데, 통상적으로 연대기로 쫓아갈 때, 확 건너뛰는 경우에는 반드시 년도를 써놓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경기장에 붙어있는 연도를 제외하고는 써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행하던 영화가 어떤 시퀀스에서 갑자기 1주일, 며칠 단위로 진행하던 쇼트의 진행이 갑자기 몇 달을 확 건너뛰었는데도 어떤 표현도 없습니다. 그랬을 때, 여러분들은 이야기를 어리둥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보고나서 마크가 왜 떠난 거야? 혹은 데이브는 어떻게 폭스캐처 농장에 들어온 거야? 라는 질문들을 하게 되는 건, 이 영화가 두 번째 봤을 때, 꼼꼼히 설명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적 리듬을 건너뛰는 과정 속에서 관객 분들이 따돌림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보통 연대기 영화들은 대부분 트릭이 있습니다. 그 트릭은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건너 뛸 때에 앞의 시간이 원인이고 뒤에 시간이 결과인 방식의 인과관계로 계속 시나리오로 구성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앞의 시퀀스에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는 과정에 인과관계가 전혀 없이, 매번 얘기가 다시 시작하듯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번 쫓아는 가고,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는데,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의 관계가 뭐지?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여러분들이 그 관계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즉, 밀러는 계속해서 내가 이 사건이 벌어진 출발점, 그러니까 존이 처음 마크에게 연락이 와서 데이브를 총으로 쏘기까지 쫓아갔었던 과정에서 내가 겪었던 곤궁을 관객들 또한 똑같이 겪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 못했던 대목을 허구적인 논리를 만들어서 설명하지 않을거야라는 태도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이 얘기를 앞에서부터 쫓아오면 이 사건 자체를 몰랐었던 사람들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클라이맥스가 될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단지 순간적으로 짧게 지나쳐버립니다. 게다가 거기서 마크는 모든 것을 잃었고, 존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시나리오 구성 상 갈등이 폭발하는 지점이죠. 하지만 이미 그 장면 이전에 그들의 균열은 시작되었고, 이 균열이 시작된 어떤 하나의 과정 중에 시퀀스로만 이 서울 올림픽은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 미국 관객과 미국 바깥에 있는 관객들 사이에 인물의 이야기들에 대한 어떤 간극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 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마치 내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잖아? 라는 태도가 있습니다. 우리들과 똑같이 난처한 느낌을 프랑스 비평가들도 받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밀러에게 똑같이 질문했었을 때, 밀러의 반문은 잘 알고 계신 얘기가 아니던가요? 였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야기로서 불친절하다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요점은 이 영화는 존과 마크, 그리고 데이브 사이에 삼각관계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관습적으로 보아온 영화들은 어떻습니까? 아마 이 얘기를 찍는다면 세 사람 사이에 관계가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필사적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세 사람이 같이 있는 시퀀스가 몇 개가 됩니까? 라고 물으면 거의 기억나지 않을 것입니다. 셋이 한 장소에 있더라도 각각을 다 쪼개서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머리 속에서 이 사람들의 관계가 한 장면 안에 안 들어오도록 영화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영화에 대한 제 생각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폭스캐처>를 설명하는 가장 도식적이고 간단한 방법은 존과 마크의 관계를 도착적 오이디푸스의 관계로 두는 겁니다. 영화에도 그러한 힌트가 많이 널려있긴 하죠. 존은 마크에게 코치는 멘토이자, 아버지라고 몇 번이고 얘기합니다. 심지어 맨 마지막에 비디오로 다시 돌려보는 장면에서 그 대목을 일종의 클라이맥스처럼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존은 마크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면서 한편으로 정작 실제 삶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아들, 그러니까 그의 어머니로부터 계속 버림받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존이 레슬링에 몰두하는 것에 대해서 끝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죽하면 존이 코치로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 체중 감량을 하고 있는 장소에 가 있었을 때에 돌아가시기까지 합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서 존 을 보고 있으면 겉모습만 어른이 된 어린아이처럼 찍은 장면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특히 의자에 앉아있을 때의 모습을 보면 마치 어린애처럼 보이도록 의식적으로 스티브 카렐(이하 카렐)은 움츠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존은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오이디푸스이자, 마크에게는 존이 말하자면 아버지이자 실제로 형인 데이브로부터 벗어나서 또 다른 아버지 존을 찾아 나섰다가 실패하는 이야기다라고 설명하고 싶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존이 왜 마크가 아니라 데이브를 총으로 쏴 죽였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즉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간 마크를 내버려두고 왜 데이브에게 그랬냐는 겁니다. 그것도 마크가 이 폭스캐처 농장을 떠나간지 한참 뒤에 혹은 존이 데이브를 총으로 쏴 죽인 다음에도 이 영화는 이상하게 마크의 어떤 리액션도 찍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어쩌면 존이 데이브 살인 사건을 저지른 한 가지 이유일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것만으로 만족스럽게 이 영화가 설명된다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두 번째는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읽어보는 겁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존이 게이일 거라는 수많은 암시들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일종의 인정투쟁극으로 읽히는 겁니다. 실제로 존은 결혼한지 6개월 만에 자기 아내를 총으로 위협하는 난동을 부려서 이혼하고 난 후에 내내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만 이 영화에 그 이야기는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레슬링에 매혹된 존이 남자들의 벌거벗은 몸에 심취하고, 그리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이 장면들에서 이 영화를 퀴어 영화로 읽는 것도 가능은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존과 마크의 사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떠올려봅시다. 밀러는 마치 이러한 해석에 저항하기라도 하듯이 존과 마크사이에 어떠한 터치도 의식적으로 찍지 않았습니다. 데이브와는 악수를 하거나 껴안는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다시 체육관에 나타났을 때에 위로하는 사람은 데이브이지 마크가 아닙니다. 즉, 밀러는 존이 게이일 수 있다는 암시는 우리에게 충분히 주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두 사이의 관계를 퀴어적인 관계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세 번째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은 좀 더 대담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밀러가 이 사건 자체를 설명하고 싶다는 의문이 있었다기보다는 차라리 이 시기의 미국에 대한 알레고리를 <폭스캐처>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겁니다. 존은 물론 이 영화에서 보면 여러 장면에서 미친놈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돈이 많아도 탱크를 수집하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탱크 수집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퀴어시네마로서 존의 왜소한, 잃어버린 남성성에 대한 결핍의 해석으로도 읽을 수 있을 테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친 군국주의자의 방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존이 끊임없이 얘기하는 건 미친 제국주의입니다. 그는 자기 집이 조지 워싱턴의 승리를 이끌었었던 바로 그 장소에 집이 세워졌다는 걸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시체들 위에 세워진 집이 폭스캐처인 겁니다.

그리고 밀러가 카렐을 캐스팅한 이유 중 가장 포인트가 될 만한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밀러는 카렐을 보고 있으면 두 번째 조지 부시 대통령이 떠오른다는 겁니다. 정확하게 존과 조지 부시는 똑같이 자란 사람이라는 겁니다. 억만장자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 가문에서 자란 후에 엉뚱한 일을 저지른 거죠. 한 사람은 살인 사건을 또 한 사람은 파병을, 그리고 그런 사람은 보통 사람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살인 사건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즉, 밀러는 두 사람이 모두 미친 애국주의자이고, 힘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있으며, 전쟁광이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밀러는 두 사람의 사이가 바뀌어도 아무 차이가 없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텍스트들이 존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 아이콘으로의 설명은 되겠지만 그렇다고 데이브를 왜 죽였는지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질문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이 영화는 매우 이상하게 끝이 납니다. 마지막 장면은 마크가 언젠가 동료들과 텔레비전에서 봤었던 내기 프로레슬링의 세계, 마치 새장처럼 보이는 곳에 갇혀서 참혹한 게임을 하기 위해 링에 오르는 장면입니다. 그 때 관중들이 마크를 외치는 게 아니라 USA를 미친 듯이 외칩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에서 온 상대와 싸워야 합니다. 영화 초반부에 보면 존이 마크에게 “자네는 소련 선수들이 대우가 좋다는 걸 알고 있나?” 라는 말로 설득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애국주의적 인식에 대해서 이 영화를 해석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밀러에게 질문하자, 그는 그건 마크가 실제로 그런 내기 프로레슬링 게임에 올라갔었을 때, 관중들이 외쳤던 모습을 재현한 것이었지, 그렇게 USA라고 외치는 것에 상징적 의도를 담은 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것은 밀러는 이 영화가 그러한 방식의 도식적 상징주의로 읽히기를 원치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밀러는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상한 나라인 건 이상한 살인 사건의 나라라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이건 이상한 살인사건의 영화입니다. 밀러가 첫 번째 찍은 극 영화 <카포티> 역시 마찬가지로 연쇄살인범에 관한 인터뷰로 소설을 쓴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에 관한 얘기라는 점을 떠올려 주십시오. 그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살인 사건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단, 이 살인 사건에 관한 영화를 찍을 때에 밀러는 이 살인 사건을 이해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악을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 고정시키는 것, 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어떤 저항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의 가장 큰 잘못 중에 하나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하이에나처럼 달려갑니다. 그런 다음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를 찍는 쪽은 선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살인자도 무언가 불쌍한 점이 있어, 그의 부모가 잘못 되었을 거야라는 식으로 자꾸 이해하려고 들죠. 그 때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밀러는 그건 악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즉, 이 영화에는 살인사건을 이해하는 것은 살인만큼 나쁘다는 윤리적 태도가 있습니다.

만일 이 살인에 대해서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변덕입니다. 어쩌면 황당무계한 표현일 수도 있는 이 말에 대해서 밀러는 정작 <폭스캐처>라는 영화를 찍으면서 필사적으로 변덕을 시각화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이상할 정도로 비가 오고 구름이 끼고, 화창했다가 눈이 내리고 안개가 끼는 식으로 거의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날씨를 일관성 없이 찍어놨습니다. 그러니까 날씨가 거의 변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마치 날씨가 이 살인에 영향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기운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촬영한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참여한 작품 중 캐서린 비글로우가 연출한 <제로 다크 서티>가 있습니다. 밀러는 <제로 다크 서티>를 보자마자 그에게 연락을 했고, 만나자마자 얘기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그 영화를 찍을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찍었을 때의 그 기분으로 <폭스캐처>를 찍어주십시오. 그 말뜻은 이 공간을 낯설게 찍어달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도 이 영화가 낯선 장소처럼 보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한 겁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간접적인 수많은 원인이 있었죠. 하지만 영화에서 본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존이 비디오를 보다가 화가 나서 데이브를 죽이러 간 겁니다. 존은 이 때 비디오에서 무엇을 봤습니까? 두 가지 대답이 있습니다. 첫째는 마크와 껴안은 장면이 엔드로 나오죠. 떠나간 마크에 대한 상실감, 원망이 데이브에게 갔다라고 1차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죠. 그러나 거슬러 생각해 보면 데이브를 찍을 때, 촬영기사가 존은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데이브는 촬영 중에 내내 꺼려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멘토라는 말을 합니다. 밀러는 이 장면을 다른 장면들에 비해서 유난할 정도로 꼼꼼히 찍었습니다. 기억하란 얘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방에서 마크와의 장면을 보기 이전 앞 장면에서 틀림없이 그 장면을 봤을 겁니다. 아마 존은 이 비디오 테잎을 수십 번이고 다시 봤을 겁니다. 그 조롱이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밀러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난 그저 수면의 표면만을 찍을 뿐입니다. 표면 아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