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 1994.11.작품

영화 이야기

에드워드 가위손


포스트 모던 멜로 드라마? 만일 그런 말이 허락된다면 팀 버튼 감독의 <에드워드 가위손>은 기꺼이 그 영광을 받을 만한 걸작이다.

팀 버튼 감독은 헐리우드의 개구장이이다. 언제나 엉뚱한 상상력과 기발한 화면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러면서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묘한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그는 환상과 추억, 비전과 노스탤지어를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아주 드문 시네아스트이다.

그게 <배트맨>이라는 만화를 영화로 옮겨 독창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우리시대의 유령과 팀 버튼은 서로 아주 ‘행복하게’ 화해한 것이다.

팀 버튼이 낯설게 보이는 것은 그가 만들어내는 화면이 시대의 유행을 역행하며 수공업적인 SFX특수효과 테크놀로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쥬라기 공원>에서 컴퓨터 그래픽스로 우리를 놀라게 만들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팀 버튼으로 하여금 점점 더 향수를 자극하는 동화 같은 세계로 이끌리게 만드는 것이다.

<에드워드 가위손>은 프랑켄쉬타인 이야기와 피터팬 전설을 교묘하게 뒤섞고 있다. 이것은 로맨스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공포영화이다. 그리고 동화이면서 고딕소설이다.

시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동네. 이 마을 언덕 저편에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는 거대한 저택이 있다. 이 저택의 주인은 미치광이 과학자이다. 그는 그저 발명에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릴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외롭다는 생각에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소년 에드워드를 ‘발명’한다.

박사는 에드워드의 심장과 두뇌, 그리고 피부까지도 만들어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의 손을 만들지 못 하고 그만 유명을 달리한다. 그래서 에드워드의 손은 차가운 금속성의 가위로 남겨진다.

에드워드는 이 저택에 혼자 숨어산다. 그는 박사님 이외에는 누구도 만난 적이 없어서 마을로 내려가기가 두려운 것이다. 그러던 이 저택에 마음씨 좋은 아줌마가 찾아온다. 그녀는 이 커다란 저택에 혼자 사는 에드워드가 가엾어서 저택 아래 마을로 데려온다.

마을에 오자 그는 사람들에게 호기심 섞인 눈으로 커다란 환영을 받는다. 그 가위손으로 정원의 나무들을 멋지게 손질하고,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 앞에서 색종이를 오려 신기한 모양으로 만들고, 동네 아줌마들의 헤어 스타일을 유행시키는 솜씨를 발휘한다. 에드워드는 마을에서 행복을 찾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줌마의 딸 킴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변한다. 그만 에드워드는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것은 에드워드에게 금지된 일이었고, 신기하게 에드워드를 보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적대적인 눈으로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에드워드를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손이다. 가위로 된 손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소녀를 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를 안으면 그건 그녀를 찌르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에드워드는 비로서 눈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팀 버튼 감독은 <에드워드 가위손>을 만들면서 이 이야기가 벌어지는 무대인 마을 전체를 새로 세웠다. 그리고 마을을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장난감 집처럼 세우고 거의 모든 장면을 평면으로 촬영하였다. 그래서 여기 보여지는 공간들은 마치 표면만이 있는 컴퓨터 그래픽의 화면처럼 보인다. 이건 본 적이 없는 화면이며, 팀 버튼은 바로 거기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가짜’에서 시작해서 ‘진짜’에 이르는, 표면으로부터 마음속에로의 미학적 성찰 때문이다. 많이 본 상투적 이야기에도 진실이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포스트 모던한 시대정신이며, 팀 버튼 감독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짐짓 겁을 먹고 비판하는 대신 거꾸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고전적인 결말에로 이끄는 것이다. 그는 우리 곁에 있으면서 또한 ‘좋은’ 시절에로 다시 되돌려 놓으려는 끈질긴 시도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