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은 쓰레기다 - <키노> 편집장 정성일

영화 비평의 시대가 늘 지금인 사람에게 <키노>는 회고의 대상이 아니었다. <키노>의 오래된 편집장 정성일을 만났다.

시각예술 | 2013/05/31 | 글. 양승철(< GQ KOREA > 피처 에디터)

<키노>를 아주 오랜만에 펼쳐봤습니다. 독자일 때는 보이지 않던 지점들이 보이던데요. 특히 <키노>가 광고를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초창기 <키노>는 광고를 한데 모아 놓거나 기사를 고려해 광고페이지에서 이질감을 줄이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광고팀과 많이 싸웠습니다. 근데 고맙게도 광고 팀장이 <키노>의 성격을 이해해서 제 의견을 잘 받아줬습니다. 게다가 <키노> 독자들은 이상한 광고가 책에 실리면 항의 엽서를 빗발치듯이 보냈어요. 어느 때는 죄송하다고 사과문을 실은 적도 있었죠. 광고가 살아야 잡지도 살지만 결국 잡지는 독자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이를테면 수익은 광고를 통해 발생하지만, 독자가 줄어들면 광고도 줄어드니까요. <키노>의 특징은 독자의 충성도에 있어서 독자와의 어떤 약속이 깨지면 결국 <키노>는 존재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래서 어떨 땐 광고팀이 광고주를 설득했어요. 광고주도 <키노>의 마음을 이해했고요.

<키노>는 월간지였습니다. 매주 많은 영화가 개봉되기 때문에 월간지는 이슈에 민첩한 접근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대신 <키노>는 매달 하나의 주제로 ‘영화백과사전’ 같이 만들어, 최근 이슈보다는 특집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단 <키노>가 만들어 지던 1995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영화애호가, 영화 잡지 독자들에겐 클릭 몇 번만 하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물론 IMDB같은 것도 없을 때였죠. 오직 하이텔, 천리안과 같은 PC통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IMDB의 정보력보다 영화잡지 편집장이나 영화기자의 정보력이 더 좋았던 시절이었었어요.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잡지를 만드는 쪽에선 ‘계몽’의 입장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알려주고 독자들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창간을 하고 편집부에 제일 많이 온 엽서가 이런 것이었어요. “팜므파탈이 뭔가요?” “미장센이 뭔가요?” 아주 기본적인 영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던 시절이었어요. 얼마 지나니까 심지어 미장센이라는 샴푸도 나오더라고요. 하하.

영화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죠.

네, 맞아요.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정보를 애타게 기다렸죠. 영화를 만든 사람이 정체불명인 거예요. 그나마 인터넷도 없으니까 독자들에게 외국어로 된 정보를 찾으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게다가 아마존닷컴도 시작되기 전이어서 해외에서 책을 배송 받을 방법도 거의 없었어요. 한마디로 ‘교육’의 역할이 필요했고, 잡지는 어떤 특집들을 집중적으로 모아서 독자들에게 건네줄 필요가 있었던 거죠. 만약 지금 <키노>가 만들어진다면 그런 노력은 필요 없겠죠. 당시 <씨네21> 조선희 편집장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키노> 때문에 <씨네21>은 만들기 너무 편해. <키노>에서 참고서를 만들어주잖아. 자세한 내용은 <키노> 보라고 하면 돼.” 한편으로는 <키노>를 다시 보면 특집이 계속 진화했어요. 뒤로 갈수록 초창기의 특집보다도 한 계단씩 계속 올라간달까요. 독자들의 수준이 올라가니까 책도 당연히 발전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2003년에 <키노>가 멈춘 건 무척 아쉬워요. 이제 독자들이 본격적인 영화담론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쳤는데 유감스럽게도 시장이 허락하지 않았죠.

꼭 ‘계몽’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키노>는 긴 글이 촘촘히 엮인 잡지였습니다. 이제는 긴 글이 환영받지 못하는 시기입니다.

사실 <키노>를 만들면서 꼭 한 번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못한 게 하나 있어요. 한 독일 철학자가 일본어를 비판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일본어는 긴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한 문장이다.” 그러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두 명의 평론가 중 한 명인 하스미 시게히코는 분기탱천했어요. “일본어로 길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마” 하고 38페이지에 걸친 한 문장을 썼죠. ‘시네마의 기억장치’라는 고다르에 관한 훌륭한 글인데 이 글이 한 문장으로 이뤄졌어요. 저 또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한 페이지를 한 문장으로 써볼 순 없을까?’ 했죠. 그리고 또 저한테 큰 가르침을 준 말은 아도르노가 했던 말이에요. “요약할 수 없는 글을 써라. 요약할 수 있는 글은 광고 카피밖에 없다.” 제게 그 말은 엄청난 감동이었어요. 요약할 수 없는 글을 써야한다는 말이 제겐 좌우명 같아요. 하지만 우리시대의 글쓰기를, 글 읽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트위터예요. 140자로 끊어야 해. 난 더 이상 읽기는 귀찮아. 쓰는 쪽도 귀찮아하고, 읽는 쪽도 귀찮아하죠.

이제 웹의 글쓰기는 어떤 긴 견해보다 요약된 정보만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웹의 글쓰기와 종이의 글쓰기가 분리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혼란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종이 매체는 종이 매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의 문제가 있겠지만, 웹의 글쓰기는 단문형식 혹은 짧은 글이 될테고, 종이 매체는 점점 더 길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정보는 웹에서 얻고 종이 매체는 견해 중심으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주관적인 견해, 좀 더 강건한 주장, 분명한 자신의 태도를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가 종이 매체를 통해 시작하지 않을까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웹과 종이 매체는 정보경쟁을 할 이유가 없어질 거예요. 이를테면 신문도 웹과의 속도 경쟁에서 이길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칸 영화제 결과를 가장 빠르게 아는 방법은 칸 영화제 공식 트위터를 팔로잉하는 거예요. 제 방식으로 이 둘의 차이를 말하자면, 웹은 텔레비전이고 종이 매체는 영화의 길을 갈 것 같아요.

종이 매체가 영화가 된다는 말은 영화를 종이 매체에 싣는 영화 잡지에겐 중요한 문제 같습니다. 영화 잡지는 특히 사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관건일 텐데요. <키노>의 경우 영화 스틸 사진을 한 페이지에 가득 채우거나, 적어도 큼지막하게 스틸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그 스틸 사진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기보다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 뽑힌 그림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노>에서 스틸 사진을 크게 쓰는 경우는 그 영화를 지지한다는 뜻이거나 영화의 규모가 주는 느낌을 이미지가 전달해 주길 바랄 때입니다. 하지만 이미지 크기를 사용하는 확실한 원칙을 세우진 못했습니다. 이를테면 1.85 대 1 영화와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본래 사이즈 그대로 사용하기엔 난감한 점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영화가 주는 ‘스펙터큘러’와 잡지의 이미지가 일치되기를 항상 바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 직접 자신의 영화 특집기사를 만든다면 어떤 사진을 선택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골랐어요.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던 장면이 이걸 것이다, 예상하면서 선택했죠.

감독에게 직접 물어본 적도 있을까요?

한국영화 특집을 할 때는 종종 감독에게 제일 커다랗게 쓰일 사진을 선택해달라고 했어요. 그건 말하자면 연출한 사람의 권리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있는 게, <키노>에 실린 사진을 보면 주연배우가 안 나오는 사진이 제일 큰 사진인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영화잡지의 권리죠. <키노>를 사보는 사람들은, 영화잡지를 영화 때문에 구입하지, 연예매거진으로 생각하고 구입하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그 덕분에 떠나간 독자도 많았죠. “도대체 이 잡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원하는 사진이 실리지 않아” 했겠지만 사진을 고르는 원칙은 계속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키노> 초창기엔 굉장히 화려한 색을 과감히 사용했습니다. 형광분홍색, 샛노란색이 본문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표지 또한 굉장했죠. 후반으로 갈수록 내지도 표지도 좀 차분해 졌습니다. 중간에 아트팀이 바뀌기도 하고, 디자인을 외주 회사에 맡기기도 했는데, 인력 교체가 원인이었을까요?

아트팀이 외주로 바뀌든 아니면 안에서 디자인을 하든,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아트팀에 준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항상 편집부에서 사진을 고르고 결정했어요. 잡지 디자인도 일종의 패션처럼,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계속 변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잡지는 본래 ‘주욱’ 나열하고 보면 “옛날에 이런 표지도 했었단 말이야?”라는 말이 필히 나옵니다. 잡지는 단행본과 다르게 하나의 생명체예요. 독자들과 계속 소통해나가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잡지가 만약 눈을 감는다면, 사실상 더 이상 잡지가 아닌 거죠.

영화 잡지는 표지를 직접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물 촬영도 많고요. 편집장으로서 사진작가에게 요구한 일관된 ‘톤’이 있다면 뭘까요?

요구는 딱 하나였습니다. “영화처럼 찍어주세요.”

기자들에겐 어떤 걸 요구 했을까요? 빼어난 문장이라든지 독특한 시각이라든지요. <키노>는 새로운 영화기자가 등장한 매체이기도 했습니다.

<키노>가 처음 창간할 때 기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와 이연호 편집부장의 경험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를 뽑을 때의 기준은 딱 하나였어요. ‘영화에 대한 태도가 있는가.’ 저는 글 솜씨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좋은 문장은 경험만 쌓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요, 정확한 문장만 쓸 수 있으면 됐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기준은 ‘편집장이 동의하는 영화에 너도 동의하는가’ 입니다. “만약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천하를 흔드는 문장을 쓴다 해도 다른 잡지에 가십시오” 했습니다.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문장을 써도 <아이언맨 3>가 좋다고 말한다면 저는 같이 일 못합니다. 누군가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지구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이런다면 당장 편집회의에서 나가세요,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번 호 우리 잡지의 특집으로는 난니 모레티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를 다룰 거고 그 다음은 따비아니 형제 특집을 할 거고, 주목할 만한 이름으로는 <테이크 쉘터>를 만든 신인감독 제프 니콜스가 나올 건데 같이 회의를 할 수가 없죠. 회의의 시작은 앞서 말한 영화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데, “편집장님 그 영화들은 동의할 수 없고요”한다면 잡지를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기자를 뽑을 때 <키노>를 언제부터 읽었고, 읽었던 호의 특집이 뭐였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꼭 했습니다. 만약 우리 잡지를 열심히 읽었다면 우리 잡지가 지니고 있는 태도에 동의한다고 생각한 거죠.

잡지는 어떤 취향을 파는 것입니다만, 한 잡지의 너무 일관된 취향은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건 제가 이 잡지의 모델을 < Cahier Du Cinema >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가 대한민국에서 명작처럼 되어 있잖아요. 하지만 <까이에 뒤 시네마>의 별점을 보면 편집장 이하 평론가들이 다들 별 네 개 만점에 별 하나, 별 반 개만 줘서 총 별점이 반개예요.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도 예술영화의 성배처럼 여겨지지만 < Cahier Du Cinema >에선 벨라 타르를 쓰레기라고 생각해요. 아주 짤막하게 실리고 끝이에요. 반면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편집장 이하 기자들의 평가가 별 넷, 별 넷, 별 넷, 별 셋, 별 넷이죠. 그렇게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결사단체 같아요. 하지만 그들에겐 이런 태도가 있어요. “동의하면 보고, 보기 싫으면 보지 마. 대신 우리를 지지하는 독자들은 배신하지 않아.”

<키노>는 영화를 ‘Kino’로 보고, <씨네21>은 ‘Cine’로, <필름2.0>은 ‘Film’으로, <무비위크>는 ‘Movie’로 본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각각 영화를 학문과 예술,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로 본다는 뜻일 텐데요, 만약 지금 영화 독립잡지를 만든다면 영화의 어떤 지점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이 효율적일까요?

지금 영화잡지가 만들어진다면, 시네필드의 ‘꼬뮌’이 되어야 해요. 어떤 잡지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독자 숫자는 1만5천명이면 돼요. 1만5천명의 독자만 있으면 돈을 벌지 않겠다는 작정으로 만들 수 있어요. 아무리 1천만 명 관객 시대라고 해도, 1만5천명이 모여 있는 시네필드의 꼬뮌이 되는 게 맞지, 이 잡지가 또 다시 영화의 사업적인 부분도 책임지고, 엔터테인먼트도 책임지고, 비평도 책임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키노>는 영화를 정치적인 시각으로도 바라봤던 잡지입니다. 반면 요즘에는 정치적인 영화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

저는 <지슬>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은 <남영동 1985>가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단 한 번도 정치적인 영화를 지지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영화는 <7번방의 선물>같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천만 명이 봤으니까요. 현 정부가 들어선 이 상황에서 이런 영화를 1천만 명이 봤을 때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혹은 <광해>가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해요. 대선을 앞두고 이 영화를 1천만 명이 본 건 다가올 선거에 대한 메시지를 우리한테 주었던 거예요. 말하자면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숫자가 1천2백50만 명입니다. 그 인원 모두가 무료로 선거했지만 <광해>는 돈을 내면서 1천3백만 명이 봤습니다.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광해>를 위해 지갑을 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일 힘든 건 지갑을 여는 일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힘든 일을 <광해>를 위해 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고다르의 말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어라.” 말하자면 그 역할은 영화잡지가 오피니언 리더로서 반드시 해야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역할을 포기한다면 더 이상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죠. 온 세상이 싫어하고, 온 세상이 욕하고, 온 세상이 정치는 따분해 죽겠다고 얘기 하더라도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거예요. 이를테면 선생님이 재미있는 얘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재미있게 설명하는 건 중요한 일이죠.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 중 하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중들에게 굴복해서 해야 할 역할을 안 하고, 보여줘야 될 태도를 숨긴다는 겁니다. 오히려 영화 잡지라면, 적어도 잡지를 한다면 그 태도를 지키는 것이 지식인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문제를 왜 점점 더 다루지 않게 되었을까요?

‘왜’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 아닐까요? 대중들과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데서 오는 문제지,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리 시대가 얼마나 정치적입니까. 낸시랭 씨도 정치적인 시대입니다. 낸시랭 씨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녀도 정치적이어야 하는 시대잖아요. 말하자면 우리 시대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는 거예요. 정치에 대해 용기를 갖고 어떤 태도를 보여주고,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해야하지 않을까요.

그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어떤 ‘틀’이 <키노> 안에 있었다면, 아무래도 지면에 구애받지 않고 실린 긴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긴 글이 많다보면 당연히 마감도 늦었을 것 같습니다. 마감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그 점에 대해서 <키노>는 엄청 악명이 높은데…. <씨네21>과 <키노>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씨네21>의 편집장은 신문사 출신들이라서 마감을 못하면 “인쇄기에 종이대신 널 대신 넣는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을 지켜야 했죠. 반대로 저는 있을 수 없는 소리를 했어요. “네가 나를 흔드는 글을 쓴다면 마감을 늦출게. 네 글이 완성될 때까지 난 기다린다.” 실제로 이 잡지가 마감을 지키지 않는 걸로 유명해서 영업부에선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하. 물론 마감은 독자와의 약속이죠. 그 약속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잡지가 쌓이면 역사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쓰는 것들이 다 모이면 역사가 돼. 우리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하루 이틀쯤 늦어도 상관없어. 1백년 후에 하루 이틀 늦은 게 무슨 큰일이겠니. 난 네가 좋은 글을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해.” 덕분에 과도하게 늦을 때도 있었어요. 그 점은 물론 잘못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원칙은 “최선을 다 해줘. 난 정말 좋은 글을 읽고 싶어”였습니다.

기사에서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인터뷰에서 인터뷰어는 질문을 존댓말로 하는 반면 인터뷰이의 답변은 문어체에 반말이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을까요?

질문과 대답이 분리돼서 읽히길 바랐어요. 한 데 섞이는 게 아니라. 그래서 독자들에게 대답이 기억에 남고, 질문이 기억에 남지 않길 바랐어요. 독자들은 대답이 궁금하지, 질문이 궁금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좋은 전략이었는지에 대해선 지금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후배 기자들이 써온 글을 검토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건 뭐였나요?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문장은 경험으로 가꿀 수 있어요. 대신 읽고 나서 “이 영화에 대한 네 생각이 뭔데? 생각이 없는 글은 나한테나 독자들한테 시간 낭비야”라고 했어요. 그래서 기자들한테 요구한 건 딱 하나에요. “기자들한테 이 잡지의 독자는 딱 한 사람이야. 나를 설득시켜. 나를 통과하지 못하면 이 잡지에 못 실려.” 저는 굉장히 까다로운 독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를 설득시키면 대한민국에서 어떤 독자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믿었어요.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지만 그 영화를 바라보는 의견이 다를 땐 어떻게 했나요?

그건 상관없어요. 대신 그 글에 새로운 생각이 있는가가 중요했어요. 이를테면 이름을 지우고 봐도 이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글이어야 해요. 기자들이 각자 생존하는 게 제 꿈이었어요. 말하자면.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편집부의 모델은 1950년 말, < Cahier Du Cinema >였어요. 히치콕과 르누아르를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고 생각했던 트뤼포, 하워드 혹스가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고 생각했던 자크 리베트, 니콜라스 레이가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고 생각했던 고다르, 역시 히치콕을 지지했지만 좀 다른 맥락으로 지지했었던 끌로드 샤브롤이 모여 있는 편집실을 꿈꿨죠. 그리고 기자들에게 항상 이런 얘기를 했어요. “새로운 감독을 발견할 것.” 왜 그것이 중요하냐면 지금 어떤 기자가 봉준호 영화에 대한 기사를 써도 봉준호 감독과 친구가 안 돼요. 박찬욱 감독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를 찍었을 때, “봉준호, 너 죽이는 걸? 넌 큰 감독이 될 거야. 내가 엄청 밀어줄게”라고 말하면 봉준호 감독이 “감사합니다. 제가 술 한 번 사도될까요?” 하면서 같이 크는 거예요. 혹은 지금 김기덕 감독에게 아무리 용비어천가를 불러도 김기덕 감독과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전에 김기덕 감독이 <악어>를 찍었을 때 “<악어> 죽이는 걸. 당신을 지지하고 싶어”라고 하니까, 김기덕 감독이 “정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울면서 답했어요. 홍상수 감독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찍었을 때도, “당신은 전혀 새로운 영화를 찍었어. 지지할게” 했어요. 그럴 때 감독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거죠. 근데 이건 기자로서 목숨을 건 일이에요. 왜냐하면 지지했는데 그 감독이 사기꾼일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그 감독의 영화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안 좋아진다면 그 기자는 안목이 없는 거죠. 그래서 후배 기자들에게 항상 말했어요. 10년 후에 네가 쪽팔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영화만을 지지하라고요.

최근엔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데뷔작이 좀 없었던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비판해야죠. 영화 평론가 세르주 다네는 한때, 10년 동안 프랑스 영화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어요. 당시에 나오던 영화가 다 쓰레기 같다고 비평했어요. 그러니까 프랑스 영화감독들이 세르주 다네한테 당신은 미국 영화와 독일 영화만 훌륭하다고 말하고, 프랑스 영화는 그렇게 싫어할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세르주 다네가 이렇게 답했어요. “나는 영화의 국적이 중요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좋은 영화 찍어 오면 된다. 장담하건데 지금 만들어진 프랑스영화는 10년 후에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세르주 다네의 말이 맞았어요. 경험적으로나 영화사를 공부 해 보건데, 한 나라의 한 시대의 영화가 굉장히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일시적으로만 좋았는데 과대 포장된 걸 수도 있고요. 그때 그런 영화들을 칭찬하는 건 용비어천가죠. 그런 건 광고와 홍보의 역할이지 영화에 대한 비평이라고 볼 순 없는 것이죠.

‘비평이 끝났을까?’라는 말은 사실 좀 지겹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묻고 싶습니다. 여전히 비평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왜 그런 비평들을 책으로 엮어야 할까요?

롤랑 바르트가 한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바르트한테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인터뷰를 하면서 질문 했어요. “선생님. 비평가는 뭡니까?” 바르트가 대답했습니다. “쓰레기죠. 비평가는 쓰레기입니다.” 그러면서 뒤에 덧붙였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쓰레기들이죠. 이들은 역사가 지나간 다음에 남아있는 걸 뜯어먹고 사는 쓰레기들이죠. 그런데 이 쓰레기들이 위험한 까닭은 전염병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비평의 역할입니다. 전염병을 퍼트리는 것. 그래서 사회에 말하자면 이 전염병을 퍼트려서 이 생각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쓰레기가 될 때, 이 쓰레기는 창조적인 무엇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비평가에 대해서 이보다 더 훌륭한 정의를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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