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루네오』 1991.04.01.(22호)영화이야기

문화가 산책

영화계의 상(賞)

정성일/「로드쇼」편집주간


세계 영화제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달 수 있는 필름 페스티벌은 5개뿐이다. 깐느, 베네치아, 베를린, 모스크바 그리고 카를로비바리, 여기에 왜 그 유명한 아카데미 영화상이 빠졌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카데미는 말 그대로 미국 영화제이며 그런 점에서 헐리우드만의 축제라고 하는 편이 옳다.

세계 영화제 중에서 가장 오래된 베네치아 영화제는 1932년 뭇솔리니의 정책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관광지인 베네치아에서 이른바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를 세계에 알리는 일종의 ‘어용’영화제로 시작되었으나, 2차 대전 패전 후 뜻있는 영화인들과 정부의 지원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특히 베네치아 영화제는 ‘예술성’ 지향의 필름 페스티벌로 유명한데 거의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아트 필름을 선정하여 전세계에 알리는 것을 영화제의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黑?明)가 무명이었던 시절「라쇼몽(羅生門)」에 1950년 그랑프리를 선사하여 일약 거장의 대열로 올려놓았으며, 이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61년에는 알랭 레네의「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 64년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붉은 사막」, 65년에는「곰자리에 빛나는 말」, 67년에는 루이스 부뉴엘의「세브리느」가 수상했다.

그러나 68년 전세계를 휩쓴 학생 운동의 열기 속에서 반체제 좌파 영화인들에게 ’부르죠아 영화제’로 비판 받아 80년까지 영화제는 지속하면서도 수상제도는 폐지했었다. 그 후 81년부터 다시 그랑프리 제도가 부활하여 그 해 작품상은 독일의 여류감독 마가레타 폴 트로타의「납의 시대」가 그 영광을 누렸다.

89년에는 대만의 후 시아오시엔의「비정성시」가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시나리오 작가 톰 스토페어드의 데뷔작「로렌크란츠와 길덴스턴의 죽었다」에 돌아갔다.

우리나라에 첫 번째 국제 영화제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것도 바로 베네치아영화제인데, 임권택 감독의「씨받이」가 87년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수상은 강수연이 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여우 주연상은 ‘그랑프리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놓칠 수 없는 영화’에 수상하는 일종의 격려상이라는 점에서 그 영광은 임권택 감독에게 돌아가야 옳을 것이다.

국제 영화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깐느 영화제는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의 ‘예술적 자존심’(?)을 걸고 46년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세계 영화의 최전선’을 가늠하자는 것이 깐느의 취지인데, 그랑프리 수상작들은 여기에 걸맞게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영화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쉘부르의 우산」(64년),「남과 여」(65년),「만일……if」(69년)이 모두 깐느가 소개한 그랑프리 수상작이며 우리에게도「파리/텍사스」,「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양철북」,「지옥의 묵시록」등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데이비드 린치의 끔찍한 애정 활극「광란의 사랑」에 그랑프리가 수여되었는데, 특히 2년 연속 미국 영화가 작품상을 받아 프랑스 영화계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깐느영화제는 해마다 5월에 열린다.

최근에 통일된 독일의 심장부 베를린에서 열리는 베를린영화제는 분단 도시에서 시작한 필름 페스티벌답게 영화의 정치적 색채와 이데올로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의 장예모의「붉은 수수밭」을 필두로 코스타 가브라스의「뮤직 박스」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임권택 감독의「길소뜸」,「만다라」가 베를린에 초대되어 세계에 알려졌으며, 이장호 감독의「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심사위원 특별상인 칼리가리상을 받았다. 새로운 영화를 소개하는 ‘영 포름’부문에는 박광수 감독의「칠수와 만수」, 장선우 감독의「서울 예수」그리고 장산곶매의「오! 꿈의 나라」가 초대되었다. 해마다 2월에 열리는데 올해에는 이탈리아의 이단적인 시네아스트 마르코 훼레리의「웃음의 집」에 그랑프리가 돌아갔다. 내년에는 한국 영화 주간이 개최될 예정이라는 기쁜 소식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모스크바영화제는 1959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자본주의 영화권에 대항하는 사회주의권 ‘국제’영화제를 만들자는 ‘냉전’논리의 취지 하에 시작되었으나, 곧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서방 세계에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페데리코 펠리니의「8½」, 신도 가네또의「벌거벗은 섬」이 그 영광을 누렸으며, 우리에게도 85년 수상작인 소련 영화「컴 앤 시」가 개봉되어 ‘사회주의권’영화의 걸작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제는 격년제로 열리는데 그 이유는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와 번갈아 하기 때문이다.

89년에는 이탈리아의 신예 감독이 만든「비누도둑」에 그랑프리가 돌아갔다.

헐리우드의 축제인 아카데미상은 1927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여기서 수여하는 상 이름이 오스카이다. 선정 방법이 독특한데, 우선 아카데미 회원 2,500명에게 투표지를 배부하여 5편의 후보를 뽑고 그리고 한달 후에 결과를 발표한다. 이 영화제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작품상을 받으면 흥행 성적은 따놓은 당상이며, 수상자들은 개런티가 5배 이상 뛴다는 사실!

80년대의 작품상 수상작으로는「보통 사람들」,「불의 전차」,「간디」,「애정의 조건」,「아마데우스」,「아웃 오브 아프리카」,「플래툰」,「마지막 황제」,「레인 맨」,「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가 있다. 올해에는 3월 25일이 발표일인데, 현재 후보로「늑대와 춤을」,「대부 PART 3」,「좋은 친구들」,「사랑의 기적」,「사랑과 영혼」이 올라와 있다.

프랑스 내의 영화제로 유명한 것은 세자르영화제. 1934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아무래도 깐느 국제영화제에 밀려 역부족이다. 해마다 3월에 수상을 하며 물론 대상은 프랑스 영화이다. 올해 작품상은「시라노」가 수상했다.

우리나라에는 영화진흥공사가 주관하는 대종상과 민간 영화제로 불리는 청룡영화상, 그리고 영화인들이 제정하여 작년부터 수상하는 나운규영화상이 있다. 대종상에는「젊은 날의 초상」, 청룡상과 나운규상은「그들도 우리처럼」이 수상했는데, 한국 영화의 현실을 반영해주듯 ‘비극적’인 것은 정작 영화 관객들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제의 가장 논란이 이는 부분은 바로 ‘심사의 공정성’인데, 국내 영화제는 영화 수준이 ‘도토리 키재기(?)’ 정도여서 그야말로 직배 영화의 폭격에 놓인 영화관의 화려한 외화 리스트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그나마도 이해 관계가 이리저리 얽혀있는 형편이다. 말하자면 텔레비전이 고장 났는데, 채널을 갖고 싸우고 있는 격. 깐느는 멀고, 한국 영화는 아직도 직배저지만을 힘없이 독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 이럴 수가.

흔히 영화 선전 포스터에 무슨 무슨 영화제에서 어떤 상을 받았다고 써있는 경우가 많은데 깐느, 베네치아, 베를린, 모스크바, 카를로비바리만이 세계적인 영화제이니만큼 잘 헤아려서 영화를 관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