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 2007.04.01.(3호)본인인터뷰

영화, 세상의 가능성을 꿈꾸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를 생각하면 동시에 여러 감독들이 떠오른다. 왕가위가 떠오르고, 지아장커, 허우샤오시엔, 아핏차풍 위라세타쿤, 가와세 나오미,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정성일 영화 평론가의 글은 날카로운 지적으로 ‘나쁜 영화’를 우리들의 영화 세계에서 몰아낸다. 그는 좋은 영화비평가란 감독의 복화술사가 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척박한 한국의 영화 풍토 안에서 그의 복화술은 우리에게 왕가위를 지지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으며, 지아장커와 허우샤오시엔이 고민하는 동시대적 문제를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가 영화로 사고하려고 할 때 늘 그의 시선은 우리의 사고 범위를 넘어서서 영화라는 세계의 진실에 근접해 갔다. 그는 ‘나쁜 영화’ 앞에서는 매섭지만, 좋은 영화 앞에서는 한 없이 겸손해진다.

때때로 우리는 그의 글 앞에서 겸손해진다. 왜냐하면 그는 영화 안에서 삶의 예의를 배우고 간절한 세상의 기도를 듣기 때문이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여타의 예술보다 초라하다고 믿지만 끝내 영화를 버리지 않는다. 그건 아마, 영화가 세상을 담고 있으며, 세상에 환멸을 느끼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편집장


이도훈 : 어린 시절 극장에 대한 추억을 듣고 싶다. 영화에 심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정성일 :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영화관에 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가셨다. 부모님의 취향과 다른 영화를 보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 생일잔치에 갔다가 세상에 눈을 일찍 뜬 친구를 만났다. 얘가 점심을 먹더니 영화를 보러가자고 한다. 해서 보러간 영화는 국적 불명의 무협영화였다. 그 때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고 눈을 떴다. 쇼크가 얼마나 컸던지, 그 뒤로 돈을 들고 자발적으로 영화를 보러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거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가 영화애호가로서의 길을 들어선 첫 번째 순간이 아니었나 한다.

: 당시 극장 안 분위기는 어땠나?

: 아주 나빴다. 속된 표현으로 삥 뜯는 불량배들이나 어린 소년들을 탐내는 이상한 아저씨들이 많아서 부모님들은 극장가는 걸 질색했다.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볼 수 있는 영화도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때, 그러니까 1971년, 박정희 대통령 법명으로 외국영화 수입을 한 해 20편으로 제한했다. 그나마 수입되는 영화도 흥행만을 고려한 저열한 영화 위주였다. 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중 3때 프랑스 문화원을 발견했다. 거기서 아, 이런 것도 영화가 될 수 있구나, 이렇게 찍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70-80년대라는 시기가, 그런 영화들을 본다는 게 일종의 도피일수도 있던 때 아닌가? 현실과 영화에 괴리가 있었을 것 같다.

: 그렇다. 당시에 본 영화들은 한국의 현실적 여건과 전혀 관계없는, 프랑스 홍보 차원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영화보기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 들어가면서부터는 서클에 들어가 비판철학을 배우게 됐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뒤죽박죽이었던 것들을 철학적으로, 미학적으로 정립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프랑스 문화원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그리고 독서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왔는데 그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세상에, 비디오가 나온 거다. 이건 혁명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에로비디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새롭게 열린 거였지만, 내게는 책에서만 봤던 <전함 포템킨>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생긴 거였다. 보고 싶다고 소망하면 볼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월드 시네마’라는 개념 하에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에 대한 좌표를 고민하게 되었다. <전함 포템킨>으로 말하자면, 이미 스틸들을 너무 많이 봐 와서 영화 전편이 모조리 이미 본 스틸들이었다. 아 이게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 충격을 사진으로 다 받은 상태라서, 영화를 봤을 땐 오히려 그 느낌이 약할 정도였다.

: 영화를 접하는 환경이 변하면서 사고의 변화도 있었나?

: 단지 많은 영화를 보게 되어서라기보다, 당시에 20대였기에 사고가 폭발적으로 진행됐던 것 같다. 남들처럼 나도 마르크스나 레닌을 읽었고, 세상에 대해 뭔지 모를 적개심이 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김동원 감독, 강한섭, 김소영 씨 등과 함께 스터디를 하며 구조주의를 공부했다. 바르트와 푸코를 특히 열심히 읽었다. 구조주의를 공부했던 이유는, 당시 유학 나가있던 친구들이 보내준 영화 관련 책들의 이론적 베이스가 1970년대의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왼손으로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오른손으로는 구조주의를 들고서 영화를 대했고, 이 두 가지가 서로 모순되게 간섭하면서 사고가 진행된 셈이다.

: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직장에 다닌 걸로 안다. 그러다 밤늦게 퇴근하고 나서 <고스트 버스터즈>를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영화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영화를 접할 수 있었을 텐데 절박한 심정으로 영화계로 돌아온 이유가 있는가?

: 영화를 하고 싶었다. 내겐 취미일 수가 없었다. 주말에 짬을 내서 영화를 보러 가는 걸로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은 지금 영화를 바라고 있는데, 내가 약간의 월급과 안락한 삶을 위해서 거기에 뛰어들지 않는 건 정직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뭘 했나?

: 처음엔 당연히 실직상태였다. 그러다 당시 이장호 감독(이 감독은 당시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돈을 많이 벌었을 때다.)의 연출부로 있던 박광수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자장면 한 그릇을 사주면서 이장호 감독이 책을 기획하는데, 네가 좀 해봐라, 하고 부탁하셨다. 힘들 때라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영화사에 들어가 하게 된 게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하고, 책으로 엮은 일이다.

나의 영화에 대한 생각은 이 책을 만들기 전과 후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권택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그저 책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27살 때 나는, 영화에 관한 이론이며 비평에 대해 지나치게 오만했다. 석사논문 쓰는 사람이 학부생인 나에게 자문을 구하러 오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오죽했겠나. 그전에 나는, 임권택 감독은 뭔가 뒤죽박죽이니까 내가 영화 이론을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론적으로 뭔가 정립이 되면 더 좋은 영화 찍을 거다, 싶었던 거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하고 일주일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지내보면서 완전히 잘못 알았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보면서 깨달을 수 없던 행간의 것들을 깨달은 거다. 영화가 세상과 어떻게 만나는가에 대해 철학이나 미학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서 접근해가는 것, 그렇게 비로소 영화가 예술로서의 자기 권리를, 형식을,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그러니까 나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한 사람이다. 임권택 감독은 내게 영화적 아버지인 셈이다.

: 당신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인상 깊었던 던 말 중에 하나가 고다르를 인용한 말이다. “영화는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꿈꿔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영화에서 현실과 접목되는 부분을 주목해 봐야한다는 말인가?

: 그런 건 아니다. 영화에는 어떤 기만이, 어떤 환영술이 있는데 영화를 보는 관객이 끊임없이 그것을 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영화는 가능성의 세계이지 실제적인 세계는 아니다. 그 가능성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 가능성이 실제라고 생각해도 안 된다.

: 그럼 과연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는 건가?

: 바로 그 가능한 세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 있다고 치자. 이 세상은 유일하게 가능한 세상은 아니다. 유일하게 실현된 세상일 뿐이다. 이 세상 옆에 가능한 세상Ⅱ도 있고 가능한 세상Ⅲ도 있다. 세상Ⅱ가 허우샤오시엔의 세상일 수도 있고 세상Ⅲ이 지아장커의 세상일 수도 있고, 세상Ⅳ가 임권택의 세상일 수도 있다. 무한히 열린 그 가능성들을 영화가 보여주는 거다.

: 영화를 보는 사람이나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절대 영화를 많이 보지 말라고 했던 것을 들었다. 스스로 영화를 ‘싸구려 예술’이라고 칭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브레히트의 말로 대신하겠다. “예술은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영화는 예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상품이다. 태생부터가 그렇다. 다만 몇몇 미친 인간들이 영화가 예술이라고 믿고, 그 상품 속에 예술의 혼을 불어넣기 위해 영혼을 바친 거다. 문제는 그런 영화가 많지 않다는 거다.

또 나는 동서고금의 명작이라는 영화들을 열심히 챙겨봤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만큼 위대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영화인 중에서 카프카만큼 위대한 예술가를 만난 적이 없다. 영화 속의 어떤 아름다운 장면도 세잔느의 그림 같은 감흥을 주지 못했다. 자, 카프카의 소설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100번을 물어도 카프카다. 사람이 어떤 미학적 쇼크를 견딜 수 있는 시기는 한정돼 있다.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 <반지의 제왕> 세 편을 볼 시간이 있으면 나는 같은 시간을 들여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전곡 다 듣는 게 100배, 아니 10억 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홍상수가 사석에서 하는 말이, 자기 시나리오를 쓸 때 남의 영화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다만 훌륭한 소설책의 페이지를 아무데나 딱 폈을 때 어떤 대사나 문장이 막힌 데를 다 풀어줄 때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 체험을 포기하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시간이 남거든 영화를 봐라. 그 정도라도 충분하다. 영화는 고작 그 정도 위치다

: 영화에는 특이하게 ‘시네필’이라는 단어도 있고, 당신이 쓰는(다른 어디에도 없는 말) '영화주의자‘라는 말도 있다. 영화의 친구라는 뜻인 씨네필이라는 단어는 ’영화매니아‘같은 경우와 달리 다른 예술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다. 뮤직필이나 페인팅필이라는 말은 없다.

: 무엇보다, 영화는 아직 공식제도 안에 못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직 박물관에 가지 않는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문학, 음악, 미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영화는 제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사회에서 충분히 사유해볼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지고, 경멸받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친구를 원하고 있다.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친구를.

매니아라는 말보다는 씨네필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매니아란 말이 영화에 붙을 때 영화를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매니아라고 불리는 사람은 무슨 영화를 몇 편이나 봤는가 하는 양의 문제가 자부심과 연결된다. 하지만 씨네필들은 그런 걸 가지고 경쟁하지 않는다. 친구는 그런 걸 가지고 경쟁할 이유가 없지 않나. 씨네필에게 향한 질문은 ‘그 영화를 봤어?’가 아니라 ‘그 영화에서 뭘 봤는데?’이다.

: 개인적으로, 대학 안에서 영화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힘들다. 특히 영화 안에서 현실을 보고 그걸 끌어와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영화 문화가 멀티플렉스 위주로 재편되고 영화 매니아들은 자폐적으로 변해간다. 어떻게 해야 하나?

: 사실 그 문제는 예전부터 생각한 것 중의 하난데,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해라. 만일 지금 대학생들이 정말 잘못된 거면, 나중에 지금의 고등학생들이 극복할 거다. 사실 뭔가 잘못됐다거나 갈아엎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에는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전제돼 있다. 그러나 좀 멀리서 보면 이 세대도 지나가는 세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실용주의의 시대다. “타르코프스키는 지루하다. 골치 아픈 영화? 너나 봐. 나는 지금 행복해지는 게 너무 중요해. 내가 지금 7000원 쓰는 것에 대한 가치를 물어보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 허영을 위해서 7000원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어.” 이건 90년대에 대한 안티테제다. 지금 그걸 바꾸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신 다음에 다음 세대가 이 실용주의에 대해서 어떤 안티테제를 들고 나올 것인지가 정말 궁금하다.

: 마지막 질문이다. 영화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만드는 사람이 있다. 영화비평가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혹은 감독과 비평가의 관계는 어떤 건가?

: 일반론을 내세울 수는 없다. 개인적인 소견이라는 전제하에 말하자면, 나는 비평을 쓸 때 한명의 독자만을 위해서 쓴다. 정말 딱 한사람.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건 감독에게서 오는 피드백이다. <오아시스>에 대해서 쓴 직후 만난 영상원 학생이 “오전에 이창동 감독님이 선생님 글을 읽었는데, 오후 수업 전폐하고 가셨어요.”라고 할 때라던가, 또 어느 날엔가 “정 선생님이세요? 우리 술 마셔요.”하는 홍상수 감독의 전화가 올 때 기쁜 거다.

비평가는 그 영화를 생각하고자 하는 관객들과 영화 사이에 중재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비평가가 별점을 매기는 건 미친 짓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 영화에 대해서 생각 할 시간을 주는 것, 생각의 두께를 마련해 주는 것. 그게 비평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때에도 글 쓸 때의 시선은 오직 단 한사람,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

정리 ∥ 윤주노 rainbowma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