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 1997.12.(205호)시론

문화와 비평·영화 / 한국 영화의 현주소

‘싸우는 예술’ 로 돌아오라

한국 영화는 97년 한해동안 무엇을 했는가? 작년에 비해 영화 제작편수는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들었고, 시장경쟁력도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한해의 성공작은 헐리우드 영화들이며, 그 정글 속에서 살아남은 영화들의 성공도 보잘 것 없는 전리품에 불과해 보인다.

국제적인 영화제에서는 대부분 예선에서 탈락했고, 삼류 영화제나 아니면 변방의 작은 영화제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을 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한국 영화의 올해 가장 큰 이슈는 부끄럽게도 표절시비다. <홀리데이 인 서울> <비트>는 왕가위 스타일의 표절 혐의에 내내 시달려야 했으며, 올해 가장 커다란 흥행 성공작인 <접속>은 모리타 요시미츠의 일본 영화 <하루>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바로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영화 현장은 미로가 되어 버린다. 제작자들은 대기업의 투자가 잘못 되었다고 비난하고, 영화 산업에 뛰어든 기업은 암시장 구조와도 같은 배급 구조를 비난한다. 영화 현장에 있는 영화인들은 영화장사꾼들을 ‘싸잡아’ 성토하고 영화 관객들은 그런 싸움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다. 여기서 정말 잘못된 것은 누구일까? 내 생각으로는, 결국 영화인들 자신이다. 이것은 아주 신중한 결론이다. 그러나 그 잘못의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대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사업에 뛰어든 것이지, 결코 문화사업을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다. 만일 그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당연히 영화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다. 영화 제작자들도 마찬가지로 영화로 돈을 벌기 위해 영화에 투자하는 것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인이 아니다. 그들도 돈을 벌지 못하면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영화 관객들은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긴다면 망설이지 않고 눈을 돌릴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는 사람은 현장의 영화인들 뿐이다.

그런데 영화인들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그건 영화라는 삶의 현장으로부터의 추방만이 남을 뿐이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과 맞서 한국 영화를 살려내기 위해서 끝까지 싸워야 하는 것은 영화인들 자신 뿐이다. 영화 시장의 현장은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남은 방법은 그 현장의 건강한 개선을 스스로 만드는 것 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영화에 기업이 투자하고, 영화 제작자들이 더 많은 성공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풍요로워진 영화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아왔던 관객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깊이와 너비를 얻어내야 한다.

책임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영화감독을 취미생활처럼 누리면서, 대학에서 편안하게 영화과 교수나 하려 들고 영화제 주변이나 맴돌면서 시간을 보내는 영화인들이 많아서는 정말 우리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영화를 ‘싸우는 예술’ 이라고 부른 영화감독 사뮤엘 폴러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전적으로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