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1997.07.작품

특집 | 문화예술인 15인이 말하는 충격의 시각이미지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은 어떤 시각 체험을 간직하고 있을까. <월간미술>은 문화예술인 15인의 삶속에 뚜렷이 각인된 시각이미지들을 모아 보았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빛나는 예술적 원천이 되었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이미지. 그들이 건네는 이미지에서 우리의 시각 체험을 반추해 본다.


고다르의 ‘천지창조’

정성일 영화평론 ·《키노》 편집장

질 들뢰즈는, “이미지는 운동하기 때문에 하나의 의식이다”라고 했다. 말하자면 이미지를 의식하는 것은 바로 나의 의식이 운동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어진 이미지가 나의 감각을 통해 그 자체로 나의 경험을 통해서 사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주어진 이 질문은 이렇게 말을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주어진 이미지가 나의 의식을 운동하게 만든 의지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미지는 항상 의지이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이미지가 나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운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언제나 영화였다.

영화는 진정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열려 있다. 그러나 영화는 자신의 상상을 다른 곳에서 빌려 오곤 했었다. 이제 이미지의 운동은 나와 영화, 그리고 영화가 빌려 온 다른 이미지와 함께 삼각형 구도를 이루는 운동이 되었다. 나는 이 이미지의 운동이 서로 한없이 연결되어 있는 연쇄망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누벨 바그>를 보면서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 영화는 고다르의 대부분 영화가 그러한 것처럼, 평범한 추리 범죄 이야기를 뒤틀어 내용을 거의 알 수 없을 만큼 다른 이야기 구조로 만들고 있다.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누벨 바그>가 나를 사로 잡은 것은 단 한 장면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여자는 자동차를 타고 달린다. 그리고 방랑하는 남자는 길가를 걸어 간다. 두 사람은 아주 우연히 서로 스쳐 지나갈 뻔한다. 그러다가 그만 자동차에 남자가 쓰러지고 만다. 여자는 차를 멈추고 내려서 남자의 손을 잡는다. 손을 잡으면서 여자는 말한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항상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고다르의 카메라는 남자와 여자의 손을 잡는 순간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바로 그 순간 그 제스처를 연상하듯 바라본다. 마치 얼핏 스쳐 지나가는 듯한 이 장면에서 고다르가 보는 것은, 도대체 왜 우리 시대에서 ‘천지창조’ 순간의 비밀을 보는 것은 불가능해졌을까 하는 질문이다.

그는 이 장면에서 이미지를 두 개의 속도 속에서의 만남으로 이해한다. 하나는 자동차라는 기계의 속도이고, 또 하나는 걸어 가는 인간의 속도이다. 그 둘은 언제나 서로 다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 고다르의 생각으로는 두 이미지의 속도가 겹쳐지는 순간 우리가 ‘천지창조’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고다르는 이미지를 영화와 미술, 그리고 자동차의 속도 사이에서 멈추어 설 때 그 사이 어딘가에 ‘천지창조’의 비밀스런 순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질문한다. 말하자면 이미지는 운동이지만, 그러나 수동적인 속도에 실려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 속의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놓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천지창조’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