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회미래』 1998.04.(봄호)시론

문화와 비평 - 영화

시대정신 담고
대중정서 대변해야


모든 경제가 파산 선고를 한 지금 우리에게 영화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영화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만 아니라 98년 지금 여기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직은 아무도 여기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신 여기에 우회하여 하나의 예를 들 수는 있다. 만일 스타가 그 시대 대중들의 정서를 표상하는 존재라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에게는 의미심장한 스타가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충무로의 모든 기획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만큼 단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스타가 있다. 한석규는 <닥터 봉>으로 95년 데뷔한 이후 뒷골목에서 죽어가는 ‘똘마니’역을 맡은 <초록 물고기>, 두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넘버 투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삼류들의 쓰레기 인생을 그린 <넘버 3>, 우연히 통신 공간에서 만난 여인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만나서 사랑의 해피엔딩을 맞는 <접속>, 그리고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다가 우연히 만난 소녀와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죽어가는 사진사 이야기 <8월의 크리스마스>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두 성공했다. 그는 제작자와 영화감독, 그리고 연기자 모두를 더해서 유일하게 실패를 모른 사람이다.

질문은 “왜 사람들은 한석규를 보고 싶어하는가”가 아니다. 그 반대로 “한석규를 통해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를 통해서 재현이 아니라 배제의 논리를 찾아야 하며, 존재가 아니라 예외의 이유를 찾아 동일화의 근거를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한석규가 하지 못하는 (또는 그가 피하는) 역할은 세 가지 인물이다. 그 하나는 성공한 엘리트이며, 또 하나는 성적으로 타락한 (또는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와 연관된) 섹슈얼리티와의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 인물이거나, 마지막으로 ‘백마 타고 온 왕자’이다.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이 사실적인 현실의 모순 속에서 싸우는 인물은 아니지만, 동시에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타지의 장식 과잉으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피하면서 그 인물의 발을 대지에 내려서도록 이끌고 있다. 더 정확하게 그 인물들은 허구 이야기 속의 사실적인 주인공이다.

이 의미는 대중들이 장르 이야기를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면서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그 이야기 속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물에게서 현실의 비극성을 빌어 그 정서를 기대어 서려는 것이다. 현실은 장르 속에서 순화, 변형, 뒤틀리고 바뀌어져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주인공의 운명을 슬퍼하며,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자신을 가엾이 여기며 울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답할 시간이다. 영화가 현실 그 자체는 아니겠지만, 언제나 영화는 현실 곁에 서 있다. 지옥같은 가난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영화는 우리들에게 정서의 복화술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우리가 영화 속의 주인공을 위해 울어야 할 그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