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THEQUE』 2006.03.01.GV

C i n e m a t h e q u e  i m a g i n a i r e- 상상의 시네마테크

2006년 3월 25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지난 10년간 한국영화가 걸어온 역사적 궤적과 미학적 성과를 되짚어보는 ‘한국영화 1996 : 심포지엄 2 - 10년의 기억’이 열렸다. ‘한국영화 1996’ 특별전에 소개된 영화들에 대한 기억을 비롯하여, 흥미로운 논의로 충만했던 현장을 지상 중계한다.(편집자)


허문영: 1996년이 한국영화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분명해 진 듯 합니다. 1996년이 어떤 해였는지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 보지요.

정성일: 1996년 8월 연세대학교에서 한총련의 집회가 있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 해에 정치적인 무관심으로 무표정하게 대답했던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김기덕의 <악어>가 도착했습니다. IMF의 전야라고 부를 수 있는 불황과 외채의 증가가 1996년에 징후로 나타났고, 이듬해 한국사회는 경제적인 쇼크에 빠졌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가 1996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해의 큰 사건은 두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첫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31개국에서 영화 83편, 단편영화와 애니메이션 63편이 왔습니다. 오프닝 영화는 그 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10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영화심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후 한국 영화검열의 문제는 새로운 차원의 담론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짧은 시기이기는 했으나 소위 아트하우스 영화들이 붐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처럼 시네마테크에서 회고한 것이 아니라 개봉했던 영화들이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 <율리시즈의 시선>, 베리만의 <화니와 알렉산더>, 베르톨루치의 <거미의 책략>,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칼라의 노래>, 안토니오니의 <구름 저편에>, 타르콥스키의 <노스탤지어> 등 입니다. 그 해에는 많은 관객들이 극장에서 14분 50초 동안 촛불을 들고 걸어가도 참았습니다. 또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이 동시에 개봉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 해가 아트하우스 영화의 끝물이었습니다. 그 후 아트하우스 영화의 붐은 재현되지 않았고, 오늘날 우리들은 해방구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일반 관객들은 게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모여앉아 1996년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김소영: 1996년 당시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4명의 신인감독들로 저는 변영주, 홍상수, 김응수, 임순례를 꼽았습니다. 당시에 제가 김기덕을 놓친 겁니다. 1996년엔 <개 같은 날의 오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코르셋>,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두 여자 이야기> 등이 나오며 여성주의적 시각과 담론이 등장했습니다. 의미심장한 제목처럼, <정글스토리>는 1996년이 축제의 한 순간인 동시에 ‘예술영화’에 대해 조종을 울리던 시기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80년대, 혹은 50년대부터 생존해 온 임권택 감독과 박철수 감독이 충무로라는 정글로 돌아왔고, 한편으로 <내일로 흐르는 강>,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이 남성성, 가부장제, 전통의 문제를 파격적으로 다뤄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죠. 90년대가 문화연구가 부상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 자장 속에서 퀴어 이론, 젠더 이론 등이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영화 자체가 저를 움직여 극장을 나가다 돌아가서 감독과 얘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는 관객 반응이감동적이었습니다. 관객들의 질문이 날카로우면서 격려의 뜻도 있었는데, 새로운 감독에 대한 영화제 관객들의 애정과 질타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또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3부작 제작 과정에서 보여준 ‘100피트 운동’ 등에서 동지애적인 관객의 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허문영: 1996년의 의미를 한국영화 전사를 돌아봄으로써 보충하고 싶습니다. 미학적 경향  이전에 정치적, 사회적인 상황, 영화 외적인 요소가 강력하게 개입하기에 한국영화사는 사실 시기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나마 한국 영화가 온전한 모습으로 자기의 동력을 가졌던 최근 시기를 1988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해 나온 장선우의 <성공시대>, 박광수의 <칠수와 만수> 등이 열어보인 사회적 리얼리즘의 경지에 저널리즘은 감화 받고 관객은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영화가 시대의 문제에 응답해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시기가 1995년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1996년이 놀라운 이유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도도한 물결이 급작스럽게 단절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영화들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김기덕의  <악어> 등의 영화들은 감독의 내면적인 자기표현으로 봐야 합니다. <내일로 흐르는 강>이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경우도 역사적 시간으로부터 이탈된 개인의 욕망, 공허, 슬픔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새로운 흐름의 시작, 이를테면 일본이나 유럽에서처럼 뉴웨이브라고 표현하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소영: 뉴저먼 시네마나 누벨바그처럼 한 국가의 영화가 하나의 영토 안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갈 때, 소위 국제적인 내셔널 시네마가 될 때 뉴웨이브라는 호칭을 붙이죠. ‘코리안 뉴웨이브’는 80년대 말 장선우와 박광수를 호명하며 이미 쓰였습니다. 그 다음의 재호명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하는, 산업 쪽에서 자칭한 영화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처음엔 소수의 감식자들에 의해서만 발견되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이 영화의 시사회를 놓쳤습니다. 그 다음 주 <씨네21>에서 김소영 평론가가 호감을 표시하고 그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자, 뭔가 놓쳤다는 생각이 들어 개봉 다음날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는 새로웠지만 브뉘엘, 브레송, 로메르의 영화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저를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그런 것들을 무리 없이 자기 영화에 밀어 넣고 자기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감독이 나타났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해 겨울에 또 한 편의 영화 시사회에 갔습니다. 커트도 안 맞고, 편집도 이상하고, 얘기는 흘러가는데 중간에 연출자가 얘기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끝까지 끌고 가고 있었고 마지막 장면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홍상수와 전혀 다른 면에서 이 영화는 올해의 발견이었습니다. 김기덕의 <악어>였습니다. 두 편의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로 묶이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누벨바그처럼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처럼 함께 작업했거나, 혹은 뉴저먼 시네마의 ‘오버하우젠 선언’처럼 한꺼번에 모여서 선언을 했거나, 홍콩 영화처럼 한 영화사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거나 하는 카테고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외적으로 넓게 보는 것을 허락한다면, 저는 1996년은 <X파일>의 해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1994년에 첫 방송을 했고 96년에 인기의 절정을 이뤘습니다. ‘<X파일>을 보고 난 후 우리에rps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진실이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그 진실이 저 너머에만 있다는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본 다음 느끼는 것은 뭔가 저기에 진실이 있는 것 같은데 저 너머에 있다는 것입니다. 장선우와 박광수는 진실이 여기 있다고 싸우자고, 투쟁하자고 제안합니다. 1995~6년에 개봉한 <꽃잎>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두 편 모두 그 해 흥행 베스트에 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 세상과 싸우자는 제안에, <X파일>은 세상은 알 수 없는 카오스의 상태로 들어가며, 그러한 것들이 진짜 있을까, 대답을 한 것이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90년대를 시작하며 ‘자, 여기에 대안이 있어’라고 하면서 얼터너티브와 너바나, 커트 코베인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다 하는 얘기야‘라고 대답하듯이 소위 브릿팝 즉 오아시스, 블러, 펄프의 전성기가 시작됐습니다. 오아시스가 올해 한국 공연을 왔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홍대클럽 문화도 이 시기에 부상하였습니다. <트레인스포팅>에 나오는, ‘네 미래는 네가 선택해라’ 던 언더월드의 노래가 클럽에서 유행하면서, <꽃잎>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보여줬던 ‘우리 함께’ 는 증발해 버리고 ‘네 인생은 네가 결정하는’ 것이 문화현상이 되었다는 것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악어> 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처럼 보입니다.

허문영: 두 분 다 지적하셨듯 이 시기를 뉴웨이브라 이름 붙이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김기덕과 홍상수에게 공통의 영화적 의제가 있는지 대답하기 어려운데, 거기다 강제규의 <은행나무 침대>, 김용태의 <미지왕>까지 합치면 이들 사이에 공통적 의제를 발견하기란 힘듭니다. 이 영화들은 내셔널 시네마란 범주 안에서 아버지의 영화와 대결하려는 자의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고아처럼 시작했고, 무국적적인 자양분을 내셔널 시네마와는 무관하게 흡수했습니다. 1996년을 모던 시네마의 출현과 내면주의의 시작으로 보기 힘든 이유는 60년대 한국영화들, 김수용의 <안개>, <화려한 외출>, 유현목의 <춘몽>, 이만희의 <휴일> 등에서 이미 모던 시네마의 자각이 이뤄지고, 개인의 표현으로서 혹은 아이러니의 표현 수단으로서의 영화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균질하지 않은 한국영화사의 흐름 속에서 1996년이 의미심장했음은 분명합니다. 1996년을 얘기할 때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소영: 1996년 <씨네21>에 제가 쓴 글입니다.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서울 변두리를 헤매다 패스트푸드 점에 넋 놓고 앉은 30대 여자. 100원짜리 요구르트를 마시며 구직광고를 들여다보고 있는 삼류극장 매표원인 20대 여자.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고 믿고 있으며 상대는 삼류소설가인 효섭. 이들의 삶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그 지리한 남루함을 드러낸다. 남루하다니. 90년대가 그런가? 투명한 유리로 눈부신 서울이? 그렇다. 놀랍게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일상의 극진한 세부묘사를 통해 펼쳐 보이는 서울 사람들의 일상은 그토록 지리멸렬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삶은 왜 이리 때묻고 해어져 너덜거리는가. 왜 그 스산함 속에서도 우리는 끽끽거리며 울음 같은 웃음을 흘리게 되는가. 예컨대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자주 웃게 된다. 옥탑방에 사는 효섭이 이웃집 화분에 달린 작은 과일과 고추를 훔쳐 먹을 때, 장자와 마르크스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 그리고 실연한 여자와 그를 연모하는 남자가 꾸역꾸역 돼지고기를 입에 밀어 넣을 때 검은 웃음은 터진다.’ 그 당시 이 영화가 제게 깊이 각인됐었던 것은 현대성을 굉장히 무심하게, 마치 흘러가듯이 영화표면에 기입하는 것이었어요. ‘영화는 감각적 비전을 통해 위협적인, 사라지는 그리고 도주하는 현대의 순간성을 포획하고자 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그렇다. 영화는 현재라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포착한다. 그러면서 각 계층들의 곧 사라지고야 말 일상의 경험, 모닝콜을 하고 과일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들을 영화의 표면 위에 꼼꼼하게 새겨 나가고 있다. 거기에는 얼핏 계급상승의 욕구와 하강의 공포도 보이고, 여성과 남성이란 성차에 따른 경험의 차이도 보인다. 그리고 잠깐, 일상을 넘어선 부조리극의 무대도 마련된다.’ 이것이 정성일 평론가가 봤던 브뉘엘적인 순간이죠. ‘영화는 순간적인 하루살이 비극으로 끝난다. 하지만 한국영화계로 볼 때 이 영화는 축제의 시작일지 모른다. 만일 당신이 ‘영화의 문학적 구부리기’라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 ‘지름길 없는 진부한 일상의 지도 그리기’라는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 프레드릭 제임슨이 대만 감독 양덕창에게서 발견한 동아시아적 모더니즘 양식을 한국영화에서 발견하고 싶다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면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위 감독들에 대한 한심한 모방도 아니며, 또 다른 곳이 아닌 서울을 근접조우하고 있어 친숙하다. 혹시 당신이 위 감독들 모두를 싫어한다 해도 소박하기 그지없는 버전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은 분명 좋아하게 될 것이다. 보경, 효섭, 동우, 민재 그리고 다른 조연들까지 매우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희귀한 한 순간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영화에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하나의 연쇄로 묶기는 어려웠지만 현대적인 일상성, 소위 동아시아의 모더니즘 영화의 양식으로, 양덕창, 차이밍량, 또 허우 샤오시엔의 일부 영화들과 묶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강제규의 <은행나무 침대>도 언급하고 싶은데, 당시 디지털 기술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토이 스토리>가 나오고 <쥬라기 공원>의 공룡이 나타났습니다. 한편으로 소박하게 보이는 동아시아 모더니즘 영화가 나타났다면, <은행나무 침대>는 다음에 나타날 <쉬리> 등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예고했습니다. 당시 ‘이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된다’고 호의적으로 썼는데, 디지털의 활용도와 방식, 색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허문영: 저는 1996년을 두 영화로 기억합니다. <랜드 앤 프리덤>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입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방울토마토를 따먹는 장면, 술 먹고 바리케이드를 넘는 장면 등이 폐부를 찔렀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입체감, 실재감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영화보다 관능적이었습니다. 비로소 한국영화에서 형식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며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김기덕의 <악어>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정성일: <악어>는 한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노를 넘어서 마지막 순간에는 자살의 지경에 이르더니, 숭고한 자살로 끝날 것 같았던 영화가 물 속에서 ‘자살하려던 내가 미친놈이지’ 하며 몸부림을 치는 순간, 세상에 대해 뭔가 맹렬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 감독의 다음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봤을 때는 베케트를 읽었을 때의 삭막함을 느낄 수 있었고, 김기덕의 <악어>를 봤을 때는 카프카를 읽었을 때의 절망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다행한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우리들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맹렬하게 자기의 길을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소영: 변영주, 김응수 감독을 흥미롭게 생각했었고, 특히 변영주 감독은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지지하고, 제 평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영화에서 80년대의 회고담은 김응수 감독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가 처음이었죠. 사상 투쟁하던 사람들이 오이를 가지고 티격태격 싸우는 90년대의 일상적인 디테일을 끌어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정성일:  김용태의 <미지왕>은 오히려 지금 더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디지털이 도착한 이후에 소규모 스텝들과 함께 만들어졌어야 할 영화인데, 놀랍게도 태흥 영화사에서 임권택 감독 영화의 제작 스텝들과 만들어졌습니다. 또 이번 영화제에서는 상영 못했지만 배용균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도 1996년의 매우 중요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두 편 모두 너무 일찍 도착하여 우리들에게 발견되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만 다시 얘기한다는 점에서, 환기해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1: 1995년, 1996년 무렵에 <키노>, <씨네21>, <씨네버스> 같은 잡지들이 나왔습니다. 그 시점에서 영화를 통해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키노>의 경우, 100번째를 채우지 못하고 폐간이 되어 안타까운데요.

정성일: 100번째를 만들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1996년에는 <키노>라는 잡지가 만들어내는 영화담론을, 방어하고자 하는 감독을 위해 경제적 토대를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독자들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잡지의 존재는, 내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낼 용의가 없다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독자가 사라졌다기보다는 그것을 지지하던 영화적 관심, 감독들을 방어해야 하는 의무감이 사라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1996년에 서울 아트시네마가 시작됐다면 달랐을 것입니다. 시네마테크를 위해 일하는 많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하소연하고 크게 걱정하는 것은 점점 사라져가는 관객입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에는 4천 7백만 인구의 나라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보겠다고 1천 3백만 명이 몰려옵니다. 1996년에 가장 흥행한 영화는 <투캅스>입니다. 서울 집계로 <투캅스>가 70만5천명, <은행나무 침대>가 68만 3천명이었습니다. 전국 관객도 그리 많진 않았습니다. 그 해 흥행 베스트 중 10위가 조양은이 주연한 유영진 감독의 <보스>였습니다. 이 영화는 서울관객 16만 5천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울 관객이 10만이면 제작이 안 됩니다. 1996년 당시 그 관객이면 무리 없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10년간의 지표 속에서 작가들의 부상이나 여러 가지 영화제의 부상이나 한류 등 여러 가지 모습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변화는 관객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의미 있고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영화와 관객들의 환경은 역설적으로 열악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객2: 1988년을 한국영화의 사회적 리얼리즘이 대두된 시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람불어 좋은 날>이 나왔던 해를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허문영: 분명히 <바람불어 좋은날>은 사회적 리얼리즘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영화이고, 그 전에 만들어진 이원세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훨씬 더 강한 저항으로서의 영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1975년에 하길종을 중심으로 한 ‘영상시대’의 동인들이 이루고자 했던 것도 넓은 의미에서 리얼리즘이었을 것 입니다. 상대적으로 1988년 이후 7, 8년 동안 그러한 경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허문영 평론가는 1996년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랜드 앤 프리덤>의 해였다고 했는데, 김소영 평론가에게 1996년은 어떤 해였습니까?

김소영: 저는 3편을 기억합니다.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김응수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랜드 앤 프리덤>의 마지막 장면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어요. 좌파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80년대를 살다가 켄 로치가 이야기하는 아나키스트적인 비판이 신선했습니다.

정성일: 허문영, 김소영 평론가에게 감사하는 것은, 소위 비평가로 살면서 놓칠 뻔한 1996년의 걸작들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쓴다 해도, 걸작이 눈앞에 있는데 못 봤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행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악어>는 그 해에 보았습니다. 제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 해 서울단편영화제에 출품됐던 132편의 영화 중 한 편을 놓친 것 입니다. 봉준호의 <지리멸렬>입니다. 봉준호는 그 해 2월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고, 박기용 감독의 <모텔 선인장>의 연출부에 장준환과 함께 들어갔습니다. 봉준호는 지금 <괴물>을 찍고 있습니다. 우린 1996년에 홍상수와 김기덕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2006년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놓친다면 여러분들은 영화 장님입니다. 동시대의 새로운 감독과 걸작을 놓친다면, 여기서 아무리 근사한 얘기를 하고 대단한 영화책을 읽는다 할지라도 영화에 대한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1996년 당신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라는 오늘의 심포지엄은 여러분에게 고스란히 돌려드리겠습니다. 2006년에 어떤 영화를 발견하시겠습니까?

정리: 정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