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1994.02.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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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시대정신을 묻는다


다소 짓궃긴 하지만 1994년 한국영화의 시대정신을 물어보는 것은 지나치게 심각한 농담일까? 직배영화에 죽어가고, 비디오 시장 속에서 싸구려 소프트 코어 포르노로 전락하고, 섹스 코미디를 새로운 기획상품처럼 포장해서 내놓고 있는 충무로 현장에서 혹시나 이것은 시체 부검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가 상품이긴 하지만 '문화'상품이고 오락이긴 하지만 오락'예술'이라면, 여전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라는 토대 위에 발 딛고 서 있는 정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정신조차도 이제는 의심스럽게 보인다. 그 의심은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1994년 신년을 시작하는 강우석 감독의 「투 캅스」와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우리의 질문에 대답이 되는 것이다.

우선 강우석 감독은 무엇보다도 영화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부분의 한국영화 감독들(물론 여기에는 직무유기중인 '포르노' 감독들은 제외된다)이 사로잡혀 있는 창백한 엄숙주의를 여기서 마음껏 비웃는다. 그뿐 아니라 더 나아가 바로 그런 태도가 한국영화를 영화관으로부터 버림받고 쫓겨나게 하였다고 오히려 반문하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건 부분적으로 진실이다. 영화관은 학교가 아니며, 영화는 무엇보다도 대중들의 '소비' 위에 세워져 있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 캅스」가 대중들과 타협(!)했다고 말하는 표현은 옳지 않다. 오히려 강우석 감독은 지금 대중들이 스크린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다. 그는 성공했고, 그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강우석 감독이 만들어낸 성공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영화에서 상업영화의 규칙을 새로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변조하고, 덧칠하고, 다소 응용하여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렇다면 일시적인 성공이며, 헐리우드 영화의 확대 재생산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는 여기서 내기를 걸고 있는 것이다. 스타 시스템과 해피 엔딩, 그리고 현실과 꿈 사이의 아슬아슬한 사필귀정은 마치 곡예를 보는 것처럼 불안하다. 이것은 서투른 성공이며, 강우석 감독은 다음 영화를 만들면서 그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가 희망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그가 반(反) 헐리우드적 스타일이며, 또한 역사와 현실에 대한 관심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지나치리만큼 모더니즘적인 작가주의에로 경도되어 있다. 그는 영화가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영화의 수사학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광수 감독은 과도하게 그런 장치들에 의존한다. 그래서 이제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나타나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형식주의는 역사와 맞서고 있으며, 심지어 거기서 더 나아가 역사의 모자이크에로까지 밀고 나아간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주의라는 이름 아래 모더니즘으로, 서구의 계몽주의 이성으로, 이성을 바탕으로 세워놓은 타자의 방법으로 우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래서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그 빛나는 은유와 상징의 장치들이 점을 중심으로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 이데올로기와 화해를 넘나들면서도 바로 그 모든 것의 고리가 되는 '우리의 역사'에 피와 눈물을 더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영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두 편의 한국영화가 그 나름대로 만만찮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자신만의 영화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한국영화의 계보 바깥에서 우리를 사고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우리의 시대정신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점차 그들에 동조하고 있는 세력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때, 한국영화는 '증발'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