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2010.12.28.(785호)본인인터뷰

“건투를 빌겠습니다,
          웰컴 투 헬

영 화 감 독  임 상 수   v s   영 화 감 독  정 성 일 ,
<카페 느와르>에 대해 캐묻고 해명하다
임상수, 정성일


임 상 수 ■ 먼저 개봉을 축하드립니다. 개봉하기까지 이 작품만의 운명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기획하고 시나리오 쓰고 제작이 완료되기까지, 팩트 위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 성 일 ■ 21세기가 되고 영화잡지 <키노> 편집장을 그만두는 순간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시나리오는 잘 안됐어요. 네 번째 시나리오는 2007년 무렵 제작 직전까지 갔어요. 데뷔 못하면 바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절이죠. 그러다 호시절이 갑자기 끝났어요. 약간 허망했는데, 고맙게도 영진위 예술영화지원작으로 결정되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작은 근거가 만들어졌어요. 2008년 12월8일에 첫 촬영을 시작했고, 2009년 4월2일에 37회차 촬영이 끝났고, 에필로그 마지막 장면은 5월27일에 찍었어요. 9월2일에 첫 번째 기술시사가 열렸고요. 2009년에 개봉하기를 바랐지만, 1년2개월을 기다려 2010년12월30일에 개봉하게 됐습니다.

“정유미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죠”

임 상 수 ■ 감독은 영화 찍으면서 아침 8, 9시부터 50, 60명을 만나요. 대충 12시간 지나면 헤어집니다. 그 안에 이를 테면 예술을 해야 하는 거예요. 고민할 시간이 없죠. 몇 십명의 스탭들과 함께 제한된 시간 내에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구현해야 해요. 좋은 예술가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 노련한 연출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들이 그 머릿속에 흘러다녔겠어요. 그리고 결과물로서의 영화를 보니 얼마나 구체화한 것 같습니까?

정 성 일 ■ <카페 느와르>의 첫 시나리오 배경은 여름이었어요. 유감스럽게도 여름에 찍을 수가 없어서 겨울로 바꾸면서 많은 장면이 달라졌어요. 영화의 80%를 야외에서 찍어야 하는데, 사실상 매일매일이 저한테는 고치는 과정이었어요. 촬영 중반에 이르렀을 땐 원래 시나리오의 앞부분을 버렸어요. 아무 상관없이 진행됐거든요. 제게는 영화를 찍는 그 과정이 영화에 어떻게 기록되느냐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영화의 2/3 분량을 찍는 시점에서 비로소 나는 이런 방법을 선호하는 사람이었구나라고 깨달았어요. 그 다음부턴 좀 편해졌습니다.

임 상 수 ■ <카페 느와르>에는 유명 배우들이 많이 나와요. 사실 유명하냐 아니냐보다 적역인가가 중요한 건데, 어떤 면에서 적역이라 생각하고 캐스팅했는지 몇명만 예를 들어주시지요.

정 성 일 ■ 정유미씨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단 한명의 배우였어요. 그녀가 거절하면 지금 같은 방식으론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유미 버전과 아닌 버전을 따로 썼어요.

임 상 수 ■ 정유미씨의 어떤 점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건가요?

정 성 일 ■ <가족의 탄생>요, 다행히도 유미씨가 오케이했고, 그녀를 중심에 두고 그 다음 어울리는 남자배우가 누굴까 생각하며 캐스팅했어요. 배우들과 일해본 경험이 없는 제가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은 딱 두 가지밖에 없었어요. 그 배우가 나온 영화, 그가 한 인터뷰. 신하균씨는 볼 때마다 절반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가 한 인터뷰 중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땐 난 제임스 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감독들은 숀 펜 같은 역을 요구했다. 그 다음부터 들어오는 역이 다 숀 펜이었다.” 하균씨에게 “제임스 딘 같은 역을 해봅시다. 현장에서 ‘제임스 신’이라고 부를게요”라고 제안했어요. (웃음) 그 다음은 김혜나씨. 정유미의 반대말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잘 훈련된 배우, 열 번을 찍더라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그런 배우. 그 때 <꽃섬>의 김혜나씨가 떠올랐어요.

“필름으로 찍을 수 있었대도
디지털 택했을 것”

임 상 수 ■ 전 <카페 느와르>를 보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독특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확한 스토리와 캐릭터가 있거든요. <카페 느와르>가 영화로 쓴 에세이 같다는 기사도 봤는데, 전 동의하지 않아요. 엄연히 픽션이고, 왕가위가 홍콩에서 찍은 에세이 같은 그 마지막 영화보다 더 픽션 같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독특한 영화라는 감상을 갖게 된 데에는, 배우들이 문어체 대사를 한 부분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한국 영화에서도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나 장선우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이 나오기 전까진 영화적인 대사를 하는 게 지배적이었거든요. 말하자면 <카페 느와르>의 대사는 <세상 밖으로> 이전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쓰여지고 뱉은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문정희씨의 남편으로 나온 이성민씨 부분이었어요. 그 사람이 브레히트의 시를 자기 말로 소화하는 장면에선 무릎을 칠 만큼 힘이 있었고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유감스럽지만 다른 배우들의 장면에선, 뭔가 불편한 감정이 든다는 거죠.

정 성 일 ■ 그건 평가의 문제니까….

임 상 수 ■ 사실 취향의 문제일 수 있죠. 취향의 문제라고 하는 순간 더 이상 토론이 안되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연기에 대해 토론할 수 있어요.

정 성 일 ■ 이성민씨는 정말 잘했어요. 하지만… 제가 목표로 한 건 아니었어요. 신하균씨도 이성민씨와 마찬가지로 연극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성민씨처럼 대화를 소화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편집실에서 다 들어냈어요. 전 <카페 느와르>가 책의 리얼리즘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괴테의 문자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자들이 배우의 육신을 통과하여 말해지길 바랐어요. 사람들이 퍼포먼스가 아니라 말을 감상하길 바랐어요.

임 상 수 ■ 그럼 정유미씨가 길게 대사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지요. 죄송하지만 제가 그때쯤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배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 들렸어요. 대사라는 건 배우가 구강구조를 통해 발설하는 게 아니라, 배우가 뿜어 던져서 보는 사람의 가슴에 꽂는 거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말이 흘러다녀도 꽂히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거죠. 정유미씨의 연기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 대사들이 어떤 의미 전달이라기보단 사운드 곡선으로만 들렸다는 겁니다.

정 성 일 ■ 만일 임상수 감독께서 그 대사를 듣는 동안 집중할 수 없고 뭔가를 놓쳤다고 한다면, 최종 찬사예요. 정말로. 배우를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웃음) 뭔가 그 대사가 최면처럼, 꿈결처럼 들리길 바랐어요. 1년이나 지난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가 그 사연을 드라마틱하게 얘기한다면, 그건 어제 헤어진 사람이지 1년을 기다린 사람이 아닐 거라는 거죠. 그녀는 신하균 이전에 수많은 남자에게 이 레퍼토리를 예기했을 거예요. 어차피 뻔한 얘기를, 부사, 형용사, 동사를 다 구별해서 듣게 찍을 거였으면 지금처럼 한 테이크로 가는 게 아니라 나눠서 찍었겠죠. 정유미한테 촬영 전에 그랬어요. 이 대사를 하면서 눈물을 흘릴 꿈도 꾸지 말라고. ‘은, 는, 이, 가, 을, 를’만 정확하게 하자고. 하지만 유미씨가 그 대사의 끝에 흘리는 눈물은, 문자가 흘리는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울었지만 괜찮다’싶어서 그 장면을 살렸어요.

임 상 수 ■ 그 여인은 슬펐다, 이건 설명문이죠. 그 여인은 슬픈 듯 보였다. 이러면 묘사문처럼 느껴져요. 전 영화의 핵심은 보는 사람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묘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유미씨가 자신의 스토리를 길게 설명하는 건 이성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설명 방식이에요. <카페 느와르>는 내가 본 영화 중 설명이 가장 많은 영화였어요. 뭘 설명하고 싶었던 건가, 이게 제 질문입니다.

정 성 일 ■ 정유미씨 장면에서 제가 찍고 싶었던 건 시간이었어요. 소설 <백야>에서 여주인공 나스첸카가 ‘줄창’ 자기 사연을 얘기할 때, 그 ‘줄창’을 찍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감독들이 ‘타임’을 찍는다면 전 ‘데드 타임’을 찍고 싶었어요. 제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찍은 게 있다면 데드 타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설명한 게 거의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임 상 수 ■ 정성일 평론가가 보고 즐긴 영화는 다 필름으로 찍었던 영화고, 뭔가 필름 카메라를 돌릴 때의 조심스러움, 확신이 없을 땐 돌리지 않는 그런 정통이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디지털은 일단 카메라를 켜고 돌리기 시작해요. 그 부분이 궁금해요. 필름과 디지털의 속성이 아니라 그걸 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인만의 놀라운 영화 리스트가 있는데, <카페 느와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찍힌 영화라는 거죠.

정 성 일 ■ <카페 느와르>는 시나리오가 끝나는 순간 디지털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애티튜드에 있다고 봅니다. 필름은 명백히 이미지 메이킹이죠. 하지만 <카페 느와르>는 이미지 테이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필름으로 작업할 수 없었어요. 제작비가 넉넉해서 필름으로 찍을 수 있는 환경이었더라도, 전 디지털을 선택했을 겁니다.

“왜 자신있게 ‘알아라!’라고 하지 못했나”

임 상 수 ■ <카페 느와르>는 서울 시내 제일 유명한 곳들을 찍었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과 공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나요?

정 성 일 ■ 전 이야기보다 장소를 먼저 결정한 셈입니다. 서울을 정직하게 찍는 게 되게 중요했어요. 서울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생기잖아요. <카페 느와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하녀>나 <옥희의 영화>처럼 서울 어딘가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의 필연성보다 이 삶을 느슨하게 찍고 싶었어요. 대신 장소의 물질성에 대해선 정확하고 싶었어요. 반드시 사람들이 아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 상 수 ■ 전 <카페 느와르>의 음악이 참 좋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이 시작되면 그 스코어의 끝까지 들려준다는 게 좋았어요. (웃음) 본인이 선곡을 직접 다 하셨죠?

정 성 일 ■ 음악감독이랑 같이 했어요. 앞부분 이야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질풍노도 시기의 대표작이니까 낭만주의 음악이 맞을 것이고, 대표적 음악가로는 당연히 슈만, 연이어 ‘어린아이의 정경’이 떠오르고 제일 유명한 <트로이메라이>로 결정했습니다. 뒷부분 이야기에선 좀 복잡한 과정을 거쳤어요. 요조의 스쿠터 장면에 나오는 중국 노래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포함되어 있어요. 1999년에 베이징에 갔을 때 이상한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지리적으로 여행하는 게 아니라 시간적으로 여행한다는, 말하자면 70년대의 서울에 와 있는 기분이었어요. 아시아의 근대는 게임값을 치르는구나, 서울이 도쿄가 되어가는 것처럼 베이징은 서울이 되어가는구나 싶었어요. 전 <카페 느와르>의 그 장면이 타임 터널 같은 느낌이 들길 바랐고, 그래서 중국 가수의 노래를 끌어들였습니다.

임 상 수 ■ 정유미씨가 춤출 때 나오는 음악은 뭔가요?

정 성 일 ■ 모로코 테크노예요. 그 곡에서 타악기 우두를 연주하는 사람이 되게 유명한 아티스트인데 시각장애인이에요. 몰라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신하균의 눈먼 엄마와 이 연주자를 연결시키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눈먼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좀 다른 감흥이 담기기를 바랐어요.

임 상 수 ■ 보신각 장면에선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와 겹치는 실제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카페 느와르>의 유일한 정치적 요소로 볼 수 있을 텐데요.

정 성 일 ■ 그것만이 정치적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서울에 살고 있다면 이 영화 속 장소에서 정치적인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청계천을 그렇게 길게 찍는데 어떻게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있겠어요.

임 상 수 ■ 인공수조 같은 청계천에서 영화의 반을 찍었으니 분명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모로코의 눈먼 연주자와 신하균의 눈먼 엄마, 이 부분에서 정성일 감독이 괄호치고 ‘몰라도 되지만’이라고 얘기한 것처럼, 보는 사람이 몰라도 되지만 아는 사람은 알겠지식의 여러 장치들을 넣었을 때 갈등이 생기거든요. 모호함과 애매함의 예술적 효과를 노릴 수도 있습니다만, 연출자로서 그 모호함을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카페 느와르>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몰라도 되지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 자신있게 ‘알아라!’라고 하지 못했나가 궁금합니다만. (웃음)

정 성 일 ■ 지겹잖아요. (웃음)

임 상 수 ■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만. (웃음) 아는 만큼 보인다, 라고 할 때 거기엔 분명 권력관계가 생기거든요.

정 성 일 ■ 글쎄요. 전 <하녀>를 볼 때 상당히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정원>은 자명했는데, <하녀>는 불투명했어요. 임상수 감독이 신비화의 수위를 완전히 다르게 조정한 거지요. 한편으론 선택한 이야기의 내용과도 관계가 있을 텐데, <카페 느와르>에서도 그런 방법을 생각한 거죠.

“앞으로 영화를 볼 때 태도가,
혹은 글이 변할까요?”

임 상 수 ■ 전 평론가 정성일의 글을 꽤 읽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평론집도 안 샀어요. 다 읽은 거니까. (일동 웃음) 그런데 <카페 느와르>를 보면서,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정성일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더 잘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들끼리 하는 얘기가, 영화를 찍고 나면 빤스를 내린다고들 합니다. (웃음) 영화를 만들면 도망갈 곳이 없잖아요. 아무리 영화상으로 꾸며봤자 빤스 내린 모습이 보인다는 거죠.

정 성 일 ■ 영화가 정직했던 거죠? (웃음)

임 상 수 ■ 정직하지 않아도 빤스를 내린다고 얘기하는 거죠. (웃음) 영화의 무서운 점이 그것이기도 하고요.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상당한 자본을 들여 영화를 배급할 수 있는 감독은 대단한 권력을 가진 겁니다. 게다가 3시간18분짜리 영화를 스크린에 거는 거잖아요. (웃음) 그건 강력한 권력이고, 거기엔 책임이 따르죠. 조금 실례가 될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쓰신 글 중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수선을 피우고 변희봉이 넘어지는 그 스테디캠 롱테이크 장면이 쓸데없이 과시욕 넘치는 롱테이크라고 지적한 적이 있어요. 자, 그럼 <카페 느와르>에선 아주 절제하여 겸손하게 찍으신 건지 궁금한데요. (웃음)

정 성 일 ■ 절제는 모르겠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 열번을 물어도 그 선택은 필연이었다고 생각해요.

임 상 수 ■ 좋은 대답입니다. (웃음) <오래된 정원>에 대해선 이런 언급을 하신 적이 있어요. 영화가 망했다, 수십억의 적자가 났다,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위안 삼지 마라, 그 수십억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있다고. 그럼 <카페 느와르>는 상업적으로 어떤 결과를 기대하십니까?

정 성 일 ■ 제 바람은, 이 영화에 들어간 정도가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안될 수도 있고.

임 상 수 ■ 사실 예술가는 실패할 권리를 가져야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한 이유는, 첫 작품을 만들고 난 다음 정성일이라는 평론가가 영화를 볼 때 그 태도가 혹은 그 글이 변화할지 궁금해서입니다.

정 성 일 ■ 거기에 대해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변하면 안되죠. 영화 한편 만들었다고 영화에 대한 믿음이 변한다면, 믿음이 아니죠.

임 상 수 ■ 그건 도그마 아닐까요?

정 성 일 ■ 도그마는 어떤 수정도 가할 수 없는 거죠. 덧셈 뺄셈은 있겠지만, 믿음 자체를 폐기하거나 다른 믿음으로 대체할 순 없다고 봅니다.

임 상 수 ■ 지금 우리가 딱 <카페 느와르>처럼 대화하고 있는 거 아세요? (일동 폭소) <살인의 추억>과 <오래된 정원>에 대한 평론가 정성일의 코멘트를 일부러 덧붙인 건, 영화를 연출하겠다는 그 용감한 결정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살인의 추억>과 <오래된 정원>에 대한 그런 코멘트를 했던 평론가 정성일이 감독 정성일이 된 다음에는 영화를 보는 태도가 달라질까 아닐까가 궁금했던 거고요.

정 성 일 ■ 질문해도 되나요? 앞의 두 견해를 수정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인가요?

임 상 수 ■ 아닙니다.

정 성 일 ■ 그러기에는 이 영화로부터 제가 너무 가까이 있어요. 글에 대해 판단하려면 좀 먼 시간이. 거리가 필요해요. 영화가 개봉도 아직 안 했는데, 벌써 내가 변화해야 할까 아닐까 답을 갖고 있다면 이상할 거 같아요.

임 상 수 ■ 전 그렇지 않아요. 기술시사를 할 때 이미 답이 나와요.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지만 나와 스탭들 모두 이미 깨달아요.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인지,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개봉하고 인터뷰하고 영화제 다니는 건, 좀 심하게 표현해서 즐거운 헛짓이죠. (웃음)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답변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정 성 일 ■ 전 아직 즐기고 싶어요. 첫 번째 영화를 찍은 사람에게 그 정도 관대함은 허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임 상 수 ■ 답변을 안 하셨지만, 답변이 중요하다기보다 그 다음 시장에서의 행보가 중요한 거겠지요. 지난주에 <씨네21>에서 정성일 감독을 인터뷰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전 관심없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고 나서 생각했죠. 이렇게 관심이 없단 말이야? 내가 내 영화에 대해 관심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분노했으면서, 난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없단 말이야?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눈물>을 만들고 당시 <키노>와 했던 길고도 좋은 인터뷰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다시 인터뷰하겠다고 문자를 보냈죠. (웃음) 역시 잘한 선택인 것 같고, 서로 관심을 갖고 그걸 표명하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정 성 일 ■ 전 고맙죠. 임상수 감독이 이 자리에 나와준 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임 상 수 ■ 건투를 빌겠습니다. 웰컴 투 헬. (웃음)

정 성 일 ■ 기대하고 있습니다. (웃음)

정리 김용언 · 사진 최성열 · 장소제공 신사동 트레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