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2011.04.05.(797호)타인인터뷰

special

구도의 카메라 꿈꾸는
장선우는 누구인가

씨네산책 7 - 정성일과 허문영, 제주도에서 장선우 감독과 대화하다


허문영 영화평론가

"열려진 영화는 바로 (한국 민간예술의) 구전성이 지닌 생명력의 회복이며, 대중의 창조 가능성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것이다…. (마당극의) 열려진 공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형이며, 평면이 아니라 입체이다…. 그 속에서 논리성이란 특권의 양식이며, 사실성이란 허구의 방편임을 알게 된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춤추고 노래하며 웃고 떠들고 노는 그런 것이다… 영화는 관객의 시선이 직선적이라는 데서, 그리고 관객과의 만남이 언제나 간접적이라는 데서 영원히 (마당극이 아니라) 무대극일지 모른다. 다만 영화는 그 어떤 공연 형태가 가질 수 없는 시선의 무한한 자유에로 열려져 있다… 열려진 영화는 바로 카메라의 눈이 환상적인 것을 포기하며 특권적인 것을 거부하고, 대상과의 관련성에 있어서 직선적인 데서 원형적인 것으로, 소유가 아니라 나눔을, 유폐가 아니라 해방을 원함으로써 비롯된다고 믿는 것이다…. 카메라 자체는 독립된 인격이 되어 상대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걸며 발언하고 다투기도 할 뿐만 아니라, 대상이 비어 있을 땐 그 자리를 메우고 대상이 울고 있을 때 그는 광대처럼 춤추기도 하며 신명을 불지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신명의 카메라'라고 이름해 두자."(장선우, '열려진 영화를 위하여', 1983)

'80년 광주'가 남긴 원죄의식으로 번민하던, 그러나 광대의 본능을 버릴 수 없던 일군의 젊은 지식인들은 1980년대 초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대중문화 혹은 민중문화를 꿈꾸고 있었다. 탈춤과 마당극에선 채희완과 임진택 등이, 대중음악에선 김창남과 문승현 등이, 연극에선 김석만 등이, 한국의 전통 연희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열림, 신명, 해방의 개념으로 민중문화론을 다시 작성하려 했다. 저항운동가 출신이자 짧은 기간 영화비평가로 일했던 장선우가 1983년 '열려진 영화를 위하여'를 썼을 때, 그것은 전적으로 서양의 발명품인 영화를 탈서양적인 정신과 제3세계적 전망 안으로 전유하려는 시도였지만, 당대의 유행과도 같은 민중문화운동의 용어들을 영화에 구겨 넣고 있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신명의 카메라'론은 카메라의 기계적 본성, 영화의 사진적 존재론을 외면한 순진하고 추상적인 관념처럼 보였다.


* 해당 글은 전체 본문을 제공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