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저널』 1995.02.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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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와 한국영화의 동고동락
- 전면적인 영화시장 개편 예상돼


케이블TV 방송이 눈앞에 성큼 다가오자 지금 한국영화가 갖는 생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당장 눈앞에 떨어진 불이다. 한국영화는 언제나 경쟁매체와 싸워 이긴 적이 없다. 7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겪은 '악몽 같은' 불황을 충무로 영화인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텔레비전의 등장이 한국영화의 황금시대를 마감시키고 기나긴 침체의 늪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체제를 정비하고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80년대에 무겁게 내리 누르는 또 하나의 무게가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비디오는 '안전한 장사'라고 알려진 수입 외화에 대한 희망마저 순식간에 날려 보냈다. 그래서 충무로 영화는 탄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영화를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올 수도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충무로에서 더욱 그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이른바 '10년 주기론'이다. 70년대에 텔레비전, 그리고 80년대에 비디오, 이제 90년대에 케이블TV가 충무로를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러한 두려움은 부분적으로 비합리적이며, 말 그대로 '감'에 의한 것이지만, 그러나 경험이 가져다주는 불안의 느낌(!)을 저혀 근거없다고만은 말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 증후군은 빠른 속도로 전염되면서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배고픈' 영화를 떠나서 케이블TV로 발빠르게 옮긴지 오래이다.

두번째 생각은 다소 장미빛이다. 케이블TV와 함께 좀더 다양하고, 좀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고, 좀더 수준높은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근거는 두가지이다. 텔레비전이 비디오의 공세에 맞서 싸우면서 선택한 전략은 매주 무료로 '고가품 드라마'와 '올스타 연속극'이라는 컨셉트였다. 이것은 80년대 이후의 제작 관행이 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시청률을 둘러싼 블럭버스터 제작의 경직성이다. 그래서 세개의 방송국은 오직 일등뿐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서로가 서로를 베끼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텔레비전과 싸우기 위해서 케이블TV는 어떤 프로그램을 원할 것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차별화' 정책을 맨 먼저 선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케이블TV가 기존 방송국을 '적'으로 삼고 영화를 '동지'로 삼을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게 깔려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여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비디오와 케이블TV는 양대 시장을 무대로 좀더 넓어진 미디어 시장에서 영화라는 상품을 보다 고급화하고 보다 다양화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의 입장에서) 비디오와 케이블TV가 '평화롭게' 공조하는 시장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만일 이 두개의 시장이 하나가 되어 판권문제로 전쟁을 벌인다면, 그때부터 미래는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세번째 생각은 긍정도 비관도 아니다. 영화와 관계된 채널은 어차피 두개뿐이며, 그것도 삼성과 대우라는 거대한 기업이 개입하고 있다. 결국 두개의 기업은 그 목표가 '영화'나 '케이블'이 아니라 그로 인한 유통과정에서의 이윤의 창출이 될 것이 므로 결국 또 한번 케이블TV를 토대로 한 전면적인 시장개편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전망이다.

그리고 한국영화가 가장 조심하는 것은 바로 이 세번째이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영화는 이미 영화관 개봉만으로는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없을 만큼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 관객들을 사방에 빼앗긴 지 오래이고, 스타들의 출연료는 1억원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한국영화는 비디오 판권에 의존해서 영화산업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의존은 종속을 불러왔다. 그래서 비디오 시장의 입맛에 맞는 주문제작 방식으로 한국영화의 체질을 바꿔 놓았다. 이 속도는 케이블TV가 단지 두개 채널의 두개 기업 사이의 경쟁으로 한국영화를 옭아맨다면, 그 결과는 끔찍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 텔레비전 드라마가 겪었던 과정을 따라갈지도 모른다. 그때는 정말 한국영화는 사라지고, 충무로는 케이블TV 프로덕션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