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éro』 2009.10.본인인터뷰

1 Homme + 4 Femmes
<카페느와르>와 5명의 배우, 그는 떠났고, 그녀들은 남았다.


[김혜나]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부인을 사랑하는 ‘영수’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역할인 ‘미연’이에요. 한마디로 표현하며 속이 문드러진 여자죠. 키 메이커 미연은 영수의 불륜 사실은 또 다른 미연의 남편에게 알리죠. ‘강한’ 역할이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영수’와 함께한 카페 장면에서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하잖아요. 그때 느꼈어요. 이 여자는 정말 나쁜 여자, 못된 여자다. 스토커 같은 행동도 하는데, 본인도 그런 자신을 어쩔 수 없는 거죠. 비밀편지와 ‘목소리’ 그 편지 부분의 필체가 굉장히 독특하잖아요. 화면이 암전된 상태에서 편지를 읽어내리는 장면인데 거의 서른 번을 찍었어요. 너무 떨어서 “제 심장 뛰는 소리 녹음 안 됐어요?”라고 물을 정도였어요. 화면이 나오지 않는 장면이지만 모든 대사를 외워서 직었죠. 정말 말하는 것처럼. ‘미연’과 ‘심은하’ 그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미연은, 그런 사람일 것 같아요. ‘심은하’를 만나지 않았다면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정성일 감독님의 눈을 믿었어요. 정말 대단한 분이잖아요. 영화를 보는 눈, 연기를 보는 눈은 최고였어요. <카페 느와르> 어떤 지독한 사랑 이야기에요. 러닝타임 그래서 저는 2시간 78분이라고 해요.


[요조]
제가 비밀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사연이 있는 물건들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배달해요. 퀵서비스 배달원인 ‘심은하’예요. 열가지 이유 감독님이 제가 출연해야 할 이유 열가지를 말씀하셨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설득력이 전혀 없었어요. 영화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마음을 바꾼 이유 ‘심은하’의 대사 중에 제가 한 말들로 이루어진 것이 많았어요. “7호선 건대입구역에서 도봉산행 열차를 타면 항상 갈비 냄새가 나요.” 이런 대사는 제가 홈페이지에 적어놓은 것이었어요. 첫 작품 제 장면만 나오면 저는 점점 의자 속으로 가라앉았어요. 눈 뜨고 못 보겠더라고요. 정말 걱정이에요. 촬영장 한겨울의 야외 촬영이라 너무 추웠는데, 스태프들이 담요도 덮어주고, 다뜻한 물도 가져다줬어요. “저한테 안 그러셔도 돼요.”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일이래요. 연기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 이제는 영화 보면 사람들이 생각나요. 연기 수업 감독님의 주문이 연기 수업 받지 말 것, 미리 연습하지 말 것이었어요. 제 대본엔 지문도 거의 없었어요. 오직 대사만 있었죠. (장면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고 하셨는데, 감독님도 저를 믿고, 저도 전적으로 감독님을 믿었던 것 같아요. 뮤지션 노래하듯이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촬영은 힘들었는데, 재미있었어요. 배우로서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에요. ‘심은하’와 ‘미연’ ‘영수에게 느낀 허무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미연에게서도 발견했던 것 같아요.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 드릴까요?” 한 거죠. <카페 느와르> 슬픈 사랑 영화처럼 보이지만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대사는 아니지만 “살아야지 뭐,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거고, 바람이 오면 바람과 마주 볼 거야”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배우 요조에게 한마디 “욕봤다.” 크레디트 네, 영화 자막에는 ’신수진‘으로 나와요.


[신하균]
제발, 제발 절 좀 가만히 두세요

다들 아시는 것처럼 ‘베르테르’ 역을 맡았습니다. 나중에 도스토옙스키의 <백야> 안에도 끼어들죠.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비참한 말로를 맞는, 안타깝고 불쌍한 청년 ‘영수’입니다. 시나리오 워낙 어렵고 난해한 평론을 쓰신 분이잖아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분이 맞구나’ 했습니다. 캐스팅 원작이 쓰인 과거나 지금이나 고민의 본질은 같잖아요. 시나리오의 표현이 어렵긴 했지만 고전의 현대적 변용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재미예요. 장르나 다른 요소는 별로 가리지 않아요. 대사 “도를 믿으십니까?” 하는 사람들이 막 달라붙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제발, 제발 절 좀 가만히 두세요”라는 대사를 해요. 영수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부분이 편집이 되었다니…. 원인 제공자 네, 죽죠 결국 자기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봐요. 영수가 사랑한 것도 네 가지 유형의 여자가 아니라 자기가 사랑할 상대였다고 생각해요. 사랑할 상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잖아요. 그래서 불쌍한 사람이죠.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고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요. 4인의 팜 파탈 현실이라면 다 만나기 싫은데요. 하하하. 정성일 감독 굉장히 노련하고, 동시에 굉장히 친절한 분이죠. 연출을 처음 하는 분 같지 않았어요. 화내는 것도 한번도 못봤고요. 리얼리티 항상 고민을 해요. 무조건 자연스러운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영화에 맞는 언어, 영화에 맞는 표현 방법을 찾아나가는 게 배우의 숙제죠. 감독님은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왔으면 좋겠네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나갔습니다. 하하하. 사실 그게 더 어렵죠. 관객들의 반응 저도 어떨지 너무 궁금합니다. 어땠어요, 영화? <카페 느와르> 결국은 전쟁터 같은 세상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 그 희망을 풍선처런 놓쳐버릴지,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우리가 볼 수 있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선물상자 영화에선 알 수가 없죠.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비밀이에요. 저는 알죠. 하지만 아무게에도 이야기 안 하기로 했어요. 마지막 촬영 빨리 집에 가야지, 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정말, 정말 추웠어요.


[문정희]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어요. 제 평안을 위해서라도.

‘미연’은 딸의 학교 선생님인 ‘영수’가 치명적인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못 잊어서 방황하게 되는, 화두를 던져주는 여자죠. ‘영수’와 ‘미연’ 영수를 사랑하는지조차 시원하게 밝히지 않죠.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상대가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방이 자신 때문에 고통받는 걸 즐겨요. 죽음 ‘영수’의 죽음 이후 학예회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담담하죠. 감정이 없진 않지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거예요. 장면 ‘선화’가 나온 청계천 장면이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에서 처음 청계천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어요. 그 안에 인간의 삶도, 서울의 삶도 다 있는 것 같았죠. 정성일 감독 지금까지 만난 감독 중에서 가장 사람을 잘 파악하고 시작하는 노련한 사람, 테크닉보다 중요한, 삶에 대한 진중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카페 느와르> 한 남자가 자아를 찾는 영화, 사랑을 하고, 그 안에서 존재를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했고, 그래서 극단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영화, 어쩌면 성장 영화일 수도 있어요. 이 영화는. 배우와 관객 배우로서 너무 좋은 영화였죠. 관객으로서도 신이 났어요. 다른 관객은? 글쎄요. 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보다 정성일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정유미]
잠자코, 잠자코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냥 기다리는 역할이에요. 누가 물어보면 ‘해바라기 같은 여자’라고 해요. 이름은 ‘선화’ 기다림 네, 영화도 무척 오래 기다렸죠. 이야기가 긴데요. 하지만 이 영화 꼭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약속했으니까요. 정말 약속한 건 지켜야 하잖아요. 시나리오 처음부터 저를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건 처음엔 몰랐어요. 출연 이유 <가족의 탄생>에서 모두가 칭찬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맘에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이 딱 그 부분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걸 눈치챈 분이라면 저의 어떤 부분을 성장시켜주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롱테이크 12분 8초인 그 장면은 한 세 번 촬영한 것 같아요. 그것 말고도 유령처럼 청계천을 왔다 갔다 하며 직은 롱테이크도 있어요. 끝에서부터 끝까지 며칠 동안 걷다 보니 신발이 떨어지더라고요. 새 신발이었는데도요! 그래도 롱테이크 신 때문에 힘들진 않았어요. 당신의 ‘연인’ 촬영 날까지 저도 정말 몰랐어요!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카페 느와르> 도시에서 사랑하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저에게도 많은 부분이 의미 있는 영화예요. 짧다면 짧은 시간이 아쉬울 뿐이죠. 영화를 보지 않을 관객에게 “당신이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을 1년도 채 사로잡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영화 속 대사예요.


‘영화감독’ 정성일

<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 논쟁>에서 발자크는 비평하는 것도, 찬양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가장 용감한 남자였지만 영화감독 정성일도 그럴까? 뛰어난 평론가가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 답이 될 <카페 느와르>가 처음 스크린에 걸린 순간을 <누메로 코리아>가 함께했다. 친절하고 다감한 ‘영화감독’ 정성일과의 대화.


[Numéro] ‘기술 시사회’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로써 <Numéro>는 유일하게 <카페 느와르>를 본 매체가 되었습니다.

[정성일] 정말 관계자가 아닌 사람은 6명밖에 없었어요(웃음).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정말 무시무시했지요?

충무로를 지나다 뺨을 맞은 적도 있고. 오랜 친구가 험한 욕을 퍼부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잘못할 때에는 못한다고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믿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제 원칙 같은 거예요.

마음을 견디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럼에도 소신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유 없는 원칙은 없잖아요.

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제 순정이니까.

그럼 이번 영화는 순정을 바친 여자와 본격적으로 사귀는 셈인가요?

단도직입적으로 그 여자와 섹스한 거죠.

소감은요?

뭐가 뭔지 잘 모르잖아요. 하긴 했는데, “나, 잘한 거야?” 하고 본인에게 되묻는 거죠. ‘다음번엔 더 잘할 거야’ 다짐하고요.

팬클럽까지 거느린 영화평론가였는데, 그 친구들이 영화를 볼까요?

안티가 더 많죠. 팬보다 안티들이 보러 오겠죠. 바로 그런 흥행을 기대하고 있습니다(웃음).

비평이 기대됩니다. 어느 평론가가 가장 궁금한가요?

몇 사람 있지요. 허문영, 이동진.

그럼 이제 이동진과 ‘부메랑 인터뷰’를?

3편 이상 찍어야 가능해요. 아직 자격이 안 됩니다. 하하.

영화잡지 편집장, 시나리오 작가, 영화편론가, 교수, 그리고 영화감독, 이제 제작자만 하면 그랜드슬램인데요.

제작자는 돈을 만지는 테크닉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가장 자신 없는 일 가운데 하나예요. 대신 프로듀서는 해보고 싶어요.

그럼 프로듀서의 자질을 PR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

제 앞에서 통곡을 한 학생이 훗날 감독이 되어서 찾아와 시나리오를 한번 봐달라고 해요. 과거의 제 말이 도움이 되었단 뜻이지요. 또 감독들에게 배우 캐스팅을 추천할 때 ”왜 난 그 생각을 못했지?” 하고 눈을 반짝이며 반색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못하는 생각을 대신 해줄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감독에게 직접 듣곤 해요. “당신이 프로듀서라면 날 깊이 이해해줬을 텐데“, 이런 경우들이 꽤 많습니다.

추후 프로듀서로서의 활약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영화를 찍으면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 싶은 것이 많았겠죠?

너무 많죠.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았죠. 영화를 하면 세 가지를 꼭 지키고 싶었어요.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을 것. CG를 하지 않을 것. 동시녹음을 하지 않을 것. 그런데 이 중에 한 가지밖에 못 지켰어요. 동시녹음. 다른 건 비용 문제로 지킬 수 없었죠.

이런, 도그마 선언에 참여하려고 한 건 아니죠?

영화를 만드는 거지 냉장고를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순서대로 촬영해서 연기자들의 감정을 따라가게 해주고 싶었어요. CG도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그 빛이 떨어지면, 그때 그 거리에 바람이 불면…. 현실 그대로 찍길 바랐거든요. 세트가 아니라 거리에서 찍는 게 제겐 중요했어요.

최소한의 제작비로 촬영했다지만 서울 강북의 거리들이 아름답게 담겨 있더군요. 서울시에서 상 줘야 될 만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영화지요. 막상 서울시에서는 거의 도와주지 않았고 시민들은 매정할 정도로, 촬영에 협조해주지 않았어요. 스태프들이 고생 많이 했죠. 전부 강북에서 찍었어요. 차기작은 호러 영화인데 강남에서 찍을 생각이에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가 있죠. 시네필(Cinephile : 영화 마니아)로서, 그 필름 창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대놓고 오마주를 바치려고 했어요. “아시다시피 이건 오마줍니다.” 이렇게요. 시네필이라면 제 영화 속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의 영화를 저는 절대 찍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태도는 닮아보고 싶은 영화들, 마음 깊이 존경하는 영화들이에요.

몇 개나 있었나요? 열심히 찾아보긴 했습니다만….

비밀입니다. 하하하. 숨겨둔 것도 있고, 드러낸 것도 있죠. 다 찾긴 힘들걸요? <괴물>은 동시대를 사는 영화에 대한 레퍼런스고, 대놓고 한 오마주로는 홍상수의 <극장전>이 있고요.

참, 홍상수 감독의 반응은 어때요?

홍 감독다운 메시지가 왔어요. “수고하셨어요. 잘 끝내실 겁니다.”

영화계에서 사라진 것을 세 가지 살려줄 수 있는 램프의 지니가 나타나서 “소원을 말해봐” 하면 무엇을 부탁하겠어요?

아,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영영 사라졌다고 알려진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내 눈으로 보고 싶어요. 두 번째는 김승호 씨와 같은 배우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그가 한국 영화에 사라진 이후, 그런 배우를 다시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세 번째는 한국 영화를 사랑했던 유일한 대통령, 고 김대중 대통령 같은 분을 다시 만나고 싶네요.

유일한 대통령?

오직 그만이 한국 영화를 사랑했죠. 그만이 영화에 대한, 영화를 지지하고 영화계 현실을 고려한 정책을 내놨어요. 우리 영화계에 황금시대가 있다면 그 정책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해요.

<희생>을 본 10만 명이 사라진 이유를 정책 탓이라고 보세요?

정책이 토양을 만들어주죠.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지요. 원래 사람들은 좋은 때가 지난 다음에야 좋았던 줄 아니까요.

영화를 본 특권으로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볼게요. 우선 화제가 된 러닝타임은 3시간 18분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10회 정도 썼을 때, 결정의 순간이 있었어요. 긴 영화가 되든지, 다시 쓰든지.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이 정도의 시간은 견딜 수 있을 거라는, 관객에 대한 믿음으로 결정했어요.

<카페 느와르>라는 제목은 <카페 뤼미에르>와 허우샤오시엔 감독에 대한 오마주인가요?

제목과 영화가 무관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영화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제목,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필름 누아르에 대해 모두 알고, 필름 누아르의 핵심은 팜 파탈이지 않습니까. 이 영화는 4명의 팜 파탈이 한 남자를 끝장내는 영화죠. 4명의 팜 파탈이 등장하는 영화는 무슨 누아르일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제목이에요. 허우샤오시엔에 대한 오마주가 될 수 있겠다는 건 나중에 든 생각이었어요. 그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감독이지요.

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가요? 문학으로 따지면 굉장히 클리셰적인 작품인데.

그렇죠. 너무나 많은 문학이 변주해온 고색창연한 작품이예요. 중학생 시절에 처음 읽었을 땐 충격적이었어요. 권총을 쏘아 즉사한 것도 아니고 죽어가면서 편지를 쓴다는 것에 몸서리쳤어요. 그 후 나이가 들어 롤랑 바르트가 이 작품에 주석을 단 <사랑의 단상>을 읽은 후에 다시 읽었죠.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요.

기회가 될 때마다 배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죠. 캐스팅도 모두 직접 했다고 들었어요.

모든 배우를 직접 만나서 출연을 부탁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배우들을 너무 기다리게 했지요. 겨울날의 야외 촬영도 힘들었을 거고요. 그들은 정말 열심히 해줬고, 제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일깨워주곤 했어요. 앞서 말했듯 저는 아닌 건 아니라고 해요. 우리 배우들은 전부 훌륭했어요. 영화가 처음인 요조도 그랬죠. 요조는 목소리를 듣고 캐스팅했는데 그 사람 자체에 흥미가 있었어요.

‘롱테이크 괴담’도 직접 확인해봤죠. 그 시간이 무려….

12분 8초예요(웃음).

하지만 그것도 크레디트에 비할 바는 아니었어요. 영화를 1시간 30분 이상 본 것 같은데 갑자기 ‘카페 느와르’ 크레디트가 올라갔고 그 순간, 지금까지 본 건 뭐였나? 프롤로그였나? 잠시 공황에 빠졌습니다.

정확해요. 1시간 40분까지 프롤로그를 보신 거예요. 그 이후는 일종의 (영수의) 가사 상태인 겁니다.

하지만 프롤로그는 컬러였고, 현재처럼 보이는 장면은 흑백이잖아요. 보통은 회상 장면이 흑백이고 현재가 컬러죠.

뒤바꾸고 싶었어요. 죽기 직전에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하잖아요. 어떤 장면이 컬러고 흑백이냐가 이 영화에선 아주 중요합니다.

여자들에 비해, 남자 캐릭터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남자들이 대게 그래요.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면 우유부단해져요. 선택의 기회가 단 한 번일 대 목숨을 걸죠. 영수는 문득… 이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테고, 그때 온 절망이 그를 죽음으로 밀어낸 거죠. 저는 미연의 딸, ‘정윤’마저도 팜 파탈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 아이만이 영수를 정말 사랑했는지도 모르지요. 여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영수를 끝장내죠. 심은하는 희망을 주려고 하지만, 희망이라는 방식의 절망이야말로 가장 잔인할 수 있지요.

영화 중간 중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장면이 있지만, 언제나 불편함의 한계를 넘지 않더군요.

한때는 불편한 영화를 너무 좋아했죠. 파리에 가서도 찾아다니면서 봤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영화를 볼 대 내가 황폐해진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자극도 되지 않고….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무슨 사랑 영화가 키스신도 한 컷 없고….

사실 아주 강도산 센 베드신이 있었어요. 등급이 걱정될 정도의 수위였는데, 결국은 덜어냈어요. 홍상수 감독이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베드신은 찍지 말라고, 감독도 배우도 너무 힘들다고요. 배우들은 너무 애써줬는데, 그만큼 만족스럽지 않아서 잘라냈어요.

영화감독들은 ‘소통’을 말하지만 소통할 수 있는, 소통하고 싶은 영화가 그리 많지 않아요. <카페 느와르>는 어떨까요?

영화 시작할 때 ‘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이라고 뜨잖아요. 그 방점은 ‘교양’입니다. 전 교양 있는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요.

영화가 밝아서 좋았고, 웃을 수 있는 장면이 많아서 좋았고, 희망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 계속 종교적 코드가 나오잖아요. 흘러나온 중국 노래의 가사도 마치 ‘믿음, 소망, 사랑’ 중의 ‘소망’처럼 들리죠. 당신의 영화는 결국, 무엇을 말하나요?

철학자 들뢰즈가 말했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세상을 산다는 게 영화 속을 산다는 거죠. 이렇게 반문해봐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영화는 좋은 영화일까요? 나쁜 영화에 질문을 던지듯이 세상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영화와 세상을 가깝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나쁜데, 자기영화만 좋으면 그것도 사기가 아닐까요?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곳이 어딘 줄 아세요? 강남구래요. 물론 제가 괴테를 이길 수 없기에 베르테르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제발 죽지 마세요”라고 말리고 싶었어요. “더 이상 죽으면 안 돼”라는 저의 하소연이지요.

“단념하지 마세요. 이 넓은 세상에 선생님 소원을 들어드릴 여자가 한 명 없을 리가 있겠어요. 마음먹고 열심히 찾아보세요. 틀림없이 찾아내실 수 있을 거예요. 제발 여기가 끝이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대사가 반복됩니다. 그것이 정성일의 메시지인가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출품된 <카페 느와르>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회 상영될 예정이며, 감독과의 시간도 예정되어 있다.

에디터 | 허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