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ASIA』 2010.08.20.본인인터뷰

정성일 “다빈치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잔이 도착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성일이란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로드쇼>를 거쳐 영화저널의 전설로 남은 잡지 < KINO >를 세상에 내놓은 악명 높은 편집장이었다는 것을, 한 때 충무로에 “정성일이 영화를 만든다면 영화감독들이 제작비를 모을 거다, 도대체 자기는 얼마나 잘 만드는지 보려고”라는 풍문이 돌만큼 문제적 평론가였다는 것을,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 녹음테이프가 시네필 사이에서 복음처럼 유통되었다더라는 전설을 추억하는 것을, 말하자면 그의 지난날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이제 먼 훗날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대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성일이 최근 ‘올드독’ 정우열 작가와 함께 출간한 비평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가 막 2쇄 인쇄에 들어갔다는 희보에 대해, 집행위원장부터 프로그램 디렉터에 이르기까지 4년 째 몸담고 있는 영화제 시네마 디지털 서울(CinDi 영화제)의 뚜렷이 차별화된 존재감에 대해, 비로소 완성한 첫 번째 연출작 <카페 누와르>를 잇는 2번째 작품을 구상 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8월 18일 개막한 제 4회 CinDi 영화제(8.18-8.24)의 개막식과 리셉션을 모두 마친 새벽, 응당 피로에 치쳤을 그를 기어이 ‘인터뷰 100’의 테이블 너머로 모셨습니다. 50cm 앞의 그는, 흘러간 시네마 천국의 찬란한 영광만을 껴안고 뒹구는 네크로필리아가 아니라, 영화의 더운 손을 부여잡고, 매 순간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포지션으로 사랑을 나누는 ‘초열애모드’의 남자였습니다. 그것이 드라마건 음악이건 혹은 무엇이건,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의 이름을 이 남자가 ‘영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입해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긴 인터뷰는 꽤 자주 당신에게 공감의 순간을 선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100: 8월에 출간된 평론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필사의 탐독>의 책머리에 자필 사인과 함께 써놓은 “영화라는 우정” “영화라는 약속”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성일: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모으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긴 시간동안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 그랬더니 나와 함께 영화를 이야기할 사람을 찾기 위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제가 영화관에 열심히 다니던 시절, 저는 주변 친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물론 왕따는 아닙니다. (웃음) 음악이야기나 다른 이야기들은 즐겁게 했는데 영화이야기만하면 대화가 두절되곤 했죠. 그래서 한동안 영화는 혼자서만 보고 쓰고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가서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지만 곧 나와 좋아하는 영화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요. 결국 긴 시간동안 저는 영화에 관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 혹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글 역시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해 먼저 고백을 하고, 그들이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던 기록입니다. 평론가 이동진이 왜 당신은 별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적대적이면서 ‘10 베스트’에 대해서는 그렇게 호의적입니까? 라고 물어왔어요. 생각해봤더니 결국 10편의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똑같은 친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영화라는 ‘우정’을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배신하지 않았던 건 영화밖에 없다”

100: <언젠가...>는 영화에 대한 사랑에 대한 고백서이자 고다르부터 채플린에 이르는 비교적 전 세대 시네아스트들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글들로 주로 묶여 있고, <필사의 탐독>은 동시대 한국감독들의 영화에 대한 비평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전자에 ‘우정’ 후자에 ‘약속’ 이라는 말을 다르게 기입했던 것에는 동시대 한국감독들에게는 내가 당신들을 지켜주겠다는 영화선배로서의 다짐이 들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성일: 네, 정확하게 그런 거죠. 그 두 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좀 전에 말씀하신 그런 뜻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글을 모은 책에는 ‘영화라는 약속’을 썼습니다. 약속에 대해 첨언하자면 그동안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친구들이 나타났다 떠나가곤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등에 칼을 찌르고, 어떤 친구는 인간적으로 실망스런 태도를 취하기도 했고, 심지어 차라리 몰랐더라면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때 생각해보니 내게 배신하지 않았던 건 영화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처음 그에게 사랑을 바쳤을 때 오직 영화만이 그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당신이 가장 힘들 때 가장 친한 친구조차 두 얼굴을 보일 때도 영화만이 그 약속을 지킨 것 입니다. 이 말을 10년만 어렸어도 감히 못했겠지만, 이 나이가 되니까 해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100: 그렇다면 당신이 도저히 우정을 나누기 힘든 사람, 혹은 적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요?

정성일: 구체적인 호명은 좋은 방법은 아니겠죠? (웃음) 돈과 명예 때문에 영화를 하는 인간들을 보면 경멸스러워요. 아예 처음부터 그 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다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영화를 좋아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좋아할 생각이 없고 그저 일로, 하나의 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냉장고와 영화가 다를 바가 뭐겠어요.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시네마’이고 그가 생각하는 영화는 ‘냉장고’이니까 적대적일 이유도 없는 거죠. 물론 사회활동의 어떤 지점에서 그게 직업윤리로 작동되는 사람과 싸우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 되겠죠. 그리고 그가 내가 생각하는 ‘영화’를 부수려고 한다면 그땐 제가 목숨을 걸고 방어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도 적의 명단에 포함되어야 하겠죠. 그것보다 제가 더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명예를 얻기 위해 영화를 선택한 자들입니다. 저는 영화가 완전히 버림받은 시절에 영화보기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정말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었죠. 그래서 그 시절에 영화를 시작했던 사람들에게는 ‘순정’ 같은 것이 가슴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영화가 산업적인 방식으로 성공하고 해외에서 인정받고 그 성공이 사회적인 명성을 가져다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영화를 통해 명성을 얻을꺼야, 라는 목표로 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가 봉준호가 될 테야, 라고 다짐할 때 봉준호가 그저 천만관객을 불러 모은 감독이라는 개념으로만 이해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죠.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하는 나의 사랑은 ‘순정’인데 그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남자들은 리비도를 불태우고 있다면, 그 남자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적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그건 아마도 제 편협한 태도일 수도 있겠지만요.

100: <언젠가...>를 함께 작업한 ‘올드독’ 정우열 작가는 그 영화에 대한 순정을 “신념”이라고 표현했더군요. 어떠셨어요, 그의 그림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정성일: 심금을 울렸죠. (웃음) 정우열 작가의 그림판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3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이 사람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둘째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영화의 핵심을 보는 직관을 가진 아주 훌륭한 비평적인 재능이 있구나. 그리고 어떤 영화를, 어떤 감독을, 영화의 어떤 순간에서 끌어내는 그의 배움이 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가끔 제 주변의 평론가들 중에서 영화를 분석하고 해부한다는 이유로 마치 정신분석학자처럼 굴거나 혹은 영화를 자신의 철학적 개념을 풀어놓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만난 영화로부터 ‘배움’을 끄집어내는 사람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정우열 작가는 우정을 나누고 싶어진 친구였고, 이 책을 정우열과 함께 한 것도 그와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이었던 거죠.

100: 한정된 매체에서 한정된 필자들이 영화비평을 써내려가던 과거와 달리 21세기의 환경은 거의 모든 사람들을 ‘영화평론가’로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가끔 영화를 지식의 전시장으로 활용하거나 신랄하고 정확한 비평을 영화에 대한 불손으로 오해하는 글들도 만나게 되고요. 이런 비평 풀의 확장이 영화비평의 전체수준을 떨어트려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정성일: 영화수준이 떨어졌다, 라고 단언하는 것은 제 판단을 훨씬 벗어나는 일인 것 같구요. 물론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가끔 많은 필자들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쓸 때 아무런 호기심 없이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잘 분석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질문을 던졌는가에 따라 영화를 바라보는 어떤 하나의 태도를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글들은 궁금증 없이 혹은 영화에 대해 평준화된 감정만 가지고 쓰여지는 느낌을 받긴 합니다. 후배들에게 종종 영화를 읽지 말고 보아줬으면 고맙겠다, 라는 말을 합니다. 비평이 종종 개념의 전시장이 되어 요즘 당신이 무슨 책을 읽는지, 무슨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지도 알겠는 거죠. 그런데 도대체 그 영화는 어디로 간 거야?. 비평담론에서 그런 태도는 우려할만한 사태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100: 동시에 요즘은 한 영화에 대한 빠르고 극단적인 평가, 예를 들어 시사를 끝내고 나오면서 트위터를 통해 어떤 감독에 대한 사형선고문에 가까운 평을 올리는 경우들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정성일이란 비평가가 역시 지금까지 너그러운 평을 써온 사람은 아니지만 (웃음) 그런 비평을 접할 때 당혹스러움은 없으신지요.

정성일: 어쩔 때는 판결문 같은 영화평을 볼 때가 있죠. 이 사람이 영화 비평가야 아니면 재판관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하지만 그러한 비평을 할 때는 그 비평이 고스란히 비평가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물론 저는 선언을 할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아니 그렇게 까지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묻기도 하는데 그런 선언을 할 때는 내가 쓴 글에 대해 실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할복자살’할 준비까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평가가 틀렸을 때는 결국 자신이 장님이었다는 인정을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신이 내뱉은 평가가 결국 엄청난 무게가 되어 다시 당신을 후려칠지 역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00: “가장 위대한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한 영화다”라며 내일의 영화에 대한 희망에 대해서 쓰셨지만 솔직히 이제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점점 전투가 되어 가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1950년대를 거치며 영화사의 걸작들은 어쩌면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21세기의 시네필들은 과거의 거장들에 대한 경외심과 향수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구요.

정성일: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 생각에도 영화의 가장 위대한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 이 디지털 영년(zero year)에 제가 비평가로서 살고 있다는 점이 행복합니다. 뤼미에르와 영화가 탄생하던 그 순간에 살지 못했지만 디지털이 탄생한 순간엔 제가 살았습니다. 다빈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화에서, 아직 세잔이 도착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00: 피카소의 등장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말씀이시죠.

정성일: 네 그렇습니다. 인상주의가 등장하는 순간 미술사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발전한 것처럼, 영화가 디지털을 만나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모르는 이 순간에 한사람의 비평가로서 내가 먼저 세잔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을 기록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가 시작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리하여 영화의 두 번째 세기가 시작되는 것을 내가 목도 할 수 있다면,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제를 하는 것도 그 것을 먼저 빨리 보고 싶다는 이유가 큽니다. 우리가 동시대 영화는 끝났어, 과거의 영화만이 진수야, 라고 말하는 순간 사고는 정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지된 생각이 아래로 흘러내려가지 못할 때 이제 생각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향해 달려 나가는 순간만이 우리의 생각 속에 무언가가 자라게 할 것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0: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 역시 조금은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흔히들 정성일은 클래식한 의미의 시네마, 에 대한 순정을 가진 사람인데 디지털영화제룰 만들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끌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좀 의외였던 건 사실입니다.

정성일: 심지어 디지털영화를 찍기까지 했잖아요. (웃음) 디지털, 이라는 것은 테크놀로지로서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아장커의 <스틸라이프>를 예를 들어보죠. 주인공이 선풍기 앞에서 어휴 더워, 하며 옷깃을 터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은 사실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지 그녀의 지루함과 답답함이 표현이 될지 잘 몰랐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스태프들을 나가라고 하고 그 방안엔 감독과 촬영감독 여배우만이 남았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켜놓고. 5시간이 지나자 진짜 더웠는지 배우가 갑자기 앞으로 가서 선풍기를 틀고 아휴 더워, 라고 옷깃을 털었던 겁니다. 그때까지 선풍기를 안틀고 있었던 거죠. 그때서야 감독은 충분히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앙리 베르그송이 시간을 이야기 할 때 종종 원뿔 통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시간의 침점에 이르게 하는 큰 통. 즉 양의 시간이 아니라 질의 시간, 기다렸던 4시간 45분의 없이 존재하지 않는 1분 10초. 이 1분 10초를 얻으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긴 시간을 디지털이 가능하게 해 준겁니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는 결과를 보는 예술이 아니라 과정을 보는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전까지 이 말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아장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떠오는 것이 바로 이 앙드레 바쟁의 혜안이었습니다. 어떤 쇼트를 보는 순간 영화는 그 결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이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메소드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필름과 디지털은 그것을 연출하는 방식의 사고의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영화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품게 된 셈이죠. 결국 ‘영화’라는 말 안에 전혀 다른 메소드를 가진 ‘필름 영화’와 ‘디지털 영화’가 공존 할 때 비로소 영화가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간이 도래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어쩌면 행운인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한 밤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웃음)

“영화는 아무것도 의도해선 안 된다”

100: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성일 씨가 프랑스문화원 시네마테크 ‘살 르누아르’ 지하로 숨어들었던 1970년대와 충분히 견줄만한,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암울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런 시대 속에서 영화는 무엇을 할 수, 혹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성일: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제 자신에게 던졌던 혹은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70년대에 영화에 대한 자의식이 처음 생기고 대학에서 교양을 쌓기 시작할 때 당시 문학에는 ‘실천’에 대한 혹은 리얼리즘인가 모더니즘인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영화의 자리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폭력적인 80년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간을 거쳐 제 동료들이 우여곡절 끝에 장산곶매를 결성하고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를 만들었습니다. 그 세 편의 영화를 보면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연 이 영화들이 프로파간다와 뭐가 다른가. 진보라는 이름을 건다고 해도 프로파간다가 아닌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 이후 10년간 이어진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은 결국, 영화는 아무것도 의도해선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 때 비로소 영화가 가장 정치적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 말고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어라”는 고다르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정치적인 영화를 찍는 그 순간 영화는 부패하고 타락하고 힘도 없고 설득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영화가 그 어떤 의도도 하지 않고 정확하게 그 시대를 찍으면, 역사 속에서 그 영화가 그 시대를 증언하고 나설 거라는 겁니다. 그것이 리얼리즘 영화가 주는 교훈이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의 <하하하>가 임상수의 <하녀>보다 훨씬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는 그 시간을 생각하게 만들고, 그 시간을 살았던 인간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왜 그 영화의 인간들이 그런 방식으로 밖에 사고할 수 없었는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답은 2010년 이명박 시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절대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100: 혹 그런 깨달음을 얻게 한 특별한 영화친구가 있었나요?

정성일: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긴 시간동안 이 분의 영화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훌륭한데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결국 그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가 일제 강점 하에 10대를 보냈고, 해방을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을 거쳐 느닷없이 해방을 맞이했고, 빨치산인 부모를 둔 업보로 1950년 한국전쟁의 혼란기를 거쳐 연좌제 속에 살아오면서 자신을 폭력적으로 난도질 했던 한국사회를 향한 겁먹음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철저히 조선시대 사람인, 이 19세기 사람이 근대 한국을 통과해 오면서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어떤 식으로 부서졌나를 담은 것이 그의 영화였던 것입니다. <서편제>에서 딸아이를 장님으로 만드는 것이 왜 중요했을까, 아들은 왜 계속 누이를 찾아다니는 걸까. 여기서 임권택이 전통을 계승하는 방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자를 장님을 만들어 근대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 그렇게 과거에 머물러 있게 하는 방법만이 근대의 폭력 속에서 이 전통을 부서지지 않은 채 옮겨 올 수 있었던 거죠. 임권택 감독은 단 한 번도 정치적인 영화를 찍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전적으로 그가 살아온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방식의 대답을 구해나가는 것, 오히려 그것이 영화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쪽입니다.

100: 돌이켜보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씨네 21>같은 영화저널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 데는 영화를 아는 것이 ‘뭘 좀 아는 멋진 도시인’ 대접받는 사회적 분위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 씨가 지적한 대로 한동안 “영화가 대상을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암기와 수집의 존재가 된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을 생각해보면 영화에 대한 실체 없는 경외라도 있었던 시절이 그나마 좋았다는 생각도 있지만요. (웃음)

정성일: 호시절이었죠. (웃음)

100: 하지만 그마저도 아닌 시대 영화저널에 대한 회의론과 동시에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절이 도래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혹 외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드시진 않나요.

정성일: 사실 글을 쓰는 일은 숙명적으로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 이런 고립이 몸에 배었다고 나 할까요,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 긴 시간동안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한 작업도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죠. 아,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구나. (웃음) 한 때 이곳저곳 수많은 강연에서 나를 부르고, 타르코프스키를 키에슬롭스키를 타란티노를 듣기 희망하던 시대가 있었죠. 하지만 그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내가 맨 처음 영화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 시절로 돌아온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회한에 젖고 아쉬움을 가지진 않아요. 만약 그 호시절에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현재 다른 느낌이겠지만요.

100: 제가 바로 그런 세대죠. 호시절에 시작했지만 영화저널이 예전 같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21세기를 맞이하고 어리둥절 하는. 요즘엔 후배들과 영화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민폐가 아닐까 하는 외로움이 있어요. (웃음)

정성일: 교양의 시대였던 70년대를 지나 80년대 정치의 깃발이 올려졌고 그렇게 투쟁적으로 살던 10년을 거쳐 90년대 문화담론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실속 없는 문화를 거둬내고 실용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실용의 시대 10년의 알레고리는 이명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삽질을 해도 50%가 지지를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실용의 시대가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문화에 대한 안티테제로 실용이 나온 것처럼, 실용에 대한 안티테제로 다음 10년이 시작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더 나쁜 선택이 될지 더 나은 선택이 될지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사회인지 혹은 유치한 사회인지에 대한 대답이 되겠죠.

“작은 영화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실험”

100: 프로그램 디렉터로 있는 이번 CinDi 영화제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심사위원이자 클래스의 강사로 서울을 찾았습니다. 물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엉클분미>를 개막작으로 들고 말이죠. 대부분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것이라고 예상 했었는데 의외의 등장이었습니다. 결국 그 뉴스 덕에 ‘CinDi가 뭔데?’ 하는 궁금증을 유발 시킨 것도 사실이구요.

정성일: 아피찻퐁의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으로 그가 어떻게 심사하는지가 궁금했고 그의 견해를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2년 전부터 심사위원으로 계속 초대했는데 계속 미루던 중 칸영화제 수상전이었던 올해 초에 갑자기 답이 왔어요. 올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새 영화를 가져오면 더 좋겠다, 했었죠.

100: 그런데 <엉클분미>는 필름으로 찍혀진 영화입니다. 필름영화가 디지털 영화제의 개막작이라니, 제 아무리 아핏차퐁이라도 해도 처음엔 의아했던 게 사실이에요.

정성일: 마치 여성영화제에서 남성영화감독의 작품을 초대하는 것처럼 디지털영화제의 개막작으로 필름영화를 초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디지털과 필름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 둘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공통분모가 있는가를 듣는 것이 디지털 영화의 미래를 위해서 굉장히 많은 배움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엉클분미> 뿐 아니라 서른 편 가까운 디지털 영화 중 본인이 뽑은 7편의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 상영하기도 하구요.

100: 얼마 전 트위터(@cafenoir_me)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보러오지 않은 당신이 손해 보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협박에 가까운 (웃음) 트위팅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정성일: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자신할만한 영화들이기도 하고, 먼저 이 영화를 접한 시네필로서도 칸도 베니스도 아니고 서울 압구정동에서 상영하는데 이런 영화들을 못 만난다면 정말 당신들이 손해라는 거였죠. 과한 표현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100: 오해인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정성일은 시네마에 대한 순혈주의자, 로 이해 될 수도 있을 텐데, 올해의 CinDi 트레일러를 TV 시트콤의 거장인 김병욱 감독에게 연출을 의뢰한 것은 무척이나 의외였어요.

정성일: 작은 영화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실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다른 영화제들이 더 풍요로워 졌으면 하구요. CinDi를 통해서는 허락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오히려 자리를 잡는 과정이라 조금 조심하는 부분이 있는 거고 이후엔 이런 거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용감한 시도들을 해볼 작정입니다. 10회 전에 꿈꾸는 궁극의 꿈은 시네마디지털서울이 열리는 기간과 동시에 시네마디지털도쿄, 시네마디지털하노이, 시네마디지털상하이 등이 열리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영화제들이 이름에 지역명이 맨 앞에 들어가는데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서울이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건 일종의 전략이죠. 결국 이런 시도들이 아시아영화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에 서버를 두고 동시에 상영하는 것은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한 상태니까요.

100: 그 계획에서 유추해볼 때, 꼭 스크린을 통해 보는 것만이 ‘시네마’라고 생각하시지는 않는 것이로군요.

정성일: 박찬욱 감독은 여전히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극장에서의 상영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TV나 컴퓨터에서 보여지기 위함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충분히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만 극장만이 유일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채널의 다양화는 21세기의 피할 수 없는 새로운 관람 방식이고 그것 역시 존중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100: 그렇다면 같은 TV를 통해 보는 ‘드라마’와 ‘영화’라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저 스스로도 계속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이 드라마는 꽤 영화적인 걸’라는 찬사나 ‘이 영화는 너무 드라마 같잖아’라는 폄하 역시 너무 안일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과연 그럼 영화는 뭐고, 드라마는 무엇인가, 모니터로 보는 영화가 영화라면 그걸로 보는 드라마는 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도달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영화 비평가의 입장에서 영화를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정성일: 그것이 바로 시네마의 존재론이기도 하죠. 이번 <까이에 뒤 시네마>의 7, 8월 합본 호 특집이 ‘미국 드라마’였을 정도니까요. 요즘 수많은 드라마 감독들은 많은 부분 영화에 영향을 받았고, 역으로 영화감독들은 TV에 영향을 너무 받은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프랑스에서는 ‘텔레시네마’라는 장르가 분명 존재하고 드라마에서 종종 ‘시네마틱한 순간’을 만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그 방식을 놓고 이것이 영화입니까, 드라마 입니까? 라는 질문을, 대신 이렇게 바꿔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혹은 드라마의 ‘시네마틱한 순간’은 언제입니까? 라고요.

100: 그렇다면 ‘시네마틱한 순간’이다 아니다, 를 결정짓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정성일: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겠죠. 시간을 영화적으로 다루는가, 아니면 드라마로 다루는가에 대한 차이. 사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계속적으로 좀 더 정교하고 섬세한 설명이 요구될 것이고, 지금 이 순간 ‘이것이 바로 시네마틱한 것입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은 자살골일 겁니다. 다만 경계를 지나치게 구분하려는 순간에 그 경계에 놓인 미덕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거겠죠. 또한 드라마와 영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이런 상황을 시네마의 영역이 그만큼 커졌어, 라고 볼 것인지 시네마의 영역을 뺏겼어, 라고 볼 것인지에 따라 다른 대답에 이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후자라면 영화를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매체나 산업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오히려 경계해야 할 태도일 것이고, 전자처럼 시네마의 미학적 철학적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이 영역이 확장되고 팽창되고 있는 부분에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 역시 과연 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계속 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제 세 번째 책이 될 것입니다.

글, 사진. 백은하 one@
편집. 장경진 th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