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2010.09.16.본인인터뷰

영화평론가 정성일 인터뷰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둘러싼 이미지는 여러 가지입니다. 달필과 달변. 말을 글처럼(!) 사용하는 사람. 엄청 어려운 말을 자주 쓰는 사람. 영화를 쇼트 단위로 분해(혹은 난도질)해버리는 숏커트 매니아. 그래서 영화의 구조 안에서만 사는 것같은 사람. 영화 구조주의자. 영화 순혈주의자. 영화에 대한 낭만도 환상도 없이 온갖 분석에만 몰두하는 외골수. '평론가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것들만 헤집는 것 같다'라고 할 때 누군가에게는 가장 먼저 떠오를 이름.

이중에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아닐까요. 혹은, 사실이긴 한데 사람들이 그 사실 자체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혹시 그에 대한 어떤 오해는 우리가 영화 자체를 오해하고 있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답변을 들으면서 더 하고싶은 질문이 계속 생겨나는, 그러나 시간상 참아야만 했던 안타까운 인터뷰였습니다. 그러나 윤곽은 잡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영화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술MD 최원호

알라딘- 책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웃음). 왜 잘 팔릴까요.

정성일- 음... 잘 모르겠어요. 영화가 흥행할 때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잖아요? 영화 <아저씨>가 원빈이 나온다는 이유(웃음) 하나만으로 성공한 건 아니니까요. 그것처럼 이 책에도 그런 여러 요소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출판계가 돌아가는 건 잘 모르고, 그건 아마 이 분야의 전문가 분들께 여쭤봐야 답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각 분야들의 전문가를 존중합니다(웃음).

사실 영화에 관련된 책을 내는 사람들은 영화 책들이 그렇게 큰 반응을 얻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도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과의 인터뷰 책을 냈었는데 그게 그렇게 판매가 좋진 않았던 걸로 알아요. 그러고보면 1970년대에는 문학비평집들이 많이 읽혔지요. 김현, 정과리... 많이 사서 읽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 사게 됐어요. 딱 한 권 예외가 있는데 신형철이 쓴 <몰락의 에티카>예요. 그 외의 평론들은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과 교감이 없이 그냥 자기 얘기만 하는 것 같거든요.

다시 생각해 봤는데, 이번 책을 사시는 분들은 그냥 영화 팬, 나머지는 올드독 팬들이 아닐까 싶은데(웃음).

알라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비교적 일반적인 의미, 즉 시뮬라르크의 증대와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대한 것, 즉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분석 혹은 예측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의 어떤 진심 혹은 열망이 세상과 결국 소통할 방법을 찾게 되는, 영화가 곧 세상이 되는, 희망이나 목표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두 의미는 서로 역설적이고요. 혹시 그런 중의적 배치를 염두에 두셨나요?

정성일- 음... 우선 감사합니다. 이 책 내고 인터뷰를 여러 번 했지만 그걸 물어봐준 사람은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 제목을 단순히 한 시네필의 호기어린 메시지 아니면 들뢰즈의 맥락대로만 생각해서 좀 실망했었어요.

물론 저 제목은 들뢰즈의 말이죠. 들뢰즈가 썼을 때는 음울한 의미였어요. 실재와 재현이 뒤섞이고 때로 자리가 바뀌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서죠.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9/11을 말할 때 사람들이 마치 영화 같다고 했었죠. 현실이 영화를 재현하는 것, 스펙터클이 이 세계의 뭔가를 뒤집었어요. 리얼리티가 재현을 재현하게 되는 역재현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21세기의 유일한 목표는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만큼 실재의 위치가 뒤집혀서, 잘못 지정되어있다는 것이고, 그게 시급한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철학에 비추어진 영화는 주로 비관적이에요.

(잠시 침묵) 일개 영화 평론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해야 해요. 그렇다면 좋은 영화를 방어함으로써 나쁜 것과 구분짓고, 그것으로 긍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해보죠. 언젠가 세상은 '나쁜' 영화가 될 것이다, 가 철학의 이야기라면, 저는 언젠가 세상은 '좋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싶다, 좋겠다, 되어야 한다...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죠. 영화는 과제입니다. 영화를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로맨틱한 환상 같은 걸로요. 그렇지 않습니다.

알라딘- 방금 말씀과 책 속의 김선일 비디오, 지아장커와의 대담 등을 종합해보면, 영화는 단순히 스펙터클이나 가상 현실의 체계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체적으로 동시대를 표현하고 그와 소통하기 위한 또다른 종류의 어법일 수 있다는,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이건 그간 정성일이라는 이름에 대한 선입견과는 거의 반대되는 이야기들 같습니다. 이를테면 영화 순혈주의자라거나(웃음), 혹은 영화 영성주의자라거나 하는, 영화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사람 같은 이미지 말이죠.

정성일- 하하, 영성주의자라. (웃음)

알라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시대와 영화가 서로 어떤 합일점 혹은 통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정성일- '이미' 모든 예술 중에 영화가 세상과 가장 가까이 있어요. 그래서 잘못하면 이 세상과 영화는 서로 뒤섞이거나 위치가 혼동될 위험을 갖고 있죠. 그와 반대되는 게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루카치는 말년에 음악에 대해 몰두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는 데는 실패했죠. 그만큼 멀리 있어요. 말하자면 현실과 예술의 거리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영화는 가장 가까이에, 음악은 가장 멀리에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영화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찍어도 그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영화 속에 세상의 흔적이 잠입하고, 그것이 영화에 어떤 동력을 제공하고, 움직이고 활동하게 만들죠. 이런 특성은 세상이 영화에 미치는 힘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영화가 세상을 흡수하는 능력이기도 해요. 그때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자의 의지예요. 현실의 어떤 점을 흡수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현실에 직접적으로 굴복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심미적으로 흘러가 버리기도 해요. 둘 다 아닙니다. 틀린 방법이에요.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선한 의지' 예요.

자, 이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죠.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는 악인가. 이쯤되면 철학의 지점에 다다라요. 따라서 저는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윤리-미학-정치라고 생각해요. 이 요소들 중에 하나만 무너져도 성립할 수 없어요. 이 윤리-미학-정치가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흔히 돈이냐 예술이냐라는 식으로 질문하는데, 그건 틀린 질문이에요. 너무 많은 것들을 단순화하죠. 틀린 질문이 틀린 답을 유도하고, 그런 식으로는 절대 어떤 결론에 다다르지 못해요. 예술이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질문의 가능성을 좁혀버려서는 안돼요.

알라딘- 책에서도, 지금 인터뷰에서도 사회와 영화와의 관계, 탐색의 다양성, 이런 주제가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CinDi(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에 참여하시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인가요?

정성일- 네 참여하죠. 그건 임무예요. 굉장히 큰 임무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의 흐름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동시대에 영화는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를 보여줘야만 해요. 단지 그 이유 뿐입니다. 아마추어적이죠. 그런데 영화제는 직업이 아니라 취미여야만 하거든요. 취미에서 한발만 벗어나도 바로 비즈니스-폴리틱스의 세계가 되어 버려요.

영화제에는 돈이 들어가는데, 취미다보니 그냥 돈은 쓰기만 하고 끝나요(웃음). 소위 문화 사업, 돈을 못 버는 일이죠. 여기에 누가 돈을 대면 돈 대신에 명분이나 다른 어떤 것을 가져가고 싶어 해요. 결국 영화제의 비전이나 태도attitude가 후원자들이 부여한 임무와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져요. 고용되는 것, 직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영화제는 취미여야 합니다. 프로페셔널한 아마추어랄까(웃음). 물론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죠. 맞아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비교적 잘 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알라딘- 이쯤 되면 추천도서를 받는데요. 지금 인터뷰 분위기에 맞춰서(웃음), 미학적으로만 분석한 영화 책 말고, 세상과 관계하는 영화에 대해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 있을까요?

정성일- 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책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영화 평론가답게(웃음) 60-70년대의 고다르 영화로 하죠. 저는 영화와 정치의 관계, 정치적 테제의 표현, 매체의 미학적 문제, 그리고 그런 메쏘드method들을 실행하는 방식 모두를 고다르에게서 배웠습니다. 거기에 대해 고민이 생길 때면 늘 다시 고다르로 돌아가요.

물론 이건 제 경우이고, 다른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1920년대의 소비에트 영화, 혹은 지젝이라면 레닌이겠죠. 요새 재장전도 하고(웃음). 혹은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 영화들. 68중심의 유럽 영화들. 90년대의 중국 지하전영.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역시 제게는, 영화정치라는 하드한 측면에서만 보자면 고다르죠.

알라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 보면 소위 영화광들이 렌즈와 필름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고찰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문제들이 대단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이어 말씀하셨는데요. 그 중요함이란 어떤 것인가요?

정성일- 결국... 영화에서 봐야 하는 건 영화죠.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은 보통 영화에서 줄거리나 배우를 본다는 거예요. 비평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제가 동료들의 비평에서 가장 실망하는 경우는 비평이 영화와 TV를 구별하지 못할 때예요. 그럼 영화에서 영화를 본다란 뭘까. 쇼트를 보는 겁니다. 쇼트의 활동 범위. 활동력. 목적. 미학적 개념. 씬 속에서의 위치. 그리고 그 위치들의 상호 조직과 관계. 즉, 영화 안에서 쇼트라는 세포가 생명을 얻는 과정. 그 쇼트의 질료적 기반은 절대적으로 테크놀러지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지금 우리 대화가 영화로 촬영된다고 치면, 그 포맷이 1.33이냐 1.66이냐, 아니면 씨네마스코프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으로 만들어집니다. 지금 우리를 찍는 장면, 이 씬을 규정하는 건 출연하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 그 질료인 거예요. 저는 <아저씨>에 원빈이 나오냐 현빈이 나오냐, 무슨 빈이 나오냐는 관심이 없습니다(웃음). 구스 반 산트는 <엘리펀트>를 1.33으로 찍었어요. 그런데 <게리>는 그가 유일하게 씨네마스코프로 촬영한 영화입니다. 이 포맷 자체가 이미 그 두 영화의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해요. 그걸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씬-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씬을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결정을 해야 돼요. 카페 가운데냐 창가냐, 아침이냐 오후냐, 빛의 각도가 어느 정도냐, 여기서 영화의 하드웨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ASA(필름 감도) 몇 짜리 필름을 쓸 것이냐는 지금 창밖의 풍경을 함께 담을 것이냐, 아니면 노출 차이를 통해 하얗게 날려버릴 것이냐를 결정하는 잣대가 됩니다. 그 감도 차이만으로도 이 쇼트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갖게 돼요. 연출자의 의도가 전적으로 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이건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이야기예요. 블록버스터든 독립영화든, 제작비가 얼마든, 모든 쇼트는 주어진 환경 하에서 그걸 만드는 사람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시네필이라면 거기에 호기심을 보여야 해요. 영화에 대한 질료적 이해 없이는 결코 쇼트의 관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음악을 예로 들면... 음악을 그냥 많이 듣는다고 해서 음악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한계가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씨디 장수와 그에 비례한 지식만 늘어납니다. 누가 작곡하고 누가 연주하고...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아무리 들어도 뭔가 제자리를 도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죠. 그러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떤 분과 그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한참 얘기하다가 그 분이 조심스럽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혹시, 악보를 못 읽으시는 건 아니죠?'

그때 진짜 철렁했어요. 허를 찔린 기분이었죠. 지금은 아주 잘은 아니지만 악보를 읽을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음악이 더 이해가 되고, 더 많은 걸 느끼게 됐어요. 음악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가 이해의 폭을 넓힌 거죠.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무 생각없이 보는 영화에서 얻는 건 목록들, 그러니까 감독 이름, 배우 이름, 제목 뿐이에요. 어느 순간부터는 양적으로만 팽창할 뿐이죠. 많이 본다는 것, 양적 팽창이 질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moment, 그것이 질료적 기반에서 시작됩니다.

알라딘- QnA의 첫 질문은... 고민상담입니다(웃음). 아무리 진지하고 깊은 내용을 담은 영화라도, 거기에 담긴 사유보다는 우선적으로 영화 자체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정성일- 허허허

알라딘- 네, 자신이 인문학도여서 그런걸까라고 자문을 하셨어요(웃음). 질문은 이렇습니다. 감각으로 사유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감각에서 출발한 사유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하는 겁니다.

정성일- 우선 지젝 식으로, '당신의 죄의식을 즐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웃음)

감각이 사유에 도달할 수 있는가? 세잔은 가능하다고 했어요. 더 가까워진다, '보여진다'는 거죠.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감각과 의미라는 두 단어는 국어에서는 별도이지만, 불어에서는 같은 단어(sens)예요. 같은 단어 속에 감각과 의미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그 두 요소가 이미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을 수 있어요. 우리는 그게 불가능하죠.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 걸까...

영화는 1895년에 파리에서 탄생했어요. 근대화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의 미술이나 음악 등에서 그 기류를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인상파 미술을 생각해볼 수 있죠. 영화는 '세상의 공기를 감각으로 캐치하려던 시대'에 태어난 예술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발명된 동기는 예술이 아니었어요. 영화는 그저 기술일 뿐이었죠. 실제로 초기에는 유사 써커스이기도 했고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것과 아무런 미적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19세기의 저 수많은 과학적 발명 중에 유일하게 영화만이 예술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영화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주1

*주1) 영화가 발생할 당시, 그리고 영화가 예술로 접어들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예술로써의 영화'에 정체성을 부여했다는 점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께는 영화 역사서와는 별도로 빌리 하스의 <벨 에포크, 세기말과 세기초>, 그리고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를 권해 드립니다. 참고로 '영화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의 답은 같은 문단에 힌트가 있습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답하면, 영화를 완성된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왜 이것이 예술인가라고 질문하세요. 그러면 감각이 의미를 부여합니다. 묻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의미는 발생하지 않고, 영화는 '그제서야 예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겁니다.

알라딘- 영화에 있어 감각적 요소는 본질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거군요. 질문하신 분께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셔도 되겠네요.

정성일- (웃음) 저는 한국 사회에서 영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중에 철학자나 사회학자 같은 분들, 영화가 사유의 대상이게끔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저는 그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합니다. 영화에 대한 좋은 얘기들이 많아요. 들뢰즈나 랑시에르, 푸코, 지젝... 프레드릭 제임슨도 그렇죠.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사실 방금 언급한 사람들이 너무 대가죠(웃음).

저는 책을 탐욕스럽게 읽는 편이에요. 열심히 끌어다 읽어요. 특히 한글로 쓰여진 영화 관련 글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중에 끌리거나 매력 있는 글은 거의 못 봤어요. 자기 전문 분야의 책들을 참 잘 쓰는 분들도 영화 얘기만 하면 이상하게 유치해져요. 그런 걸 읽다보면 가끔은 제가 이 사람에 대해 그간 오해했었나 싶어서 그 사람 전공 분야 책을 다시 봐요. 그런데 그건 정말 잘 썼어요. 이상하지(웃음).

아무래도 영화를 통해서 자기 분야 얘기를 하려고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사회나 역사나 철학을 설명하려고 영화를 갖다 쓰는거죠. 영화 자체를 이해하지 않고 영화를 매개로만 사용하면 좋은 내용이 나올 수가 없죠. 앞서 말한 들뢰즈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매개로 한, 혹은 영화를 빙자한(웃음) 철학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건 분명한 '영화 책'이에요. 철학을 말하기 위해 영화를 끌어들인 게 아니라, 철학을 이용해서 영화를 말하는 것이죠.

이 사회의 지식인들이 영화를 중요한 예술이라고 말할 거라면, 그에 합당하게, 보다 진지하게 대해 달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알라딘- 앞서 언급하신 들뢰즈 외에 좋은 사례는 뭐가 있을까요.

정성일- 우리나라에는 동경대 총장으로 더 유명한 불문학자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 비평들이죠. 그의 비평은 절대적이에요. 일본에서 영화 평론을 하는 그 누구도 그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했어요. 물론 그 영향력이 지나친 감은 있지만... 그의 오즈 야스지로 비평을 보면 단순한 감독론의 비평 범주를 넘어서 있어요. 그 글은 영화 자체의 가능성과 일본 영화계 전체의 속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도록 하는 힘이 있어요. 결국 일본 영화의 새 세대가 나오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알라딘- 트위터에 글을 쓰실 때 <시>와 <하녀>, <인셉션>과 <엉클 분미>처럼 두 개의 영화를 비교하는 형식을 자주 이용하시는데요. 특별히 그런 방법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정성일-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서요(웃음). 트위터는 140자 안에 결판을 내야 하는 거니까 바로 얘기를 해야 돼요. 그때 하나의 영화만 말하면 기준점을 잡기가 힘든데, 다른 영화가 상대 기준점이 되는거죠.

저는 생각이란 곧 접속사라고 생각합니다. A와 B를 연결할 수 있고, A와 C를 연결할 수도 있어요. 그 연결하는 방법이 곧 그 사람의 애티튜드가 됩니다. 좀 따분하게, 건조하게 얘기하자면 플라톤이 말하던 변증법적 사고의 기초죠.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사실 이 얘기는 왜 그럴까 하고 방금 생각해본 거예요.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랬어요(웃음).

알라딘- 영화 <해안선>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 이 영화의 리뷰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리뷰 후반부에 보면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막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질문을 주신 분 역시 그 자막을 기억하고 계신다는데요, 그런데 DVD판 <해안선>에 그 자막이 빠져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게 감독의 의도라면...

정성일- 어? 아니, 아니예요. 그건 절대 감독의 의도가 아닙니다. 확실해요. 몇 달 전에 김기덕 감독과 만나서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 그 자막 얘기도 나왔어요. 감독이 그 자막은 너무 중요하다고 직접 말했어요. 아마 DVD판에서 그 자막이 삭제된 건 감독도 모르고 있을 것 같아요. DVD 제작과정에서 재편집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물론 판본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요. <춘향뎐>이나 <취화선> 같은 경우에도 국내 개봉판과 깐느 개봉판이 다르죠. 특히 음악에는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죠. 브루크너나 모짜르트 등만 봐도 악보가 여러 판본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같은 경우에는 보다 명확하게 예술가의 의도를 재현한다거나, 보다 나은 미적 성과를 목표한다거나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해안선>의 삭제 편집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명백한 훼손입니다.

알라딘- 만약에 그 편집이 감독의 의도에 의해서였다면 어떨까요? 달라진 판본에 따라 비평도 수정되어야 할까요?

정성일- 디렉터즈 컷 같은 여러 수정본들이 있죠.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주로 극장 배급용 영화들이 2시간 이내로 편집되어야 하는 압박감 때문이에요. 연출가는 고심하게 되죠. 특히 헐리우드의 경우에는 편집권이 감독이 아니라 배급자에게 있어요. 그때 보통의 경우 감독은 자기 영화가 편집되는 데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요. 그래서 DVD로 출시할 때 감독판을 내는 거죠. 이 경우에 감독이 자기 의도를 복원하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다른 예로는 홍상수 감독 같은 경우인데요. 홍상수 감독은 무조건 처음 내놓는 게 곧 최종본이에요. 불가피한 이유로 편집을 약간 더 손보는 경우는 있었는데, 그 경우도 그러고 나면 그게 최종본이죠. 여기에 정답은 없어요. 감독별 스타일 문제고 그건 다 선의에서 이루어지는 거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수정판본들은 앞선 판본과 다른 영화가 되죠. 저는 앞선 판본의 비평은 개별적인 해석으로써 존중해요. 그러므로 새 판본에 대한 비평은 새로 쓰여져야 합니다. 새로 쓰지 않고 기존의 비평을 새 버전에 맞춰 수정하는 행위는 쓰레기 같은 짓이에요. 새로 편집된 영화는 그 기본 전제부터가 다른 영화이고, 그건 곧 새로 쓰여진 영화라는 말입니다. 매 판본마다 다른 비평이 필요해요. 감독의 '진본'이란 없어요. 두 개의 판본이 있다면 A와 B라는 두 개의 영화가 있을 뿐입니다. 그게 어떤 판본이냐와는 별개의 문제죠. 감독의 의도이든, 작고한 감독의 복원판을 찍어내는 장사든...

알라딘- DVD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부가영상같은 서플먼트는 잘 보시나요?

정성일- 아뇨. 거의 본편만 봅니다.

알라딘- 아, 약간 의외네요. 영화에 대한 보조 자료들이 들어있어서 잘 챙겨보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감독 코멘터리 같은 것들요.

정성일- 그 코멘터리들을 보면 대개 잡담하고 있잖아요. 오히려 본 영화의 느낌을 망치는 것 같아서 싫어요. 서플먼트는 신중하게 골라서 봅니다. 개중에는 그 영화의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피핑 톰>의 서플먼트가 그랬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프랑스 출시판에 수록된 것도 좋았어요. 끌레어 드니가 코멘터리를 담당하고 있는데, 홍상수에 대한 아주 색다른 이해를 보여줘요. 반면에 마틴 스콜세지가 홍상수 영화에 코멘터리를 단 것도 있는데... 그건 뭐 스콜세지라는 이름 말고는 볼 게 없던데요(웃음).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어요. 잘못하면 영화 자체의 감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의 대다수 코멘터리들을 보면 스태프들의 잡담으로 이뤄져 있어요. 사람들은 소중한, 중요한 얘길 듣고싶어 해요. 저는 쓸데없는 코멘터리를 경멸합니다.

알라딘- 영화를 직접 만들 때와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의 차이를 물어오신 분도 계십니다.

정성일- 영화에 대해 쓸 때는 영화를 마음 속에 두죠. 어떤 객관적인 개체가 아니라 내 마음 속의 영화를 생각합니다. 영화를 찍을 때는 그 모든 순간들을 포함해서 제가 진짜 평론가가 된 것 같았어요. 쇼트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과정들, 거절하고 받고 기다림을 결정하는 매 순간들이 비평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었어요.

알라딘- 원론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말하는 것이 겹쳐가는 거군요.

정성일- 네. 영화를 비평할 때도, 찍을 때도 똑같은 시네아스트죠. '비평가였고 감독도 된' 게 아니예요. 뭔가 아주 다른 일을 한 게 아닙니다.

알라딘- 네 마지막 질문입니다. 쓰시는 글이 너무 어렵지 않은가 하는... 말하고 보니 질문이 아니네요(웃음). 다르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성일의 글을 읽고 싶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난이도를 조절해줄 생각은 없는지? 혹시 본인의 글이 어렵다는 사실을 몰라서는 아닌지(웃음)...

정성일- 이렇게 대답을 하죠. 저는 읽는 이를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게 글이란 내 자신의 생각이 진전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기록일 뿐이에요. 영화를 통해 어떤 사고를 갈데까지 가도록 하는거죠. 제 글은 '내 질문에 내가 답을 하는 과정'입니다. 나와 영화가 대면하는 게 아니예요. 영화를 본 나와 글을 쓰는 내가 대면하는 거죠.

종종 저는 문장 대신에 단어들을 나열할 때가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생각이 나고 그걸 쫓아가느라 그래요. 그런데 글을 다듬으려는 과정에서 그 생각 혹은 느낌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제겐 처음에 떠올랐던 생각을 붙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질문만 있는 경우도 있어요.

(잠시 침묵) 질문은 종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 영화가 끝나요.

(잠시 침묵) 내 두뇌 안에서 어떤 영화를 종결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끝내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가 제게는 가장 위대한 영화예요.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게 하는 영화입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그 나아감이에요.

독자 여러분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서 대답 혹은 해답을 구하지 마십시오. 마치 이야기를 나누듯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글의 리듬을 통해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리듬을 통해 질문하고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이 제가 쓰는 글입니다. 저는 제가 영화를 생각하는 과정이 그 영화가 가진 리듬에 포개졌으면 합니다. 제 어떤 글을 읽었는데 그 영화의 리듬을 느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제게는 최상의 찬사가 될 겁니다. *주2

*주2)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 '리듬'은, 결국 영화가 뿜는 총체적인 감각적-정서적 진동 및 그 박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문장의 리듬'을 예감케 하는 영화 책으로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을, 또한 리듬에 관한 언급을 포함해 인터뷰 전체에 흐르는 들뢰즈의 전류를 느낄 수 있는 책으로 클레어 콜브룩의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을 권해 드립니다.

알라딘- 오늘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번외 질문들

알라딘- 이번 책을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딱 한 권의 책만 추천해 주신다면?

정성일- 아까 말씀드렸던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로 하죠. 영화에 관한 위대한 책이에요. 오즈 감독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를 맹렬히 파고듭니다.

알라딘- 요즘 개봉작 중에 추천하고프신 영화는 뭐가 있나요?

정성일-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그리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죠. 한번 봐봐요.

알라딘- 넵.

이곳은 정성일 영화감독/영화평론가와 관련된 정보를 모은 김석영의 개인 홈페이지입니다. seojae.com/cri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