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7.06.18.좌담|본인인터뷰

[me] 충무로 과거와 미래 뒤져 '새 관객' 찾습니다

올 하반기 나란히 새 영화제를 시작하는 영화감독 김홍준(51)과 영화평론가 정성일(48)이 만났다. 평론가와 감독? 상극이 아니라 실은 한편이다. 지독한 영화광, 혹은 시네필(cinephile)이라는 점에서다. 영화가 그야말로 변두리 장르였던 시절부터 알음알음 영화를 보고, 쓰고, 만들어 오늘에 이른 세대다. 언뜻 두 영화제의 방향은 정반대다. 각기 고전의 재발견과 창조(김홍준.충무로영화제), 필름을 대신해 급부상하는 디지털(정성일.시네마디지털.이하 CinDi)이 초점이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같은 곳을 향했다. '지금.현재'에만 쏠리는 영화 문화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영화광 문화의 몰락을 냉정히 인정하면서, 새로운 관객의 탄생에 기대를 거는 점 역시 닮았다. 긴 대화를 간추린다. 전문은 인터넷(www.joins.com)에 싣는다.

#지금, 영화는 패스트푸드다

김=의도한 것은 아닌데, 한국영화가 위축되는 시점에 영화제를 시작하게 됐다. 스태프들이 일감이 없어 현장을 떠난다고 하니 심각한 상황이다. 황금기가 한순간에 몰락한 과거 경험이 반복되는 게 아닌가 두렵다.

정=지금 영화는 패스트푸드가 됐다. 대중음악에 긴 노래가 없어진 것과 비슷하다. 음악의 용도가 휴대전화용이 되면서. 영화에 대한 담론을 얘기하는 것도 우스워진 시대다. 과거 같은 시네필 문화는 종말을 고하는 것 같다.

김=과거에는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과 보기 힘들다는 희소성이 결합해 폭발력을 발휘했다. 요즘은 욕망도 줄고, 희소성이 거의 없어졌다.

정=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없는 영화를 찾기 힘들 정도다. 찾으면 그게 컬트영화인 거지.

김=게으름 탓인지, 한국영화의 징후인지 최근 1, 2년 새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을 모른다. 홍상수.김기덕이 데뷔하던 무렵에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 이름을 자주 들어 자연스레 외울 정도였는데.

김=게으름 탓인지, 한국영화의 징후인지 최근 1, 2년 새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을 모른다. 홍상수.김기덕이 데뷔하던 무렵에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 이름을 자주 들어 자연스레 외울 정도였는데.

정=각종 심사 덕분에 인디 영화를 줄곧 봐 왔다.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있기는 한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데뷔작)이나 '악어'(김기덕 데뷔작)만 한 미학적 충격이 없다. '플란더스의 개'(봉준호 데뷔작)나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데뷔작) 같은 도약의 느낌도 없고. 한동안 한국영화가 잘 만들겠다고 선언한 지향점이 '웰메이드'였다. 그런데 웰메이드의 궁극적 도달점은 할리우드 아닌가. 한국영화에 겨우 눈을 돌린 관객을 다시 할리우드 영화 취향에 길들게 한 건 아닌지. 올 국내 극장가가 할리우드 영화로 쑥대밭이 된 게 (관객의) 학습효과 아닐까.

김=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으로 한국영화의 열렬한 지지층이 급속히 이탈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큰 스크린에서 보고, 블록버스터가 못 채워 주는 드라마와 캐릭터의 재미는 미드에서 충족하는 구조다. 한국영화 침체에 장기적으로 심각한 요소다.

# 새로운 관객이 영화를 바꾼다

정=레코드 가게에서 이런 모습을 봤다. 음반을 고르던 50대 신사가 문득 소년으로 돌아간 듯 황홀한 표정을 짓더라. 왕년에 들었을 '그레이트풀 데드'의 음반 앞에서였다. 뭉클했다. 반대로 10대 소년이 (우리 때 듣던) 딥 퍼플.CCR을 찾는 모습도 봤다. 그 두 관객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모습, 그 감동을 충무로영화제에서 보고 싶다.

김=앗, 속마음을 들켰다. '영화의 죽음'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디지털이 대체하는) 필름의 죽음이 아니라 '관객의 실종'이다. 영화제는 남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공동체의 제의(祭儀)적 성격이 있다. 새 영화를 먼저 본다는 것만이 아니라. CinDi에서도 디지털적인 동시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객석 풍경을 보고 싶다.

정=두 영화제가 형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둘 다 90년대 서울단편영화제에 관여했는데, 고맙게도 그때의 신인감독들이 10년 뒤 한국영화의 중심이 됐다. CinDi 역시 10년 뒤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시작으로 얘기됐으면 좋겠다. 충무로영화제가 옛것을, CinDi가 다가올 미래를, 그래서 두 영화제가 두 개의 시간이 만나는 공동체가 됐으면 한다.

김=영화제는 관객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평균적인 관객의 취향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제는 단기간에 다양한 영화에 노출되면서 자기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는 기회다. 부천영화제 때 빈번하게 목격했다. 발리우드(인도) 영화였는데, 야외 상영이라니까 그냥 와본 관객들이 골수팬들과 노래까지 따라부르더라.

정=요즘 가장 새로운 관객은 카메라를 들고 바로 찍는 이들이다. 휴대전화를 꺼내는 순간 모두가 단편영화 감독이다.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구별이 사라지는 점이 이 시대 영화 문화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이다. CinDi 출품작 가운데 좋은 작품들은 제도권 영화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화가.소설가.일용노동자도 있다. 중국의 한 노동자는 다니던 카메라회사가 망하면서 나눠준 디카로 동네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더라. 편집은 인터넷에서 배웠고. 그런데 놀랍게도 잘 찍었다. 디지털은 필름의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영화다.

김=어쩌면 70년대 우리가 꿈꾸던 그대로다. 영화는 충무로에 가야만 찍는 줄 알던 시절, 친구네 집에 가니까 8㎜ 카메라가 있더라. 그걸 빌려서 당시 다니던 대학 교정에서 첫 단편을 찍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책을 보고 독학을 해서 1년 뒤에는 동시녹음까지 했다. 지금 새로운 영화가 탄생하고 있다면, 시네필 문화의 몰락을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정=그렇게 한번이라도 찍어본 사람들은 도대체 '잘 만든 영화'가 뭔지 찾아보게 된다. 그 해답을 고전에서 찾는다면, 그 사람에게 이 고전은 미래의 영화다. 그런 동시대적 감각으로 충무로영화제가 치러졌으면 한다. CinDi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영화를 봤다고 글을 올리는 대신'내가 휴대전화로 찍어도 너보다 낫겠다'며 거리로 나가는 관객을 기대한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