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1.10.03.시론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부산국제영화제, 우리 운명처럼 만나자

10월6일 목요일 송일곤 감독의 <오직 그대만>을 개막작으로 부산국제영화가 시작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그 전날 비가 온 다음 부산은 맑은 후 흐림이라고 한다. 물론 해안가 날씨란 변덕스러워서 지금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가 처음 선을 보이는 해라서 날씨를 걱정할 이유가 별로 없다. 먼발치에서 본 ‘야외의 전당’은 물 위로 올라온 커다란 고래처럼 보였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시네필들에겐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이를테면 칸영화제에서 첫 회는 아침 8시반에 시작한다(부산영화제는 대부분 10시 혹은 11시에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모두들 일제히 새벽에 일어난다. 그런 다음 세수를 하고 극장 앞으로 달려간다. 간다고 해서 모두 보는 것은 아니다. 좌석 수만큼 순서대로 입장한다. 프레스카드가 있다 할지라도 종종 내 눈앞에서 매정하게 ‘매진’이라는 팻말을 내건 다음 문이 닫히기도 한다. 이 상황은 하루 종일 반복된다. 그렇게 새벽 1시에 마지막 영화가 상영을 시작한다. 그날 하루가 끝나면 모두들 숙소로 돌아가 다시 내일 볼 영화의 목록을 짠 다음 서둘러 잠자리에 든다. 내일 아침부터 다시 줄서기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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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해진 시간표. 매일 매회 새로운 영화의 목록. 지구상에서 처음 상영하는 영화들. 가끔 의견을 나누지만 대부분 지금 막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해서 각자 자기가 본 것만을 믿으며 평가를 내려야만 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그날 상영된 영화만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마치 이것이 생활규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따른다. 칸이라는 도시가 휴양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기분이 좋다. 눈앞에는 지중해 바닷가가 펼쳐져 있고 계절은 오월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수련이라도 하듯이 그런 날씨와 풍경을 외면하고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들어가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꽉 들어찬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이 스케줄은 누구라도 일주일이 지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진다는 걸 느낀다. 그러나 거의 극기 훈련을 하듯이 극장으로 향한다. 마치 속세를 벗어나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자발적으로 하는 수행의 시간.

당신이 부산에 살지 않는다면 기차나 고속버스 혹은 비행기를 타고 부산까지 갈 것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기차를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영화는 기차와 함께 태어났기 때문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이때 이 여행은 어딘지 비장한 구석이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지내면서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영화를 보기 위해 한 장소로 모여든다. 이들 사이에는 아무 공통점도 없다. 단지 한 가지 영화라는 공통의 기쁨만이 유일하다. 여기서 일시적으로 시장의 규칙이 중단되고 영화를 함께 방어하는 우정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섰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전선으로 향하는 듯한 여행.

그러나 당신뿐만 아니라 영화도 여행을 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한 장소로 몰려들듯이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 영화들이 한 장소로 찾아온다. 당신보다 훨씬 먼 곳에서(월드 시네마, 아시아 영화의 창), 때로는 다른 시간으로부터(회고전 프로그램들) 오로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방문. 이때 모든 영화는 각자의 세계를 담고 있는 하나의 생명이자 정보의 미학이며 기억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한 마디로 모든 영화는 각자가 하나의 세계 그 자체다. 그러므로 영화제는 세계(들)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이 극장에서 저 극장으로 옮겨갈 때 우리들은 세상의 가능성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다. 이곳과 저곳. 이 영화와 저 영화, 그리고 영화를 보는 여기.

상승하는 힘. 하강하는 운동.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영화제는 장사꾼들(제작자, 투자자, 배급업자)의 복마전이며, 정부 관료들과 지역 정치인들이 얼굴 도장을 찍는 위선적인 제스처의 경연장이며, 영화제 직업 전문가들 사이의 정보교환의 흥정 테이블이며, 영화저널의 손쉬운 아이템이며 등등. 그러나 동시에 여기가 시네필들이 우정을 나누는 곳이며, 짧지만 공동체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며, 거의 고립된 채 자기 작업을 해 온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고독을 위로하고 용기를 일깨우고 손뼉을 치면서 새로운 미학을 경험하고 새로운 이름(과 제목)을 만나면서 어쩌면 가장 먼저 영화의 미래를 만나는 약속의 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한낮 정오 영화제의 광장에 서서 그림자도 잃어버린 채 같은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 당신만의 시간표를 짜고 있을 때, 영화와 영화들 사이를 연결시키기 위한 선을 그으려 들 때 사실상 그건 당신만의 영화제를 제작하는 행동이며, 새로운 세상을 긍정하는 결단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별자리를 짤지 알 수 없다. 혹은 관여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길을 잃으면 안 된다. 넘쳐나는 정보들. 종종 잘못된 추천. 헷갈리게 만드는 소문들. 극장 앞에서의 망설임. 마치 셰익스피어적인 질문.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영화제에 온 나의 존재론적인 질문. 그때 결단만이 나를 증명할 것이다.

그냥 한마디로 영화제에는 왜 가는가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발견. 그리고 발견. 거기서의 쇼크와 배움. 오로지 그것만이 나를 흥분시키고 긴장시킨다. 그러니 부디 내게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에 가서 무슨 영화를 볼 것인지 묻지 말라. 그것은 당신의 권리이며, 당신의 운명이며, 당신의 취향이며, 당신의 세계관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졌다고 해서 더 좋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보석을 보고 난 다음에도 욕을 하면서 나올지 모른다. 당신의 안목에 대해서 감탄을 할지, 아니면 당신의 우매함을 자책해야 할지 그것도 당신의 몫이다. 나는 나의 명단을 들고 나만의 여행을 위한 가이드를 세울 것이다. 만일 영화제에서 우리가 같은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면 우리들은 단지 같은 취향을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같은 세상을 꿈꾸면서 같은 우주의 리듬 안으로 들어와서 같은 운명을 나누는 중인 것이다. 흘러가는 세상 속의 시간의 한 순간. 같은 장소. 같은 선택. 이보다 더한 운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그날 거기서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우리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