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2010.12.28.본인인터뷰|작품

[인터뷰] <카페 느와르> 정성일 감독 “2시간 78분이 나의 메시지”
2010.12.28 09:41 | 김영창 기자 luvya@maxmovie.com

[맥스무비=김영창 기자] <카페 느와르>는 정성일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다. 그가 누군가 하니 영화 비평으로 일가를 이룬 바로 그, 정성일이 맞다. 오는 30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감독’ 정성일을 만났다. 감독은 예상보다 늦어진 개봉에 대한 소회부터 시작해 다음 영화에 대한 계획까지 친절하게 털어 놓았다. 그리고 관객들이 <카페 느와르>를 보고 나서 감독과 영화를 향해 많은 대화를 청해 오길 바란다고 했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정확히 얼마 만에 개봉하는 것입니까?

2009년 9월 2일 저녁 7시 기술시사를 처음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석달 여만에 개봉하는 셈이네요. 그 사이 베니스를 시작으로 영화제를 12군데 초청을 받았었고요. 사실, 영화제를 돌아 다녀도 마음이 무거웠죠. 스탭이나 배우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영화가 개봉해야 하는데 싶어서요.

영화 개봉이 임박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작년 겨울에 개봉할 줄 알았거든요. 그러다가 미뤄져서 배우나 스탭들한테 너무 미안해 왔어요. 가끔씩 그들한테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연락이 오는데, 할말이 없잖아요. 그랬는데 이렇게 영화가 개봉하게 돼서 조금 덜 부끄러운 거에요.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고요. 비평가일 적에는 자기 영화가 개봉 못 하는 것의 괴로움을 잘 몰랐었어요. 영화 다 찍었는데 뭐가 걱정이야 언젠가 개봉하겠지, 그랬는데 말이죠.

개봉까지 왜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요?

배급 구조 안에서 상영시간이란 게 이렇게 저항감을 가질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이 영화는 <대부2>보다 짧아요. <타이타닉>보다 짧고요. 그런데 한국영화의 상영시간에 대해 굉장한 심리적 저항감이 있는 거에요. 그건 단지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것의 문제가 아닌 거죠. 그런 저항감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 들었어요.

지난 언론시사 자리에서 영화에 대해 말을 아끼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부산영화제 때 벌어졌던 일인데, 관객들이 저한테만 질문을 하는 거에요. 같이 영화를 만든 분들이 함께 앉아 있는데, 예의가 아니잖아요. 그들도 같이 작업 하면서 소회가 있을 것이고, 그들도 영화에 대한 견해가 있을 것인데, 제가 시간을 전부 독차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 자리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죠.

비평가 출신이라서 관심과 기대, 또한 우려도 컸을 텐데요. 가장 인상 깊었던 주변의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차승재 예전 싸이더스 대표가 저한테 했던 얘기가 있어요. 당시 시나리오만 쓰던 단계였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어쩌면 영화를 만들지 모른다 딱 그 정도의 얘기가 돌아다닐 때였죠. 차승재 대표랑 동행할 일이 있었는데, 차 대표가 “성일이 형은 영화 안 찍어요?” 묻더라고요. “누가 나한테 투자하겠나?” 그랬더니 “투자가 걱정될 리가 없죠. 대한민국 감독들이 다 주머니 털어줄 텐데.” 그래서 제가 물었죠. “제가 그렇게 인격이 좋나요?” “아니요. 너도 한번 총살대에 올라가 보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물론, 그 누구도 저한테 돈을 대지는 않았습니다만...(웃음)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 먹으신 건 언제 적 일인가요?

물론, 저도 영화를 사랑하면서부터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전 20대 때에 충무로에 갈 수가 없었죠. 당시에는 연출부 생활을 하지 않으면 데뷔를 할 수 없었는데, 저는 장남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21세기 들어섰을 때 제가 마흔이 넘어서고 있었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왜냐면 영화를 찍는 건 체력의 문제이기도 해서요. 그러다 첫번째, 두번째 영화 다 안 됐어요. 네 번째 시나리오인 <카페 느와르>가 영진위의 예술영화 지원작으로 결정나면서 제 오랜 소망이 이뤄진 셈이죠.

지금까지 완성된 영화는 모두 몇 번이나 보셨나요?

기술시사, 색보정 등 완전히 완성된 영화를 본 것은 한 10번 조금 넘는 것 같은데요.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저는 평론가로 살아와서 영화 보는 것이 학습이 돼 있어요. 지난 언론 시사회 때에는 제가 호스트이다 보니까 서서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영화 시작되고 나니까 남의 영화처럼 보이기 시작했죠. 이상하게 내가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 안 드는 거에요. 오히려 거리감이 생기고 말이죠. 비평가로서 오랜 학습의 결과 같아요.

저도 러닝타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웃음) 3시간 18분에 달하는데요. 감독님께서는 2시간 78분이라고 소개하시던데요.

이 영화의 개봉을 끊임 없이 시도했다가 매번 상영시간이 문제가 됐잖아요. 일단, 앞에 2시간이라고 하면 부담이 덜하잖아요. 유머지만, 한편으로는 개봉이 미뤄진 것에 대한 저의 아픔도 섞여 있는 거죠. 아픔의 유머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웃음)

혹시 중간에 편집의 유혹 같은 건 안 받으셨나요?

전혀요. 일단 편집이 종결되면, 그것을 손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게, 개봉판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또 디렉터스 컷으로 붙여 놓는 거, 그건 거의 원본 훼손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른 버전이 나온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백야>를 각각 각색해서 이야기를 만드셨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세계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이라는 타이틀이 뜹니다. 제 원대한 꿈 중 하나는 그것을 영화로 찍고 싶다는 거에요. 문제는 그게 백권이라는 건데.(웃음) 맨 처음에 뽑아 든 책이 바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습니다. 이 소설이 가장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 읽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첫 번째 영화로 찍고 싶었습니다. <카페 느와르>에 딱 한 가지의 메시지가 있다면, 그건 ‘제발 죽지 마세요.’입니다. 문제는 그 소설이 그렇게 끝날 거라는 것을 저한테 얘기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죽음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미룰 수 있도록 예술적인 개입을 할 수는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게 제 힘으로는 어림도 없고, 또 다른 누군가를 데려와야겠다 생각했죠. 문득 떠오른 소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사랑과 우정의 텍스트를 가져 오면 괴테의 결정을 미룰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이 영화의 물리적인 상영시간은 죽음을 미뤄보고 싶은 저의 간청 같은 것입니다. 한국 관객들이 이 상영시간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 상영시간을 네 시간이건 다섯 시간이건 더 미루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미루면서 이 사람이 안 죽기를 소망하는구나 느낌을 받았으면 싶었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저의 메시지인 셈이죠.

영화에 서울 시내 곳곳이 등장합니다. 특별한 의미라도 있으셨나요?

저는 이 영화를 백년 후에 본 사람이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울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소를 정직하게 찍으면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의 고통, 슬픔, 비극, 절망,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작은 희망 같은 것도 함께 찍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담겼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사회의 시대 공기가 찍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배우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캐스팅 같습니다.

그건 모든 감독들이 마찬가지겠죠. 배우들은 영화 찍으면서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 그들을 통해서 구현해야 하고, 그래서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너무나도 감독의 취향이 드러날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쓸 때 염두해 둔 배우는 정유미 한 사람 뿐이었어요. 처음부터 염두해 두고 그 역할은 정유미 뿐이 없다고 생각했죠. 정유미 버전, B 배우 버전, C 배우 버전. 이렇게 3개 버전의 시나리오를 썼었어요. 만약에 정유미가 안 맡겠다고 하면 무조건 버릴 생각이었거든요. 정유미 씨를 처음 만난 게 2007년 2월 달이었는데, 무작정 기다려 주었어요. 일단, 정유미씨가 결정되고 나서 신하균, 김혜나, 문정희, 요조가 일종의 도미노처럼 결정났죠.

특히 정유미 씨의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가족의 탄생>에서 그녀가 보여준 어떤 가능성이 제 눈에 들어 왔어요. 특히 그녀가 보여준 자유로움이었죠. 영화를 보고 있는데, 동선을 안 지키고 제 멋대로만 움직이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 영화를 촬영할 때도 촬영 팀한테 알아서 따라 잡으라고 했었죠. 현장에서 난리가 났었죠.(웃음)

배우들의 이면을 많이 끌어내신 것 같습니다.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하셨나요?

일단 저는 비평가에서 시작을 한 사람이니까요. 결정된 배우들의 영화를 먼저 보는 것에서 시작을 했고요. 그리고 인터뷰들을 있는 대로 다 읽었어요. 인터뷰를 읽어 보면 그것에 그 사람의 말투가 담기잖아요. 그 사람 말투로 시나리오를 다 고치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에게 맞지 않는 말투를 하는 순간부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배우들과 리딩을 하지 않았어요. 리딩으로 훈련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계속 술을 마셨어요. 술 마실 때 그 사람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고, 그것을 영화에 담고 싶었어요. 그게 저한테는 제일 중요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 배우가 많잖아요. 일대 다수로 술을 마셔야 해서 그게 힘들기는 했죠.(웃음)

어쩌면 관객들한테 불친절하고 낯선 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런 바람이 있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가 보는 사람을 통과해 가지 않기를요. 통과하는 순간 잊어 버리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영화를 보면 통과하지 않고 멈춰 버려요. 그리고선 계속 질문을 하게 만들어요. 뭐지? 왜 이랬지? 그런데 감동을 준 영화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사기였다는 게 밝혀지더라고요. 좋은 영화들의 공통점은 저한테 항상 쇼크를 줬어요. 당황시켜서 질문을 하게 만들고, 그래서 영화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저한테는 홍상수 영화, 김기덕 영화가 그랬어요. 만약 관객들이 제 영화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저한테는 찬사죠. 통과해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전 필사적인 노력을 한 것일 수도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네 마음대로 찍어라, 전제 하에서 말이죠. 영화를 만드는 것은 투자라든가 좀 더 복잡한 협상의 과정이 필요하긴 한데요. 하여튼, 준비하고 있는 다음 영화는 세계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 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입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는 것은 허공에 부는 나팔에 지나지 않아서요.(웃음)

또한 영화 비평도 계속 해서 병행하시고요?

예, 너무 당연히요. 왜냐면 두 작업이 서로 상대를 배제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평이란 제가 영화로부터 반성적 거리를 확보하는 거고요. 또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제 영화적 믿음에 대한 창조적인 활동이고요.

* 사진: 권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