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2011.01.03.(544호)본인인터뷰|작품

영화와 세상 사이의 긴장
영화감독·평론가 정성일

둘레에서 경험하지 못한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현재의 자신을 반성하는 것. 세상이 뻔히 강요하고 있는 것들을 등진 채 꿋꿋이 극장으로 발을 옮기며 매번 되뇌었던 실낱같은 당위였다. 하지만 종종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다수의 논리 앞에서 그 믿음은 맥없이 꺾이기 일쑤였고, 그저 미아처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성일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다시금 좌표를 더듬거릴 수 있었다. 다행하게도, 스크린 앞의 내가 익숙하다. 초로에 만든 첫 영화 '카페 느와르'로 대중을 맞이할 정성일과의 조우를 궁리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배움'이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영화평론가로서, 대한민국이라는 (시간과) 공간에서 조금 더 오래 버텨온 어른으로서. 연평도의 사격훈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하던 날, 지구의 시간을 담는 유일한 예술인 영화만은 세상에 남겨두겠다고 말하는 어른을 만났다.

Story#1 영화감독 정성일에게 묻고 듣고, 배우다

첫 작품 '카페 느와르'를 개봉에 앞둔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2009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마치고 그 해 겨울에 개봉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되고 결국 1년이나 미뤄지게 됐습니다. 다른 예술군과 달리, 영화는 긴 시간동안 묻혀 있다가 발견되는 경우 없이 동시대의 '온도'를 잃어버리게 돼요. 몇몇 장면들은 이 영화를 벌써 고색창연하게 만들어요. 공사로 인해 다 바뀌었기 때문에 많은 공간들은 '카페 느와르'를 똑같이 찍고 싶어도 이미 그것이 불가능해요. 이런 변화들이 동시대를 역사 속으로 밀어 넣고 있어요. 동시대의 시급한 호소가 회고 속의 것들이 되어갈 때, 만든 사람으로서 동시대 관객과 만나고 싶은 부분들이 자꾸 마모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고나 할까요.

'카페 느와르'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혹은 가장 절대적으로 구상한 이미지는 무엇이었나요?

서울. 이 도시가 제게는 너무나 중요했어요. 서울은 4700만 명 중에 2000만 명이 사는 도시예요. 2000만 명이 매일 살아가는 도시를 정직하게만 찍을 수 있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 무의식을 찍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찍을 수 있다면 사람들의 고통 슬픔 아픔 절망 그리고 어쩌면 작은 희망까지도 건드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저 미술품을 감상하듯이 쳐다보면서 느껴보자는 것. 내가 산다는 문제에 대해서 거리를 갖고, 비로소 그 거리를 통해서 이것을 느껴보고,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현재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거죠.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저의 방법론이고, 영화적 실천인 셈입니다.

'카페 느와르'에서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어린 아드님을 두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카페 느와르'를 찍을 때에도 아이가 등장할 때 이 영화가 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명백히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썼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희망, 그것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박정희-전두환 시대와 함께 청년 시기를 넘어왔던 사람으로서, 이명박 시대를 사는 청년들이 ‘카페 느와르’에서 어떤 것을 환기하길 바라십니까?

그들이 '카페 느와르'의 긴 청계천 트래킹 쇼트를 보면서 지겹다는 느낌이 갖게 된다면, 앞으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 장면을 딱 보는 순간, ‘이 사람이 그래서 이걸 찍었구나.'라고 느낄 때 2년 후의 선거에서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 보거든요. 청계천 쇼트가 단순한 인서트에 불과했었더라면, 물론 10초 20초 넘어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장면을 3분 40초 동안 끌고 갔을 때의 심정은, 그 시간동안 부디 느끼며 견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견뎌내는 과정 속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쳐다보고 의식하며 거기에 대해서 정치적인 반성의 태도를 끌어낼 수 있다면, 저에게는 최고의 비평이죠. 그렇다면 다른 장면 모두 잊어버려도 상관없어요.

Story#2 영화평론가 정성일에게 묻고 듣고, 배우다

디지털 영화만의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피력해오셨습니다. '카페 느와르'라는 디지털 영화를 연출하시면서 어떤 지점에서 디지털 영화만의 순간을 발견하셨습니까?

디지털의 가능성은 찍혀진 화면보다 그 과정에 있었습니다. 배우가 연기하기 전에 항상 1분 전부터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 배우에게 ‘준비되면, 네가 느끼는 대로 시작해. 연기가 끝난 다음에 내가 컷 부를 때까지 카메라 보지 마.’라고 요구했어요. 뒤로 그냥 남겨놓고 저는 그냥 잘라서 쓰면 되는 거예요. 시간의 지속이라는 것, 시간의 절단이라는 것. 사실상 디지털로 찍었을 때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시간을 물 쓰듯 해도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필름으로 찍게 된다면 그건 바로 자본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많이 발생시킬 테죠. 이미지를 메이킹 하는 게 아니라 테이킹 하는 것. 굳이 이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 영화의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은 절대적으로 지아 장커에게서 얻은 배움입니다.

블로그, SNS 등을 넘어오는 인터넷 이용 문화의 변화에 맞추어, 영화에는 어떤 변화가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인터넷 문화가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스마트폰을 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분명 있어요. 이야기 안으로 보면, 우리 삶의 환경이 바뀌니까 물론 이야기의 소통 방식이 바뀔 수밖에 없죠. 이야기 바깥을 보자면, 무성영화의 역사는 사실 회화의 역사와 겹쳐져 있잖아요. 그래서 프레임이 풍성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화면이 단순해지고 있어요. 텔레비전으로 비주얼 리터러시를 형성한 관객들은 복잡한 화면이 싫은 거예요.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고 영화를 보면서 작은 화면에 익숙해질수록 인물에만 집중하게 되고 화면의 복잡함과 풍성함이 싫어지는 거죠. 그게 빈곤해지는 것인지 심플해지는 것인지, 관점의 차이에 따라서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21세기 영화의 쇼트는 20세기 영화의 쇼트와 분명 다를 것입니다.

2010년 만난 영화 중에서 위로가 됐던 영화는 무엇인가요?

개봉작 중에 한국영화는 홍상수의 '하하하', 외국영화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쿨의 '엉클 분미'. 개봉하지 않은 영화는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의 '안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장-뤽 고다르의 '필름 소셜리즘'. 정치에 대한 정직한 애티튜드가 좋았습니다. 이를테면 아핏차퐁은 마술이라도 부려 전생을 통해서라도 자기가 살고 있는 태국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잖아요. 그 절실함. 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에서 아직도 절실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에 대한 고마움. 내 믿음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것에 대한 확인. 점점 그게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 가고 있잖아요. 정직한 노력에 대해서 비웃는 것이 ‘쿨(cool)’한 태도인 것 마냥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라고 하고. 그것을 쿨하다고 생각하는 태도 자체를 경멸하는 태도. 그 힘과 자세. 그런 사람들이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게 고맙죠.

Story#3 어른 정성일에게 묻고 듣고, 배우다

개인의 경험을 떠나, 사회의 모습을 통해 본 2010년은 어떤 해였습니까?

희극을 가장한 재난이죠. 다 희극이잖아요. 보온병을 보고 포탄이라고 하지 않나. 연평도에서 전쟁을 하자고 해요. 인상적인 경험이 있어요. 밖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여자가 "어머 눈이 와, 정말 예쁘지?" 하니까, 남자가 "피난길 참 힘들겠다" 하더라고요. 젊은 연인 사이에서 그런 게 농담이 되는 사회는 정말 끔찍한 거죠. 그게 농담의 담론으로 올라간다면, 사람들이 황폐한 상황이 된 거거든요. 정말이지 2010년에 대해 갖는 제 느낌은, 한편으론 ‘카페 느와르‘를 위해 다행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2년 전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니까.

2010년은 출판과 개봉, 자신의 이름을 건 결과물이 시장에 유통되는 과정을 경험한 해이기도 합니다.

원고를 써서 먹고 살았던 시간이 25년이기 때문에, 결과물이 시장에 유통된다는 것에 대한 큰 감흥은 없었어요. 굉장히 오래 미루어왔던 책이 나왔고 첫 번째 영화가 개봉했기 때문에, 무언가가 정의된 느낌은 있어요. 그래서 2011년 일기장을 사서 앞 장에 썼어요. ‘성일이의 Zero Year’지금까지가 First year였고 내년부터 Second year라고 느끼고 있어요. 그렇게 새해를 맞았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런 순간을 경험하셨는데, 그것을 견디게 해주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같이 영화 공부하던 친구들이 모두 다 유학을 떠났지만, 저만 돈을 벌기 위해 남았어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업무 다 마치고 영화를 보러 가면 눈이 아파서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눈이 아파서 눈물이 나요. 그런 생활이 매일 2년 쯤 반복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그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정치적인 것에 눈을 돌렸습니다. 내 문제, 사회시스템의 문제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그 전엔 그런 데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 시간동안 마르크스, 그람시, 벤야민을 읽고, ‘그래서 이게 좆같은 거였구나’하는 대답을 얻었어요.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정말 고마워요. 집에 돈이 많아 공부하러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면 철없는 영화주의자가 됐을 거예요. 하지만 세상의 고통을 이해할 때부터 문득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이 영화에서 보이기 시작했던 거예요. 훨씬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시작했고, 영화라는 노동, 영화라는 작업의 정체들이 제게 피와 살이 되기 시작했어요. 말의 상찬이 아니라 정말, 어느 나이에 지점을 통해서 거리감을 갖고 제 20대를 돌아보기 시작했을 때, 한편으론 그런 기회를 준 부모님에게 감사했죠.

상대적으로 안온하다고 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으로의 편입에 저항하며 온전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삶의 긴장’이란 말을 자주 써요. 사람이 긴장을 잃을 때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그 순간에 시스템에 합류하게 되고 그것과의 거리감을 상실하고, 그렇게 결국 시스템의 일부가 돼요. 그 일부를 거절할 때에만 인간은 비로소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끔찍하죠. 이 시스템은 계속 유혹하고 잡아당기고 옭아매고 있고, 거절할 때에 그에게 비참한 삶을 강요하니까. 사람은 놀 때 가장 창조적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하지만 놀 때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거든요. 돈도 많이 벌고 맛있는 거 먹고 비싼 차타고 비싼 옷 입으면서도 놀고 싶어 하는 건 불가능한 거죠. 전 가난하지만 즐겁게 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세상, 어느 편을 긍정하십니까?

종종 사람은 너무 동물과 같아서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돼요. 세상은 너무나 비참하고 잔인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지 않아요. 저는 사람과 세상 그 사이를 어떤 삶이 중재하느냐에 쟁점이 있다고 봐요. 어떤 삶만을 긍정하지, 사람이나 세상을 절대적으로 긍정한다면, 세상을 긍정했을 때 폭력적인 파시스트가 될 테고, 사람을 긍정할 때 이기주의들이 싸우는 자본주의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질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