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2011.01.14.본인인터뷰

사랑의 영화, 마음으로의 영화 ‘카페느와르’
- 평론가에서 감독으로, 정성일 감독 인터뷰

2010년 12월 30일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이 ‘비로소’ 등장하였다. 정성일 감독의 ‘카페느와르’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감흥이 강하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3시간18분)이 길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3시간18분을 기다려야 할 때 ‘그 시간은 당신에게 긴 시간인가.’ 묻고 싶어진다. ‘카페느와르’는 그런 작품이다. 하여튼 인물과의 만남이 있으며, 그 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대한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영화는 요즘 정말 보기 드물다.

‘카페느와르’는 배급문제로 인해 완성된 후 한동안 개봉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해외 유수 영화제들이 이 영화를 먼저 만났다. 이태리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09.9)을 시작으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트론하임국제영화제, 바로셀로나아시아영화제 등 해외관객들이 이 작품을 먼저 만났다. 팬덤을 가지고 있는 영화비평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작인 ’카페느와르‘를 놓고 본지면은 정성일 감독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는 압구정의 카페에서 3시간16분 동안 진행되었다. 긴 시간동안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정성일 감독의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카페느와르는 정성일 감독을 닮았다. ‘카페느와르’를 보기위해 3시간18분을 사용한다는 것은 의미있고 신선한 경험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작품에 대하여

프로메테우스(이하 프) : 정성일 감독님의 영화 첫 장면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제작사 로고가 나온 뒤 바로 나오는 장면 말입니다. 정말 파란 하늘이 나옵니다. 그리고 구름이 흩어져 흘러갑니다.

정성일 : 그것을 찍는 것이 중요했죠. 이 장면을 찍는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시나리오를 쓸때 부터 씬 1. 파란하늘. 구름이 떠가고 있다. 라고 썼었죠. 어느 날 지하철 창밖을 보니 파란하늘이 있었고, 구름이 떠 있는데 그 구름이 정말 무심하게 보였어요. 바람이 막 부는 날이었는데 바람이 불지도 않는다는 듯이, 구름 떠 있었죠. 저 구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의 소란으로부터의 무심함과 시간을 찍어싶은 마음이 있었죠.

프 : 첫 번째 씬에서 한 소녀가 하여튼, 기어이 햄버거 하나를 다 먹습니다. ‘광우병’이란 이야기도 다른 지면에서 말씀하셨는데 제겐 어떤 태도 같아 보였습니다. 무슨 의식 같기도 합니다.

정성일 : 이 영화에 대한 일종의 교육이지요. 영화가 시작되고 10분 동안은 무엇을 해도 관객은 다 받아들여요. 그 작품의 전제 조건이라고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요. 관객들과의 약속같은 거죠. 이런 방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라는 선언 같은 것이요. 햄버거를 먹는 소녀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찾는 것이 힘들었죠. ‘정인선’이란 배우가 연기를 했는데 촬영장에 배우가 왔을 때 장면을 충분히 설명했죠. 정인선양은 긴장을 하면 위장병이 생기는데 햄버거를 하나 다 못 먹는 아이였습니다. 가녀린 체구를 가진 친구인데 ‘감독님. 어떻게 먹을까요.’라고 질문을 하길래 ‘쳐먹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죠. ‘한번도 햄버거 하나를 온전히 다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인위적인 느낌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절대 울지마.’라고 말했죠. 그리고 ‘카메라를 켜 놓을테니 니가 느낌이 오면 시작해. 대신 컷 할 때까지 날 쳐다보지마.’라고 말해주었죠. 막판에 배우가 눈물을 흘렸는데 정인선양이 말하길 청계천에 있던 자기 또래의 소녀를 생각하니 슬펐다고 해요. 그 눈물은 햄버거가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번에 OK 했죠.

프 : 서울을 작품 안으로 온전히 ‘데리고’ 들어옵니다. 마치 아시아의 감독들이 자기 장소를 다루는 것처럼 말이죠. ‘프트르챈’(Fruit Chan)이나 ‘허샤오시엔’(Hsiao-hsien) 같은 감독은 무엇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청계천이 많이 나오는데 낯설게 보입니다.

정성일 : 낯설게 보이는 이유는 기자님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그럴거예요. 사는 장소를, 거리를 가지고 보지 않기 때문이죠.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은 거리감을 상실합니다. 약간만 거리를 유지하는 순간, 서울은 얼마나 흉물스럽고, 크로데스크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살고 있어요. 50년째 살고 있는 곳이죠. 서울은 사람들에 의해 부스고 세우기를 반복 당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훼손당한 장소입니다. 유년의 어떤 곳도 이제는 남아있지 않아요. 남한인구 4700만 중 2000만이 살고 있는 곳인데 그 메트로폴리스를 거리를 두고 바라본 적이 없을 수 있지요. 영화라는 힘을 빌려서 그 거리감을 만들어 내고 싶었어요.

프 : 다른 자리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보는 이를 쉽게 통과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것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순간입니다.

정성일 : 영화전체가 그 사람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 영화 자체를 견디지 못할 겁니다. 대신 사람들마다 통과되지 않는 지점이 다를 거예요. 사람들은 영화에서 통과되지 않은 대목에서만 질문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작품이 자기를 통과해버리면 비평이 소설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비평의 특징은 좋은 질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예술작품이 스스로에게 통과되지 않을때 ‘왜 이런가?’ 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좋은 비평가는 좋은 질문을 던지죠. 영화를 본 관객이 어떤 비평가적 애티튜드를 가지고 질문을 던질지 궁금합니다.

프 :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1부와 2부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2부를 촬영하실 때 더 흥이 나셨을 것 같습니다.

정성일 : 2부는 온통 밤이고 습하고 어둡습니다. 1부는 배우를 카메라가 좇아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카메라 줌이나 무빙을 하지 않았죠. 표준렌즈로 찍었죠. 그런데 2부는 다릅니다. 정유미 촬영부분처럼 사경을 헤메는 대목인 거죠. 사경을 헤메는 이 장면들은 육신을 빠져나와 영혼이 떠도는 것이니 카메라가 계속해서 트랙킹(tracking)을 하면서 카메라 무빙이 자유로워집니다. 카메라가 트라이포트를 벗어난 것에 대한 자유로움 때문에 그런 감상을 줄 수는 있지만 흥이 난다기 보다는 헤매다는 것과 무드에 방점을 두었죠.

프 : 영화 중간마다 등장하는 문장들과 나레이션이 관객들을 영화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습니다.

정성일 : 영화를 볼 때 영화를 보는 관객이 인물과 동일화하는 순간부터 영화와 나 사이에 미학적 긴장이 존재할 수 없어요. 그것은 영화에 마비되는 것을 말하죠. 저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영화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넘지 말라는 하소연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영화와 보는 이간의 절대적 거리입니다.

프 : 요조가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인상적입니다.

정성일 : 샤오허란 가수인데 장률(Zhang Lu)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장률 감독의 소개로 음반을 듣고 음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음악의 가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말로 치면 가나가다마바사 같은 것이죠. 중국에서 상영되거나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볼 때 가사가 있게 되면 그것 자체가 메시지잖아요. 메시지는 해석을 유도합니다. 영화에서 불필요한 해석을 유도해서는 안되니까요.

프 : 가장 어려웠던 시퀀스(sequence)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성일 : 시퀀스가 어려운 것은 딱히 없었어요. 어려운 시퀀스나 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날씨라는 것이 어려웠어요. 신하균이 등장하는 어떤 장면은 찍은 시간이 두달 간격으로 차이가 납니다. 같은 날씨가 아니면 안 되었는데 날씨를 맞추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리고 헌팅해둔 장소에 촬영을 하려고 가면 10군데 중 8군데는 공사를 하고 있었죠. 이 영화는 100% 동시녹음입니다. 이런 환경적인 것들이 첫 촬영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저를 괴롭혔어요. 어떤 스텝은 링겔을 맞고 왔지요. 또 어떤 스텝은 제게 ‘카페느와르’는 저예산 괴물이예요. 라고 말했죠.(웃음)

프 : 감독님의 작품을 아우르는 키는 교양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교양은 자칫 영화와 세상이 조우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정성일 : 교양이란 사회 안에서 자유인 척하는 의무가 아니라 의무인 척하는 자유행위입니다. 의무인척하는 자유행위는 근대와 함께 생겨났죠. 근대시민으로 살기위한 것들이 필요했고, 교양의 등장과 함께 사회에서 그 사람을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죠. 근대가 도착하면서 주체의 의무와 권리가 생겨났죠. 데카르트, 칸트로 이어지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그 과정에서 교양이란 문제가 등장한 것이죠. 한국은 근대가 될 필요가 있어요. 많은 것들이 전근대적인 느낌이 있죠. 상품물신주의 속에서는 포스트모던 하죠. 그러나 시민사회의 의식이라는 지점에서 한국사회가 아직 근대사회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의심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교양입니다.

프 : 배우 정유미의 긴 대사 장면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에게는 그 현장이 험준한 산일 수도 있습니다.

정성일 : 시나리오를 쓴 다음 여러 가지 이유로 시나리오를 잘 안 믿어요. 시나리오 그대로 찍는 것은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현장 안에서 배우들의 상태, 사회적인 조건들이 시나리오에 도전을 해온다면 시나리오는 생물처럼 반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에서 날씨 맑음으로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비가 내리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죠. 데이트할 때도 맑음을 기대하지만 비가 올 수 있잖아요. 나중에는 스텝들이 시나리오를 버렸어요. 촬영이 종료된 후 스텝들이 시나리오를 읽어보며, 이 작품 찍은 거 맞어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그러나 안 바꾼 장면들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정유미의 독백이죠. 트리트먼트 상태에서 그렇게 썼죠. 그리고 첫 장면 파란하늘은 바꾸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떠올린 배우는 정유미였어요. 이 장면은 정유미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거죠. 시나리오는 A, B, C 버전이 있었죠. 배우별로. 정유미가 거절하면 B버젼으로 간다. 정유미씨를 2007년 2월에 만났어요. 정유미를 만났는데 2시간 동안 한마디도 안하는 거예요. 거절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죠. B버젼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하겠다고 전화가 왔어요. 오히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저예요. 영화가 들어가지 못했으니까. 정유미 필모그라피를 보면 2007년이 없어요. 영화를 기다려준거죠. 미안하죠. 이 영화를 통해 책의 리얼리즘을 찍겠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그 원칙을 증명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장면이야말로 책의 리얼리즘을 증명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이승철 녹음기사는 더 느리게 해주길 바랬어요. 그러나 그것은 정유미의 호흡이기 때문에 존중해야했어요. 그리고 저는 소망한 바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프 : 문어체 대사의 연기라서 그럴까요. 풋풋한 느낌이 있습니다. 아마추어리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과 설레임이라는 감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정성일 : 배우의 연기를 본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태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대중영화 관객들은 TV를 너무 많이 봤어요. 눈물을 짜내고, 제스처를 크게 하는 장면을 보고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요. TV에서 채널 고정을 하기 위한 강제적 수단으로 과장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것이 연기의 방법은 아니죠. 한편으로는 제 방식으로 배우의 연습 되어지지 않는 제스춰들을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배우들은 훈련되어 있어요.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있지요. 제가 어떤 영화를 보다가 막 웃었는데 어떤 배우가 책을 읽고 있는 연기를 하는 거예요. 책을 보다가 배우가 도식적으로 연기했습니다.(흉내_책의 양쪽 페이지를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계속 돌려가며 보는 모습) 이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연기이죠. 저는 배우들에게서 이 사람만의 삶의 습관이 나오길 바랬어요. 이것이 포퍼먼스가 아니길 바란거죠. 연기는 배우가 말과 몸으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육신을 동원할 수밖에 없고, 자기의 작은 습관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TV의 연기 주로 보는 사람들은 작은 제스춰들을 보는 것에 익숙치 않아요. 섬세한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에서 충분히 눈치 챌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프 : 기어이 집으로 돌아가는 정유미에게 등을 들려줍니다.(정유미 트래킹 씬)

정성일 : 어떤 간절함으로 찍고 싶었어요. 가기 싫은 집이지만 돌아가야 하는 곳. 청계천의 유령들이 아침이 오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모습 같은 것.

프 : 감독님은 아시아 작가들을 주목하셨고 그속에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그 태도를 중요시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 때문인지 영수(신하균)의 죽음이 가지고 있는 임팩트 즉 원작의 충격과 그 절실함이 완화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정성일 : 완화라는 표현은 정확한 느낌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세월 때문일 겁니다. 원작을 읽고 난 후 38년을 살았으니까 그 쇼크가 완화되어야하지 그렇지 않고 충격이 그대로 트라우마로 남았다면 노이로제가 되겠지요. 지금은 그 쇼크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니까 완화된 느낌이 있는 것이겠지요.

프 : 동시대 영화의 부분을 유머로 차용하신 것은 유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전문학을 차용할 때 그것은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왜 고전문학이고, 괴테이고, 도스도옙스키였는지요.

정성일 : 믿을 만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영화를 보면서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괴로워요. 유치하고 평면적이기 때문이죠. 어떤 이야기가 믿을 만한 이야기인가 생각해봤을 때 100년을 견뎌낸 작품이라면 믿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작품은 읽고 또 읽어도 시간을 견뎌낸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시간을 견뎌냅니다. 시간을 견뎌냈고, 절대적으로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죠. ‘제발 죽지마세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12살에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죽음의 관한 첫 충격이었죠. 처음 읽을 때 마지막 장면(자살)을 이야기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권총자살은 충격이었죠. 죽이고 피바다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에서 사람 죽이는 것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고 유치한 짓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것을 쾌감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죠.

프 : 그래서 인물의 죽는 순간을 안 보여주신 건가요.

정성일 : 소설의 배경에 쓰이는 총은 구식 총이잖아요. 총알이 베르테르의 머리를 뚫고 나가고 뇌수가 흐르는데 사랑하는 그녀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것은 정말 끔찍한 장면입니다. (...) 저는 대학생이 되었고, 80년대였죠. 죽어도 너무 많이 죽고 죽여도 너무 많이 죽이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어요. 지금도 인터넷 뉴스를 보면 사람 죽은 뉴스가 아무렇지 않게 올라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는데 책임을 질 수 있는 말을 해야 하는가. 죽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누추하게 살더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처음에는 베르테르의 슬픔만 찍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막고 싶었지만 그것은 괴테의 결정이니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여자가 세상에 한명쯤은 있지 않겠어요. 그 여인을 데려오시면 우리는 우정을 쌓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이 때 우정을 얘기하는 다른 소설이 문득 생각났어요. ‘백야’의 극중 화자인 나에게 여자가 얘기합니다. “좋아요. 약속하세요. 사랑은 절대 안 됩니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두 소설을 한데 묶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죽음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미룰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여튼 연기시키고 싶었어요. 그럴 수 있다면 몇 시간이고 영화 상영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죠. 그러나 현 상황에서 여기까지라고 생각한 것이죠.

프 : 긴 트래킹 씬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작품이 맛깔스럽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조가 바이크를 타고 가는 장면들을 나누셨어요.

정성일 : 이 영화를 롱테이크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동대문에서부터 요조가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음악의 선율을 존중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유일한 소리이니까. 또 소녀에게 있을 하루의 피곤함을 응원하고 싶었죠. 길게 찍으면 이어서 피곤한 느낌이 있으니까. 신하균을 만나서 요조가 말해요. ‘이 시간이 제일 좋아요. 소포를 하루 종일 들고 다녀야 합니다.’ 고단함을 안고 돌아가는 길일텐데 그 정도의 휴식은 주어도 되지 않는까 생각했어요.

프 :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왜 틀리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정성일 : 어떤 감독들은 배우의 감정에 따라 가는 분도 있고, 시나리오 대사와 똑같이 하라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절충이 대부분이고. 자기 영화의 선택의 문제니까요. 제가 대사를 그렇게 해달라고 한 까닭은 괴테와 도스도옙스키를 찍고 있는데 이 소설이 위대한 이유가 소설의 이야기를 담는 조사나 부사나 형용사, 명사의 배열이 훌륭했기 때문이었어요. 그것들이 작품의 시적 감흥을 만드는 거잖습니까. 그것을 찍겠다고 결정했는데 그것을 제가 고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웃기게 됩니다. 마치 렘브란트 그림을 찍는다고 할 때 그 그림에 그림자를 더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되고 마는 것이죠. 청각적으로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사라진 것이 구술문학입니다. 이야기를 낭독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라져버렸어요. 청각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노래에는 아리아도 있고, 합창도 있고, 아카펠라도, 모텝도 있는데 한가지만 살아남았어요. 살아남은 근거는 사실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죠.. 그러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으면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번엔 다른 방법으로 할 겁니다. 그것을 찾는 과정에 있어요.

사유와 기술에 대하여

프 : 작품은 디지털 포맷입니다. 이런 포맷에 있어서 촬영의 원칙은 무엇이었습니까.

정성일 : 디지털에 대해서 저도 잘 모릅니다. 1997년 라스폰드리에 감독 등이 도그마 선언을 하면서 디지털 영화가 시작되었고 14년이 지났어요. 이번 작품을 디지털 포맷으로 한 까닭은 제작비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디지털과 필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필름은 이미지를 메이킹하는 것이라면 디지털은 이미지를 테이킹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이미지를 테이킹하고 싶었습니다. 현장에서 장면을 잡아채는 것이 중요했지요. 디지털로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가장 큰 용기를 준 감독은 지아장커였습니다. 지아장커와 인터뷰를 하면서 지아장커의 미학적 결정들의 이유에 대해서 크게 공감했고, 시나리오 쓸 때, 헌팅을 할 때, 배우들에게 무언가 요구를 할 때에 저는 디지털을 염두 했습니다.

프 : 현장에서 사운드를 만들어가셨나요. 아니면 현장의 소리도 즉흥적으로 반영하셨나요.

정성일 : 완전히 동시녹음이었죠. 영화 속에서 병원차 사운드가 들어간 것도 그 순간의 소리들입니다. 병원차 소리 자체가 서울의 소리입니다. 청계천의 소리, 바람의 소리들 모두 그 순간의 소리들입니다. 엠비언트를 만들어 넣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운드를 뺀 경우는 있습니다. 혼자 케이블카 탄 신하균 장면에서 소리를 뺐습니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사운드가 주는 감흥일 겁니다. 제가 상상한 것보다 결과가 더 좋았죠.

프 : 카메라 기종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왜 그것을 선택하셨나요.

정성일 : 레드원(red one), 배리캠(varicam), 두가지 기종이죠. 낮 장면은 레드워, 밤 장면은 배리캠으로 갔죠. 레드원은 영화조명을 원합니다. 문제는 밤장면인데 청계천에 일일이 조명을 다 칠 수가 없어요. 거리를 다 커버할 수가 없는 거죠. 만약 그런 스케일의 조명을 쓴다면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가 드는 문제이니까. 조명 없이 견딜 수 있는 카메라를 선택해야 했어요. 레드원이 다 감당할 수 있었다면 하나로 했겠죠.

프 : 감독은 애초 영화의 심상을 가지고 있고 그 심상은 사실은 자기만이 알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테이크 중 하나쯤은 촬영감독님의 카메라를 뺏어 찍고 싶으신 적은 없으셨나요.

정성일 : 전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진이라면 프레임, 스트럭쳐, 이미지, 미장센이 중요하죠. 그런데 영화는 이미지를 찍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간을 어떻게 찍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영화는 콘티가 없어요. 처음에 제가 콘티를 그렸어요. 그리고 스텝에게 이야기했지요. 이것은 트리트먼트 같은 것이다. 이렇게 찍지 않을 것이다. 세트에 들어가서 찍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이 주는 조건이 중요했죠. 헌팅에서 오케이를 하는 것은 장점을 보았기 때문이죠. 콘티로 인해서 자기가 함정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해요. 장소의 물질성을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카페를 찍을 때 이 카페를 찍는 것 하고 다른 카페에 가서 하는 것 하고 똑같다면 그것은 바보짓입니다. 구도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현장을 존중한다. 둘째 모든 장면을 찍을 때 이 장면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 포기해도 좋습니다. 한가지 혹은 두가지 정도 반드시 찍어야 할 것만 찍으면 됩니다. 촬영할 때 구도와 이미지를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죠. 제 마음속에는 이미 구도가 있어요. 내 생각을 촬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화면을 통해 생각을 객관화할 수 있죠. 모니터를 볼 때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고 이 그림이 나온 이유, 인물이 왜 움직이는가. 어떻게 멈추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구도가 중요한 건 인물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출발하는가 어디서 멈추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멋진 장소라도 사람이 움직이면 사람만을 봅니다.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요. 제가 직접 카메라를 들기 시작하면 진짜 봐야 하는 것을 못 봅니다. 제 관심은 사람을 찍는 것이지 예쁜 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저와 촬영은 다른 임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임무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죠.

현장에 대하여

프 : 스텝구성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정성일 : 프로듀서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의 성격을 프로듀서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고, 고맙게도 그런 사람들을 초대했고, 초대에 응해주었고, 영화예산이 뻔하기 때문에 초대에 응해준 것이 고마웠고, 영화의 어떤 대목이 빛난다면 그것은 스텝들의 공입니다. 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능력 때문에 장면이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허락한다면 그 스텝들과 다시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프 : 촬영감독님과 생각이 가장 틀렸던 장면이나 현장은 무엇이었나요.

정성일 : 임권택 감독님 현장에서도 감독이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합니다. 촬영감독이 어떤 작품을 놓고 100% 맞다는 의견을 내놓아도 감독이 최종 결정을 하게 됩니다. 현장은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곳이죠. 현장에는 40여명의 스텝들이 함께하고 있고 촬영 매회차는 24시간이고, 저예산이라는 것, 태양이라는 조명이 너무 중요했죠. 겨울이라 그 시간이 너무 짧았죠. 해는 아침 8시30분이 되어야 떠있고, 오후 4시가 되면 일조량이 떨어집니다. 또 중간에 점심은 먹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토론을 오래할 수는 없지만 스텝들에게 처음부터 제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십시오.라고 했죠. 저의 이러한 정직함이 오히려 스텝들에게 신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프 : 현장 스텝들을 가장 신나게 만들었던 촬영이 궁금합니다.

정성일 : 정유미가 등불을 들고 집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정유미가 독백하는 장면, 다들 첫 번째 현장관객이잖습니까. 또 보신각 장면을 찍을 때인 것 같아요. 그 현장의 스팩터클을 찍는다는 자부심이 있을 때 그러니까 자신이 예술가라는 자부심이 생기면 현장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현장을 이겨냅니다. 어떤 영화현장을 가보면 스텝들을 기능적 스텝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스텝들이 모멸감을 느끼죠. 이들도 다 예술가입니다. 이 현장에서 예술품을 만들고 있는거야.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프 : 크랭크인하기 전에 가장 기다려졌던 씬이나 씨퀀스가 있으셨는지요.

정성일 : 전부 다입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감독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는데 감독들이 말하길 모든 장면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감흥이 없는 씬은 다 버렸어요. 안 찍었습니다. 어떤 장면은 79번의 테이크가 나왔는데 다 버렸어요. 그때 교훈은 감흥이 없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프 : 크랭크인 까지 오래걸리셨습니다.

정성일 : 시나리오는 금방 썼어요. 어떤 사람은 탈고에 탈고를 거듭하기도 하지만 저는 빨리 끝내는 스타일이었죠. 한번은 시나리오를 오래 붙잡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저에게 맞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 3가지 원칙이 있는데 인터넷 하지 않기, 남의 영화를 보지 않기, 아는 사람 만나지 않기입니다. 시나리오 완성까지 3주 걸린 게 제일 오래 걸린 경우죠. 저의 경우는 찍어 나가면서 바꾸는 것이 나았어요. 그리고 펀드를 받기까지 지루했죠. 영진위에서 지원작으로 결정되었을 때 고마웠어요.

프 : 촬영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정성일 : 촬영의 난이도가 있는 장면은 없습니다. 대신 정유미가 등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광화문에서 청계천 8가까지 걸어가는데 사람이 걸어가면 1시간20분이 걸려요. 행인이 없는 것이 중요했었고, 그러려면 자정이 지나야 했죠. 겨울에 해는 늦게 뜨는데 새벽 하늘이 빨리 밝아집니다. 문제는 하늘이 계속 걸리니까 4시30분정도 되면 못 찍어요. 촬영하는 것이 불합리하지 못하게 되는거죠. 올라오는 장소가 멉니다. 여러 가지 속도를 맞춰야 하니까. 사실 그 장면을 찍을 때는 당시 해병대에서 청계천에 태극기를 꽂아놓았는데 제작진이 태극기를 뽑고, 장비 싣고, 배우 따로 움직이면서 세개 팀이 따로 움직이게 되었죠. 청계천은 바람골이라서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와요. 신하균은 제일 추운 영화였다고 말했지요. 찬 바람속에 오한이 들린다고 했죠.

그 밖의 마음(들)

프 : 누군가에게 결례가 될 수도 있는데요.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예고편이 별로였습니다.

정성일 : 예고편은 마케팅이잖아요. 영화가 흥미롭다는 생각을 만들어내야 하죠. 본편이 예고편보다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배급사에서 예고편을 직접 만들겠냐고 제안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내가 하면 그것은 본편의 축약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또 예고편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독후감이니까 그 독후감을 보고 싶었어요.

프 : 감독들은 자신이 만들기를 소망하는 최후의 영화가 있습니다. 테리길리엄(Terence Gilliam)에게 ‘돈키호테’라든지, 에이젠시테인(Sergei Mikhailovich Eizenshtein))에게 ‘자본론’이라든지, 감독님에게 그것은 무엇인가요.

정성일 : 궁극의 영화로군요.(웃음) 가능하다면 제가 동의할 수 있는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찍고 싶어요. 총 일곱편으로 되어 있으니까 한명이 각 한편씩을 찍으면 되는 것이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저의 세계소년소녀전집은 완간되는 것이겠지요. 견해를 함께 할 수 있는 여섯명의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 각기 다른 연출자들이 각자 자유롭게 각색하되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어떤 규칙을 정하는 것이죠. 해보고 싶습니다. 위대한 작품이니까요.

프 : 왜 환상적인 기운을 불어넣으신 건가요.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도 아니시면서.(웃음)

정성일 : 그것은 본 쪽에서 느끼신 것인데 그런 것을 노린 적은 없어요. 다만 몽상적일 수 있겠지요. 백야는 몽상적 감흥이 담겨있으니까요. 어쩌면 그 말은 제게 찬사에 가까운 것이죠.

프 : 첫 작품이 카페 느와르라는 사실이 의외였습니다. 저는 청소년물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감독님께서 이곳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성일 : 소년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뱀파이어 이야기를 준비했었지요. 헌팅 완료 했지만 파이낸싱이 되지 않았어요. 저예산으로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죠. 그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어요. 투자가 된다면 당장 시작할 겁니다. 이 작품은 18세 관람불가인데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시나리오를 본 어떤 분은 이야기가 너무 끔찍해서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리고 싶다고 했죠.

프 : (상상의 질문 하나) 감독님께서 일년동안 남극 계셔야 해요.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준비되어 있지만 아무도 없죠. 이 때 다섯명을 호명하여 함께 갈 수 있다면 누구와 함께 가시겠어요. 망자여도 불러낼 수 있다면요.

정성일 : 호명할 사람들에게 미안하죠. 대신 선물을 달라고 할 겁니다. 그 선물에 마음이 담겨 있을테니까요. 그것으로 1년을 견딜 수 있을 겁니다. 남극생활은 먹을 것도 있겠다. 나를 분주하게 만드는 메일도 없겠다. 좋죠.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프 : 어떤 아버지신가요.(감독님에게는 아들이 있다.)

정성일 : 아이가 판단할 것이지만 친절한 아버지이고 싶습니다. 어떤 질문도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고, 허락하는 한 요구도 들어주려고 하는 노력하는 모습. 아이에게 만족스럽지 않을지라도 이 아이랑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겠어요. 아이가 제 나이가 될 때까지 제가 살수 없겠죠. 우리 아버지는 나쁘지 않았어.라고 말해준다면 정말 고마운 평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