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2010.12.31.본인인터뷰|작품

[문화] "시대 불행 마주할 관객 믿어"

마침내 감독 정성일(오른쪽)의 ‘첫 영화’ 가 개봉된다. ‘2시간78분’ 동안 그는 쉼없이 사랑을 그리고, 정치를 속삭인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정성일 마니아를 자처하는 양효실씨(왼쪽)가 그를 만났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청춘’의 필독서이다. 그 ‘미친 사랑’에서 우리는 비극도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그러나 상상력이 풍부했던 열두 살 소년에게 이 비극은 너무 빨리, 그리고 잔인하게 기억 속에 남았다. 그 소년은 이후에도 수많은 책을 읽었고, 혹은 영화 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시대를 통과하고 치열하게 세월을 지나왔다.

그 소년은 영화평론가 정성일(50)이다. 그 이름을 모르기란 어렵다. 그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혹은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악명’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2007년 이래 많은 이가 그의 감독 데뷔를 별렀다. 마침내 그는 보란 듯이 자신의 첫 영화 <카페 느와르>를 ‘낳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78분(3시간18분) 동안 그는 쉼 없이 사랑을 그리면서 동시에 정치를 속삭인다. ‘세계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영화는 한 편의 모양새를 취했으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죽음을 끌어안은 1부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로 대답하는 2부로 구성되었다.

관객이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묵직한 ‘말 걸기’가 가진 알레고리를 풀어야 한다. 그의 영화에 대한 순정과 진심을 차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정성일 빠’를 자처하는 양효실씨 (서울대 미학 강사)가 12월21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정성일과 마주앉았다. <카페 느와르> 편집을 마치던 날, 정성일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평론을 썼다고 했다. 그것은 그의 노트 안에서 어쩌면 영원히 공개되지 않을 기록이다. 그러나 그가 풀어놓은 말을 통해 우리는 그 평론의 단편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양효실(양):수많은 책 중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백야>로 영화를 만들게 된 개인적인 이야기가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일(정):저는 ‘세계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라는 이름하에 계속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그때 첫 번째로 제가 뽑은 책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습니다. 이 책이 내게 무슨 큰 감동을 준 책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게는 다시 들춰보기 두려운 책이었습니다. 제가 그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게 열두 살 때였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그 소설이 그렇게 끝날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권총 자살을 하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총을 쏘고, 피는 계속 흐르고, 뇌수가 쏟아지고…. 요즘 한국 영화가 잔인하다고 하지만, 괴테의 잔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이 편지를 받아들 사람을 생각해봤습니다.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이를 먹었습니다. 저는 78학번입니다. 1980년 5월19일에 군대를 갔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마 아실 겁니다. 그리고 돌아와 1980년대를 보냈습니다. 그때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혹은 너무 많이 죽였습니다. 1980년대를 통과하고 살아남은 저의 유일한 메시지는 “제발 죽지 마세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베르테르의 죽음은 괴테가 결정한 것입니다. 저 따위는 감히 막을 수 없는 위대한 소설가 괴테가 한 결정입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을 최대한 미뤄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로테가 베르테르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대사를 영화에도 인용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여자가 한 명 없겠어요? 여행을 떠나보세요. 그러면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여자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좋은 우정의 관계가 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문득 떠오른 또 다른 소설이 있었습니다. 거의 똑같은 구절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야>였습니다. <백야>에서 나스첸카가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좋아요. 내일 당신을 만날 거예요. 하지만 사랑은 절대 안 됩니다. 우정은 얼마든지 좋아요.” 두 소설을 바인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야>의 부제가 ‘꿈꾸는 자의 나흘 밤’이지 않습니까. 도스토옙스키라면 베르테르의 죽음을 최소한 나흘은 미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물리적 시간으로 그 죽음을 할 수 있는 한 미루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절대적으로 거기서 나온 겁니다. 허락한다면 네 시간이고 다섯 시간이고 관객들이 질릴 만큼 끌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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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는 브레히트도 등장합니다. “1980년대에는 누구나 운동권이었지”라는 노스탤지어에 빠져 있는 40, 50대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혔는데요.

:그렇게 봐주면 정말 고맙습니다. 왜냐면 너무 많은 사람이 이 영화 속의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을 하고 문어체 대사 같은 형식에만 집중합니다. 영화 속에 내장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보려고 하지 않을 때, 브레히트의 시를 마치 대사인 양 시치미 떼고 읊는 배우를 통해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을 때,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서운한 느낌이 있죠. 물론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책의 리얼리즘’이라고 하셨죠.

:말 그대로 문자를 찍고 싶었어요. 소설 속 문자들이 활동하기 시작하길 바랐어요. 배우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음색의 높낮이, 어디서 끊고 어디서 붙여 읽을 건지, 그건 어떻게 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그래서 일부러 리딩을 안 했어요. 대신 조건을 걸었어요. “‘은는이가을를에게’를 바꾸시면 안 됩니다”라는 것. 왜? 저는 괴테의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시적 감흥, 이게 위대하지 줄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크립터한테도 부탁했죠. 나는 화면을 볼 테니까, 너는 대사를 보라고. 그래서 만약 ‘은는이가을를에게’가 틀리면 네가 NG를 부르라고. 배우 (정)유미씨도 눈물을 흘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사에 몰입하기 시작하니까(이 대사는 장장 14분간 이어진다), 대사가 요구했던 눈물을 흘렸죠.

:영화에서 실연의 아픔으로 헤매는 사람은 김혜나씨와 신하균씨, 둘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손에 들었던 책 중 하나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온 어휘에 관한 단상으로 이뤄져 있죠. 대신 절대 열어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사랑에 관한 라캉의 정의입니다. 사랑의 외설성. 우리가 조금만 정직해진다면 우리 주변에 사랑에 빠진 사람을 구경하는 것보다 신나는 구경거리는 없습니다. 그건 싸움을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재밌죠. 사랑에 빠진 자만이 질투할 줄 알고, 증오할 줄 알고, 어떤 상실에 대해 고통받을 줄 알고.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에 빠진 자만이 세상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죠. 좀 더 정확하게 사랑에 빠진 자만이 자살할 권리가 있고요.

이 영화를 말할 때는 꼭 ‘장소’를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는 익숙한 서울을 찍지만 동시에 ‘낯선 서울’을 보여준다. 남산·청계천·남대문 그리고 (아마도 재개발 지역일) 폐허와 조선일보·국회. 그 다음 나오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그냥 계속될 수는 없어요. 제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대로는 안 돼요.”

:이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읽을 수 없을것 같습니다. 감독님은 서울이라는 공간을 통해 발터 벤야민이 <파사젠베르크>에서 꾸었던 꿈을 꾸는 건 아닐까요.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제게 “당신이 흉내낸 건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국내에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번역됐다)군요”라고 이야기해준다면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많은 만남이 아닌 좋은 만남을 가졌으면 합니다. 사실 어떤 작품이 더 많은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 점점 작품은 바보 같아지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시대의 교양을 믿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이 시대가 불행하다고, 불편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시대에 대해서 적어도 무엇이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생각한다면 저는 관객이 영화의 의미를 놓칠 리 없다고 믿는 쪽입니다.

:영화에서 과격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이어야 한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아름다운 대사들이 나오죠.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고, 어른은 죽고 아이는 살아남고. 그건 저한테 너무 중요했습니다. 생과 사, 말하자면 첫 시작과 마지막 시작. 이런 비밀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으나, 이 영화에 내장된 저의 폭탄 중 하나는 가장 마지막 대사였습니다. “사람들은 달나라에서 돌을 가져왔대. 너는 지구를 떠날 때 뭘 가져갈 거야?” 이게 만약 SF영화라면, 이 소녀가 받았던 임무는 ‘지구는 엿 같으니까 다 날려버리라’는 임무를 갖고 온 소녀였겠죠. 그러나 ‘아직은 견딜 거야, 그리고 난 여기서 살 거야’ 하면 어쩌겠냐는 거죠. 그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에서 수없이 많이 바뀐 대사 중에서 살아남은, 그리고 저한테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썼던 대사였습니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 다시 짜맞춰진 거죠.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갈 때 시위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영화를 위해 찍은 장면인가요.

:그럼요. 저는 그 장소(보신각)에 가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올해도 가볼 생각입니다. 그 장면은 스태프들이 모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찍는 게 너무 중요했고, 망치는 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내년에도 희망이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죠. 그 장면을 사람들이 꼭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날, 그 시간에, 거기에 가서 항의하기 위해 집에 돌아오기도 힘든 그 장소에 서 있다고.

:서울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않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저는 영화의 가장 커다란 힘은 기록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영화는 다큐죠. 어떻게 찍어도 결국 기록의 문제니까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아카이빙하고, 배열하고, 배치하고, 그것들이 배치된 숏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기 시작하는가를 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거죠. 예를 들면 지금 청계천의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남산타워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72년입니다. 박정희의 그림자죠. 서울에는 두 장소가 있어요. 남산타워가 보이는 장소와 안 보이는 장소. 그 놀라운 지적을 이미 홍상수가 했습니다. ‘남산타워는 어디서도 보이네’라고 끊임없이 환기시켜주죠. 그게 왜 생겼는지, 왜 있어야 하는지, 작은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적할 수밖에 없죠. 남산타워, 24시간 내내 판옵티콘(원형감옥)처럼, 저한테는 그 느낌이 있어요. 그 역사적 유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고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죠.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저걸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근대라는 게 얼마나 엿같이 진행됐는지, 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내려오면 청계천이 흐르죠.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다큐라는 형식 때문에 그 시대의 ‘사실’을 담지 못한다는 것을 다큐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다큐의 한계죠. 즉, 드라마를 동원할 때에만 비로소 건드릴 수 있는 사실이 있지 않습니까. 다큐로도 고민했지만 포기했던 까닭은, 우리 시대 이 수많은 역사적 증거는 너무 복잡한 구조 속에 들어가 앉아 있기 때문에 표현을 찍는 것만으로는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폐허로서의 서울이라는 공간을 보여주다가 어떻게 미래를 사유할 것인가에 대해 교활할 정도로 잘 넘어가는 거 같은데요(웃음). 선생님을 보면 ‘여전히 시대를 앓는다’라는 느낌을 받아요. 고립감이나 외로움은 없으세요?

:굉장히 크죠. 오늘날 정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섬이 되어버렸죠. 항로를 알지 못하는. 그 섬은 서로에게 가지 못하고, 종종 황폐해졌습니다. 그런 점이 저로 하여금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큰 의지가 됐습니다. 물론 비평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죠. 충분한 지면이 있고요. 그러나 결국 영화라는 것이 세상 그 자체는 물론 아니지만, 세상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이라면…. 홍상수·봉준호·박찬욱이 보여주는 가능성도 있지만, 그게 저에게 뭔가 불만족스러웠던 거죠. 그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면 그 영화에 기대어서 저의 담론을 발전시킬 수도 있었겠죠. 그것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 제 세상을, 하나의 가능성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일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훗날 ‘이러한 가능성이 그 시대에 포함돼 있었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충분한 보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작품에 대한 비평도 가능하십니까?

:이미 썼어요. 마지막 편집 끝내고 집에 와서. 저에게 이 영화는 비평가로서는 종결된 영화지요. 빨리 두 번째 영화를 생각해야 하니까(그는 이미 두 번째 영화의 한 컷을 찍어두었다). 그러나 그건 제 일기장에 있어야 할 글이죠. 누군가 저보다 좋은 비평을 쓰길 기대하죠(웃음). 이 영화를 그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제 생각의 단편들, 그 아카이브를 별자리처럼 짜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굉장히 고맙죠. 그게 제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겠지요(웃음).

:비평가 정성일, 영화 얼마나 잘 만드나 보자고 모두가 별렀죠.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영화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낱낱이 보여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나리오 맨 위에 그런 구절을 적었어요. ‘좋은 옛날에서 시작하지 말고, 나쁜 현재에서 시작하자’라고.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을 보고 알랑 레네가 그런 말을 합니다. “프랑스가 갑자기 사라진 듯하면, 우리들은 <게임의 규칙>을 통해서 프랑스를 그대로 복원할 수 있을 거다”라고. 물론 제 영화가 그 수준에 이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2008~2009년 남한에서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 영화를 통해서 100년 뒤의 사람들이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영화에 담긴 거리·장소·사람들뿐만 아니라 거기 함께 담긴 정치적 공기들까지요.

:다음 작품이 벌써 궁금해집니다.

:저는 ‘세계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으로 연작을 계속 찍을 생각입니다. 두 번째 소설은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입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의 가족을 건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사회의 가족을 보고 있으면 종속과목이 다른 동물들이 강제로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아요. 오직 사회적 네트워킹이라는 이름 때문에요. 끔찍한 일이죠.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이 영화 이전에 투자 문제로 ‘사생아’가 된 영화가 세 편 더 있었다. <카페 느와르>는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지원작으로 선정되지 않았더라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09년 완성된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뮌헨 영화제 등에 초대됐지만, 국내에서는 배급 문제로 개봉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다시, 그의 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인용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폐허와도 같은 대한민국을 보면서 한국 영화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영화가 시대로부터 이탈하면 결국 맞이할 것은 저 괴물 같은 실재의 무시무시한 복수라고 믿는 사람이다.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 영화는 그것을 막으라고 하소연해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도래할 시간에 대한 믿음을 안고, 그렇게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 지금은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연대하라!(447쪽)”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는 12월 30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