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신문』 2007.11.28.본인인터뷰

"영화는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한 예술이죠" 정성일(신방78)동문

90년대 가장 급진적인 영화잡지 <키노>의 편집장이었던 정성일 동문. 그의 평론에 대한 반응은 보통 둘로 나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비대중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를 ‘정성일 키드’라 자처하며 열광하는 사람. 하지만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 중 정성일이라는 이름이 한국 영화평론가를 말할 때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정 동문은 “대학 다닐 당시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오늘날과 비교해보면 마치 딴 행성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문화원을 찾아 영화를 보고, 그 영화들을 통해 세상을 봤다. 학교에서 영화를 유별나게 좋아한다고 소문난 그는 ‘이상한 놈’이었다고 한다. 영화계에 꿈이 있는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전공 수업 때 영화 관련 발제를 하면 교수님조차 ‘무슨 소리 하는거냐’라며 되물었다고 한다. “영화가 뜬 요즘에야 그쪽으로 진출하려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옛날 영화에 대한 평가는 바닥이었죠, 그때야 직업으로 삼을 만한 가치도 없는 일이였지”하고 웃는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엔 ‘1년에 외화 1편 수입’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 때문에 새로 접할 수 있는 외화가 거의 없었다. 그가 군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하고 났을 때에야 비로소 비디오가 나왔다. ‘천지개벽’ 그는 그렇게 비디오 시대를 평가한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좋은 영화 하나를 보면 그 시간이 꿈만 같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나 소중했단다. 친구들과 모여 손을 떨며 영화를 틀었고 영화가 끝나면 모두가 감동받아서 얼싸안고 울기까지 했었다. 영화 한 편에 모든 심혈을 기울여 보고 밤새서 토론했던 그 시절 덕분에 그는 평론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 같이 검색 한 번이면 인터넷에서 원하는 영화를 다운받아서 볼 수 있는 시대엔 어려운 일이다.

“요즘 영화는 너무 쉽게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영화를 예술로 보지 않는 거죠. 가끔 인터넷에 올라온 평론의 댓글을 보면 이런 글이 있더군요. ‘그래서 재밌다는 거야 재미없단 거야.’ 영화도 예술입니다. 예술은 즐거움만 소비하는 실용주의적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예술은 고통스러울 수도, 치열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습니다”

그는 평론을 통해 대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한 번 더 물음을 던지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영화를 통해 계몽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고 나쁘고를 평가하는 것을 떠나 영화에서 본질적으로 말하려는 문제에 관객이 창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사람이 평론가라 말하는 정성일 동문. 그가 단지 영화를 평론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 속에 숨겨진 치열한 고민을 읽어내는 사람임을,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갖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