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010.12.19.본인인터뷰

"영화평은 남 위해 사는 것..이젠 날 위해 살때"
'카페 느와르' 연출한 영화평론가 출신 정성일 감독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영화평을 쓴다는 건 결국 남을 위해 사는 겁니다. 이제는 날 위해 살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20년 넘게 활동하면서 영화팬들에게 친숙해진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영화를 비평하던 그가 자신이 직접 만든 첫 영화 '카페 느와르'(30일 개봉)를 관객 앞에 내놓는다.

오십 줄에 들어와서야 영화를 만들었지만, 연출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건 다 연출이겠죠. 저도 예외 없이 대학교 때 영화 동아리에 들고 영화 공부를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자신이 대학을 졸업하던 1985년만 해도 충무로에서 오랜 연출부 생활을 해야 감독이 될 수 있었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에 생계유지가 힘든 촬영현장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합동영화사에서 일하다 선배의 권유로 '말'지에 평론을 기고한 것을 계기로 생각지도 못한 영화평론가가 된 그는 '로드쇼' '키노' 등의 영화 전문지 편집장을 거쳤다.

"순식간에 30대가 지났어요. 40대 중반에 들어섰을 때는 더는 미루면 꿈을 이루지 못할 거로 생각했어요. 왜냐면 영화감독은 소설가 같은 직종과 달리 체력이 필요한 직종이죠. 현장에서 비바람을 맞고 사람들을 이끌고 해야 하거든요." 나이 마흔에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제작비를 조달하는 일이었다. '카페 느와르'는 그가 10년 동안 '3전 4기'한 끝에 만든 영화로 시나리오를 완성해 촬영 장소 헌팅까지 끝냈지만, 투자를 못 받아 무산된 영화가 3편 더 있었다고 했다.

'카페 느와르'의 시나리오를 쓴 것은 2007년으로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다가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 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힘을 얻어 7억5천만원을 들여 완성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됐지만 배급 문제로 국내 개봉까지는 1년 넘게 더 기다려야 했다.

그는 평론가가 연출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편견을 가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화평론가라서 어려운 영화 찍을 거야, 현장 경험이 없어 미숙할 거야, 무조건 재미없을 거야 하는 거죠. 어떤 분은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았고 어떤 분은 지나치게 제 의도를 넘어서 읽었어요. 그렇게 복잡한 얘기는 아니라 해도 믿지를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가장 평이한 얘기를 쓰겠다고 해서 ('카페 느와르'가) 나온 겁니다." 그는 영화 평론가이자 감독으로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등의 예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드물지만, 박찬욱 감독도 평론가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평론을 쓰다 직접 연출을 하는 것은 어땠을까? 그는 "모니터가 없었으면 연출을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제가 연출부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봤던 영화에 의지해서 현장에서 벌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찍는 건데요. 저는 (현장에서) 모니터를 볼 때 비평가가 영화를 보듯이 바라봤어요. 남의 영화 보듯이 '좋네' '이상한 걸' 이러면서 'OK'와 'NG'를 골라갔다고 할까요." 그가 "평이한 얘기"라고 말하지만 '카페 느와르'는 그리 대중적인 영화라 하긴 어렵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각색한 2가지 이야기를 결합한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198분이다.

"2시간 78분입니다. (3시간 18분보다) 부담이 덜하잖아요. 하하. 시나리오 처음 썼을 때부터 3시간 10분 정도를 예상했어요. 왜냐면 (이야기를) 크게 2개로 나눴기 때문에 줄일 수 없었어요. 제작자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3시간 넘는 건 데뷔작 찍을 때 딱 한 번 용서가 되지 산업시스템 안에서 두 번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이 영화는 운명적으로 사랑한 여인과 이별한 음악 교사 영수(신하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청계천, 서울타워 등 서울을 상징하는 주요 공간을 주 배경으로 했다. 정유미와 문정희, 김혜나, 요조 등이 출연했다.

보통 영화의 2배 분량인데다 컷을 나누지 않고 길게 찍은 롱테이크가 많고 인물의 말투는 편지글을 읽는듯해 대다수 관객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법하다.

그러나 정 감독은 몇 명의 관객이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나는 관객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서도 "(이 믿음이) 모든 관객을 향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결국 만남이 소중한데 저는 '많은 만남'보다 '좋은 만남'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이 영화를 충분히 받아들일 마음이 돼 있는 사람과 좋은 만남을 갖는다면 충분해요. 영화에 대해 받아들일 마음이 없거나 적대적인 마음이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죠." 영화는 시작부터 한 소녀가 햄버거를 꾸역꾸역 먹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4~5분가량 보여준다. 영화 후반 배우 정유미의 독백 장면은 무려 14분이나 된다.

"롱테이크로 찍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적은 없어요. 그런데 첫 장면 햄버거 먹을 때 그 긴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지 않았다면 마지막의 눈물이 얼마나 웃겨보였겠어요." 햄버거 소녀와 정유미의 눈물 신에서는 배우들에게 절대 울지 말고 햄버거를 먹는데만 집중하거나 대사만 정확하게 하라고 주문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사실 전 영화를 보다 눈물 흘리는 순간에는 막 웃어요. 연기를 잘할수록 더 짜증 나요. 그런데 (정유미와 햄버거 소녀는) 이야기의 진정을 느껴서 우는 거였으니 그 눈물은 고마운 눈물이죠." 그는 "영화를 본 사람들 가운데 이 영화에 호의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을 사는 게 혼자만 외롭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라면서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새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비평과 연출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어디선가 저를 영화비평가였던 영화감독 정성일이라고 소개해서 '저 폐업한 적 없는데요'라고 했어요. 하하" 정성일 감독은 투자만 되면 언제든지 두번째 영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임권택 감독을 뵙고 '2번째 영화 찍으면 좀 나을까요?' 그랬더니 '2번째 영화에는 2번째 영화의 곤란한 점이 또 생겨요. 내가 100편 찍으니 설렁설렁 가는 것 같죠? 영화는 그 곤란한 점과 어떻게 싸우고, 타협하고, 극복하고 해결하는가의 문제인 거죠.'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음 영화가) 절대 편하거나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쁘게 맞이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kimy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