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담』 2013.01.(봄.8호)

Walking with a Shot

영화가 인천을 소비하는 방식

당신께서는 인천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까. 물론 대답은 없다,일 것입니다. 아무도 인천에 여행을 다녀오지는 않습니다. 인천은 강릉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천은 경주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홍상수는 여러 도시를 쏘다니면서 영화를 찍고 있지만 인천에 다녀온 적은 없습니다. ‹강원도의힘›을 찍기 위해서 강릉을 거쳐서 설악산에 올라가지만 인천에서 “힘을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생활을 발견”하기 위해서 춘천을 거쳐서 경주까지 여행했지만 그러나 인천을 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생활의발견›).

홍상수는 아마도 지금 한국영화의 모든 감독들 중에서 장소가 주는 인상에 가장 예민한 예술가일 것입니다. 그 자신도 가장 존경하는 이름으로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느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마치 세잔느가 삶의 마지막 순간 엑상프로방스에 머물면서 커다란 산 생 빅투아르를 끊임없이 다시 그리고 또 그리면서 변치않는 어떤 힘을 찾은 것처럼 자기가 방문하는 도시의 힘과 리듬을 발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에는 인천이 없습니다. 다만 한 번 인천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적은 있었습니다. 홍상수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남자의 미래를 보고 싶어서 부천까지 가 봅니다. 그러나 거기서 길을 잃고 그런 다음 늦은 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총알택시를 타려고 거리에서 서성거리면서 영화는 갑자기 끝나버립니다. 저는 조금만 더 예를 들고 싶습니다.

홍상수는 종종 바다를 쳐다보면서 거기에 변치않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수수께끼를 찍고 싶어했습니다. 인천은 바다를 볼 수있는 도시입니다. 홍상수는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서해안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찾아간 곳은 인천이 아닙니다. 홍상수는 ‹해변의 여인›에서 서해안에 있는 조용한 바닷가 신두리 해수욕장을 채 여름이 오지 않은 늦봄에 두 남자와 한 여자, 그런 다음 다시 한 남자와 두 여자를 짝지어 방문합니다. 그런 다음 다시 서해안을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동반하여 전북 부안의 한적한 바닷가 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른 나라에서›를 찍었습니다. 가까운 인천을 내버려두고 그는 구태여 먼 바닷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한 번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인천에서도 영화를 찍어볼 생각이 있습니까. 그는 망설이지않고 대답했습니다. 네,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요. 두 남자가 막 겨울이 시작된 어느 날, 인천에서 우연히 만난 다음 하루 종일 쏘다니다가 해가 떨어질때 서로 제 갈길로 헤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선 그냥 쏘다녀야 할 거 같아요. 인천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저는 쏘다닌다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거든요.

그 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쏘다닌다. 왠지 이 도시는 여기 살면서 드라마가 진행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디서 서울이 끝나는지 알 수 없고, 어디서부터 인천이 시작되는지 알 수 없는, 그저 희미한 경계. 지하철을 타고 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어느새 우리는 인천에 이미 도착해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곤 합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놓인 몇 개의 지명. 그저 목적없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삶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 도시가 이끄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부유하는 사람들. 혹은 떠도는 구름처럼 그렇게 진행되는 이야기.

이름이 지워진 채 등장하는 도시

그런 다음 한국 영화에서 인천이 배경인 영화를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영화는 인천에서 수 없이 많은 작품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거기가 인천이라는 사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장소가 인천이어서 찍은 것이 아니라 다만 서울에서 찍기 힘든 장면을 그와 유사한 풍경을 지닌 서울 인근의 지역에서 찍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차가 너무 많고 게다가 촬영이 금지된 지역으로 가득 차 있으며 배우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기에는 적절치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서울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지역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은 그 해답이 되었습니다. 그건 마치 도시 인천의 운명과도 유사해보입니다. 인천은 많은 것들을 서울을 대신하여 거기 있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에서 인천이라는 지명이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주 드물게도 인천의 골목구석 구석을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찍은 영화가 있습니다. 정재은의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에서 살고 있는 다섯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 소녀들은 지금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런 다음 이제부터 시작될 세상의 삶이 궁금할 뿐만 아니라 불안하기도 합니다.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 인천의 풍경은 종종 정겹고 골목은 마치 옛 기억을 언제까지라도 보존할 듯 그렇게 거기 멈춰서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골목 구석의 작은 집은 지붕이 주저앉고, 그렇게 소녀들은 각자 삶의 선택에서 주어진 운명에 따라 우정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가닥가닥 나뉘어진 이 이야기를 결국은 어떻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이런 방향으로 산산조각나기 시작하는 것일까. 소녀 중의 한 명은 짐을 싸고 인천을 떠납니다. 이때 그녀가 떠나기 위해서 길을 나서는 장소는 인천국제공항입니다. 말하자면 이야기를 블랙홀로 만들어 버리는 장소. 우리는 이야기의 셈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인물들 사이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때 사슬의 연쇄적인 반응에 따라 우리들의 운명은 종종 결정됩니다. 이때 공항으로 가 버린 인물은 자기 자신을 이 셈에서 뺄셈으로 더해달라는 뜻입니다. 저는 한국 영화에서 인천공항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부유하는 자들의 출입구, 인천공항

그렇습니다. 한국 영화가 아무리 인천을 이리저리 지워가면서 서울을 대신해서 찍는다 할 지라도 인천공항을 찍을 때는 도리 없이 그 공간은 그 장소여야만 합니다. 영화에서는 오로지 그 장소일 때에만 그 지명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거짓말의 선수이며 눈속임의 예술이니까요. 당신이 본 재벌 집안방은 종종 세트에 지나지 않았으며(‹돈의 맛›), 도시 한복판에다 감옥을 세우기도 합니다. (‹올드보이›) 하지만 인천공항은 우리들이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는 도리없이 가야 하는 출입구입니다. 2001년 3월 29일 방콕발 아시아나항공 비행기가 새벽 4시 46분 첫 착륙을 하면서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었을 때 그것이 누군가에는 한국 사회의 세계화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기호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자유주의의 불길한 증후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한국 영화는 그 두 가지 모두를 매번 인천공항에 와서 쳐다 보았습니다. 그곳은 지금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주인공들이 낯선 나라에서 처음 도착하는 장소였고, 또는 반대로 이야기를 모두 끝낸 주인공이 자기 나라를 등지고 몹시도 망설이면서 때로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떠나가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약간 우스꽝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아마도 21세기 한국 영화가 지난 세기의 그것과 가장 다른 점은 그 마지막 장소가 공항인 영화들의 수 없는 등장일 것입니다. 인천공항이 등장하는 영화들 중 가장 이상한 두 편의 영화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하나는 중국 영화인 ‹명일천애 (明日天涯)›입니다. 이 영화는 지금 중국을 대표하는 젊은 감독 중의 한 사람인 지아장커의 영화를 촬영하면서 자기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유릭와이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1세기가 막 시작됐을 때 만들어졌습니다. 무대는 가까운 미래. 아시아는 지금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고 사람들은 폐허에 가까운 집에서 사방으로 퍼져나온 공장의 독가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건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다기보다 마치 세기말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에 빠지면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재교육을 받게 됩니다. 폐병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와 그녀를 따라 기꺼이 수용소를 선택한 남자, 그리고 정체불명의 한국 여자와 그녀에게 홀린 중국 청년. 이 네 사람의 이야기가 우울하게 그려지는 영화에서 마지막 순간 갑자기 원인불명으로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네 사람은 세상 바깥으로 나옵니다. 그 때 그들은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 위해 공항으로 갑니다. 유릭와이는 이들이 향하는 공항을 인천에서 찍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천공항이 밝은 희망으로 찍힌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괴물처럼 기괴해 보인다고 할까. 그래서 유릭와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인천공항은 어떤 이미지였나요.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습니다. 참 이상해 보였어요. 주변과 원근이 전혀 맞지 않으니까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달까. 한참을 보고 있으면 몽롱한 기분마저 주었으니까요.

다른 한 편도 우연찮게 근미래를 그린 영화입니다. 문승욱 감독의 ‹나비›는 산성비가 쏟아지는 서울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나쁜 기억 만을 지워주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가 있는 곳으로 나비떼가 사람들을 인도한다고 합니다. 기억을 지우기 위해 서울을 찾아 온 안나는 바이러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가이드인 이상한 소녀 유끼와 그들을 태우고 나비를 따라다니는 택시 운전사 K를 만납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기억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알게 됩니다. 이 때 안나는 서울에 들어오기 위해서 몹시 기분 나쁜 인천공항의 풍경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인천공항은 좋은 기억이 아닙니다. 이 기억은 왜 그런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다시 나가기 위해서는 오로지 비행기를 타아만 하는 지정학적 감옥과도 같은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

‘멜랑콜리’

나는 당신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공항으로 떠날 때 어떤 마음을 품고 그 먼 길에 오릅니까. 혹은 막 긴 여행을 끝내고 인천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는 인천의 풍경에서 어떤 감정을 느낍니까. 당신께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영화의 주인공의 심정이 되십니까, 아니면 지금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주인공의 마음이 되어 창문 바깥의 풍경을 보고 계십니까. 인천은 당신을 공항으로 이끄는 그 길목에 있는 도시입니다. 적어도 영화에서 인천은 그렇게 우리들 마음 속의 풍경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1876년 조선이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강화도 조약을 맺었던 이래 그 장소가 준 역사적인 멜랑콜리의 감정이 거기 남아서 이어져 내려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인천을 그저 단 한 마디로 말해야 한다면 멜랑콜리라고 그렇게 조용하게 혼자서 불러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