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2004.09.07.(469호)인물

미래는 나의 것! 세계가 주목하는 예비거장 10인

세상에는 거장이라 불리는 영화감독들이 있다. 이들은 영화가 120분짜리 롤러코스터가 되어선 안 되며, 팝콘과 콜라를 먹기 위한 배경화면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의 영화에는 세계와 사람과 진실이 견고한 스타일에 녹아들어 있다. 물론 거장의 영화만으로 가득 찬 멀티플렉스를 상상할 수는 없다. 대다수의 관객에게 그건 불행한 일이다. ‘다행히도’ 현실의 멀티플레스는 즐겁고 행복한 영화로 대부분의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거장의 영화가, 세상과 인생과 진리를 말하는 작품이 사라진다면, 이 또한 불행한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홀로 앉은 어두운 객석 안에서 세상의 비정함과 인생의 쓴맛과 진리의 고통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하는 10명의 감독은 아직 거장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그 반열에 이름을 올릴 세계 영화계의 샛별들이다. 이들은 노동계급의 현실에 주목하거나 인위성을 배제한 영화를 꿈꾸거나 외설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등 각각 추구하는 색깔은 다르지만, 세상과 인간과 진리를 좇아간다는 점에선 매 한가지로 보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 10명 감독의 영화를 지금, 여기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이들 중 일부 감독의 신작은 10월7일 개막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왕차오의 <낮과 밤>을 비롯,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21그램>, 리산드로 알론소의 <죽은 사람들> 등 네 감독의 신작이 선보이는 것. 이들의 영화를 허름한 극장에서라도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될 날을 바라 마지않으며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예비거장 10명을 소개한다. /편집자

소녀의 가슴 저미는 하소연
일본의 신성, 가와세 나오미 河瀨直美

가와세 나오미는 너무 일찍 부모와 헤어졌다. 먼저 떠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가와세가 세살 때 바람이 나서 그녀 곁을 떠났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새로운 삶을 찾아서 그녀 곁을 떠났다. 가와세는 외할머니 곁에 남았다. 어린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걱정한 외할머니는 그녀의 딸로 외손녀를 입양시켰다. 그러나 여기는 도쿄가 아니다. 나라현의 이 작은 동네에서 가와세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자란 아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안다. 아마 어린 가와세도 그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친구가 없었으며, 친구들도 가와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혼자 그렇게 십대를 통과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8mm카메라로 관심을 옮겼다. 무얼 찍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벌써 스물세살. 가와세는 외할머니에게 불현듯 물어보았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요. 외할머니는 화가 나서 대답했다. 니 애비는 딸 생각할 사람이 아냐, 그러니 찾을 생각도 하지 말거라. 그것이 가와세의 여덟 번째 8mm영화 <따뜻한 포옹>의 시작이었다. 가와세는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아무도 그녀에게 영화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처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실수를 하고야 만다. 종종 초점이 안 맞고, 녹음은 대부분 잘못되어서 잡음과 뒤섞여 있으며, 삼각대가 없어서 시종일관 화면이 흔들린다. 이 영화는 연출, 촬영, 편집, 녹음, 음악을 그녀 혼자서 했다. 그 말은 그녀에게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와세는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앨범 속의 사진을 꺼내들고, 거기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혼자서 불러본다. 그런 다음 그 사진을 찍은 장소를 찾아 나라에서 머나먼 고베까지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여행한다. 그리고 기어이 사진 속의 그 장소에 가서 카메라를 세우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서서 영화를 찍었다. 가와세는 중얼거린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는 왜 슬픈 거지. 푸른 하늘, 힘겹게 자라는 양파 뿌리, 바람에 흔들리는 안테나, 흩날리는 민들레 꽃씨, 잠자리의 날개.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한다. 야마시로 기노요부입니까? 저는 가와세 나오미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의 딸입니다.

이 영화는 그 이듬해 야마가타영화제에 출품되었다. 40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실수투성이의 8mm영화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일본 다큐멘터리의 전설적인 존재인 오가와 신스케의 촬영감독이었던) 다무라 마사키가 이 소녀의 진심을 보았다. 그는 이제 막 스물네살이 된 소녀를 위해서 프로듀서를 소개하고, 스탭을 꾸리고, 그리고 그 자신이 카메라를 잡았다. 가와세는 이 팀을 이끌고 외할머니의 고향 니시요시노의 산속 작은 마을에 들어가 그 기억을 찾아간다. 딸을 떠나보내고, 그 딸의 딸을 키우면서 살아간 외할머니와 그 마을의 이웃을 이해하려는 저 필사적인 노력은 아무런 미동도 안 하는 카메라의 기나긴 롱테이크 화면 앞에서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가와세의 맹세이다. 그녀의 (열다섯 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 35mm 장편영화 <수자쿠>는 1997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그녀 나이 스물일곱살 때 일이다. 이것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최연소 수상이다.

사실상 그녀의 영화는 수줍은 고백이고, 가슴 저미는 하소연이며, 슬픈 질문이다. 오직 일본에만 있는 사소설(私小說)의 전통 속에서 사적(私的) 영화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불가사의한, 난처한, 기이한, 불편한, 하지만 결국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야마는 그 진심의 영화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아니, 점점 더 깊이를 얻어갔다. 가와세는 느리지만, 점점 세상을 감싸안을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가족에게서 마을 사람들을 껴안기까지 거의 십년이 걸렸다(<따뜻한 포옹>에서 <사라소주>까지, 그리고 내 생각으로 <사라소주>는 2003년 칸 경쟁작 중에서 가장 좋은 영화 중 한편이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자기를 버린 세상을 용서하고, 그 세상의 너비만큼 그녀는 성장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당신을 기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