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2007.07.17.(612호)본인인터뷰

특집 ◎ 디지털영화는 지금

디지털, 영화의 신세계를 열다

기술 혁명에서 미학 혁명까지, 디지털영화의 현재를 돌아보다

디지털이 과연 영화의 신세계를 열 것인가. 장담하긴 이르지만 현재 디지털이 영화 역사의 지형도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디지털적 기술과 사유를 깨달은 진취적 창작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영화를 바꿔나가고 있는지 혹은 영화 생산과 수용의 과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영화의 쟁점과 비전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그리고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 평소 디지털영화에 대해 말할 때마다 우리는 알쏭달쏭하게 하던 혹은 궁금하게 하던 디지털에 관한 질문과 답을 함께 실었다. 제1회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를 개최하는 정성일, 박기용 두 공동집행위원장의 대담은 디지털 영화에 대한 그야말로 심도 깊은 화두가 오가는 자리이며,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 상영작 중 경쟁작 10편, 초청작 8편에 대한 프리뷰는 <씨네21>이 독자들에게 당당하게 권하는 강추 리스트다. 자, 이쯤되면 디지털영화가 내 손 안에 있다. 디지털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편집자

글 정한석, 오정연 · 편집 심은하 · 디자인 모보형 · 캘리그라피 강병인


디지털은 영화의 두 번째 천지창조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 공동집행위원장 정성일, 박기용이 말하는 디지털영화의 미래

박기용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디지털영화와 맺어온 인연은 남다르다. 박기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연출작 <낙타(들)>는 한국 디지털영화의 미학적 가능성을 제시했고, 정성일 평론가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공동프로그래머로 누구보다 먼저 디지털영화의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공동집행위원장인 감독과 평론가가 디지털 영화의 미래와 가능성, 염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성일, 박기용

박기용 1986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다닐 무렵 충무로는 굉장히 답답했다. 졸업한 뒤, 저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고, 자연스럽게 대안을 고민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등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도 당시 박광수 감독님의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첫 장편 연출작 <모텔 선인장>개방 직후에 <셀레브레이션>을 개봉관에서 봤는데, 대안적인 영화 만들기의 좋은 예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 장편을 준비하다가 투자가 안되면, 디지털영화를 고려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막막하더라. 분명히 필름과는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할 텐데, 거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보다 먼저 디지털로 <눈물>을 만든 임상수 감독이나 <나비>의 문승욱 감독에게 물어봤지만 마찬가지. 사실 <눈물>을 찍기 전에 임상수 감독이 나를 찾아와서 프로듀서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디지털로 싸게 찍으라고 조언한 것도 나였다. 어떤 카메라가 좋고, 후반작업은 어떻게 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등 기술적인 정보는 얻었지만, 미학적인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정성일 <눈물>은 그저 슈퍼 16mm로 찍어도 좋은 영화를 디지털로 찍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이번 영화제 기간 중 정말 묻고 싶은 게 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디지털영화로서의 가능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사용된 바이퍼 카메라의 미학을 정정훈 촬영감독에게 묻고 싶다.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를 봤을 때 쇼크를 받았던 건 그 영화가 그런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한국 디지털영화의 특징은 싸고 간편하다는 것일 뿐 디지털이라는 테크놀로지를 영화가 어떻게 견디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박기용 <낙타(들)>는 필름으로 만드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어야 한다는 원칙만 있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조명은 하지 않는다고 정했지만, 막상 촬영에 임박해서는 후배였던 촬영감독이 조명감독을 데려오더라. 아무래도 불안해서 조명 없이는 안 되겠다고. 하지만 첫날 촬영을 해보니 영 아니었다. 단지 필름카메라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디지털카메라를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틀 정도 촬영한 뒤에 잠시 멈추고 다시 논의했다. 그리고 조명없이, 자연스럽게, 아니 자유롭게 바꿔나갔다. 처음부터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지만 점차 나아지더라. 이와 함께 디지털영화 제작의 좋은 점은 배우의 선택이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저예산영화의 경우 아마추어 배우와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대부분의 아마추어 배우들은 필름카메라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낙타(들)>의 여배우는 아마추어는 아니었지만, 남자주인공 이대연씨와 다릴 영화가 처음이어서 걱정이 많았다. 카메라 공포감까지 있었다. 그러나 실제 촬영할 카메라를 보여주고, 둘이서 서로를 찍게 했더니, 이건 그냥 집에서 사용하는 카메라 아니냐면서 재밌어했다. 또 시장판에서 촬영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현장성을 얻기가 용이하다는 얘기다. 디지털영화가 일반화되면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혹은 엷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인데, 디지털의 그런 특성 때문인 것같다. <동>과 형제자매 같은 영화인 <스틸 라이프>는 그 좋은 예다.

정성일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느낌 것이, 최근의 다큐멘터리들이 정말로 강력하게 디지털영화의 미래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의 놀라움은 필름이 확보하지 못한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 그리고 장소의 물질성을 확보한 것. 아주 무절제한 낭비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스틸 라이프>에서 지아장커는 자오타오를 세워놓고, 뭔가 갑갑함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라, 라고 말한 뒤 다섯 시간을 기다렸다. 결국 자오타오는 선풍기 앞에서 옷깃을 털며 손부채질을 해 보였다. 다섯 시간 만에 얻어낸 이 순간은 4시간 59분의 소비가 없었다면 얻을 수 없었다. 필름은 절대 불가능하다. 디지털은 시간의 물질성을 훔칠 수 있고, 그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디지털영화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준 영화 중 하나가 왕빙의 <철서구>다. 관객으로 하여금 9시간을 견뎌야 하는 새로운 체, 새로운 미학에 동참하기를 종용하는 이 영화에는 디지털영화의 낭비의 미학, 무절제의 미학이 있다. 어쩌면 이런 점이 영화를 망칠 수도 있다. 장인이 아니면 붓을 들 수 없고, 덧칠을 허락하지 않는 프레스코화의 위대함이 유화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것처럼, 음악에서 샘플링과 믹싱이 등장하면서 위대한 연주자들이 사라진 것처럼, 무엇을 부정하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엄격한 질문이 필요하다.

박기용 디지털영화가 대두하면서 아날로그 영화가 100년간 만들었던 규칙 중 상당수가 쓸모없어졌다. 그중 하나가 가상선이다. 디지털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대다수가 영화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상선이 뭔지 알 리가 없다. 설사 안다고 해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디지털로 막 찍어서 편집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무시되기도 한다.

정성일 그러나 오즈 야스지로나 앨프리드 히치콕의 위대함은 가상선을 지키려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에 있었다. 고다르는 그걸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점프컷을 생각해냈다. 디지털영화가 가상선을 무효화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박기용 디지털영화 제작은 100년의 규칙을 어기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얘기다. 이미지 메이킹과 이미지 테이킹이라는 두 가지 영화 만들기의 방식 중에서 디지털영화는 후자를 중요시한다. 조명을 하고, 연기 리허설도 시키고,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을 정하는 것이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찍어놓은 소스를 가지고 솎아내는 작업이 이미지 테이킹이다. <낙타(들)> 역시 뭔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다 보니 이런저런 것을 정해놓지 말고, 가상선도 넘어가면서 일단 찍고 보자는 생각을 했던 거다.

정성일 필름영화가 영화와 정치, 영화와 미학의 문제를 중요시했다면, 디지털영화는 영화와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정성일, 박기용

박기용 이번 영화제 초청작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텐>은 디지털영화의 전범이고 클래식 같은 영화다. 그 영화를 필름카메라로 찍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지프에 소형 디지털카메라 두대를 운전석과 조수석에 설치하고 동시에 찍은 영화인데, 모르긴 몰라도 수십 시간은 찍었을 거다. 정해진 대본도 없이, 아마추어 배우들을 데리고 대충의 가이드라인만 만들어 준 상태에서.

정성일 아마도 <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좀더 비평가답게 말하자면, 고다르의 1959년작 <네 멋대로 해라>와 비슷한 자리를 차지할 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다음에 키아로스타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카메라 세워놓고 10분간 풍경 보여주는 것밖에 없을 거다. 마치 세잔이 마지막 풍경화 이후 더 이상 밀고 나가지 못한 것처럼 키아로스타미가 <텐>에서 결국 백조의 노래를 부른 건 아닐까.

박기용 키아로스타미의 후배들이 밀고 나가고 있지 않나.

정성일 음, 그 방법으로 그보다 더 나아간 영화는 없다. 사실 그 방법이 뭔지도 모르겠다. ‘after<텐> 제너레이션’이 배운 것은, 저렇게 찍으면 안 되겠다, 는 것 정도 아닐까. 진심으로 <텐>이 <네 멋대로 해라>같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참혹한 결말을 맞은 영화다.

박기용 <텐>이 없었다면, 김경북 감독의 <얼굴없는 것들> 같은 영화도 없었을 거다. 그 영화가 대단한 미학적 성과를 얻은 건 아니지만, 미학적으로 볼 때는 디지털영화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1960년대 미국의 뉴아메리칸 시네마는 기술 발전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큰 카메라로 촬영하다보니 제대로 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진짜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고, 16mm 같은 작은 카메라가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동시녹음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를 찍는 방식 역시 대두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고민이 있었을 거다. 창작자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낼 것이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문법이 생겨날 거다. 문법을 아예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얽매이지 말자는 거다.

정성일 그 점에서 지아장커가 <스틸 라이프>에서 데드타임(dead time: 서사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시간)을 버리고 그 이후를 사용한 것, 스와 노부히로의 <퍼펙트 커플>은 인물과 카메라 사이에 디지털적인 거리를 새롭게 확보한 것. 마이클 만이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매직아위를 잡아낸 것은 새로운 출발점이라 할 만하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디지털을 손에 들었을 때, 거기서 얻고자 했떤 새로움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필름과 디지털을 병행하는 가와세 나오미는 필름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디지털을 택할 때는 곧장 디지털의 리듬에 대해 순종한다. 어떤 영화가 디지털을 선택한 이후 디지털적인 시간을 확보했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1960년대 모더니즘영화의 감독들이 데드타임을 발견한 것처럼 어떤 디지털영화는 그러한 디지털 시간을 확보했다. 아직도 많은 디지털영화들이 데드타임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그 영화들이 디지털에 들어오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박기용 디지털영화 초기에는 어떻게 하면 필름처럼 보이게 하는가가 관건이었다. 필름룩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고, 디지털은 왠지 값싸보인다는 생각에 필름처럼 보이고 싶어했으니까. 나 역시 그런 걸 고민했고, 그에 따른 테스트도 해봤다. 하지만 필름처럼 보이려는 것은 일종의 사기인데, 그게 꼭 필요한가 싶더라. 물론 디지털 룩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특정한 이야기에 맞는 영화의 룩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정성일 전적으로 동의한다. <네 멋대로 해라>는 모든 장비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지만, 영화의 구도는 고전영화를 그대로 따랐다. <비브르 사 비>나 <경멸>로 이어지면서. 점프컷에 어울리는 구도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디지털 룩을 받아들일 때는 녹음방식까지 달라져야 한다. 그 점에서 <퍼펙트 커플>의 사운드는 굉장히 놀라웠고, 이번 기회에 꼭 극장에서 체험하길 권한다. 디지털 룩, 디지털 컴포지션(구도), 디지털 디스턴스(거리). 세 가지 모두를 찾았을 때 디지털영화에 맞는 새로운 화면이 가능해질 거다. 여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영화가 다큐멘터리, 초창기 영화가 뤼미에르 형제에게서 세상을 보는 시네마 룩을 배운 것처럼, 디지털 극영화는 디지털 다큐멘터리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박기용 디지털영화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영화가 게을러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학생영화나 독립영화에서 단편으로 찍을 것을 장편으로 찍다보니 이야기가 느슨하고 엉성해 지기도 한다. 결국 돈의 문제다. 최근 들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당장 영화로 만드는 게 필름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디지털은 확신과 방법만 있다면 얼마든지 촬영할 수 있다. 예전의 상업영화는 돈이 많이 들고, 그 돈을 회수하지 못할 영화는 만들 기회부터 차단했다. 하지만 누가 그걸 돈내고 보냐는 말을 듣고 제작을 포기해야 했던 영화들이, 예산이 아주 작아짐에 따라 다양하게 가능해질 수 있다.

정성일 사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쟁점이고,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중립적인 의미에서의 게이트키핑 장치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장편을 만들기 전에, 이 시나리오가 의미가 있는지, 돈을 쓸 만한지, 스탭들은 참여할 만한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처럼 디지털 장편이 마구 쏟아져 나오면서, 의미있는 영화가 몰락할 우려가 있다. 그러다보면 굉장히 선정적인 영화나 사회적으로 긴급한 토픽을 잘 잡아낸 영화가 무조건 뜨게 된다. 영화가 너무너무 형편없는데, 혹은 영화의 윤리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데 평론가들은 정치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굉장히 오래 생각해야 의미를 알 수 있는 영화들이 밀쳐나게 될 거다. 더욱 큰 문제는 영화를 막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게 디지털이 가는 길이라고 오해하게 된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시대라고 부르고, <괴물>을 인구 4700만명 중 1300만명이 본다. 그런데 시네마테크에 찾아가는 사람은 750명. 이들이 디지털영화를 게이트키핑할 수 있을까.

박기용 내 생각에는 지금이 일종의 과도기 같다. 예전에 극장에서 성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을 때, 온갖 허접쓰레기 영화들이 쏟아졌지만 성공한 건 하나도 없었다. 디지털영화는 이제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여러 문제가 산재한 것이 당연하다. 아쉬운 건 아직도 이에 대한 학문적이거나 산업적이거나 미학적인 진지한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정성일 물론 새로운 디지털영화들에 완성된 미학을 요구하는 건 너무 이르다. 그러나 디지털이 세상과 만날 때 영화가 이를 어떻게 중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질문의 스펙트럼이 풍요로워지기를,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기꺼이 수용할 만한 관용의 태도가 생기기를 바란다.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새로운 스타나 감독, 이야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테크놀로지였다. 유성영화, 컬러영화, 시네마스코프가 나타날 때, 이전의 사고와 단절하고, 영화는 진화했다. 8mm, 16mm, 비디오가 나타나면서 영화는 계속해서 도전적인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디지털이 도착했다. <트랜스포머>가 3일 동안 2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단지 그 영화가 물량공세로 배급하는 할리우드 영화이기 때문은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많은 이들이 35mm 필름으로 만들어진, 큰 극장에서 온갖 테크놀로지로 떡칠한 화면을 사운드 효과와 함께 보는 것이 진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예술과는 다른 현상이다. 문학이라고 할 때, 몇 페이지의 길이에, 어떤 이야기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장편, 중편, 단편 소설이 있고, 그외에도 시, 에세이가 있다.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과 소설, 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상으로서의 영화와 개념으로서의 영화를 정확히 일치시킴으로써 영화를 협소하게 만든다. 그것을 떼어내야 한다. 즉, 블록버스터와 영화는 분리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디지털은 영화사 100년간 가장 효과적으로 그 분리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디지털로 인해 만드는 사람의 민주주의가 도래했다. 8mm, 16mm, 비디오가 있었지만, 보는 사람은 여전히 수동적인 자세를 유지한 채 영화는 어떤 것이고, 이런 식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디지털은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의 영화 만들기를 보면 들뢰즈의 예언,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실현된 느낌이다. 죽기전에 들뢰즈는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영화에 대한 책은 <이미지-운동> <이미지-시간>으로 끝났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세 번째 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책의 제목은 <이미지-디지털>이 될 것입니다.”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우리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자기의 영화관인 블로그에 자기가 찍은 폰카영화를 상영하고, 블로그를 찾아온 곽객인 방문객에게 리플을 받으면서 말이다. 나는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영화를 만들었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게 항상 아쉬웠다. (웃음) 하지만 다행히도 역사는 나에게 두 번째 영화의 천지창조를 목격하게 해줬다. 이 영화제를 찾을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다. 당신은 동시대에 가장 멀리 나간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미래의 영화에 동참하게 될 거라고. 이 영화제의 컨셉은 타임머신이라고.

박기용 사실 영화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이 영화제가 그저 행사로만 끝난다면 굳이 참여하지 않았을 거다. 단지 영화제가 아니라, 디지털영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논의하고, 감독들이 더 나은 작품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주변 사람들은 요즘 날 보고 디지털영화 전도사 같다고 그런다. 그러면 이번 영화제는 일종의 부흥회인가? 뭐, 우리 둘이서 전도사가 돼서 신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웃음)

정성일 영화제에 와서 즐기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미래의 영화가, 미래의 디지털영화가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에게 경쟁부문 영화 20편은 분명히 도전이 될 거다. 이 기회에 자신을 테스트해보는 건 어떨까. 이 스무명 중에 5년 뒤에 지아장커, 아핏자퐁 위라세타군, 에릭 쿠가 될 사람이 누구일지 내기를 걸어보라. 영화에 대한 안목을 두고 벌이는 일종의 도전 말이다.

진행 장한석 · 정리 오정연 · 서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