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DVD』 2005.11.Tip

the Cinema|정성일, 정성일 식으로 말하다

영 화 제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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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화 광 들 을
위 한 안 내 서

가을이 오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들뜬다. 아마도 부산영화제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은 일년에 한번 영화 순례를 떠나는 기분으로 부산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지금 지구상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의 동시대의 기분을 잔뜩 느끼고 돌아오실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읽으실 즈음에 영화제는 이미 끝난 다음이며, 그래서 더 많은 분들에게 이 글은 슬프게 읽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부산에 거주하는 분들을 제외하고)누구나 가을에 휴가를 얻어 부산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영화제에 가는 것만이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게다가 그 영화들은 영화제에서 상영된 다음 여차저차한 경로를 통해서 다시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걸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래도 만일 당신이 영화제를 사랑한다면 한번쯤 그곳에 가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평소 영화를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왕따당하던 당신과 똑같은 사람들 수백명이 함께 우글거리면서 점심도 그저 샌드위치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대신하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영화를 보겠다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면 영화를 보기 위한 모든 헤프닝이 용서되고, 영화관에서 당신의 예상치 않은 열정이 존중된다. 이를테면 만약 당신이 메가박스나 CGV 같은 멀티플렉스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감동받은 나머지 영화가 끝난 다음 기립박수를 보내면 아마도 당신 곁에 앉았던 연인 커플들은 ‘재수 없다’ 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갈 것이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당신의 기립박수는 옆에 앉았던 관객들로부터 지지받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옆에 앉은 그 누군가와 함께 밤새 광안리 포장마차에서 지금 막 보고나온 영화에 관해 열정적인 토론을 나눌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영화가 끝난 다음 당신의 궁금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지구 저 멀리에서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무대 위에 선다. 그리고 당신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몇 차례 감독과의 대화와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면서 얻은 한 가지 교훈이 있다. 세상의 모든 감독들은 그가 아무리 위대하고 유명하다 할 지라도 자기 영화를 본 모든 관객들의 질문을 경청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응원의 뜻으로 영화제를 소개할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부산영화제에서 이미 재미를 붙인 다음 다른 영화제를 기웃거리거나 혹은 부산영화제를 놓친 마당에 혹시 다른 영화제가 있을까,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가이드이다. 우선 가장 말리고 싶은 영화제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칸 영화제이다. 당신이 영화 저널에서 일하거나 혹은 마켓 담당자가 아니라면 이 영화제를 가는 건 거의 미친 짓이다. 우선 미안하게도 당신이 무작정 이 영화제를 찾아가면 단 한편의 영화도 볼 수 없다. 이 영화제는 자기 영화제를 소개할 수 있는 공식적인 지면을 갖고 있는 프레스들에게만 카드를 지급한다. 그것도 네 가지 종류를 등급별로 주는데 한국에서 온 기자는 일간지를 제외하면 모두 세 번째 등급인 파란 카드를 준다. 이 등급은 아무리 일찍 영화관 앞에 줄을 서도 골드 카드와 붉은 카드가 모두 입장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다. 만일 기어이 영화를 보려면 마켓 카드를 사야 하는데 20만원을 상회한다. 이것도 아무 영화나 보는 게 아니고, 제한 등급이다. 만일 아무 영화나 원하는 대로 보고 싶으면 1백40만원 정도를 주고 카드를 사면 된다. 물론 이걸로 모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이 기간 동안 머물 호텔을 구하는 것도 역시 전쟁이다. 대부분 한 달 전 정도에 예약이 끝나고 그 다음은 돈으로 해결하는 도리밖에 없다. (역시 자본주의!) 물론 돈이 많으면 전 세계 어느 영화제를 가도 편안하다. 하지만 그래봐야 하루에 아무리 열심히 영화를 보아도 여섯 편 이상은 불가능하다. 이건 내 경험이다. 게다가 인기 있는 영화는 부지런함을 더해야 한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칸보다는 역시 베를린이나 베니스가 영화를 보기에는 훨씬 편하다. 베를린 영화제는 칸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직적이고, 게다가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요구하면 정확하게 해답을 준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분명하고, 영화를 보기에도 훨씬 편하다. 그러나 베를린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구태여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결국 영화제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베를린은 지난 10년간 한 번도 만족스러운 목록을 제시하지 못했다. 2월달의 베를린의 춥고 우중한 날씨도 여기에 한몫 거든다. (독일)관객들은 점잖지만 지나치게 가라앉았고, 따라서 흥분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제는 당신이 영화 저널이나 마케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반길 것이다.

8월말, 혹은 9월초에 열리는 베니스 영화제는 사고가 많기로 악명 높다. 우선 이 거만한 관광지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상 마르코 광장의 저 우아함이란!), 그만큼 당신의 주머니를 위협한다. 모텔은 거의 여인숙 수준인데도 유럽의 별 셋 이상의 호텔의 돈을 요구한다. 만일 숙박을 정하지않고 이 영화제에 가서 유럽에서 제일 비싼 호텔에 머물 생각이 아니라면 길거리에서 자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이다! 게다가 공항에 내리면 "소매치기를 주의하시오"라는 위협적인 문구가 보인다. 영화제는 상영사고가 빈번하고, 게다가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이 영어가 안 된다.(그 대신 대부분 불어가 된다) 하지만 영화 목록은 베를린보다 훨씬 다양하고, 게다가 칸보다 (덜 유명한 영화를 가져온 대신) 더 흥미진진하다. 한 가지 비밀, 역시 이 게으르고(!) 비합리적인 운영으로 유명한 이 영화제는 프레스센터에 가서 시침 뚝 떼고 큰 소리로 담당자 오라고 하면서 내 카드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면 (물론 신청한 적이 없다 *^^*) 잠시 후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진짜 (임시)카드를 준다. 베니스 영화제는 이상할 정도로 인간적인 구석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이탈리아인들의 기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문제를 이곳을 찾아온 사람을 위해서 ‘하여튼’ 해결해준다. 이런 일이 칸이나 베를린에서는 어림도 없다.

만일 당신이 일 년 동안 지구상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한 눈에 보고 싶다면 9월에 열리는 토론토 영화제가 최고의 선택이다. 영화제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토론토 영화제를 지금 영화제 중의 영화제, 혹은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을 위한 영화제라고 부른다. 그건 이유가 있다. 토론토는 처음부터 경쟁부문을 포기했다. 그런 다음 토론토는 베를린, 칸, 베니스 영화제에 초대받은 중요한 영화를 모두(!) 부른다. 게다가 토론토는 북미 지역 전체의 마켓 기능을 하기 때문에 모든 영화들은 초대받지 못해서 안달이다. 또한 영화제가 부르면 거의 모든 감독들이 달려오고, 영화제는 칸과 정반대 방식으로 관객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영화제는 프레스들에게 아무 혜택이 없으며, 마켓 담당자들도 관객들과 함께 본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영화를 본 다음 카페에서 짐 자무쉬를, 차이밍량을, 아른 데스플레생을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영화제들이 좀 진부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를테면, 머야! 부산에도 모두 오는 영화들이잖아!라고 푸념을 늘어놓을 당신을 위해서라면) 최상의 영화제는 네덜란드에서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열리는 로테르담 영화제이다. 로테르담은 지금 지구상에서 내가 매년 가고 싶어하는 최상의 영화제이다. 우선 이 영화제는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에 오는 영화들이 매우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로테르담은 신인감독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칸에서 감히 부를 엄두가 나지 않는 영화들에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94년에는 9시간 45분의 상영시간으로 정말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왕빙의 다큐멘터리 <철서구>를 불렀다. DV 카메라 한 대를 가지고 센양의 철가 공장지대에 들어가 이루어낸 이 영화는 이 지역의 삶을 마치 그 자체의 리듬처럼 그려낸다. 그러더니 올해에는 필리핀 영화의 재발견이라고 부를 만한 라브 디아즈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소개했다. 영화는 지난 10년간 촬영되었고, 상영 시간은 무려 10시간 25분에 달한다. 단지 길다는 것 뿐만 아니라 더 없이 지루하다. 이런 영화들을 영화제에 상영하면 하루종일 한 개관에서 단 한편만을 소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로테르담은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해 본 내 경험으로 그런 결정은 정말 쉽지 않다. 이런 영화의 경우에는 영화제에 관련된 수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보는 쪽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영화를 한 번 보고 나면 영화제 기간 내내 다른 영화를 보는 일에 대해서 그냥 지치게 만든다.

비교적 로테르담과 성격이 비슷하긴 하지만 8월에 하는 로카르노 영화제는 이제는(좀 야비한 표현이긴 하지만 쉬운 말로) "맛이 갔다". 아마도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둘러싼 오랜 진통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다. 스위스 휴양지인 이 곳은 매우 아름답고, 게다가 피아짜 그란데 광장에서 하는 야외 상영은 장관이지만, 영화를 보러 그 산 속 깊은 곳에 있는(취리히 공항에서 내려서 기차를 세 번은 갈아타야 한다) 매우 비싼 (역시 스위스!) 영화제에 가기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혹시 가더라도 절대 택시를 타면 안된다. 15분 정도 택시를 타면 8만원 정도의 요금이 나온다. 이런!

그런 다음 세 개의 영화제는 취향이다. 격년제로 열리는 일본의 야마가타 영화제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다. 게다가 이 영화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진지한 영화제일 것이다. 그리고 단편영화를 보고 싶다면 1월말에 열리는 클레르몽페랑 영화제가 최고이다. 특히 이 영화제에는 영화에 관심있는 프랑스 전국의 대학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데 영화 상영이 끝나면 반응도 즉각적으로 튀어 나오고(야유와 찬사!) 정말 새벽6시까지 상영관 앞에 있는 카페에서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밤새 토론을 한다. 물론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시아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테이블에서 모시고 싶은 사람이 된다. 지금 아시아 영화는 유럽에서 굉장한 인기이다. 그리고 부천(과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가 가히 압권이다. 이 엽기적인 영화제는 관객들이 웬만한 하드 고어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머, 내장을 꺼내서 줄넘기를 하거나 머리 뚜껑을 열고 순두부지리 탕을 해먹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이 영화제에서 가장 대접을 받는 영화들은 ‘역시’ 일본 엽기영화들이다. 미이케 다카시는 여기서 떴고, 그런 다음 로테르담을 거쳐서 칸까지 왔다. (아마도 이 말을 들으면 대충 이 영화제들의 마피아와도 같은 커넥션이 이해될 것이다) 내가 이 영화제에 갔던 해에는 1950년대 일본 귀신영화들 회고전이 있었는데 무려 46편이나 불러서 거의 망연자실했다.그 철저함이란! 그걸 매일 밤새 여섯 개의 영화관에서 철야로 상영하는데 그게 미어터지듯이 찬 다음 소리소리 지르면서 본다. 그러고 나면 정말 낮에는 그냥 잠만 자고, 밤이 되면 좀비처럼 기어나와서 영화를 보게 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봐야 소용이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 세상에서 가장 가치없는 책은 (내 생각에) 여행에 관한 소개이다. 그건 자기가 한번 겪어보는 게 최고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저 반대편으로 날아가 지구상에서 당신처럼 영화에 미친 인간들이 몰려드는 영화관에서 함께 소리 지르는 체험을 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그 곳에서 결국 영화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