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ian』 2000.10.(12호)본인인터뷰

제 글이 싫은 분은 다른 잡지를 보십시오
키노 편집장 정성일

[키노] 집단명사. 1995년 5월에 창간되어 이제까지 (두 번을 거르고) 67권의 책을 만들었다. 많은 전사자를 냈으며, 새로운 희생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매년 1월호에 편집부의 그 해 10 베스트 영화를 선정하여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동지들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의 베스트 10영화를 만들어 함께 소개한다. 언제나 인터뷰를 최상의 영화 소개라고 믿고 있으며,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는 우정이며 최고의 미학은 작가주의라고 믿는다.

 - 『키노』, 2000년 9월호에서

[정성일] 개인명사. 1959년 출생하여 이제까지 (중간에 좀 거르고) 영화 잡지의 편집장으로 있다. 영화에 대한 많은 비평을 했으며, 때론 노선이 다른 새로운 희생양들을 미필적 고의로 만든 적도 있다. 자기가 보고 싶은, 듣도보도 못한 영화를 간혹 선정해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의 자괴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자기가 인터뷰 할 때는 정말 감칠맛 나고 명료하게 짚어가지만, 막상 자신을 인터뷰할 때는 사진도 맘대로 못 찍게 한다. 그의 이데올로기는 알 바 없으며 다만 그가 국내 최고의 영화운동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은 믿는다.

 - 『북키앙』, 2000년 10월 1일자에서

 근황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바쁘죠. (웃음) 일단 키노 편집장 일이 제일 바쁘고, 제2회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준비할 일이 많아서 바쁘고... 또 고정적으로 하고 있는 강의도 있거든요, 이래저래 바쁩니다.

 지난 95년 5월 영화 전문 잡지 『키노』가 창간됐습니다. 『키노』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탄생했나요?

 사적인 이유와 공적인 이유를 함께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먼저 89년에 『로드쇼』란 영화잡지가 창간됐을 때 제가 편집장이었습니다. 창간을 할 때 '영화 저널'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저는 잡지가 어느 정도 상업적인 베이스를 마련하면 그 다음에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순진하거나 어린 발상이었나 봅니다. 전 그 때 스물아홉 살이었습니다. 어쨌든 3년 5개월만에 사표를 썼습니다. 다시는 잡지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한동안 『말』지와 『한겨레신문』에 영화평을 썼고, 라디오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에서 고정패널로 영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것이 일종의 파워폴리티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보적일지라도 나름의 편집 방향이 있기 마련이고, 결국 나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드는 저널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 무렵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 중고등학생이 『로드쇼』를 본다면, 그가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도 같은 느낌으로 그 책을 볼 수 있을까? 즉, 잡지마다 구독층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양성을 가진 문화적인 산물이 있을 때 한 나라의 문화가 다양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 생각에서 『키노』가 창간이 되어도 『로드쇼』 등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키노』는 영화 마니아들에게 일종의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즐기려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어렵고 고집이 센, 강건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저는 그 문제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여러 개의 영화잡지가 있기에 독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잡지뿐만 아니라 요즘은 신문이나 인터넷에도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잡지 한 권쯤이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할겁니다. 우리가 싫은 사람은 다른 잡지를 보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지난번에 서태지가 컴백하며 자신의 은퇴 번복에 대해 입장을 밝힌바 있습니다.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고 할 이유도 느끼지 못하지만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결정을 번복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저는 이게 맞다고 봅니다. 또한『키노』는 문화 잡지입니다. 문화에 대한 논쟁을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견해가 없다면 더 이상 문화가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당신은 "인터뷰는 최상의 영화 소개"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키노』의 심층인터뷰와 외국감독과의 현지 인터뷰는 정말 탁월한 영화 소개인 듯합니다.

 『키노』의 인터뷰는 그 나라말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왕가위 감독은 영어를 잘하지만, 그 역시 중국어로 생각하는 중국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어 통역자를 불러 중국어로 인터뷰를 합니다. 물론 유럽의 감독들은 거의 한국에 오지 않으므로 『POSITIF』(프랑스의 영화잡지), 『SIGHT&SOUND』(영국의 영화잡지) 등과 계약을 맺고 그 내용을 전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다만 우리는 인터뷰 기사를 편집하지 않습니다. 편집을 하다보면 문맥 속에 숨어 있는 텍스트들을 놓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키노』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외국영화소개인 듯합니다. 대부분 국내 개봉되는 외국영화를 소개하는데 반해, 키노는 현지에서 개봉됐거나 제작중인 영화를 소개합니다.

 『키노』는 저희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소개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습니다. 저희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보고 싶다고 사방에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영화수입자들이 그 영화를 가져옵니다. 보고 싶다고 계속 얘기하고 부추기고 달래고 얼러야 그 영화가 국내 극장에서 개봉됩니다.

 왕가위 열풍이 불기 직전, 당신은 발빠르게 그의 진가를 국내에 소개했습니다.

 95년 당시 저는 왕가위 감독의 열혈 팬이었습니다. 서울 변두리의 화양 극장에서 처음 <열혈남아>를 발견했습니다. 그 후 <아비정전>이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저는 그의 지지자였고 인터뷰를 위해 홍콩으로 갔습니다. 왕가위가 아시아 최고 감독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분명히 동 세대 영화에 어떤 흐름을 리드하는 감독 중 한 명입니다.

 당신은 '작가주의'를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주의'란 무엇입니까?

 영화 이론적으로만 얘기한다면 1956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논문을 『카이메 드 시네마』에 발표하며 "영화의 중심은 감독이 되어야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여기서 "감독이란 문학에서의 작가처럼 자기가 그것을 쓰는 것이고, 촬영, 배우 또는 여러 가지 모든 요소들이 그런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영화는 결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하는 선언을 했고, 그것에 대해 『카이메 드 시네마』는 "영화로 얘기하자", "작가의 정책"이라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그게 영미권으로 옮겨가면서 '작가주의'라는 말로 인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영화를 감독의 중심으로 놓고 다시 생각해보자", "영화라는 것은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보다는, '어떻게'에 방점을 두고 생각하자." 는 얘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롤랑 바르트가 작가를 얘기하고, 푸코가 이미 "작가는 누구인가"라고 얘기하고 작가의 죽음이 선언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가라는 것이 무척 낡은 개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질 들뢰즈의 말에 의하면 "'작가'라는 것은 개념적인 무대 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도 볼 수 있지만 개념세계 속에서 작가의 개념은 스스로 진화되어 왔고 이제 더 이상 구체적인 인물로서 작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런 의미에서 '작가'라는 것은 노동이 총화 되어 하나의 텍스트로 이행되었을 때 그것을 작동시키는 어떤 임무로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예를 들어 어떤 영화에서는 촬영이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형편없는 영화가 촬영감독의 어떤 새로운 시도가 될 수도 있고, 감독의 필모그라피만큼 동시에 촬영감독의 필모그라피도 중요시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한 배우가 단순히 연기자나 스타가 아니라 한 시대의 페르소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80년대의 미국 팝 문화, 대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마돈나는 굉장히 중요한 아이콘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하나의 작가적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겠죠. 우리가 받아들이는 작가주의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했으면 합니다. 사실 저희는 1950년대의 사람들처럼 순진하지 않습니다.

 다시 『키노』로 돌아가서, 예전에 'discourse'라는 멋진 꼭지가 있었는데...

 카피라이터 문제 때문에 없어졌습니다. 자본주의적이죠? (웃음)

『키노』의 기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물론 공채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다른 잡지에서 스카웃을 해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키노』는 다른 잡지들과 성격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수석기자도 키노 모니터 기자 출신입니다.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독자가 기자가 차장이 되고 편집장이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들에게 제 자리를 기꺼이 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감한 질문이지만, 우리나라의 영화 비평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요?

 아뇨.

 그 이유가 뭐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발표할 지면이 없습니다. 고작해야 원고지 10-15매 정도의 비평이라면 결국 비평이기 보다 시가 될 것입니다. 또 발표되는 지면은 대부분 대중적입니다. 신문에서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도 이미 100년이 넘은 예술입니다. 그렇다면 영화 속의 표현들이 일정한 시간을 지나는 순간 콘벤션(약속)으로 바뀌고, 또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기호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기호에 대한 역사적 관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암호로 보여질 뿐입니다. 예를 들어 '미장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호로 바뀌면 자신이 그 암호를 직접 풀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뜻으로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암호들을 알 수 있을 만큼의 교양을 일반 교육과정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음악을 배우지만 악보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술관에 갔는데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림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영화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화를 냅니다. 그런 알 수 없는 영화들을 관객이나 독자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설명을 해줘야 하고, 설명이란 항상 문장이 길어지는 법입니다. 이걸 압축하려니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흑백논리로 빠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도 그런 걸 요구합니다. 일테면 <강원도의 힘>에 대한 구구한 평론보다는 "영화 <강원도의 힘>은 별이 몇 개"라고 이해하고 싶은 겁니다. 영화 비평가들은 법관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 풍토가 그렇습니다. 물론 영화 비평가들의 직무유기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잡지를 창간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대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쉬리>가 개봉했을 때 당신은 "쉬리는 한국영화가 경제 논리와 자본의 독과점으로 규정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공동 경비구역 JSA>가 쉬리의 흥행기록을 넘보고 있습니다.

 <쉬리>와 <공동 경비구역 JSA>(이하 JSA)는 좀 다른 경우라 생각합니다. <쉬리>는 감독 강제규와 제작자 강제규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부귀를 누려보려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30억이라는 돈을 일시에 쏟아 부었고, 삼성이라는 기업이 장악한 배급망을 통해 블럭버스터를 만들자는 위험한 발상으로 시작됐습니다. 다행히 <쉬리>는 성공했습니다. <JSA>를 보면 감독이 돈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JSA> 속에서 박찬욱 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둘 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이유로, 이 두 편의 영화가 같은 방식으로 다뤄진다는 것은 박찬욱 감독에게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쉬리>와 <JSA>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JSA>가 사람들에게 완전히 오해받고 있는 것은 저 역시 유감스럽습니다. 이 영화는 분단의 화해를 목표로 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작금의 시대상이 <JSA>를 분단의 화해라는 이미지로 해석한 듯합니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이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게 지난 94년의 일입니다. 그 때 당신은 칸느 역사상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타란티노가 영화에 어떤 일을 했나요? 그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경선을 벌인 작품은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였습니다. 당연히 이 영화가 상을 받아야 했습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어떤 영화감독을 지지합니까?  

 왕가위 감독은 앞에서 얘기했고, 최근 제가 관심을 갖는 영화감독은 대만의 후 샤오시엔 감독입니다.

 <비정성시>의 감독 말이죠?

 예. 2년 전 칸느에 <해당화>라는 영화를 가져왔고, 올해 전주영화제에는 <남국재견>이라는 영화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샤오시엔의 영화에서 아시아가 어떻게 서구의 근대성을 끌어들이고 꺾어 나가려고 하는지를 봅니다. 이 사람의 영화를 통해 아시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배웁니다. 대만은 이제 겨우 민주화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비껴가지 않습니다. 서방세계의 역사가 근대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집행되는 요소들을 한국과 대만에서 똑같이 볼 수 있습니다. 또 북경도 그렇습니다. 북경에 갔는데 그 느낌이 처참했습니다. 70년대의 한국이었습니다. 도시의 미관이 어찌되든 아파트만 잔뜩 짓고 차는 누가 부서지나 쉬지 않고 달려가고... 어느 날 부자임이 명백해 보이는 한 일가족이 베스킨라빈스 창가 의자에 앉아 잘난척하는 딱딱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TGI가 그런 곳인가요? 서방 세계가 아시아를 짓밟고 휩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시아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전주 국제 영화제를 하면서 아시아영화 인디 포럼을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민족주의자를 상당히 경계합니다.

 한국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동지가 많습니까?

 한국 중심주의가 강합니다. 한국 영화만이 잘 돼야 한다... 물론 스포츠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영화가 최고가 되는 것이 지구상에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김홍도의 그림이 위대하면 르네상스의 그림들도 정말 위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키에로스타미의 영화 1편을 보존하는 것이 쓰레기 영화 100편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도 키에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고 배울 겁니다. '~바람났네'를 보고 영화를 배우지는 않을 겁니다. 다양한 문화와 교류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 골목대장이 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영화 이외에도 좋아하는 것이 있겠죠?

 음악과 그림을 좋아합니다. 제가 월급을 받기 시작하며 가진 취미가 음반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화집을 모으는 것도 좋아합니다.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하겠죠?

 제 마지막 직업이 될 겁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화를 만드는 것은 꿈입니다.

『키노』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영화에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친구. 『키노』는 교과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한 방식으로 분류를 하고 싶다면 당신이 갖고 있는 좋은 참고서 정도면 좋겠습니다. 교과서는 되는 순간 도그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저희가 바라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분류되기를 원치도 않습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는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글 / 김정희 candy@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