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0.01.03.시론

새천년의 영화에 부쳐; 2000년, 영화는 ‘진화’하고 있다

만일 영화가 입장료를 내고 영화관에 앉아서 구경하고 나오는 셀룰로이드 환등기 활동사진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20세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제 스스로 진화하고 있는 과정 속에서 디지털과의 만남을 통해 근본적으로 환골탈태하는 중이다. 그것은 영화에서의 테크놀로지 변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영화라는 개념이 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변화는 멀리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당신의 일상생활 안에서 삶의 풍경 자체를 바꾸는 이미지의 질적 변화가 진행중이다.

우선 그 첫번째 변화. 영화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개념이 될 것이다. 그 안에 아날로그 영화와 디지털 영화가 공존하는 것이며, 그들은 서로 전혀 다른 방식의 창조와 소비 영역을 얻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 영화는 산업적 의미에서 만들어지는 과거의 영화이며, 여전히 당신을 구경꾼으로 내버려둘 것이다. 디지털 영화는 당신의 손에 카메라를 들려줄 것이며, 테크놀로지의 의미에서 미래의 영화다. 과거의 영화는 당신을 앉혀놓을 것이며, 미래의 영화는 당신을 어슬렁거리게 할 것이다. 하나는 수동적이지만, 다른 하나는 능동적이다.

그 두번째 변화. 그럼으로써 아날로그 영화는 경제적인 의미를 얻지만, 디지털 영화는 정치적인 동시에 윤리적인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 영화는 점점 더 규모의 경제에 사로잡힐 것이며, 디지털 영화는 점점 더 삶의 안으로 파고들 것이다. 단순한 예. 아날로그 영화 '쉬리'의 소비 방식과, (중학생들이 만든)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와 (독립영화모임 빨간 눈사람의 민가협 유족에 관한 다큐멘터리) '민들레'와 (그 유명한) '0양 비디오'가 만들어낸 서로 다른 유통 방식의 차이는 이것을 그저 이미지의 테크놀로지적인 단순한 차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세번째 변화. 이미지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며, 동시에 세상을 조립하는 형식이다. 아날로그 영화는 그것을 계속해서 구경하게 만들고 상상하게 만들 것이다. 디지털 영화는 그 안에 들어가서 개입하고, 자기 방식으로 다시 보고 새롭게 조립하면서 세상을 수정하고 싶게 만든다. 아날로그 영화가 점점 더 커다란 구경거리가 돼가는 동안 디지털 영화는 빠른 속도로 스캔들이 되어간다. 그것은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이다.

그 네번째 변화. 아날로그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끌고 가지만, 디지털 영화는 소니가 이끌고 갈 것이다. 아날로그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지만, 디지털 영화는 테크놀로지다. 문제는 그 사이 어딘가 예술로서의 영화가 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날로그 영화는 과거의 아우라로 망설이게 만들고, 디지털 영화는 제작의 자유로 유혹한다. 창조는 정신분열 상태이고, 소비는 미분화된다. 모든 것은 자기의 의사소통 방식을 갖게 될 것이다. 같은 말이지만 모든 것은 제멋대로 갈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세기 영화의 메시지다. 우리는 이미지 안으로 표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