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육』 2005.01.본인인터뷰

특.집.. 우.정.의. 교.육.학, 혹.은. 그.들.에.게. 말.걸.기.

- 영화평론가 정성일

글 · 최연희 기자, 사진 · 장현주 기자

. . . . . . . . . “나는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만 영화감독인 후 샤오시엔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재작년 2월 타이베이에 갔을 때, 시간이 없다는 그의 비서의 말을 무시하고 기어이 졸라서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불현듯 나는 그에게 ‘당신에게 영화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사실 이건 매우 무례한 질문이다. 통역을 하던 분이 나를 돌아보며 그래도 괜찮으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후 샤오시엔은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러다니 생각난 듯 대답했다. ‘영화는 내게 세상을 대하는 예절입니다.’ 그 말은 내가 알고 있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소중한 말이 되었다.” (정성일, <삶의 자리에서>,《경향잡지》2002년 2월호)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영화를 택한 사람이 있다. 50여 년 전《까이에 뒤 씨네마》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잡지《키노》를 창간해 묻혀 있던 걸작을 세상에 선보인 이. 주술과 같은 언어로 심야 라디오 방송을 달구며 모든 영화광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이. 씨네필들의 열광과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수많은 ‘정성일 키드’ 를 탄생시켰던 이. 바로 영화평론가 정성일이다.

무례한 일임에도 나 역시 그가 후 샤오시엔에게 던졌던 질문을 돌려줄 셈이었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 영화의 무엇이 그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글쓰게 하고 공부하게 하며 성장시킨 것일까. 이것이 바로 우리 교육이 정말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세상과 만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설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그림, 심지어는 게임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저에게 그것은 영화였습니다.

제가 78학번입니다. 그것은 제가 72년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77년에 고등학교를 마쳤다는 뜻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 여전히 베트남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군대를 베트남에 보냈고, 열심히 반공 교육을 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에 한국군이 갔다는 일이 굉장히 ‘좆같은’ 일이구나라는 걸 이야기해 준 건 교과서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가수들이 부른 노래 가사였죠. 처음엔 ‘어떻게 이런 비애국적인 가사를 쓸 수 있단 말이냐’ 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찾게 되었고 그러다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프랑스문화원에서 <프랑스 대혁명>을 보고서야 로베스 삐에르가 얼마나 잔인한 인간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정치적 암투와 살해 끝에 창백하게 혼자 살아남은 로베스 삐에르의 벌벌 떠는 모습에서 이상하리 만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박정희 시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영화를 통해 저는 세상을 봤고, 세상의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알면 영화가 더 재미있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저에게 영화는 세상과 만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 방법으로 영화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의 그는 이모가 싸 준 김밥을 들고 혼자 소풍을 가야 했던, 한참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자, 점심 먹고 오세요” 하면 혼자 경복궁 처마 밑에 앉아 밥을 먹어야 했던 아이였다. 그것이 그가 집이나 학교보다 영화관을 더 편하게 여기게 된 이유이다.

‘국민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란 그렇게 많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영화에 빠져들면서 계속 생각하게 됐죠. 나는 왜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것인가, 나는 왜 영화를 선택했는가. 지금도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많은 학생들이 저를 찾아와요.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도 있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 영화를 하고 싶은데 그게 꼭 자기의 길인지는 모르겠다, 당신은 어떻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었냐…. 그런데 사실은 저도 제가 ‘왜’ 영화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그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말을 듣고 바로 그의 말이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우리에게 <안개 속의 풍경>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거장이다. 영화제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는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영화를 시작하고 싶은데 아직 결심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그리스 출신의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학사 관리가 굉장히 엄격한 프랑스 영화 학교를 다녔어요. 학생에게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학교의 제도를 따르지 않으면 가차 없이 퇴학시키는 곳이죠. 법이나 의술과는 달리 예술에 있어서 만큼은 확신이 없을 때 빨리 딴 길을 찾도록 해 주는 게 교육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한번은 고전 영화 콘티를 짜는 시간이었는데 그는 교수가 바라는 전통적인 방법이 싫었대요. 고민을 했죠. 결국 카메라가 빙빙 돌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찍는 이상한 방식의 구성을 들고 갔대요. 교수가 수업 시간에 그를 딱 보더니 콘티를 집어던지면서 “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네 천재성을 그리스에 가서 발휘하던지 아니면 학교 수업을 따라라” 라고 했대요. 그때, 밤새도록 고민하던 앙겔로풀로스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이거예요. “나는 영화를 원한다. 그런데 영화도 나를 원하는가?” 그는 “예” 라고 대답했고, 다음 날 바로 자퇴하고 그리스로 돌아가 그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죠. 저는 그의 질문이 영화를 선택하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이나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청소년, 아니, 여전히 삶의 방향을 택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나는 만화를 그릴 거야, 나는 음악을 전공할 거야, 나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 질문이다. 다른 삶도 당신을 원하는가? 만화도 당신을 원하는가? 영화도 당신을 원하는가? 그가 영화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 같은 무언의 질문에 “예” 라고 답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분명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도 당신을 원하는가에 대해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말 대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예’ 라고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일을 시작하라고 충고해야 한다.’ 이것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영화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정성일의 생각이다.

“예” 라는 대답이 재능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매우 슬픈 얘기지만, 모든 사람에게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저는 재능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들뢰즈는 동시대 철학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등사범학교에 가지 못한 인물이지만, 그들 중 가장 멀리 나아갔죠. 저는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어떤 욕망의 힘이 재능보다 훨씬 가치 있고 소중하며 때로 그 사람을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해 언제라도 “예” 라고 답하기 위해 어떻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장시킬 것인가. 그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가장 적실한 예로 그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영화인들 중 가장 주목하고 있다는 대만의 영화 감독 후 샤오시엔을 불러 왔다.

후 샤오시엔이 절 감동시키는 까닭은 그가 정말 위대하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그는 10대에 고아가 됐고, 간단히 말해 깡패로 살다 엑스트라와 연출부 생활로 영화를 시작했어요. 무슨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그가 처음 찍은 영화 두 편은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죠.

그런데 그 무렵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첫 번째 세대가 돌아왔고, 그 중 하나가 에드워드 양이었어요. 에드워드 양은 제대로 교육받고 해외 경험이 풍부한 교양 있는 사람이었고, 그에 비해 후 샤오시엔은 간단히 말하자면 무식한 양아치 출신이었죠. 어쨌든 둘은 친구가 됐고 에드워드 양이 불법 복제해온 거장들의 영화를 보며 후 샤오시엔은 불현듯 깨닫게 된 거죠. 아, 영화라는 게 나를 얘기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러더니 갑자기 이제까지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그리고 대만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시아 영화에서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과 카메라 사이의 디스턴스를 발견했고, 그것으로 세상 사는 사람들 얘기를 찍은 거예요. 카메라가 갖는 인간적 윤리가 어떤 것인가를 발견한 거죠. 세번째 영화에서 그는 갑자기, 누구도 감히 쫓아 올 수 없는 그런 영화를 찍게 된 겁니다.

후 샤오시엔의 얼굴 위로 그의 얼굴이 오버랩 됐다. 그는 어느 글에선가 고백했다. (후 샤오시엔처럼) 함께 영화를 공부하던 이들이 모두 유학을 떠날 때 자신은 온 집안을 통틀어 혼자 돈을 버는 가장이었노라,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혼자 숨죽여 울었노라고. 그러나 그 역시 후 샤오시엔처럼 누구도 감히 쫓아올 수 없는 평론가가 되어 우리에게 영화와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나서는 네 번째로 자기 아버지에 관한 영화를 찍었어요. 그 네 번째 영화는 정말 심금을 울려요. 한 장면 한 장면에 정말 진심이 담긴 거예요. 그 뒤, 이제 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것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비정성시>를 완성한 거죠. 역사를 다룰 때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사람 속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가를 화면에 담은 셈이죠.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속된 표현으로, 그냥 무너졌었어요. ‘와, 영화를 이렇게까지 (굉장하게) 찍나?’ 근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어요. ‘마흔두 살밖에 안 된 사람이 이 정도 수준의 영화를 찍어 버리면 다음 번엔 도대체 어쩌려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에 찍은 <희몽인생>은 뛰어난 영화였지만 저에겐 굉장히 지루했었어요. 그 다음에 찍은 <호남호녀>를 보고서는 굉장히 당황활 정도였죠. 엉망인 거예요. 그런데 실패했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가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영화를 부수어 버리고 있구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매너리즘을 부수기 위해 자신의 영화를 때려 부수고 있구나. 최고의 경지에 올라간 사람이 자기를 부수려고 결심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 모든 걸 제로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는 열번 째 영화 <남국재견>을 찍었고 이전과는 또 전혀 다른 위대한 영화가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후 샤오시엔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요. 왜? 나를 저만치 따돌리고 더 나아갈 테니까.

위대한 사람과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예술적 성과를 뒤쫓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 사람들이 성큼 성장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노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영화도 자신을 원하는가에 대해 “예” 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 자신 역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만큼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후 샤오시엔과 왕가위를 친구로 삼으며, 후배들에게도 질문한다. 당신의 친구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신을 얼마나 단련시키고 있는가.

그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벤야민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워지고,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논할 만큼 민감한 귀를 가지지 못한 것이 애통해지며, 집에 돌아가자마나 후 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보고 말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그와 친구가 되고 싶고, 제대로 소통하고 싶어지며, 그래서 성큼 성장하고 싶게 만드는 힘. 교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재미있게도 사실 그에겐, 동아리를 지도하는 역할이긴 했지만,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다.

애들이 직접 찾아왔어요. 영화를 배우고 싶으니까 동아리를 지도해 달라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나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곤 했죠. 영화 기법이나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고, 영화를 대하는 태도나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몇 개월 뒤에 아이들은 다큐멘터리를 찍어 왔고, 그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죠.

그 중에 한 장면이 친구가 무엇 때문인지 슬퍼서 막 울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카메라를 멀찌감치 두고 편집 없이 한 테이크로 찍었더라고요. 그래서 물었죠. “울고 있는 장면을 클로즈업하고 이리저리 편집했더라면 감동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왜 저렇게 찍었니?”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이 바로 영화를 대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니까.

그러니까 이 친구가 대답을 하는 거예요. “물론 클로즈업을 해서 찍으면 감동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애는 제 친구고 울고 있는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찍는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편집한다는 것은 친구의 감정을 자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말하자면 이것은 절대인 거예요. 영화에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이 있는 반면에 절대적인 게 있어요. 위대한 영화는 그 절대의 순간에 어떤 결단을 한 영화죠. 말하자면 전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것에 방점을 두었고, 아이들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세상을 만난 거죠. 친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배우고, 예의를 배우는 거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 거죠.

수많은 잡지에 수많은 글을 써 왔지만 그는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 내지 않았다. 글쟁이들의 생활고를 잘 알기에 어떤 우연한 자리에서 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어려운 작업도 아닌데 왜 책으로 묶어 내지 않는 거죠? 많은 곳에서 책을 내자고 하지 않나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제 글이 두고두고 읽힐 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내는 것은 두고두고 읽힐 만큼의 글이어야 하고, 저는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런 그가 엮은 책은 단 두 권이다. 한 권은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해 낸 것이고, 나머지 한 권은 김기덕 감독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영화를 내가 왜 좋아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한다. 조심스럽게 왕자웨이(왕가위)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어떤 영화가 좋은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에게 이끌린다. 그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든 사람의 진심을 알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영화가 결국 영화이다.” 이 마지막 말은 왕자웨이의 영화에도 여전히 맞는 말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의 진심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다. 또는 결국 그와 나는 같은 영화 정신을 믿는 사람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왕자웨이는 그걸 창조하고, 나는 그걸 보면서 넋을 잃는다.

《한겨레》2001년 4월 26일자


그렇다면 그는 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영화 교과서를 성문기본영어처럼 만들어 놓으셨더군요. 저는 영화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시에 대한 혹은 세잔느의 그림에 대한 이론이 저의 심금을 울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제 손으로 직접 시를 써 보지 않았으니 이 시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 길이 없는 거예요. 저는 영화에 대한 교육은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비로소 한 편의 영화를 볼 때에 그 영화의 의미를, 그 영화가 한 장면에 도달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그리고 그것이 세상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만해도 제가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순간은 대학교 2학년 때 직접 영화를 찍었던 순간이었어요. 책 100권을 읽은 것보다 저에게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 줬죠. 임권택이라는 한 인간을 만나고, 그의 영화를 들여다보고, 그를 인터뷰해 책을 만들었던 스물일곱 살에 두 번째 점핑을 할 수 있었고요. 저는 교육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실제로 창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시간을 제공하고, 그 작품들이 객관적이고 창조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런데 청소년영화제 심사를 맡다보면 정말 이상한 순간을 경험하죠. 하나같이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딱 맞게 만들어 오거든요. 상을 받는 게 대입에서 너무 중요해져 버렸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영화에 대해, 그 아이들의 관심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선택한 아이들이 경험할 법한 열정의 순간과 좌절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점들이 바뀌기는 했겠습니다만 경험적으로 학교에 관한 제 기억들은 어두운 것들밖에 없어요. 저는 제가 항상 필요로 하는 것들은 학교 바깥에서 얻어야 했어요. 항상 궁금했죠. 왜 학교는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대답해 주지 않을까? 지금 아이들이 블로그에 심취하고 학교 바깥에서의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겪었던 과정들의 반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이들은 천사로 대하는 것도 편견이고 반대로 악마로 대하는 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존경하는 사람으로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꼽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은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식들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반성해야 하는 것처럼. 저는 그때가 얼마나 소중한 시절이었는지 지금 점점 더 확연히 깨닫게 되는데, 꼰대 같은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 전에 본 영화는 기억이 잘 안 나도 10대 때 본 영화는 선명하게 기억나요. 10대 때 본 영화들을 부천영화제에서 다시 보고 제가 놀란 것 중 하나는 영화의 장면 순서가 제 기억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소중한 시간들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는데 과연 학교는 질문을 하고 있나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무엇을 찍어 주고 있는가’ ‘이것에 대해 학교는 성찰하고 있는가’ ‘혹시 그 중요한 시간들을 도둑질해 가고 있지는 않나’. 저는 정말 학교가 좀 더 창의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늘 이야기했던 ‘소통’ 일 것이다. “수많은 분들이 저를 인터뷰했지만, 제가 쓴 책을 읽고 저를 만나러 왔던 분은 정성일 선생님 혼자였어요.” 그가 반 년 전 인터뷰했던《그 놈은 멋있었다》의 작가 ‘귀여니’ 는 그를 그렇게 술회했다. 그것은 정성일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힘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아마, 교사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적실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인터뷰어도 읽지 않았던 귀여니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귀여니와 소통하기를 원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 삶의 테마 중의 하나는 공존이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귀여니가 자기 사이트에 소설을 쓰는 건 일기를 쓰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놓고 “니가 무슨 작가냐” 라고 이야기해선 안 돼요. 귀여니는 자신을 작가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거든요. 귀여니는 이모티콘을 사용해,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던 셈이에요. 저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표준어의 공포가 귀여니의 세계를 비판하고, 그것들을 부수어 버리려 하고, 혹은 설득만 하려고 들 때 귀여니는 더 단단히 문을 잠글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를 소외하는 과정의 반복이지요.

제가 귀여니를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간 귀여니 사이트의 한마디 때문이었어요. “자문자답을 해 보자. 열여덞 살의 나는 행복한가? 답. 나는 불행하다.” 열여덟 살 아이가 2002년 남한 땅에서 살아가며 불행한데 마흔네 살 먹은 내가 행복하면 그건 이상한 일이에요. 크게 잘못된 일이에요. 이 아이는 왜 불행한가? 무엇이 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저는 어른으로서 저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저만의 도리는 아닐 거예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어른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요.


귀여니는 우리 시대의 이모티콘(중의 하나)이다. *^^* 물론 이모티콘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무의미한 것이며, 언어 안에서 그저 비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학교의 문법책은 금지할 것이며, 어른들은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모티콘은 생겨난 것이다. 이모티콘은 말 그대로 권력이 있는 곳에서 생겨난 (귀여운) 저항이다. (…) 우리는 왜 소년 · 소녀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하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일에 서투른 것일까. 이모티콘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과 이해의 기호(이며 증후)이다. 혹은 사랑의 기호이다. 우리가 그것을 배울 때, 그만큼 우리는 서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배우려 하지 않는 동안 귀여니와 그의 친구들은 실타래처럼 서로를 이어 가면서 천일야화처럼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계속 쓸 것이다. 더 많은 이모티콘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기호들이 생겨나서, 결국에는 당신과 완전히 다른 언어를 갖고 더욱 문을 꽁꽁 걸어 잠글 것이다. 나는 귀여니의 팬클럽이다. 귀여니가 행복해질 때까지 나는 탈퇴할 생각이 없다.

《한겨레》2004년 8월 3일자


그래서 그가 교사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도 이것이다. 당신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도 당신을 원하는가. 거기에 “예” 라고 답하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아이들과 소통하며 노력하는가.


<화양연화>에서 리앙자오웨이(양조위)의 대사. 울지 말아요. 우리는 결국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잖아요. 다른 말이지만 결국 같은 말. 나는 힘들 때마다 결국 영화에 남은 것이 행복하다.

《한겨레》2001년 4월 13일자


운이 좋다면 우리는 곧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해도 생전에는) 그가 찍은 영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첫번째 단계는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영화에 대해 쓰고 싶어지고, 결국에는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어지게 된다. 정성일은 이미 오래 전 영화를 사랑하는 세 번째 단계에 도착했고, 그래서 그는 이제 영화를 쓰는 대신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자기 방에서 홈씨어터를 만들어 놓고 혼자 좋아하는 것만큼 한심한 건 없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옆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영화는 두 배만큼 풍요로워지고, 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열 배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는 날,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에 찾아가 그의 진심을 발견하고, 그의 영화에 대해 옆의 사람들과 오래도록 이야기하기를 기대한다. 그의 영화가 어서 우리에게 도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