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4.11.02.작품

2046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2046>은 <화양연화>의 속편이다.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이건 <화양연화>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는 아내의 남편 차우선생(량차오웨이)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의 아내 수리첸(장만위)과 만나던 동방호텔의 방 번호가 2046호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을 때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영연화를 본) 모두가 으쓱대면서 말한다. 2046은 호텔 방 번호이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2046년의 또 다른 숫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목에 속으면 안 된다. 2046은 무슨 수를 써도 갈 수 없는 방이거나, 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은 시간이다. 왕자웨이(왕가위)는 그 둘 사이에서 시종일관 머뭇거린다. <2046>의 미학은 그 머뭇거림에 있다. 거기에는 지나간 추억과 다가오는 역사 사이에 서서 시간에게 버림받은 육체(들)의 고백만이 넘쳐난다.

1966년, 그러니까 <화양연화>가 끝나고 난 다음, 혹은 중국 본토에서 문화혁명이 막 시작되었을 때, 차우선생은 홍콩으로 돌아와 동방호텔의 2046호실에 머물기 위해 그렇게 안간힘을 쓰지만 그러나 결국 거기 머물지 못하고 2047호실에 머문다. 그 옆방, 그러니까 추억에 머물러 있어야 할 2046호실은 열어서는 안 되는 방문이다. 혹은 지옥같은 영겁회귀의 블랙홀이다.

'화양연화' 가 걸작인 것은
'2046' 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의 비스콘티를 방불케 하는 그 호화찬란한 지옥의 영겁회귀를 왕가위는 (최상의 의미에서의) 매너리즘의 프레스코화로 만든다. 겹겹이 둘러 쌓인 빛과 그림자, 굳게 닫힌 방문 저 너머의 오페라 아리아, 구멍 뚫린 창문 사이의 시선, 그리고 호텔 옥상. 말하자면 여기에는 내용은 없고 텅 빈 형식만이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채워야 할 감정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왕가위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난 다음에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의 영화에서 첫 번째 2.35대 1 비율의 와이드 스크린에 담아서 텅 빈 채 그의 등장인물들을 그 공간에 버려 둔다. 그들은 대부분 화면 왼 쪽에 있거나 오른 쪽에 서서 상대를 바라본다. 더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장면이 상상선이 맞지 않아서 그들은 서로를 보지 못하고, 가까스로 마주볼 때의 장면은 거울에 반사된 뒤집힌 이미지일 때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마주 보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마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주 서서조차 차우선생과 동명이인의 수리 첸(공리), 바이 링(장쯔이), 왕징웬, 혹은 wjw1967(왕페이)은 중국 표준어와 광동어, 그리고 일본어로 그냥 자기 자신에게 독백할 뿐이다. 그들이 한 쇼트에 있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던지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사상 가장 외롭고 쓸쓸한 시간의 이미지들이며, 더도 덜도 아닌 기억의 변주곡일 것이다.

나는 이제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화양연화>가 걸작인 것은 <2046>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양연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억을 펼친다면, <2046>은 되찾은 시간의 추억을 다시 감싸안는다. 왕자웨이는 시간의 차이와 반복의 카바레 극장에서 유혹하는 걷잡을 수 없는 감상주의자 플레이 보이이다. 당신이 유혹에 넘어가든, 말든 그건 당신의 사랑에 대한 기억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