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4.11.02.작품

1994-09-07.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인 지 내년으로 1백년이 된다. 이 ‘과학혁명’으로부터 1백년이 지난 오늘날 영화는 각광받는 첨단산업,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자리를 굳혔다. 영화 1백년을 맞아 세계영화사를 다시 쓰는 ‘영화 100년, 영화 100편’을 수요일마다 연재한다. 영화평론가 안병섭·주진숙·김지석·정성일·이효인씨 5명이 작품 선정을 맡고, 이들을 비롯해 김홍준·김소영·이정하·강한섭·이용배씨 등 20여명이 필진으로 참여한다.편집자

메트로폴리스 (영화100년 영화100편:8)

영화가 역사 바깥에서 만들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만일 볼셰비키혁명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을 만들었다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1927)는 나치즘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의 친구였으며, 루카치가 증오하는 예술가였고, 벤야민이 찬미했으며, 아도르노가 비난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1890∼1976)은 건축학과 미술을 공부했으며, 괴테와 말러의 찬미론자였다.

그의 꿈은 원래 화가였으나 1차대전 참전중 부상으로 후송되어 병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독일 영화의 거물 프로듀서 에리 히 포머를 알게 되었고, <마브세 박사>(1924)를 만들면서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와 함께 독일 무성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 다. 그러나 무르나우가 회화적인 표현주의를 추구했다면, 랑은 건축적인 표현주의 양식을 완성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촬영감독 카를 프로인트와 귄터 리타우, 미술감독 오토 훈트와 에리히 케텔후트, 카를 볼프레히트 등 표현주의 영화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독일 최대의 촬영소 우파 스튜디오에서 3백10일에 이르는 대작 <메트로폴리스>의 촬영작업에 들어갔다.

미래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행복하고 안락한 부르주아들의 지상낙원이고, 또 하나는 온통 기계로 둘러싸인 노동자들의 지하감옥이다. 지상의 가진 자들은 지하의 빼앗긴 자들의 노동의 대가로 천국을 소유한다.

그러던 어느날 지상세계를 움직이는 자본가의 아들 프레더가 우연히 비밀의 문을 통해 그 끔찍한 지하세계로 내려가 천사같은 소녀 마리아를 알게 된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성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음모를 꾸민다.

그는 마리아를 납치해 마리아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지하세계로 내려보낸다. 가짜 마리아는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은 계급투쟁을 향해 전진한다.

랑이 만들어내는 이 어둡고 음침하면서도 무섭도록 열광적이고 흥분을 자아내는 계급투쟁의 우화는 공상과학영화라는 형식 속 에서 무성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압도적인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는 독일 영화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기 위해 당대 러시아 영화의 몽타주나 프랑스 영화의 아방가르드 전통을 모두 무시했다.

그 대신 영화 전체를 거대한 건축적인 유기체처럼 설계하고 그 속에서 집단적 움직임과 기하학적 구도, 빛과 그림자의 날 카로운 대비와 그 사이로 늘어선 기형적인 세트, 그리고 기계적인 화면과 카메라의 이동으로 표현했다. 아마도 어떤 표현주의 영화도 이보다 더 표현주의 정신을 구현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트로폴리스>는 위험한 결론으로 이끌린다.

그는 선동과 집단봉기의 계급투쟁의 결과를 공상과학영화라는 모호한 변명 속에서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변질시켰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자본가와 자본가 아들 사이의 화해로 변질해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끝나며, 혁명은 폭동으로 변질하고, 결국 부르주아 휴머니즘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메트로폴리스>는 무시무시한 인플레가 독일 전역을 휩쓸던 1927년 1월10일 베를린에서 개봉되었다. 두 사람이 이 영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또 한 사람은 할리우드 제작자 월터 윈저였다.

13년 뒤 프리츠 랑은 괴벨스의 나치 선전영화 제안을 거절하고 할리우드로 가 필름 누아르 영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그는 '실패한' 독일 영화의 바그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