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5.08.26.작품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영화100년 영화100편:48)

1964년, 서방세계 영화는 '실험주의 시대'라 불릴 만한 모더니즘과 컬트주의에 휩싸였다. 누벨 '까이에' 바그 악동들(고다르, 트뤼포, 리베트, 샤바를)은 막다른 영화로 치달렸으며, 돌아온 거장들(부뉴엘, 브레송, 펠리니, 베리만)은 형이상학적 주제에 매달렸다. 뉴욕에는 앤디 워홀 공장이 생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60년대 이미지의 계몽주의 프로젝트 속에서 가장 야심적 이고 놀라운 성공을 거둔 이는 두 사람의 러시아인이었다. 한 사람은 <안드레이 루블례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였고, 또 한 사람은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의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였다.

파라자노프(1924∼1990)는 평생 '저주받은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그루지야에서 태어나 아르메니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언제나 변방의 영화작가였다. 20년간 감옥과 감시 속에서 보낸 파라자노프는 옥중에서 8백점의 공예품을 만들고, 2백31편의 시 나리오를 쓰고, 23편의 구체적 영화계획을 세우고, 7편의 영화만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력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수사학 적으로도 변방의 영화, 바깥의 영화, 예외의 영화를 만들었다.

서방세계에서는 <불타는 말>로도 알려진 그의 세번째 영화 <잊혀진…>은 그 이후의 모든 영화감독들 (파졸리니, 고다르, 펠리니, 헤어초그, 레네, 데릭 자만, 배용균)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언제나 그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모스필름에서 영화를 만들던 파라자노프는 평생 동료였던 촬영감독 유리 일리옌코와 함께 모스크바를 떠나 키에프의 도브젠코 스 튜디오로 옮겼다. 거기서 우크라이나 지방의 소설가 코치유빈스키 원작과 카르파티나지방의 민담을 각색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12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촬영했다. 서로 반목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이반과 마르치카 는 사랑에 빠진다. 이반은 마을을 떠나고, 마르치카는 기다린다. 기다리던 마르치카는 죽고, 이반이 돌아온다. 새아내 파라냐와 결혼하지만, 아내는 부정을 저지른다. 이반은 고통 속에서 죽는다. 파라자노프는 우리시대에 태어난 민담 소리꾼처럼 보인다. 그 는 빅토리아 왕조 이후의 대중소설 이야기 구조나 조이스 또는 프루스트 이후 모더니즘의 자동기술의 '의식의 흐름' 모두를 부정 한다. 또한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나 앙드레 바쟁이 정식화한 미장센도 거절한다. 파라자노프는 일시에 모든 영화의 수사학 바깥 으로 나와 문어체 영화의 상상력으로부터 구어체 영화의 직관력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에 관한 모든 사고를 교란시킨다!

파라자노프는 마치 멜리에스 이후의 모든 영화가 없었던 것처럼 자유자재로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시제를 잃고, 구조도 없으 며, 형식도 없이 융단처럼 직조된 콜라주의 민담이 된다. 그는 중국 국경에서 흑해연안에 이르는 민담을 끌어모아 그 이야기의 방식에 따라 스스로 말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여러개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는 민속박물관의 창연함이 있으며, 잊혀진 민중들의 세상이 살아나 벌이는 축제가 된다. 파라자노프의 영화는 이야기하는 자의 언어로 노래하는 영화이며, 공식문화에 저항하는 방언 과 상소리와 속된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민중들의 다채로운 노래를 예술가의 영혼으로 듣는다. 이것이야말로 아래로부터 생각 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 단 한편의 영화로 파라자노프는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60년대 내내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것은 레닌의 교훈 "인민들 스스로의 예술로 말하게 하라"는 교훈과도 다른 것이다. 당 지도부는 틀린 것이며, 흐루시초프는 사회주의 영화를 죽인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예술가의 편이 아니다. 파라자노프의 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