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1994.03.10.작품

미국정부 난맥상 파헤친 秀作 -「펠리칸 브리프」

미국 대통령과 펠리칸새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존 그리셤 원작의 베스트셀러 소설 <펠리칸 브리프>는 법정 추리영화이면서, 진보적인 정치영화이며, 또한 보수적인 인종영화이다. 이것은 알란 J.파큘라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주인공들의 운명(!)이 모든 것을 혼란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목요연한 현실의 질서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

위험한 시작. 영화는 대법원장과 지방법원장의 암살로 첫 사건을 연다. 이 사건을 놓고 법대 여대생 다비 쇼(줄리아 로버츠)는 별다른 목적없이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끌어모아 나름대로 검찰측 입장에서 재구성한 리포트를 작성한다. 리포트의 이름은 '펠리칸 소송 조서'.

그런데 이 문건이 우연히 교수의 손을 통해 FBI를 거쳐 백악관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긴 하지만' 바로 여기서 사건의 핵심을 찌른 의심이 제기된다. 석유개발을 둘러싸고 이익을 얻으려던 대통령의 재정 후원자와 백악관, 그리고 환경단체 사이의 싸움을 놀랍게도 지적한 이 풋내기 법대 여대생은 이제 제거되어야 할 대상에 오르고, 그녀를 둘러싸고 연속 살인사건이 이어진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흑인기자 그레이 그렌섬(<말콤 X>의 주인공 덴젤 웨싱턴)뿐이다.

알란 J.파큘라 감독은 잘 알려진 것처럼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한 두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이야기 <대통령의 사람들>(76년)과, 반유대인주의를 둘러싸고 역사의 참극을 그린 <소피의 선택>(82년)으로 아주 민감하면서도 까다로운 문제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왔다. 그를 좌파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비판의 화살을 늦춘 적은 없으며, 언제나 진보주의의 명랑쾌활한 이분법과 신중한 결론으로 드라마를 끌고 간다. 그 솜씨는 여기서도 여전하며, 아마도 <펠리칸 브리프>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90년대 대표작이라고 서둘러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원작의 힘을 빌려 마음껏 미국 행정부의 교활함과 대통령의 무능함, 그리고 FBI와 CIA의 담합과 부서간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관심을 집중시킨다. 법대 여대생의 '아마추어' 문건이 떠돌아다니는 그 통로를 따라 미국의 정치 권력구조 사이를 샅샅이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지막 순간 파큘라는 갑자기 그의 태도를 바꾸고 매우 보수적인(!) 타협을 한다. 법대 여대생과 '흑인' 신문기자로 온갖 드라마와 위기를 만들어 낸 다음 해피엔딩의 순간에 그들은 단 한번의 '키스'없이 아쉽게 헤어지게 만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대통령은 마음껏 비웃을 수 있지만,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로맨스는 아직 할리우드에서는 금기사항인 것이다. 이 얼마나 용서없는 게임의 규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