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과학』 2000.03.(봄.21호)본인인터뷰

      

        담

정성일과의 인터뷰 정성일/박성수

정성일(『키노』편집장,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박성수(한국해양대 교수, 철학)
때: 2000. 2. 10 (목)
곳:『키노』사무실

박성수: 정선생님을 포함한 몇몇 분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부상하던 시기가 바로 영화평을 포함한 영화담론들이 부수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때부터 영화에 대한 글쓰기가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또 영화에 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접근들이 그 이후로 광범위하에 확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글쓰기와 그에 대한 호응을 가능하게 했던 당시의 조건이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정성일: 일단 그런 글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글을 찾는 독자들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독자들의 출현 때문에 이것이 가능해진 것인데, 사실은 그 이전에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읽어야 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글을 읽어야 될 필요성은,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해 스스로 확신할 수 없을 때 또는 그 영화에 대해 자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없을 때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는 비디오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 제도권 영화사에 의해서 나쁜 의미에서 걸러졌고 상업성과 흥행성이 없는 것은 다 걸러지고 안전한 영화들만이 상영되었죠. 또 텔레비전의 명화극장에서 하는 영화들은 아주 안전한 영화들, 그래서 쉽사리 쫓아갈 수 있는 것들뿐이었는데,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와 불현듯 마주쳤을 때 느끼는 곤혹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태도 중에 가장 흥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이를테면 문학이나 회화나 연극 같은 것을 접했을 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해 자신의 몰이해를 자책하는 반면에 영화를 보다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을 만나면 화를 내는 아주 이상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영화는 자기가 다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 만일 영화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화가 잘못된 것이라는 태도를 취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와는 다른 태도에 대한 기폭제가 되었던 영화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의 조건으로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의 영화와 딱 마주쳤는데 갑자기 이해를 못하겠는 거예요. 화면도 아름답고 뭔가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 영화, 그러니까 당시까지는 관객들이 정말 어려운 영화는 만나지 않았죠.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어떤 면에서 아트 하우스에서 상영되는 영화 중에서 비교적 대중적인 편이기 때문에 그 정도 단계에 왔었던 영화관객들이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나 장-마리 스트라우프 영화나 아니면 정말 아주 도전적인 영화들과 마주쳤으면 이건 아와 관계가 없다라고 생각했을 텐데,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알 듯 말 듯한, 대중적인 것과 실험적인 것의 묘한 경계점에 위치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의 영화가 하나의 대표적인 의미로서 그런 영화라면, 비디오를 통해 전염되듯이 영화를 사랑하는 애호가들 사이로 퍼져나간 그런 종류의 여러 영화에 대해서 알고 싶은, 그러니까 영화를 보기보다는 읽고 싶은 바램들이 글들을 찾게 되었고 동시에 영화글을 쓰는 새로운 세대들이 그러한 접점 속에서 영화라는 것이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그 접점 속에서 조건이라기보다는 어떤 한 단계, 혹은 국면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저는 작가 혹은 작품으로서의 타르코프스키 영화가 아니라 국면으로서의 타르코프스키 영화가 한국에서는 계몽적인 의미에서 교육적인 효과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 모델이 되었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그처럼 난해하면서도 대중적이었던 중간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를 유추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시의 새로운 영화담론들을 주도했던 분들, 그러니까 스타 평론가라고 불리던 분들의 글쓰기가 마찬가지로 중간 영역에 위치함으로써 매력을 가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 그 접점 속에서 서로 타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정말 진지한 글이었다고는 말하기 힘든 것이었겠죠. 영화를 사유하고 질문하고 문제틀을 만들어내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기에는 첫째 지면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데 고작 신문이나 기타 지면을 이용해서 50-100매 정도의 영화에 대해 깊이 있는 사고를 끌어낼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또 당시에 영화단행본, 그러니까 영화에 관한 저술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그것에 대한 반증일 수 있죠. 그래서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수많은 글들이 깊이를 드러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예컨대 김소영 선생 같은 분을 제외하고는 그런 점에서 답보상태라고 보는데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정황들, 우리가 함께 고민했었던 정치적, 실천적, 참여적인 정황 속에서 영화가 소비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고, 실제로 그 운동 속에서 <파업전야> 같은 작품이 나타났고, '노뉴단' 등과 같은 참여적이고 실천적인 작업들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것들에 대하여 작품의 텍스트로만 접근하면 완성도는 낮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와 사회와의 여러가지 연결점을 마련해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영화가 단 한번도 문학이나 그림이나 다른 예술 장르처럼 그런 문제가 토론되지 않은 이땅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생산점을 이루어낼 수 있는 토론의 근거들이 형성되면서 담론의 강조점들이 이동하였고 그에 따라 담론 전체의 좌표를 재구성하게 되었죠. 물론 영화만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토픽의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타르코프스키적인 국면과 그리고 한국사회가 경험했던 국면이동이 겹쳐지고 있었던 거죠. 분석적이고 이론적인 담론형성이 이루어지던 바로 그 시기에 <파업전야>와 <닫힌 교문을 열며>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노동자 뉴스>가 노조를 통해 보급되고 있었죠. 그런 상황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조응 속에서 만들어진 울림들이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00년을 맞는 시점에 상황은 바뀌었고, 한국사회의 구조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강조점의 토대들은 우리를 끌어당길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그렇게 되면서 영화담론을 구성했던 수많은 강조점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전의 고리들을 상실하면서 지금은 담론만 남고 영화가 어떻게 사회와 만나고 어떻게 관객들과 만나고 그런 관객에서 도약하여 독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리들은 상실되었다고 봅니다.

박: 앞서 말씀드린, 지금과 같은영화담론의 파급효과를 개시한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은 모두 지금에 와선느 저서들을 출판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물론『키노』라는 공저를 매달 내고 계신 거라고 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단행본의 형태로 글을 내놓으시지 않는데요. 그에 대한 이유가 있습니까.

정: 첫째 제가 솔직히 공부가 부족하구요. 두 번째는 당시 쓴 글들은 시간을 쫓아간 글들이었죠.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제가 영화를 매개로 하여 만나는 방식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가 버린 지금 어떤 울림을 이루는지, 그러니까 그 글이 쓰여진 시대를 놓침으로써 다른 시간 속에 그 글들이 놓여지게 될 때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나는 비평은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은 끊임없이 시간을 버티면서 존재함으로써 원래의 컨텍스트 밖에 놓이더라도 다시 스스로의 컨텍스트를 생산해내겠지만, 비평은 다른 컨텍스트와 다른 시간대에 놓이게 될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함의, 생산성, 층위 등 그리고 그것이 작품과 함께 만들어 내는 배열관계 같은 것이 어떨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시간을 버티어내는 저술들도 존재하겠지만, 글쎄요 제가 그런 글쓰기를 해냈다고는 생각지 않는 편입니다. 제가 준비하고 있는 책이 있기는 합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비평가로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작품을 변호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인터뷰하여 기록하고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감독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거꾸로 복화술사가 되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지체되었던 임권택 감독에 대한 인터뷰 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평가라는 것은 결국 복화술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거든요.

박: 책을 아직 내시지 않은 첫째 이유가 공부가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제가 듣기로는 대학부터 상당히 사상이나 이론적으로 많은 지식을 체득하시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정: 아니요 그것은 제가 흔히 하는 표현으로 먹물들 식으로 건방떠는 게 아니구요.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부족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박: 선생님의 연속적인 공저인『키노』를 얘기해보면, 잡지를 내시면서 지속적으로 생각하시는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정: 복화술이요. 그래서 우리 잡지의 스텝들과 하는 이야기가, 이 잡지가 10년 후에 의미가 있다면, 또 100년 후에 의미가 있다면, 당시 감독이 작품만든 직후의느낌이나 생각, 의도, 방향을 그리고 의도와 달라지는 부분들에 관한 생각을 얼마나 충실하게 담고, 남기고, 기록하고, 보급하면서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변명, 아니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담기 위해서 이 잡지 사방에 배치된 사진, 외국영화 소개 등은 그것을 담기 위한 자본주의 상품화의 기능이다. 그것들 없이는 시장 속에서 지속적인 투자를 끌어낼 수 없을 테니까요. 문제는 그것을 하는 책이 없다는 거죠. 영화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영화만큼 기록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냥 글들만이 난무하고 감독들과 별관계 없이 쓰여지고 버려지고 다시 환기할 필요가 없는 글들은 난무하는데, 감독들은 침묵을 지키고, 이럴 경우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한국영화의 역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정말 곤란하거든요. 다시 말해서 한국영화의 역사를 개념적 인물(personnage conceptuel)이라고 생각한다면 말 그대로 그것은 치매상태거든요. 그렇다면 우리의 영화사가 치매상태에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겟는가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러한 근거의 접점들을『키노』가 마련한다면 거기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박: 선생님 자신과 또『키노』가 목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복화술 혹은 재현, 그리고 감독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등으로 정리한다고 할 때에 한 가지 빠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비판적이거나 영화에 대한 부정적 평가, 그런 것이 아닐까요.『키노』에 나오거나 소개되는 작품들과 작가들은 그야말로 다 대단한 것들이고 주목해야 하는 것으로 부각됩니다. 그럴 때에 비판적 혹은 평가적 기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 어떤 점에서는 매우 핵심적인 질문인데요. 하지만 저는 굉장히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정한 작품을 주요한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에 우리는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대상일때는 무관심하거든요. 우리 잡지에서는 <쉬리>에 대한 글을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텔미썸딩>에 관한 글을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쉬리>를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무관심한 겁니다. 우리는 무관심이 바로 비판이자 부정적 평가인 거죠. 물론 정면으로 비판적인 글을 쓸 때도 있지만 제 개인은 어느 때부터인가 그런 글들을 쓰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멈춘 가장 커다란 이유는 그런 영화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싫어서입니다. 틀림없이 제가 그 영화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영화가 그다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어떤 한사람의 세계관을 대변하고 세상에서 실천하는 방식의 표현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은 <미션>이었습니다.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측면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사람에게 <미션>은 그저 재미있는 영화였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적 해방의 유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죠. 그런 유머에 대하여 그것이 그 사람의 모든 인격인 것처럼 비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지지할 수도 있고 옳다고 여겨지고 또 그 안에 함의가 담겨있다고 생각되며 생산적인 상호의사소통을 해낼 수 있는 영화들을 택하여 더 많은 광장을 마련해서 비평적 담론을 만들어내고 글을 써대는 것이 저한테 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함께 토론하고 즐거울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영화를 통해서 더 많은 친구를 만들고 싶은 것이지, 더 많은 싸움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영화가 미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기준이 있을 수 있겠죠. 또 영화산업에 대한 정책이나 영화에 대한 원칙은 토론하고 비판하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거짓말> 사태에서 저 자신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짓말>이 비판적이기는커녕 굉장히 시시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저에게 무관심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은 탄압받았고, 여러가지 이유로 힘든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경구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당신의 견해에 결사적으로 반대할지라도 당신의 견해가 탄압받는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이것이 제가 예술작품이나 문화현상인 영화에 대해 가져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을 갖게 된 거죠. 그런데 박선생님도 제가 알기로는 작품에 대하여 비판적인 글을 쓴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박: 저도 싫은 건 일단 제쳐둡니다.

정: 그 점에서는 같은 견해를 가진 것이 아닌가라고 글을 볼 때마다 생각했거든요. 비판적인 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글도 있지만, 그런 글을 읽고 있으면 굉장히 힘들어요. 비평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상당히 의심스럽거든요. 적대적인 증오에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의 한계들을 노정시키는 것을 볼 때에 저는 오히려 이제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 무관심의 전략이라든지 또 동의할 수 없고 호감이 가지 않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대변해줄 수 있다는 말씀과 특히 80년대의 선생님의 글쓰리를 연속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선생님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정치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표명되는데, 노골적인 직접적인 연결은 시도하지 않는다는 거죠.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는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고 접점들의 재배치가 문제가 되는 시기이지만, 뭐랄까요 영화와 정치적 영역과의 상관관계 안에서 위치설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정: 나는 80년대였건, 그것이 2천년대이건 제가 가지고 있는 원칙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나는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제가 쓰는 글들이 사람들에게 영화를 생각하는 지향점을 그런 쪽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리고 제가 지지하는 영화들을 통해서 그 입장을 계속 표명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를 통해 문예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있었을 테지만, 영화가 정치가 되는 것, 저는 이것에 대해 일정 정도의 거리를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에 대한 그런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 아주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다 영화에 대해서 실천을 이야기할 때에 중심 지점이 수령주의였습니다. 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세계관에 참여하는 것은 위선이었고 유행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좋은 세상에 대한 저의 원칙을 가지고 제 방식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저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참여와 지지를 행하면서 그런 영화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진짜 제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임무와 원칙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어쨌든 저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거꾸로 80년대에 그렇게 말한 그 친구들이 다 어디에 갔는지가 궁금합니다. 지금 영화에 대한 글을 보면서 정말 이 사람이 그때의 그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 이렇게까지 이동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그러니까 그 유연성을 보면서 제가 너무 경직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웃음) 저는 영화를 하기로 했을 때에 평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지, 2-3년 동안 주목을 받고 흐름을 타고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영화가 정치였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왜냐하면 정치는 세상을 직접 바꾸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영화는 정치가 아닙니다. 저는 천천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박: 그럼 다시『키노』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보죠.『키노』가 처음 나왔을 때는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 있었고 영화에 접근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의 제시 등등과 같은 효과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고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주변의 독자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얇은 잡지가 읽는데 무척 오래 걸린다는 거죠. 그러니까 글의 양이 상당합니다. 다른 하나는 지적이고 개념적인 전개에서 보여주는 난해함이나 엘리트주의적인 특징들, 그러니까 개념적인 수사가 심하다는 거겠죠. 그런 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또 이런 방식을 유지하시는 이유랄까요.

정:『문화과학』도 글이 많더라구요. 읽는데 굉장히 오래 걸리더라구요.(웃음)『문화과학』독자로서 말씀드리는데,『문화과학』이 왜『창비』나『문사』를 닮아가면서 이미지보다는 글에 의존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려는 동일한 방식을 택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주 궁금합니다. 문화와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을 택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주 궁금합니다. 문화와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을 한데 붙여서 그를 통해 새로운 것을 전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고 또 분명히 그런 것들을 해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 어느 땐가부터 계간지들이 갖고 있는 관성 안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독자로서의 근심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전략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바램입니다.

『키노』의 글이 어렵다는 말이 많은데, 이 어렵다는 말은 어차피 상대적인 건데, 그러니까 다른 영화 책보다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지만 독자들이 이것을 문화저널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저널에 비해 이 잡지는 무척 쉬운 잡지죠. 그러니까 독자들은 여전히 영화가 다른 문화현상 그리고 문화에 대한 글보다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려운 문화를 볼 때는 자신을 자책하지만 어려운 영화를 보면 분개하는 관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에 관한 글은 자기가 항상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영화글들은 어렵다고 하는 생각은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또 영화에 대한 들뢰즈나 세르쥬 다네의 글들이 갖는 어려움은 그것을 우리말로 또박또박 옮겨 놓은 상태에서도 감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개념을 따라 잡으려고 노력하는 순간부터 그 노력만큼 나의 영화에 대한 생각의 너비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키노』가 좀더 어려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개념과 개념간의 거리를 더욱 벌려서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생각을 그 거리만큼 더 넓혀야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못해내는 저와 스텝들이 공부가 부족하다는 자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키노』가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실상 거기에 담긴 내용들은 굉장한 분량들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추적되고 누적되고 정리되는지요.

정: 과찬이지만 칭찬이니까 들을께요.(웃음) 저희 내부의 노력만으로는 이 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항상 귀기울이는 것은 감독들의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따낸 다음에 스텝들끼리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왜 이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 사람이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무엇으로 이 말을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러면 그것을 이 안에서 소화해내기 위해서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니까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하는 일이 지도그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 어디에 위치시킬까. <해피투게더>를 보고 나서, 왕가위라는 작가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퀴어 시네마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키노』의 관심은 왜 왕가위가 홍콩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일까 였습니다. 왕가위가 만들어내는 이 '글로벌/로컬'을 어떤 지도 안에 놓을까, 왜 허샤오시엔은 <남국재견>에서 타이페이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 작은 도시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상해를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해상화에서 왜 또 상해로 갔을까 등을 물었습니다. 허샤오시엔을 다음에 만났을 때에 우리의 질문은 거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왜 당신은 상해로 갔습니까. 그리고 그 대답을 가지고 우리는 중국 지하전영 감독들을 만났습니다. 지아장커, 왕샤오슈아이, 허이, 유릭와이, 로우 예를 만나서 중국으로부터 다시 대만의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왕가위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중국 감독들과 부산에서 굉장히 긴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터뷰에서 교크를 받은 것은 이거였습니다. 당신은 대만이라는 개념 혹은 지도그리기 안의 대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그 젊은 감독은 딱 한마디로 대답했습니다. "Homeless." 대만을 홈리스로 생각하는 것이 단순히 오만함이 아니라 홈리스라는 개념을 새롭게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은? 그리고 홈리스로서의 남한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박광수의 <이재수의 난>, 이것은 새로운 것일까, 왜 사람들은 80년대의 담론으로부터 박광수를 풀어주지 않는 걸까. 이런 것이 <이재수의 난>에 대한 우리들의 질문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연구는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거기에 관한 것들을 다 모아서 특집을 꾸며보자. 이것이 우리가 특집을 다루는 방식입니다.『키노』에서는 편집회의를 시작하면 보통 저녁 6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9시나 10시에 끝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키노의 편집회의는 그런 점에서 매우 특별하죠. 특집의 어떤 아이템을 정하고 배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고민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키노』의 기자들은 기존의 잡지에서 훈련받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죠.

박: 그렇군요. 그런데 적자가 심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직도 진행되고 있네요?

정:『키노』가 제가 가지고 있던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결정은 둘 중의 하나겠죠. 제가 그만두든지,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니면 더 이상 투자가 없음으로 해서 만들어질 수 없든지.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이것을 만들면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해내야 된다는 것이 덜미가 되는 면이 없지 않아요.『키노』에는 그렇기 때문에 원치 않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잡지를 재생산해내고 잉여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전략이라면 그것이 타협이라고 비판받더라도 불가피합니다. 완벽한 순수주의가 이 시장 속에서의 전투 그것도 장기전의 경우일 때에 소용이 있을까 의아스럽게 생각합니다.

박: 서구는 영화이론이 발달했고 여러 사조가 지나가고 다시 재발견되고 하는 등등의 모습을 보여주죠. 또 비평에 여러 유형의 갈래가 논의됩니다. 그러나 개인이건 잡지건 간에 개별적인 영화나 작가에 접근해 들어갈 때에는 어떤 순수한 유형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영화의 접근방법 중에 선호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될까요.

정: 선생님이 영화에 관한 글을 쓸 떄에 한 철학자나 하나의 사조에 빠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질 테죠. 영화가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있으니까 그런 영화에서 영향받은 것이 있겠죠. 그렇지만 제가 아무리 무관심하다 하더라도 동시대성이라는 것에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감독이나 학자들도 바로 그러한 것들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비판하고 또 문제틀을 만들어내고 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영화에 관한 글들은 자기의 관점과 동시대적 문제틀간의 긴장관계 안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당연하지만 그런 긴장관계가 지나치다 보면 그 긴장관계만 남고 예술작품은 소멸해버리기도 하죠. 거칠게 이야기해서 지금 대부분의 영화학자와 비평가들은 동시대성의 담론들 중에서도 한국이라는 조건 속에서 탈식민성 담론과 페미니스트 담론 사이에 말려 들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글로벌 로컬이라는 맵핑(mapping)에 끌려 들어가 있는 거죠. 그 속에서 백가쟁명이 이루어지겠죠. 저도 예외는 아니죠. 그것은 아마 우리가 지금 서있는 동시대적인 사유 안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영화도 역시 그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고요. 예를 들면 라스 폰 트리어, 왕가위, 아니면 허샤오시엔, 중국의 지하전영들, 미국의 인디들 바로 이런 것들 안에서 우리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기에 그것에 대한 담론들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강조점을 아주 개인적으로 찍는다면, 이 강조점 안에서 항상 저를 재배치하는 사람은 벤야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벤야민의 성좌관계(Konstellation)를 이 안에서 어떻게 짜보느냐, 맵핑을 어떻게 다시 하면서 내가 내 원칙을 버리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그 영화들의 강조점을 어떻게 올바르게 찾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이 사실 가장 커다란 저의 관심이고 끊임없이 행하는 질문입니다.

박: 어린 시절에 락커가 꿈이었다고 들었어요. 되돌아 본다면 지금의 작업과 연관성이 있나요?

정: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요. 근데 그 문화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제 안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거죠. 박물관에 가있는 문화는 관심이 없어요. 문화가 살아 있을 때, 천박할 때, 서로 싸우고 있을 때, 돈벌이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을 때, 저기서 누가 살아남을 것이냐의 문제가 있을 때, 타락하지 않고 싸워 이기는 문제,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 등이 있을 때의 문화에 관심을 가집니다. 저는 아직도 커트 코베인이 권총 자살한 것에 대해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영화제에 간 바쁜 와중에도 나인 인치 네일스의 라이브 공연이 있으면 기어이 암표를 사서 그것을 선택합니다. 왜요. 살아있으니까요.

박: 지나간 거장들에 대한 살아 있는 기억들에 대해 감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시는 편인데, 그 거장들이 살아있는 방식은 뭔가요?

정: 유령처럼 불려오는 것이다. 저는 틀림없이 왕가위 영화를 보고 있는데,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오즈나 나루세 미키오나 스즈키 세이준 또는 얼마전에 작고한 브세숑같은 사람들이죠. 동시대적 의미를 갖고 살아나오는 것이죠. 지금 살아있는데 죽은 감독들도 있죠. 키노가 무관심한 감독들!

박: 선생님 개인적으로도 끊임없이 부활시키는 것인가요?

정: 대부분이 그런 것 아닌가요? 들뢰즈가 불러내온 스피노자, 철학사에서 수많은 침묵을 강요당한 중세철학자들을 불러내는 것. 발리바르도 말하고 알튀세르도 말했지만 스피노자를 동시대적 방법으로 다시 읽어낼 수 있는 것이죠.

박: 영화에 관한 담론생산에서 좀더 발전되고 확대되어야 할 부분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론『키노』는 빼고요.『키노』는 선생님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정: 저는 영화가 대상이 아니라 개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선생님도 철학을 공부하지 영화이론가는 아니고 이진경씨도 사회학자지 영화이론가가 아니잖아요. 김진석 선생님도 철학자지요. 하지만 그분들의 글을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만일 영화를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글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통하여 지금 자기의 관심사를 펼쳐 보이고 재구성해보는 거겠죠. 저는 단순히 영화가 사회의 반영이라고 보지도 않고 또 영화와 사회를 떼어놓고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서로가 미묘하게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데, 그 관계형성의 구도 안에서 어떻게 읽어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담론들을 형성해내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층위를 마련하는 일에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 미학 등의 담론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이 다루고 있는 것을 저기 거리를 갖고 놓여 있는 또는 기계적으로 파악되는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바로 세상을 구성해내는 개념의 일부로서 파악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정말 재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술에 대한 글들 중에서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의 글들은 본격 미술비평이라기보다는 대상을 개념으로 파악함으로써 세상을 구성해내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영화에 관한 글이 풍요로워져야지 영화평론가가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영화평론가를 직업화시키는 일입니다. 저는 영화평론가라는 이름이 붙을 때 부담스럽습니다. 영화평론은 직업이 될 수 없습니다.

박: 또 하나 질문은 영화에 관한 담론이 아니라, 바로 영화 자체에 관한 것인데, 아주 일반적인 질문으로 한국영화의 앞날에 대해 예상하시는 것.

정: 저는 한국영화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시아 영화들과 친구가 되면 성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관객들은 한국영화가 할리우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 저는 여전히 비판적입니다.

한국영화는 세 가지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 반영성의 위기입니다. 그 안에서 자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자꾸만 토대 없는 성공의 사례들이 끼여들고, 그 안에서 설명하려 들면서 그 스스로의 자기정체성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영화들은 무국적성의 위기와 마주치고, 이 안에서 기억장치로서의 영화는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영화 안에서 수사학의 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반성을 거치지 않은 서방세계의 영화 미학과 그에 따른 표현의 재현과정들이 가져온 수용과정이 다른 한편으로는 더 커다란 범주의 보편성을 지닌 미학적 개념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특수성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에 대해서 반성적 성찰이 없는 불감증입니다. 세 번째는 테크놀로지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문제죠. 디지털로 옮겨가고 그리고 그 안세서 새롭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죠. 새롭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안에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기반성없는 무분별한 추종이 있는데 이는 한국영화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습니다. 테크놀로지는 그것을 만들어낸 동시대의 토대에 대한 필요성 및 재생산구조가 함께 엮여져 있는 것인데 그 점이 간과되고 있죠. 예를 들어 유럽 영화를 거의 망가뜨려 버렸던 미국의 토키의 발명, 유럽 영화의 회화적 구도를 거의 부숴버린 시네마스코프 화면, 그것이 다시 일본을 통해 수입되면서 만들어진 60년대 한국영화들의 황당무계한 비율의 미장-센들, 아무런 미학적 구도도 없고 근거도 없고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삶의 태도도 담지 못하는 시네마스코프 화면, 또 갑자기 한국에 들어와서 극장의 구조와 어긋나고 있는 돌비 스테레오, 그리고 심지어 한국영화 속에 8미리, 16미리의 보급이 가져왔었던 그 부작용들, 이것이 디지털 카메라로의 이행과정에서 악몽이 순환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상의 세 가지 문제가 한국영화가 뛰어넘어야 할 아주 시급한 질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생각은 뭐가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요?

박: 전 그런 쪽은 잘 모르고요, 단지 세 번째 문제라고 하신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건데, 그것을 한국영화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보다는 제가 그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있는 거죠.

정: 그런데 그건 거꾸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하고 소통할 수 없다는 말인데, 이쪽에서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박: 그렇겠죠.

정: 그러니까 단순히 기술일 뿐이지. 미학이나 수사학적인 통로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저는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감각으로서는 소통을 하지만, 정서로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디지털 영화로 이행하면서 한국 영화들도 점차 머리의 영화로 되어가지 마음의 영화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도식적으로 표현한다면 영화와 관객들이 맺는 관계가 전혀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히스테리가 되가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순간 시각과 청각이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영화와 신체적으로 접합되는 것인데 이 관계가 히스테리라면 문제는 아주 크다고 보죠.

박: 전주영화제는 어떻게 되어가나요? 프로그래머로 활동하시는데 그 영화제의 성격 규정이나 그 배경이.

정: 일단 컨셉을 잡은 것은 김소영 선생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안을 받고 들어가게 된 셈이죠. 그러다 전주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전주가 영상산업도시로 지정되어서 디지털미디어센터 등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죠. 당시에 제가 디지털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디지털의 여러 측면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영화제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아니라 문화자본이기에 이윤창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니까 어떤 면에서는 이 장안에서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지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던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형성되어 가고 있는 아시아 영화의 커뮤니티에서 한국 영화의 고리를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제라는 공간을 통해 북경, 타이페이, 홍콩, 동경, 서울, 전주 등과 같은 상징적인 지명 안에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소통하고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프로듀서들이 결합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적인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제가 영화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적지 않을 시간 동안 가졌던 영화에 대한 비전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물론 문제도 많죠. 갈등도 많고, 하지만 일들이 원래 그런 것이고 저는 그런 것이 즐겁습니다.

박: 영화제라는 것 전반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데?

정: 저는 영화제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영화적으로 너무 폐쇄적인 나라거든요. 그리고 매우 제한적인 영화들이 제한적인 방식으로 공급되고 배급되고 암시장에서 떠돌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한국보다 지리적으로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는 프랑스에서 국제영화제가 62개 있어요. 이것들이 군소 영화제 62개가 아니라 서로 다른 62개의 영화제입니다. 칸느처럼 큰 영화제가 있는가 하면 아시아, 아프리카 영화만 하는 낭트 영화제도 있고 단편 영화제로 클레르몽 페랑이 있죠. 처음에 부산영화제만 시작할 때도 사람들이 기대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에 부응하려다 보니까 이것저것 다 끌어안았죠. 그러다 보니 백화점이 되었죠. 일종의 쥐라기공원입니다. 한국에서의 부산영화제, 아시아에서의 부산영화제, 세계에서의 부산영화제라는 세 가지는 같은 성격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영화제들이 생기면서 부산영화제의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부산영화제가 깊이를 가져야 할 때죠. 그런 면에서 전주영화제는 부산영화제가 규모가 커지면서 감당할 수 없었던 영화들, 디지털 영화라든가 유럽에서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미학적으로 새로운 영활르 끌어안게 된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제가 열리는 그 도시에서 주민들에게 주는 교육적 효과 또한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한 사고르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죠. 문화에서는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있는 도시들이 자기 영화제를 하나씩 다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 비로소 한국 전체의 문화적 질이 상승된다고 봅니다. 서울에 살면서 불만을 느끼는 것은 모든 문화가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화제가 너무 많다는 발상 자체가 서울 중심적인 것이죠. 영화제는 다양해지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디지털이 영화 쪽에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들 수 있는 상황은?

정: 디지털로 만들어진 영화는 물론 <쥐라기공원>과 <타이타닉>입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영화는 <셀레브레이션>이나 하모니 코린의 <줄리앙 동키보이>입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영화는 <오양 비디오>죠. 굉장한 스펙트럼입니다. 작년 한해 동안 스무 살 이상의 사람들이 만들어 지상으로 떠올라 영화제에 출품된 디지털 영화가 240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한해 동안 19살 이하의 중고생이 만들어 지상에 떠오른 영화가 260편이었습니다. 1997년 프랑스에서 행히진 여론 조사에서 보면 21세 이상의 성인 중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51%랍니다. 그건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죠.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해서 가능해진 거죠. 이전에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돈의 문제였죠.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동적으로 만들고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에게 우리들 표현으로 권력을 쥐게 만들었던 거죠.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는 이런 것과 관련 없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죠. 의도가 문제겠죠.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은 영화에서 미학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윤리학을 끌어들였다고 봅니다. 의지가 문제가 된 거죠. 이로써 영화에서 미학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영화가 물적 대상이었지만, 이제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나뉘어지면서 영화는 물적 대상에서 개념으로 바뀌게 된 거죠. 이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사유도구가 다원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구체적인 것을 떠올리지 않고 개념적 구도를 만들어 냄으로써 사고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들뢰즈에게 영화에 관한 두 권의 책에 대해 이제 이겅스로 영화에 대한 책은 끝난 거냐고 묻자, 아니요 세 번째 책을 준비중이라고 답하고 그 제목을 묻자 "이마쥬-비데오"라고 했던 것을 아주 의미심장하게 생각합니다. 디지털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와 미학 그리고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은 너무나 미분적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미디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의 미디어는 적분의 미디어였지만 디지털은 미분의 미디어죠. 붙잡히지 않죠. 붙잡으려고 하면 그 권력이라는 틀을 계속 빠져나가 버리죠. 그것은 네비게이터에서 볼 수 있듯이 포르노 사이트를 통제하려는 노력이 가해지지만 실제로 불가능하지요. 문제는 오히려 디지털로 넘어간 다음에 어떻게 접점을 마련하느냐하는 점입니다. 리얼리티가 어떻게 디지털과 접점을 마련하느냐가 아니라 디지털이 어떻게 리얼리티와 접점을 마련하느냐가 아니라 디지털이 어떻게 리얼리티와 접점을 찾느냐 하는 겁니다. 플럭스의 방향이 바뀐 거죠.

박: 그렇다면 디지털과 아날로그간의 차이는 어떻게 될까요.

정: 간단히 말해서 미디어는 'raison d'etre'가 아니라 'raison de devenir'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devenir'한 매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미리 결정해 놓는다면, 목표를 설정해놓고 되어가는 방향을 주시하는 건데, 그건 우리 지식인들이 그 목표를 설정하고 그리고 몰아가는 권력으로서의 지식인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생성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고 되어가는 모습을 토론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앙띠 외디푸스』에서의 'serabattre'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디지털 미디어를 보니까 그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부러져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다른 게 되어 버리는 것이거든요. 디지털이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가 아니라, 디지털이 다른 것과 만나서 접합하는 순간 다른 것이 되는 거죠. 지식이 윤곽을 만들어내면 디지털이 그 형상을 부산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정치적 윤곽과 그 윤리적 형상에 계속 부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건데 우리는 이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미학밖에 없다는 것이죠. 정치적인 방도를 갖지 못하고 있기에 세계관들이 계속 미분화되어 가는 거죠.

박: 그렇다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대한 이분법적 대립에 기초한 미학적 접근방법이 제기하는 문제 자체가…

정: 폐기되는 거죠.

박: 그런 것들이 영화 미학과 닿는 한 예를 들낟면 어떤 건가요.

정: 라스 폰 트리에의 <댄서 인 더 다크> 같은 영화는 100개의 디지캠으로 찍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이벤트가 아닙니다. 100개의 눈, 멀티 아이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돌이켜보건대 지난 30년 동안의 영화논쟁 중에 핵심적인 것의 하나는 시점쇼트였습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애꿎은 라깡 같은 사람들까지 동원되었죠. 이제 그 이론이 폐기될 시점이 온 겁니다. 영화는 원래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이 반론의 근원은 초기 영화 연구자들이었습니다. 영화가 거기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는 거죠. 거꾸로 디지털 영화가 영화담론 자체를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낳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가지들인 페미니스트 영화이론, 맑스주의 영화이론, 형식주의 영화이론들에 모두 핵심적인 것은 시점 쇼트의 문제였고 그런데 그것이 부정된다면 담론의 지형 전체가 재구성되야 하는 건 당연하죠. 사실 그 가능성을 맨 먼저 본 것은 폴 비릴리오였던 것 같은데, 글쎄요 디지털은 그것과는 다른 방식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빨리 책장을 정리해야 될 것 같아요.(웃음)

박: 아까 책을 준비중이라고 하셨는데, 임권택 감독에 대한 글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요.

정: 임권택 감독은 저한테는 영화적인 의미에서 아버지입니다. 그 의미는 27살 때 그분을 뵈었고 인터뷰 책을 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이해하려는 수준이었어요. 영화이론적인 틀을 갖고 인터뷰를 했어요. 일주일 동안 여관을 잡고 했어요. 그 분은 제가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바꾸어 놓았어요. 영화를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일깨워준 겁니다. 임감독은 자기 자신이 실패한 사람이라고 고백했어요. 그것이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임감독의 영화가 롱테이크 영화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러니까 현장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데, 편집실에 보냈더니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편집할 수 없는 영화를 찍기 위해 롱테이크로 찍었다는 겁니다. 저는 비로소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 전체의 커뮤니티, 토대들, 인간관계,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중층결정으로서의 영화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 고다르 영화를 보고 받은 충격은 영화가 카메라로 찍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 충격이었습니다. 화면에서 카메라를 발견하는 순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었던 거죠. 고다르는 저에게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해준 거죠. 지식이 영화를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임권택 감독을 만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만드는 영화의 약점을 변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심을 가지고 세 번째 만난 사람이 왕가위였습니다. 제가 준비하는 또 하나의 책이 바로 왕가위에 관한 것입니다. 그 인간은 처음 만났을 때 완전히 양아치였습니다.(웃음) 띄엄띄엄 시간을 가지고 왕가위를 10년 동안 만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에 그 사람은 예술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숙해나가는 것을 보게 된 거죠. <중경삼림>이 성공했을 때 보여준 오만방자함과 건방진 꼴, 그러나 그것을 영화 만들기 속에서 뛰어넘었고 예술가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곁에 있을 수 있는 저 자신이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영화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대상으로 아무리 탁월한 비평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화를 설명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박: 혹시 제가 빠뜨린 질문이 있나요?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정: 그냥 쿨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박선생님같은 분들과 영화를 하면서 정말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박선생님의 글을 보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사랑을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철학이라는 말이 사랑이라는 말을 포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에 대한 글에서 지식이 아니라 사랑을 읽고 싶습니다. 영화는 예술작품이니까. 예술을 통해 친구가 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술작품에서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 인터뷰가 다른 영화하는 분들과도 계속된다면 친구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새겨 듣기로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점은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