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보』 2004.07.서평|에세이

>>> 밑줄 긋는 남자

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정성일 Ⅱ 영화평론가  

"3월 19일. 지라르의 욕망이론은 지식인들에게 일정한 매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이야말로 책에서 읽은대로 살려고 무의식적이건 의식적이건 애를 쓰고 있으며, 자기가 전범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경쟁자로 변모하는 것을 거의 매일 눈앞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대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중개의 집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스승이 어느 날 갑자기 경쟁자로 등장하는 날의 아픔과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인으로서는 그 두 체험이 다 같이 고통스러운 체험이며, 피하고 싶은 체험이지만,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제자로서 나는 스승을 모방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안 그러면 그에게 증오를 느낄 테니까), 스승으로서의 나는 제자들의 모방이 불가능한 곳에 가 있으려고 애를 쓴다(안 그러면 그에게 경쟁심을 느낄 테니까!). 끔찍한 악순환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 계층의 삶이다."

- 김현「행복한 책읽기: 김현의 일기, 1986-1989」(문학과 지성사, 1992년)

나는 살아생전 문학평론가인 김현 선생을 두 번 만났다. 두 번 모두 그냥 우연히 마주친 것이었으며, 김현 선생은 아직 어린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때 한번은 아직 대학생이었으며, 다른 한번은 신입 기자생활을 할 때였다. 두 번 모두 작은 출판 기념회에서였으며, 물론 두 번 모두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두번 모두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듯 내게 눈인사를 하였다. 아마도 선생께서 관심이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나이도 어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스타였으며, 그의 주변에는 번번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그와 친분을 과시하려 하거나 혹은 그에게서무언가 생각을 듣고 싶어 하였다. 김현 선생은 내 기억으로 (공식석상에서) 매우 무뚝뚝한 사람이었으며, 그냥 질문에 대해서는 항상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글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한 때는 공책을 펼쳐놓고 그의 비평집을 사다가 첫 페이지에서부터 베껴나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그만 두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그가 쓴 글을 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에 관해서 찬사라도 할라치면 차라리 롤랑 바르뜨를 그 시간에 읽는 편이 낫다는 식으로 폄하하려 들었다. 이십대 후반의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부고기사를 읽게 되었다. 갑자기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여전히 그의 글을 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책방에 갔다가 그가 삶의 마지막 날을 모아놓은 그의 단상 모음집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추모의 느낌도 들고, 예전보다 알 수 없는 적대감이 많이 사라져서 역시 알 수 없는 미안한 감정으로 그 책을 사들었다. 그리고 읽어 나갔다. 단상들의 모음이라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고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서 읽었다. 그러다가 이 책이 그렇게 읽을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책상에 앉아서 차례로 읽어나갔다, 나는 그 단상들이 매우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쉽게 쓸 수 없는 오랜 사유와 경험 끝에 나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종종 그 단상들이 심금을 울리는 것은 누구나 그렇게 느껴도 차마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때 오는 울림이 정말 컸다. 그러다가 내가 인용한 저 대목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김현 선생의 글을 그렇게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 이유를. 그것은 나 자신이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그를 닮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그와 다른 글을 써야 한다는 노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큰 그림자였다. 그래서 그를 피하는 방법은 나 자신도 모르게 그를 폄하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유치한 짓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피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내 자신의 초라함에 대한 방어였던 셈이다. 그걸 그의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유치한 마음에 대해서 정말 부끄러웠다. 이건 과장법이 아니다. 나는 그 글을 읽은 다음 며칠이고 나 자신에 대해서 몸서리를 쳤다. 내게 글을 쓰고 비평적으로 사고하는 길을 열어준 사람에게, 그리고 그렇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는 존경을 보내고 그로부터의 배움을 고마워하는 대신 감히 가질 수도 없는 경쟁심을 안고 근거 없는 증오를 불태웠던 것이다. 몇번이고 나는 다시 생각했다. 그런 다음 김현 선생의 글에서 나는 서른두 살에 매우 중요한 것을 배웠다. 그것은 정직함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것이다. 그것을 누구에게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서 나를 바라보는 정직함을 안고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나는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글을 읽은 다음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김현 선생의 이 마지막 유고집을 자주 읽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나는 다시 들쳐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저 대목과 다시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정말로 김현 선생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는 나에게 정직함이라는 비판적 정신의 그 칼날을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6월 27일이면 그가 작고한 지 14년째이다. 나는 내 방식으로 그날 그에게 작은 예의를 갖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