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998.11.본인인터뷰

PAPER 1998.11.

어느 특별한 저녁에 대한 기록

영화평론가 정성일
기계장치 속에 숨겨진 비밀암호를 해독하다

로버트 알트만의 신작 <캔사스 시티>의 시사회장에서 정성일을 만났다. '시사회장'에서 정성일을 또 만났는데, 역시나 또 재미없는 영화더라, 정성일이 보러오는 영화는 보러가지 말라, 이렇게 또 쓸건가요?' 라고 그가 농담을 건넨다. 9월호 PAPER에서 내가 쓴 글을 두고 하는 말이다(<시사회장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를 만나는 바람에, 나는 또 기대를 가져버리게 되었다. '정성일 씨가 보러올 정도면 꽤 괜찮은 영화일 거야' 라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별 두개다>라고 나는 썼다. 그러나 <캔사스 시티>는 재미없지 않았다.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Cinema 란에서 하겠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쯤 전화를 드릴려고 했는데요, 이번달에 인터뷰 시간 좀 내주세요, 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저 인터뷰 안하는 거 아시잖아요' 라며 은근히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저는 그런 거 몰라요. 그리고 우린 PAPER잖아요' 라고, 나는 전혀 설득력없는 설득전을 펼치다가, 결국 '얼굴사진은 찍지 않는다'라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냈다.

5년 전쯤 내가 다른 잡지에서 일할 때, 그와 나는 담당기자와 필자였다. 그러나 한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그것이 진지한 대화이든 시시한 대화이든).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전문잡지 <키노>의 편집장인 정성일을 대면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는 '인터뷰를 빙자한 담소의 자리'를 함께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PAPER는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그가 인사말을 건넨다.

PAPER에서 가장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전 무가지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영화전문 무가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정도였죠. PAPER의 경우에는 좀더 문화게릴라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했거든요. 제가 있는 세계는 팔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세계잖아요. 이쪽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무차별하게 무작위적으로 만날 수 있잖아요. 그런 힘이 있는 잡지라면, 좀더 아방가르드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좀더 전투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안전하게 복싱하고 있다고 할까…

저희도 정가가 붙어 있어요. (웃음)

(웃음) 이제는 바뀌었으니까…

물론 그런 면이 있죠. 싸움을 피하려 하는, 펀치가 날아오면 링 위에서 도망다니는 권투선수같은…. 오히려 <키노>의 경우는 처음부터 싸우는 쪽 아니었나요?

싸우는 쪽이라기보다는… 사실 전 앞서 했던 영화잡지를 끝내면서 다시는 영화잡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겨웠어요. 그런데 다른 영화잡지들을 보다가 더 지겨워졌어요. 그렇다면 안지겨운 거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거든요. 우리 기자들이 저한테 듣지 않아야 할 말이 하나 있어요. '너 참 지루해졌구나'라는 말. 그 말은 곧 넌 파문이다. 라는 뜻이거든요. 지루하지 않게 해볼 수 없을까, 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대의 한계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진보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그 사이을 끊임없이 오가는 싸움인데, 어느 수준을 설정해야 할지 굉장히 어려워요.

내년 5월이면 정성일 씨도 <키노>의 편집장을 시작한지 만 4년이 되는데, 그 후의 새로운 계획이 있나요?

영화를 계속하겠죠. 하지만 영화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으니까. 어떤 일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빨리 내년이 되면 좋겠어요. 내년에 제가 40세가 되거든요. 멋있는 나이잖아요. 늙지도 않았지만 어리지도 않고, 자기가 한 것에 대해 책임질 수도 있고, 또 많은 시간 동안 시행착오 겪어봤으니 자기 재능에 대해 과신하지도 않지만 스스로 폄하하지도 않을 수 있는 나이. 그래서 멋있는 나이 같아요.

멋있는 해석이네요. 보통은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들어서면서, 이젠 인생이 내리막길로 가는구나,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주변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서, 사십이 멋있는 나이라는 걸 느껴요. 이를테면 왕가위를 처음에 봤을 때 그가 서른 네살이었거든요. 양아치였어요. 자기에 대한 과신, 또 한편으로 불안함이 있었죠.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중경삼림>을 찍고 나서였거든요. <동사서독>으로 거의 버림받았다가 <중경삼림>으로 뉴욕, 파리, 홍콩, 일본에서 동시에 평가받으면서 정말로 기고만장해져서 나타났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의 베스트가 여기까지가 아닐까 하는 근심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면 참 슬프잖아요. 그런데 <해피 투게더>를 갖고 나타났을 때는 예술가가 되어 있었어요. 그때 그의 나이 마흔셋이었죠. 영화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자기 시선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어요. 아, 멋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가들이 사십에 들어서 비로소 자기세계를 시작하는 이유가,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는 때라는 거.

마흔에 영화를 만드실 건가요?

그건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것 같고…

비밀인가요?

(웃음) 이제까지는 남의 영화에 대해 열심히 해설하고 주석을 붙였죠. 전 외국영화에 대해선 평을 쓴다는 생각이 잘 안들어요. 해석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번역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젠 남의 얘기하기도 지쳤어요. 제 생각을 담아보고 싶어요.

기대가 되시겠네요. 정말. 영화쪽 일에 관련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죠?

86년도부터죠. 그때 충무로에 와서 온갖 일을 다했죠. 영화사 기획일도 해보고 시나리오도 써보고 연출부도 해보고 비평가도 해보고 영화잡지 편집장도 해보고, 영화는 종합예술이니까.

그런 행로를 걸어오시면서, 자신에게 무언가가 채곡채곡 쌓여 왔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제 나이에 뭔가가 쌓였다라는 얘기는 못할 것 같구요, 다만 이렇게는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최선의 노력은 했어요. 왜냐하면 최선의 선택이란 저혼자의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주어진 조건들, 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을 포함한 선택이란 건 최선의 선택일 수가 없잖아요. 냉정한 사람들은 최선의 선택을 하죠. 만약 제가 아주 이기적인 선택을 했으면, 전 지금 영화감독을 하고 있었겠죠. 근데 저는 그때 그 기회를 놓쳤어요.

영화를 만드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물론 아니죠. 만드는 데 중요하진 않죠. 하지만 제도 안에서 나이는 굉장히 중요하죠. 이를테면 만약 제가 지금 당장 연출부에 들어가고 싶어도 저를 받아줄 수 있는 영화감독이 없어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감독이 불편한 거죠. 연출부를 모시고 영화를 찍을 수는 없거든요. 한국에서 제도 안에 들어가서 연출부를 할 수 있는 나이는 매우 제한되어 있어요.

그때를 놓치면 자신이 바로 감독이 되어야 하는 거네요. 그렇다면 연출부에서 배우고 익힌 다음 감독이 되는 것과, 바로 감독이 되는 것의 차이는 뭔가요?

연출부를 하면서 영화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건 아니에요. 시스템을 익히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생각을 많이 갖고 있으면 열일곱살에도 바로 편집장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혼자 만들 때는 그게 가능하지만 일할 때에는 아이디어만 갖고 되는게 아니거든요. 미술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기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사진부와 미술부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을 해야 하는지, 그런 시스템에 대한 조종자거든요. 각 나라마다 영화 만드는 방법은 다 달라요. 한국도 아주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거든요. 시스템은 역사니까. 역사가 퇴적되어 만들어낸 거니까. 그런 퇴적된 층들이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들이 자본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되는 인과관계를 갖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경험은 무엇보다 필요하죠.

그럼 우리나라 영화구조 속에서 제일 취약한 부분은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게 있을까요?

상투적으로 얘기하면 제도의 취약함이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창조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거죠. 영화는 본래적으로 상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브레히트 얘기에 백퍼센트 공감해요. 그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영화는 본래적으로 상품이다. 예술은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영화는 예술을 필요로 한다>. 즉, 영화는 예술가적인 창조의 의지를 가진 사람을 기다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에만 영화가 예술인 것이지, 모든 영화가 예술인 것은 아니거든요.

그렇겠네요.

그것이 영화가 지닌, 문학이나 연극이나 회화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라는 매체 안에는, 창조의 의지가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같아요. 19세기에 굉장히 많은 과학적 발명품들이 만들어졌잖아요. 그 중에서 전화나 라디오는 예술이 되지 못했어요. 근데 영화는 예술이 됐어요. 왜 영화만 예술이 되었을까. 그건 이 기계장치 어딘가에 예술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비밀의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들이 영화예술가들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장사꾼들이죠. 예술가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장사꾼들이 진치고 있는 곳에 들어와서, 영화의 비밀을 끌어내어, 우리들의 마음을, 정서를, 세상을 보는 우리들의 감각을 변형시켜주는 거겠죠. 영화감독은 시스템과 창조 사이의 조종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보는 감각과 우리들이 그 영화를 보며 느끼는 정서 사이의 조종자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것이 글을 써서 창조하는 것, 그림을 그려서 창조하는 것과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인 것 같아요. 그것이 글을 써서 창조하는 것, 그림을 그려서 창조하는 것과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인 것 같아요. 세잔느는 그려야 구도를 만들어내지만, 영화감독은 어느 한순간 카메라를 갖다대는 것으로 감동을 주거든요. 서방세계의 예술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우월함이 있어요. 그것이 최고의 경지라고 여겼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노동에서 시작했죠. 손으로 만들어낸 건 천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근데 그것으로 음악과 겨뤄보고 그림과 겨뤄봤거든요. 백년 역사로 2천년의 역사와 겨뤄봤거든요.

그렇군요. 영화를 보면서 이건 좋은 영화다, 라고 판단하게 되는 가장 단순한 척도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저는 직관을 믿는 편이에요. 직관적으로 저한테 어떤 훅(hook)이 오거든요. 예를 들어 너바나 음악 중에 어떤 리프가 순간적으로 저를 끌어당기잖아요. 저도 예전에 기타를 쳐봤지만, 너바나의 연주가 그렇게 어려운 연주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어떤 순간에 훅이 오잖아요. 설명하기 힘든 거지만, 훅이 오는 영화들이 있거든요. 저와 직관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거죠. 또한 동시에 저한테 문제를 던지는 거죠. 그럼 저는 끊임없이 그걸 풀어보려고 질문을 던져봐요. 마르크스가 말하길, 인간은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만 문제거리로 만들어낸다고 하잖아요. 저는 두가지가 같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의사소통하는 방법은, 직관적으로 저를 끌어당기는 영화에 대해 제 상상력을 발휘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제가 모든 영화를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영화들도 있거든요. 남들이 정말로 좋다고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납득하기 힘든 영화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이것은 나의 세계가 아니구나, 하는 영화들이 있거든요. 그런 영화들에 대해서는 기다리는 편이죠. 또 저한테 훅이 오는 영화가, 다른 사람에게 느낌이 안올수도 있거든요. 그럼 저는 그것에 대해 쓰면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서로 함께 영화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에 관한 많은 지식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진 않나요?

전 영화보면서 많이 울어요. 삼류영화조차도 영화가 저보고 '울어'라고 명령하면 울고, '웃어'라고 명령하면 웃는 타입이에요. 그런데 위기가 오는 순간들이 있어요.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다음에 책을 찾아보지 않습니까? 영화의 형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다음엔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점점 이론적인 것에 뛰어들기 시작하거든요. 제가 영상원에서 영화비평 세미나 강의를 하는데 첫강의 때 저는 굉장히 놀랐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참 잘 가르쳤어요. 문제는, 너무 잘 가르쳤다는 거예요. 개념들과 이론적인 틀을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잇어요. 여러가지 분석적인 틀을 가지고 영화를 설명하지만 그건 자기의 것이 아니거든요. 제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한학기 동안 나하고 공부할 때는, 일단 영화를 본 다음 책상 위의 책들을 다 치워버리고, 컴퓨터를 그저 30분 동안 바라보고 있을 것, 그런 다음에 자기한테 훅이 온 그 부분들이 왜 나를 이끌었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상상의 끝까지 가볼 것. 세상 속에서 영화감독들은 영화를 만들어내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이 또 하나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꾸로 영화를 보는 사람은, 들어가서 다시 구성해 보는 거거든요. 저는 영화가 세상의 반영이라기보다 세상의 일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의 영토가 아닌가, 하는. 거기에 지나치게 개념적인 것들을 부여하는, 그런 영화 마니아들이 저는 사실 다소 불안해요. 그런 친구들을 만나 영화이야기를 하다 보면, 별기기묘묘한 영화들을 많이 알아요. 영화이론에 관한 책들도 많이 읽은 것 같아요. 초보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 넘어서면 자기생각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이 지식으로 점화하는 거죠. 지식이 남에게 우월함을 행세할 때는 권력이 되거든요. 거기에 재미를 붙이면, 다음엔 지식의 획들에만 가속도가 붙을 뿐이지 처음에 영화를 왜 좋아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요. 그런 것이 최근의 경향같아 불안해지는 거죠. 예를 들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도 장점이 많은 영화거든요. 스필버그가 틀림없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통신에 들어가서 <라이언...>의 비평을 보면, 너무 지루해요. 천편일률. 제목만 바꾸면 돼요. <라이언...>에서 로 바꿔도 되고, <쉰들러 리스트>로 바꿔도 되고 <태양의 제국>으로 바꿔도 되고. 심지어 어떤 글은 제목을 지워놓고 <이 글에 맞는 영화제목은?>하고서 보기를 열개쯤 써놓으면 맞추기 어려울 정도예요. 비판이란 비판적 거리를 갖는 것, 그것을 통해 생산적인 것을 끌어내는 것, 이렇게 두가지를 위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소모전에 휘말려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그건 원래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거 재미없는 인터뷰가 되고 있네요. (웃음)

진지한 인터뷰라고 해야겠죠.(웃음)

영화를 처음 만나서 와, 놀랍다, 라고 느끼신 게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요. <아라비안 로렌스>. 경이었어요. 저희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그 영화를 보고나서 제가 6개월 동안 낙타만 그리더래요.

모든 초등학교 2학년생들이 그 영화를 보고 낙타를 그리진 않을텐데, 정말 거대한 '끌림'이 있었나 봐요?

얼마전에 다시 보러갔거든요. 근데 그때의 제 나이 정도되는 한 소녀 아이가, 제 앞에서 있었어요. 처음엔 '아버지 집에 가', 하던 애가, 거의 앞쪽 의자를 붙들고 앉아서 보는 거예요. 세시간 동안을. 전 그 아이를 보면서 작은 공동체 의식을 느꼈어요. 오히려 그 아이에게서 훅이 왔었어요. 그런 영화도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어린 시절에 봤을 때는 로렌스가 게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영화 속에 그런 것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식민주의에 대해 더더구나 알지 못했고, 아랍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더더구나 몰랐지만, 그 영화가 주는 이미지들이 저를 거의 빨아들이다시피 했거든요. 저한테 정말 위대한 영화였어요.

두번째 충격으로 왔던 영화는요?

초등학교 4학년 때요. 전 영화란 모두 그렇게 위대한 것들만 있는 줄 알았어요. 대작들. 그리고 영화란 부모님과 같이 보러가는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친구 생일날 놀러 갔다가, 케이크 잘라서 먹고 나더니 얘가 영화보러 가자, 그러더라구요. 아니 어떻게 영화를 우리끼리 보러가니, 그러니까 굉장히 촌스럽다는 듯이 저를 끌고, 지금은 사라진 미아리극장으로 가서,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국적불명의 한중합작영화를 봤어요.

홍콩영화 같은 건가요?

일종의 그런 건데, 말은 한국말로 하죠. 사람이 하늘을 나르질 않나… 거의 홀린 세계가 있었던 거예요. 아,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 싶은데 그런 영화를 봤다는 말을 부모님에게 하면 안될 것 같은 거예요. 그 담에 이런 영화가 또 없나, 하고 신문을 뒤져, 한자로 쓰여진 영화만을 찾아서 저희 동네 일대의 영화관을 혼자 여행하기 시작한 거죠.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 수입되었던 중국무술 영화는 다 봤어요. 정말로 한편도 안빼고.

와아-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어요? 정말 다 봤기 때문에 자신할 수 있는 거겠죠?

예, 자신할 수 있어요. 한중합작 영화까지 다 봤어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무협지에 심취했죠. 초등학교 4,5,6학년, 3년을 무협지로 세월을 다 보냈죠. 근데 무협영화를 보면서 저한테 큰 배움이 하나 있었어요. 왕우라는 배우가 그때 홍콩영화 최고의 배우였는데, 왕우가 나온다고 다 재밌지 않는 거예요. 제가 그때부터 홍콩영화들을 신문에서 오려서 스크랩하기 시작했거든요. 가만히 보니까 재밌게 본 영화들의 공통점이 있었어요.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것. 그래서 제 관심이 배우에서 감독으로 옮겨갔어요. 깨달음이었어요. 그전엔 스타에 대한 매혹이었거든요. 그러다가 감독으로 옮겨간 거죠.

그럼 이건 '예술이다'라는 느낌을 받은 최초의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 1학년 대, 사춘기에 막 접어들 때였는데, 그 나이 때니까 가능했겠죠. AFKN에서 봤으니까 단 한마디도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홀린 듯이 본 영화가 있었어요. <제3의 사나이>였어요. 넋을 잃고 봤어요. 오히려 나중에 봤을 때는 많은 단점들을 발견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매혹적인 순간이 있잖아요. 영혼을 강탈당한다는 느낌 있잖아요. <제3의 사나이>를 보면서 정말 예술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홍콩무술영화들과 왕가위는 스타일이 아주 다른데,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시다가 어떻게 왕가위를 좋아하시게 되었나요?

왕가위로 오기까지 그 중간 과정이 있었죠. 홍콩영화에 열중하면서 혼자 영화를 보러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 세대들한테는 없는 장점이 한가지 있었어요. 동시상영. 그래서 보기 싫어도 봐야되는 영화들이 있었어요. 그런 영화들 중에 매혹적인 영화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제가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가, 우리나라 개봉제목은 <고독>이었고 원제는 <사무라이>, 아랑드롱 나왔던 장 피에르 메르디 감독의 영화가 있엇거든요. 그 영화를 보면서 영화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은 아니구나, 다른 것들도 있구나, 이건 도대체 뭘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보물섬을 발견했어요. 프랑스문화원. 내가 그때 거길 기어이 찾아갔던 것은, 거기서 <금지된 장난>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근데 그 영화관에서 전혀 다른 영화들을 하는 거였어요. 근데 그 영화관에서 전혀 다른 영화들을 하는 거였어요. 요즘은 문화원에서 아마 비디오로 상영할 거예요. 그당시에는 필름으로 봤죠. 대형 비디오 화면이 그때 발명되지 않았다는 게 하느님한테 정말 고마운 일이었어요. <금지된 장난>이 끝난 다음달, 75년 11월이었는데, 고다르 영화제를 했었어요. 근데 이 영화들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영화를 완전히 다른 영화로 만드는 거예요. 고다르 영화는 저에게 다른 깨달음을 줬어요.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어요. 카메라의 움직임이 있다는 걸 갑자기 느꼈어요. 인물들이 아니라 카메라가 움직이는구나. 카메라를 보면서 영화를 보니까 영화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구나, 하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고다르 영화는 저에게 영화를 알게 해줬어요. 문화원을 고등학교 때 만날 수 있었던 건 고마운 일이죠.

게다가 하필이면 그때 고다르영화제를 했구요. 그런 걸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혹시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있다면 세 가지만 말씀해주세요.

아침에 자고 있을 때 전화하는 인간. 정말 싫죠. 제가 굉장히 나쁜 습관이 하나 있어요. 재밌는 책이 걸리면 그 자리에서 끝을 내야 돼요. 그럼 새벽에 잠이 들 때도 많거든요.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는 어떡해요?

책이 아주 좋은 경우는 약속을 미루죠. (웃음) 두번째는 징징거리는 사람. 응석받이들. 저는 아주 질색이에요. 세번째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지루한 사람.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이고 너무나 뻔한 것인데도, 자기 생각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너무 지루하죠. 배울 게 없잖아요.

영화에 대한 평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시다보면, 거짓말을 해야 될 때도 있지 않나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상대방에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힌트를 반드시 주죠, 반드시. 글을 읽는 순간, 이게 거짓말이구나, 라고 알 수 있도록 아이러니를 포함시키죠. 힌트는 발견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잖아요.

여지껏 인터뷰를 몇차례나 당해보셨나요?

사실은,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공식적으로 하는 건 처음이에요. 안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학보사, 교지, 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드는 책에서 하자고 하면 항상 오케이예요.

이유는요?

정말 제 생각을 들으러 오는 경우에는 이야기를 같이 하고 싶거든요. 근데 인터뷰는 항상 그런 거 같아요. 읽는 사람을 초반에 저항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반항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하나 보자. 그것을 넘어서서 그 사람과 생각이 통할 수 있기까지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텔레비전에 절대 안나가거든요. 제가 영화를 알기 때문에, 편집이 갖고 있는 속임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에요. 인터뷰를 글로 풀어내는 경우에도, 모든 걸 다 풀진 않거든요. 자기들의 관심거리를 풀어내는 거거든요.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 이해의 한계 내에서만 인터뷰를 풀어내거든요. 그러면 대부분 오해를 남기게 될 경우가 많죠. 그런 게 저는 싫어요. 그래서 피한다는 것이 정확하겠죠. PAPER는 어떻게 푸시는지 봐야지. (웃음)

(웃음) 그런데 어떻게 인터뷰 요청에 응낙을 하셨어요?

PAPER 인터뷰를 보다가, 어떻게 풀어내는지 궁금해서요. 음, 그러고보니 제가 인터뷰를 했던 적이 한번 더 있었어요. 대학생들이 만드는 <오늘예감>이었어요. 평소에 그 책에 실린 인터뷰를 상당히 재밌게 봤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들 작업하는 방식이 궁금했어요 .제안왔을 때 인터뷰라고 생각하지 말고, 대담이라 생각하고 진행해보자, 그랬죠. 질문 던지는 방식이란 게 생각의 방식이고 관심의 방향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정성일 씨가 하셨던 인터뷰 중에 기억에 남는 대상은요?

임권택 감독님이요. 그리고 박광수 감독과 후 샤오시엔. 영화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인터뷰를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에 제가 딴 사람이 되더라구요. 영화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가르쳐주니까. 그런 경우는 인터뷰라기보다 지혜를 훔쳐오는 거죠.

정성일 씨가 영화를 만드신다면, 어떤 스타일의 영화가 나올까요?

만들기 전엔 몰라요. 제가 예전에 만들어봐서 알아요. 8밀리 세편, 16밀리 네편을 만들어 봤거든요. 시나리오 쓰고 만드는데, 제가 가장 놀란 것은, 만들고 싶은 이상적인 영화가 있었는데, 만드는 과정 속에서 자꾸 변해가요. 마지막에 완성되었을 때 나도 알지 못하는 영화가 되어 있는 거예요. 일곱편의 영화를 만들면 기술이야 늘죠. 하지만 영화 자체는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제가 좋아하는 이상적인 영화는 아니에요. 내 손으로 만들었는데도.

영화가 제 스스로 태어나는 거군요.

예. 정말로. 아이도 없으면서 이런 얘기하긴 쑥쓰럽지만, 자식이 부모 뜻대로 크지 않잖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서로의 긴장관계와 우호적인 관계들이 겹치면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감독이 가장 중요하겠죠?

예. 조종자니까. 어설픈 비유지만, 교향악단에서 지휘자가 제일 중요한 것과 같은 거죠. 지휘자가 하는 일이라곤 손 흔드는 것밖에 없지만 이 사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어떻게 달라지죠?

어떤 것은 더해지고, 어떤 것은 깎여나가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질적 전환을 해버리더라구요. 그런데 모든 감독들이 그런 것 같아요. 또 그걸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내 안에 뭐가 있었을까. 나를 속이면서까지 내 안에 있었던 것이 뭘까.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거죠. 보고 싶어하면서 또한편으로는 보기 싫어했던 것. 그런 것들이 나오거든요. 영화를 찍어보면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나와요. 이를테면 두 남녀가 만나는 장면을 찍는다고 해봐요. 감독이 결정해야 하거든요. 어디서 만나게 할까. 대학가 카페, 호텔 카페, 또는 클럽에서 만나는 것이 완전히 느낌이 다르거든요. 언제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또다른 것으로 바뀌어요. 그 다음에는 어떤 옷을 입힐까. 그 다음에도 여전히 결정할 것들이 많아요. 마실 것을 뭘로 할까, 아니면 뭔가를 마시기 전으로 할까.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 컵이 가득차 있게 할까, 반쯤 비어있게 할까. 그순간 컵이 감정이거든요. 그 얘기를 마시고 나서 할까 마시기 전에 할까, 그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죠. 그 모든 걸 결정해야 하는 거죠. 근데 그 결정을 한순간에 한다는 거예요. 그건 그 사람의 경험과 자기 삶의 총화거든요. 막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한순간에 하는 거니까 무의식 만큼이나 중첩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비평가들이 현장에 오는 걸 감독들은 두려워해요. 결정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요. 현장을 가보면 좋은 영화인지 나쁜 영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감독이 어떤 사람인가는 알 수 있어요.

많은 감독을 만나보셨는데, 감독들이 작품을 찍고 나서 대체로 만족하는 편들인가요?

다들 불만스럽게 생각하죠. 그런데 훌륭한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성숙하는 것 같아요. 과정 자체에서 성숙하는 것 같아요. 만들어 놓고 그걸 다시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 여기서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킬까 하는 것, 그렇게 성숙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인 것 같아요. 하지만 만들어놓고 못벗어나는 사람들 있잖아요. 계속 동어반복하는 사람. 처음엔 놀랍게 등장하는데, 담에 또, 또…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는 경우. 가장 슬픈 경우는 유작이 되는 거지만, 가장 재능이 없는 감독은 데뷔작이 대표작인 감독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해요. 그 사람은 평생에 할 이야기가 한가지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가 얘기했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걸작을 한편은 쓸 수 있다라고. 자기 이야기를 쓰면 되니까.

멋진 말이군요.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뭘 배울 수 있을까요?

정말 배우기 시작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보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제가 어른이 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직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진 못하잖아요. 성숙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들에게서 어른의 태도라든가, 세상과 관계맺는 방식이라든가. 지켜야 할 삶의 원칙 같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영화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행복한 거죠. 귀속감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주석을 달거나 번역하는 게 아니라 창조할 수 있다면 더 큰 기쁨이 되겠죠. 그리고 영화를 처음 볼 때보다 반복해서 볼 때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 반복 사이에 시간을 가지는 경우. 어릴 때 보고 고등학교 때 보고 대학 가서 보고 나중에 비디오로 다시 보고. 이전의 나를 돌이켜보면서, 내 생각이 한뼘은 커졌구나, 라는 걸 느낄 때 자신에 대해서 고마운 것 같아요. 내가 거기 서있지 않고 내 방식대로 계속 걸어왔구나. 자신의 생각이 컸다는 거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좋은 것 같아요.

제일 여러번 본 영화가 무엇인가요?

몇편 있어요. 그중에서 고다르의 <삐에르 미치광이> 같은 건 백번 이상 봤죠.

와아-백번이요? 휴우… 그럼 한달에 평균 몇편쯤의 영화를 보시나요?

다른 사람들보다는 많이 보겠지만, 영화에 그렇게 탐닉하는 편은 아니에요. 물론 탐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세상의 영화를 모두 보지 않고는 못견딜 것 같았던 시절. 휴가 때는 일본 가서 하루에 다섯편씩 보고, 비자가 15일 나오잖아요. 가는날 오는날 빼고 13일 동안 하루 다섯편씩 내리보고, 마지막엔 코피쏟으면서 보던 시절도 있었죠. 영화 한편을 35만원 내고 본 적도 있어요. 후 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을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근데 일본에서 특파원이 보내온 자료를 보니까 개봉을 했더라구요. 정말 못참겠어요. 전화해서 예약해놓고, 마감 끝내고, 공항으로 달려가서, 비행기 타고, 동경에 가서, 호텔비를 아끼기 위해서 심야극장에서 영화를 아침까지 내리보고, 극장 앞에서 기다렸다가, 두번을 연이어 보고, 바로 나와서 비행기 타고 온 적 있거든요. 서른 한살 때죠.

정말 미친 사람 같으셨군요. (웃음)

(웃음) 그때는 정말 영화를 본다는 희열이 있었어요. 근데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안찾아보게 돼요. 영화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는 느낌보다는 남의 이야기에 그렇게 탐닉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좋은 영화 보면 여전히 좋거든요. 근데 만사를 제치고 동경까지 가는 일은 없게 된 거죠.

그래서 마흔살을 기다리시나 봐요…. 일본 영화가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많은 게 바뀌겠죠. 전 한국에 일본영화가 계속 수입된 상태였다고 생각해요. 1945년에 해방이 됐잖습니까. 1950년에 전쟁 났죠. 한국영화의 시작이란 건 1954년이거든요. 문화의 해방이란 건 정치나 경제의 해방과는 다른 것이잖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영토가 해방된다고 해방되는 게 아니잖아요. 영화는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한반도에 강제로 이식된 서방세계 문화 중 하나였거든요. 최초의 우리나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한테 영화를 배웠겠어요. 일본영화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가져왔거든요. 한국의 헌법제도 중 영화에 관한 법안사항들은 일제시대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들이에요. 그 사법적 제도와 열악한 경제적 토대 안에서, 일본으로부터 고스란히 가지고 온 모든 과정들이 있는 거거든요. 50년대 한국영화들은 거의 손실되서 볼 수가 없어요. 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는 60년대 영화들을 보고 제가 가장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그것들이 50년대 일본영화와 너무 똑같다는 거예요. 화면의 구도, 등장인물의 성격, 사람들의 제스추어, 그 사람들의 표정, 너무 똑같은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일본영화를 재생산해낸 것이죠. 1970년대에 정부가 텔레비전의 대중보급화에 나섰지 않습니까. 그래서 3개 방송사가 동시에 생겨났지 않습니까. 그때 어린아이들이 봤던, 제 나이 또래들이 매일보던 만화영화들이 전부 일본 것이었잖아요. 대사만 우리말로 바꾼다 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닌 게 아니잖아요. 그걸 보며 시각적으로 계속 훈련을 받았던 거죠. 어른들이라고 자유롭지도 않았어요. 끊임없이 일본 쇼프로그램, 일본 드라마를 반복 생산해 냈죠. 똑같은 포맷, 이야기구조, 끊임없는 표절시비들이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잖아요.

그렇죠.

일본 영화가 들어오는 순간, '원본 대 사본'의 대결이 될 거예요.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만 본다면, 원본과 사본의 문제인 것 같아요. 원본에는 아우라가 있거든요. 사본에는 아우라가 없죠. 비로소 사본이 천해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가짜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음, 그러면 여지껏 만들어졌던 우리 영화들은 전부 '사본'이라는 얘긴가요?

물론 ALL OR NOTHING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전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생각은 일종의 전체주의적인 발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다만 저는 그대로 베꼈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제도, 시스템, 반복적인 비약적인 원칙들, 이것을 끌고 나갔던 시대정신, 이런 것들이 과연 우리들 것이었나에 대해서 한국영화의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준다는 거죠. 이를테면 한국의 음악들, 트로트라고 부르는 것들이 한국음악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우리의 댄스음악, 힙합이나 레게가 변형될 대로 변형된, 이상한 폼으로 바뀌었잖습니까. 그런 모습 속에서 원본이 들어와 사본과 비교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둘 중 하나가 우리것이라는 게 문제죠. 둘다 남의 것이라면 흥미진진하게 관찰해볼 수 있겠지만, 그리고 우리것이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는 것이죠. 사본 속에서 얼마나 오리지널리티를 끌어낼 수 있는가, 그건 창조의 힘인데, 사본에서 끌어낼 수 있는 창조의 힘이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본이다'라고 그렇게 단정지을 수가 있을까요?

70년대 이후에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고, 80년대에 서방세계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미학적인 전통을 끌고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영화감독들의 생각을 많이 바꾼 것 같아요. 그러나 한국영화의 제작 시스템은 도제제도거든요. 감독은 연출부를 구성하여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지만 미술, 조명, 편집 기타 부분들은 그 도제제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거든요. 서방세계의 미학을 일본적인 전통 안으로 끌고 들어와 감독들이 악전고투하거든요. 이런 악전고투가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새로운 것이, 잡종교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적 식민지 상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우리들의 문화적인 정체성이 매우 모호해지는 것 같아요. 유럽전통, 미국의 인디펜던트 정신도 우리에겐 여전히 타자의 존재들이거든요. 그러니까 타자와 타자의 싸움이 된 거죠. 그 속에서 우리는 뭘까. 물론 전 내셔널리즘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거기서 한걸음만 더 나가면 파시즘으로 전환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아이덴티티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순간은 자기가 어떻게 주체화되어 가느냐라는 것, 시각을 통해서 자기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거든요. 우리들이 세상을 보는 훈련을 받는 거잖아요. 이젠 더 이상 회화를 보며 배우진 않잖아요. 텔레비전은 그 안에 담겨있는 정보만 전달할 뿐이지, 정서를 갖고 있진 못한 것 같아요. 텔레비전이나 전화로 우리들은 '고해성사'하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영화는 종교적인 고해성사를 담아내거든요. 저는 여전히 영화가 갖고 있는 종교적인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을 이야기해야 할 영화 안에서, 그 타자들의 웅성거림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냐는 거죠. 완전히 파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파산한 다음에 우리가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은 뭘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의 문화란 것은 왜곡된 모더니티 프로젝트들이잖아요. 서방세계는 우리에게 번쩍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났잖아요. 그 번쩍거림이 기형적으로 나타나는 걸 많이 봤거든요. 그걸 반사해줘야 할 영화가 그러하다면, 그 모습을 비치는 틀 자체가 더이상 우리가 아니라면, 우린 그 속에서 뭘 보라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일종의 위기인 것 같아요. 전 일본영화 들어오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요. 더 빨랐어야 했어요. 그럼 우리들에게 기회가 있었을 거예요.

'원본과 사본'의 지경까지는 안갔을테죠.

그렇죠. 그 경계선에 있었을 때 싸워가며 시작할 수 있었는데, 한 세대가 지나버렸어요.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가까인지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여기서 도제제도로 배운 사람들은, 자기 스승이 만든 것이니까 우리것이라고 착각하게 돼요. 19세기 서방세계에 선교자들이 가서, 제국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했던 가장 못된 짓이 뭐였겠어요. 날조된 신화를 전파한 거거든요. 신화를 전파해서 한 세대가 건너간 다음에 자기네 신화라고 착각하게 한 것이죠. 그래서 아프리카 지역에 날조된 신화들이 팽배해 있는 거잖아요. 식민지 전략이잖아요. 세대를 건너간다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것이라고 착각하게 되거든요. 우리의 선조를 때리던 나까무라 순사가 하던 것은 나쁜 것이지만, 우리의 선배들이 하던 건 전통이 되버리죠.

그럼 어떡해야 하나요? 약간의 대안을 말씀해주셔야 도리가 아닐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위험하단 걸 알면서도, 저 자신도 모르게 자꾸 계몽주의자가 되어가요.

지루하군요…. (웃음)

(웃음) 그러게요. 계몽주의자같이 지루한 게 또 어딨겠어요.

그래도 출구가 보이겠죠.

만화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필자 중에 만화가 박무직 씨가 있는데, 일본문화개방에 대해 얘기를 했었어요. <일본 만화가 들어오면 힘들지 않느냐, 많은 만화작가들이 일본만화 표절시비에 시달리고 있지 않냐, 한국만화가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은근히 떠봤어요. 근데 단호하게 얘기하더라구요. 일본만화 들어와서 한국만화 견딜 수 없으면 빨리 망하는 게 낫다고. '우리 만화를 억지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일본 만화를 못들어오게 막으면, 정말 좋은 만화작가가 나올 수 있는 다음 세대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가 자기더러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그리고 시작했고 만화가가 된 건데, 능력이 없으면 이 일을 그만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일본만화 빨리 들어와서 다 망해버리면, 다음 세대들은 홀가분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은 없어', 그러면서요?

'그럴 때 정말 우리 전통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왜 꼭 시작이 <나>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얘기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진짜는 다음일 수 있어요. 근데 모든 사람들은 자꾸 자기를 중심에 놓고 지금부터 시작이야, 라고 얘기하죠. 우리나라엔 선언문이 정말 많아요. 제도권이건 독립영화건 매년 선언문이에요. <우리는 이렇게 새로 시작합니다>, 무슨 시작이 그렇게 많은지. 문장도 대동소이하고,

PAPER도 다음달엔 선언문을 하나 실어야겠네요. 인터뷰다운 인터뷰를 시작하겠다는 선언문. (웃음)

(웃음) 전 선언문이 정말 지겨워요.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황경신 사진/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