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신문』 2004.06.24.인물

싫은 것을 사랑하는 법

나는 전지현에 대해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직업이 원수(?)라 할 수 없이 무더운 여름 오후 연인 관객들 틈에 끼어 쓸쓸하게 혼자 보게 되었다.

영화는 따분한 신파조로 시작해서, 그저 그런 연애 이야기로 지지부진하게 진행하다가 애인 장혁이 어이없이 죽고 난 다음부터는 점입가경으로 치달아 나를  당황케 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나를 개의치 않고 이 황당무계한 연애활극을 눈물겹게 전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 보기를 거의 포기해 버렸는데, 그러고 난 다음부터는 거의 초현실주의 실험영화로 보일 만큼 법도 질서도 없는 지경이 되어 영화는 끝나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해도 단 한 가지만은 내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마흔 살이 넘은 남자가 만든 영화가 이렇게 닭살 돋을 정도로 열 다섯 살 소녀 취향의 순정만화 같은 감수성을 잃지 않은 채 시침 뚝 떼고 시종일관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곽재용을 생각했다.

내가 곽재용을 처음 만난 것은 복학하고 난 다음 프랑스 문화원에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닐 때였다. 1983년의 일이다. 그때는 프랑스 문화원에 토요단편영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박건섭 씨라는 분의 영화 열정으로 그 당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영화전공을 제외하고는 아직 16mm 영화를 만드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서 거기에 영화를 소개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에 목숨을 걸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열혈 영화청년들이었다.

곽재용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은 “죽인다”라고 말했고, 특히 그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치른 악전고투의 모험담이 화제였다. 그는 원래 화학과를 다녔는데, 전공에는 관심이 없고 영화 만들기에만 몰두하자 집에서 일체의 도움을 중단했었다고 한다.

그러자 곽재용은 밤에 철제로 만든 자기 집 대문을 몰래 떼어 내서(!) 철공소에 판 돈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기겁을 할 일이다. 나는 그의 영화보다는 그가 영화를 만든 과정이 ‘죽인다’고 생각했다.

토요일에 만난 곽재용은 그 모험담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상하게 목소리가 떨렸고, 상대를 잘 마주보지 않으려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만든 단편영화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나는 그렇게 좋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에게 좀 신기한 감수성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몇몇 이미지들은 좀처럼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연출자와의 Q&A가 끝난 다음에는 술을 마시러 몰려갔다. 그때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스물 네 살의 나는 매우 못된 사람이었다. 일단 상대를 찔러 보고 난 다음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 질문을 견뎌야만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술자리에서 나는 곽재용에게 그냥 다짜고짜 질문하였다. “당신 영화 테크닉은 훌륭한데 이야기가 너무 한심한 거 아냐?” 거의 말이 없던 곽재용은 그 말에 처음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 나도 알거든, 그런데 그걸 그냥 인정해 주면 안 되나? 왜 내 취향을 당신한테 맞춰 주어야 하는데? 내가 영화 하는 건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하고 싶어서지, 당신이 보고 싶은 걸 보여 주려고 하는 게 아닌데” 나는 마치 급소를 찔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 말을 듣고 그냥 중얼거렸다. “당신, 진짜 멋있다.” 나는 내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그 이후에도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곽재용은 정말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영화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 다음에도 나는 곽재용과 그렇게 친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영화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 취향을 그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그도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같은 영화판에 있으니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그러면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를 가끔 본다. 볼 때마다 ‘아, 역시 곽재용의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곽재용에게서 나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게 중요하다. 그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게 싫다고 해서 그게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있다면 얼마나 황량하고 따분하겠는가? 혹은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세상은 싫은 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곽재용은 싫은 것을 사랑하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여친소’를 보고 난 다음 난 그냥 중얼거렸다. “당신, 싫지만 참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