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예감』 1995.06.(3호)본인인터뷰

영·화·잡·지 「키노」

편/집/장  정/성/일

축제를 깨뜨리지도, 묵시록을 비켜가지도 않겠다.

시공간 ■ 4월 27일「키노」사무실
대담정리 ■ 본지 편집장 손동수
참관 ■ 박준희, 배윤희, 계주연

4월 27일, 약속시간이 조금 넘은 4시 10분쯤 우리는 신사동,「키노」사무실을 찾았다. 1층에는 뿌조 자동차 전시장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었다. 널찍하고 깨끗해 보이는, 그래서 당연히 부러움을 느끼게 되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인터뷰 계획을 수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구 인터뷰의 형식을 고사하시는 정성일 편집장의 고집 때문이었다. 사진기자까지 대동한 형편이었으나 결국 인물사진 하나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성일 편집장은 예상외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당일에서야 서점에 책이 깔렸으니 어제까지 인쇄소에서 있었을 것이 분명한 그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역시 지난 밤 창간 축하 파티의 흔적으로 보이는, 케잌이 반쯤 남아있는 휴게실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케잌과 원두커피를 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주면서 자연보호운동을 상기시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 이야기가 헐렁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에서야 보게 된「키노」의 첫인상. 화려한 청색조에 강수연의 얼굴이 박힌 표지는 여성지를 닮아있었다. 표지를 보는 순간 인터뷰를 생각하면서 준비했던 우리의 질문들은 이미 효력을 잃고 있었다. 한겨레 신문에 매주 등장하는 날카로운 비평의 필자, 강연 때마다 좌파적인 시각의 분방한 발언을 구사하던 평론가가 만드는 영화정론지(?)를 그려보던 우리의 시각과는 어울리지 않아서인가? 어찌되었건 약간의 실망을 하게 된다. 그나마 자리가 정리되자마자 오히려 이전부터 관심 있게 보았다며「오늘예감」에 관해 퍼부어대는 그의 질문을 간신히 피해가며, 우리도 질문을 시작했다. 첫 질문은 재미없게도 실무적인 것이었다. 키노의 재정적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 재미없는 질문에도 역시 재미없는 답이 정석이건만 그는 우리의 속셈을 아는 듯 조금 긴 이야기를 해주었다.

■ '대선'이라는 부산에 근거지를 둔 기업입니다. 상업지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의 이익을 남겨줘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도권에 들어간 상태에서는 분명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고 반대로 편집권에 대한 철저한 독립을 보장받아야 하겠지요.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로드쇼」라는 잡지에 몸담은 적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잡지를 할 때에는 매우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 결정권을 장악해 나가면서 경영권에 구애받지 않고 상당 부분 건강한 문화적 발언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다시는 영화잡지를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잡지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변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새 영화는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다양한 측면에서의 영화 담론들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 한편이 우리의 1년 자동차 수출액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했다는 명백한 대비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상황에 대응하는 지면이 생산될만도 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듯했다. 그리고 그가 참여한 과정은 주도적이었다기 보다는, 끈질긴 권유의 결과 그리고 같이하게 될 사람들과의 교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그렇다면「키노」가 하려는 역할은 무엇일까?

■ 영화의 이스크라 같은 것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이 해야할 일입니다.「키노」는 완전한 상업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스크린」이 창간된 것이 83년 4월이니까 영화잡지를 12년 이상 보아온 영화독자들이 있는 셈이고, 그만큼 양적으로 성장한 영화매니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으로, 흐름을 구부러뜨려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다시 긴장관계를 형성해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키노」가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한해 개봉 영화 편수가 450여편이니 우리 나라가 헐리우드 영화시장 3위, 도시로는 동경 다음으로 서울이 2위라는 등 근거를 제시했다. 양적 증대가 만들어낸,「스크린」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질적 요구를 받아낼 지면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 갈 필요가 있지 않은가.「스크린」이나「로드쇼」는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영화언어」나「씨네필」과의 차별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기본적으로 이론, 비평, 정보의 3가지 범주가 지면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테제로 제시될 수 있다면「키노」가 지향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혹시 다 휘어잡아 볼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 세 부분을 다 포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한다면 즉각, 각각 영역에서의 한정된 독자를 두고 비슷비슷한 지면이 싸움을 벌이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이것들이 혼재될 경우 메시지의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들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평을 지향합니다. 정보들을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담론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할 생각입니다.

그는 일일이 창간호를 펴가면서 '이 부분은 비평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감하게 시도하는 데이터 베이스 정리 부분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창간호의 편집글 격인 '에디토리얼 테이블'에 잘 써있다고도 했다. 아직 꼼꼼히 책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그 화려한 편집과 촘촘한 정보들을 평가해 가면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설명에 끄덕일 뿐이었다. 최소한 그는 자신이 만드는 지면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우리는 잠시 소강상태가 된 틈을 타서 사적인 질문을 시도했다. 중간중간 '오프 더 레코드'를 한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 이야기하기는 오히려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우선 그의 글쓰기에 관해서 질문했다. 한겨레 신문에 실리는 영화주평이 갈수록 초기의 명징성과 전투성을 상실하고 자기 배설적으로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성 질문이었다. 대중적으로 쉽게 소통되지 않는 독선적인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라는 사뭇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 나는 한 사람에게 아주 큰 컴플렉스가 있는데, 가끔 꿈에도 나타납니다. 다름아닌 박재동 화백인데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절망하곤 합니다.

그는 박재동 만평이 가진 촌철살인의 묘를 원고지 10매 정도의 그의 비평에서 성공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자학적으로 자인했다. 초기의 신선함이 떨어진 이유가 지나친 다작 때문은 아닌가라는 질문에도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덧붙여 다작을 해야하는 형편 즉, 경제적인 여건상 미친듯이 글을 써내야 하는 이들의 고통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개의 글을 써놓고 골몰하며, 때로는 다 써논 글을 버리고 다시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자신의 곤란을 이야기했다. 또한 읽는 사람 뿐 아니라 영화를 만든 사람의 입장까지 고려해야 하는 난점을 들어 자신의 글쓰기를 옹호하기도 했다. 타당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 나는「오늘예감」을 보고 만세!를 부른 적이 있는데, 문화비평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쉬울 필요는 없다고 한 대목에서 였습니다. 문학비평을 보면 충분히 어려워도 아무 말들 하지 않으면서 영화평은 왠지 쉬워야 한다고들 생각하거든요.

어렵다는 사람들,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않냐는 비난들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사실「오늘예감」창간호에 실린 그 글에는 정성일씨의 영화평이 본격비평의 요약판 같아 지면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들어있었다. 언뜻 그의 열린 자세 혹은 꼼꼼히 자신에 대한 지적에 귀기울이는 자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책을 보아왔다는 것이 입에 발린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데에도 고마움을 느꼈다. 수필체의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말하는 발터 벤야민을 좋아한다는 그는 그의 독설적이고 공격적인 비평이 결국은 독자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 즉 서로 논쟁하고 반박할 수 있기를 바라는 데에서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적인 울타리 안에서의 평론가란 이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관객이 평론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그의 견해는 아주 젊은 생각이라고 느껴졌다.

잠깐의 사적인 우회로를 거쳐 우리는 다시「키노」이야기로 돌아갔다.

우리가 과도하게 가졌던 기대 즉 전투적인 비평지로서 기능하는「키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인지한 바였으나, 그래도 한번쯤 더 묻고 싶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영화판에도 비평가 집단이 생겨야 하는 것 아니냐, 정성일씨라면 이제 그런 일들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키노」가 그 일을 할 생각은 없느냐. 우리의 요구는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이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이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첫째 자본이 없고, 둘째 인력이 없고, 셋째 읽을 독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 오래 전부터 그런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맘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기가 힘들었지요. 만들어 보기는 했지만 오래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씨네필」이 새롭고 젊은 필자들의 견해를 담아내려는 노력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오늘예감」같은 지면에서 해야할 일 아닙니까.

반문하는 그의 말 속에는 정확하게 '「키노」는 상업지' 라는 위상을 정립한 프로페셔널 잡지의 편집장으로서의 입장이 드러났다. 그래도 한번 더,「영화언어」같은 지면은 어떤가, 과거의「영화저널」은 또한 그런 가능성 아니었던가. '너무 늦게 만났다. 이미 서로의 길을 모색하는 중간에서야 만난 것이다'라는 그의 대답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과거형을 현재형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재형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충고처럼 들렸다. 우리는 점점 질문이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획했던 이야기들이 진척될 분위기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아예 세세한 것들을 묻기로 했다.

편집 시스템의 독특한 점은 없는가

■ 다른 지면과 다를 바 없습니다. 편집차장은 이연호씨가 맡고 있으며, 편집부, 사진부, 미술부, 영업부, 그리고 특이한 것은 데이터 베이스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김명준씨가 실장으로 계시는데,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축적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창간까지 소요된 총 자본은

■ 나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무관심하려고 합니다. 물론 자꾸 알려주려 하지만 그런 걸 알면 알수록 나는 상업성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모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방대해 보인다.

■ 영화잡지가 해야할 임무 중에 하나는 기록성을 가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우리는 외국 유수의 잡지들과 계약을 맺어 풍부한 정보들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우리로서는 정성일씨의 능란한 화술을 즐겁게 즐기는 가운데 좌담은 계속되었다. 우리의 질문보다 오히려 우리 활동에 관한 그의 질문이 더 날카롭거나 정연하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평소에 꼭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과 장시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의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했고 선험적인 이미지로 가지고 있던 공격성이나 독선적인 태도보다는 농담도 잘하고 유쾌한 쪽에 가까웠다. 두시간이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총체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대답이 의외로 명쾌해서 우리는 조금 놀랐다. 강연이나 좌담 자리에서 자주 한국영화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한국에서 '생각'하는 영화가 가능할 것인가? 봅시다. 이제 충무로 제도권과 대기업의 자본의 노골적인 공모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화는 위험한 산업입니다. 자동차는 만들어 놓으면 실패하더라도 조금은 팔리지만 영화는 '쫄딱' 망하는 겁니다. 대기업이 영화판에 뛰어들면서 유통, 배급부터 시작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암시장과 같은 영화판에서는 일단 안면을 터야 일이 되니까 안전한 유통부터 치고들어 오는 겁니다.

이렇게 개입을 시작한 대기업은 삼성 나이세스처럼 점차 제작으로까지 발을 넓혀가고 있다. 그들은 이제 비디오 산업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며 점차 확장하며 대기업 자본이 아니면 아무도 영화 만들 생각을 못하게 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팔아먹을 수 있는 소프트의 확보일 뿐이다. 영화산업의 핵심고리이기도 한 테크놀로지의 혁신을 기업이 외면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우의 CATV는 이미 미국의 테드터너사와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확정한 형편이고 보면 영화 소프트들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이윤획득에 기본적인 이해가 달려있는 대기업들이 상업적으로는 저열하며 진지한 고민을 담으려는 한국영화에 굳이 애정을 쏟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 극단적으로 대기업이 제작을 완전히 장악했다가 손을 딱 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는 비감함이나 위기감보다는 오히려 약간 장난기가 어려보였다. 이미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뜻일까? 아니면 어떤 나름의 대안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너무 비관적인가요? 그러나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좀더 전진적인 타협이랄까? 작가의 목소리를 보존할 수 있는 한에서 독립영화적인 제작방식을 통해 자본을 진입시키는 방법의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술영화나 기록영화 등에 관해 차별화된 상영관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같은 분들이 너무 빡빡하게 싸잡아 비판하지 말았으면 합니다.「보임」같은 집단이 해내고 있는 작업에 애정을 보이기 바랍니다. 푸꼬의 말대로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는 것 아닙니까?

최근 발간된「영화언어」15호의 좌담에서 그는, 독립영화의 개념은 이제 독립 미디어의 개념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음 세기는 무한히 열려질 미디어 채널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우리에게「키노」창간호에 숨어있는 'DEEP DISH' 관련 기사에 주목해 달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한국영화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의 지적 이외에도 구조적 난맥을 깊이 품고 있는 곳이 우리 영화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더 새로운, 그리고 더 많은 가능성에 대해 도전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렴풋하게나마 평론가 정성일이「키노」와 만나게 된 과정과 이유를 잡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눈은 비평을 쓰고 상업적 잡지를 만드는 데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비평하는 것을 단지 영화를 생산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작업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결국 그의 행보는 많은 영화광들의 종착지와 마찬가지로 영화생산으로 향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결국 우리는 가벼운 갈증을 느끼며 이런 이야기 정도를 할 수 있었다.

'편집장님이 예전에 매주 토요일마다 라디오에서 30분씩 이야기 할 때, 영화를 하는 친구 하나는 녹음까지 해놓고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일정한 영향을 준다는 것으로 생각할 때, 비평한다는 것, 글쓰고 말한다는 것이 그렇게 폄하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는 그저 호쾌한 웃음으로 답했지만, 우리는 대담 중에 그가 했던 말 한마디를 다시 끄집어내서 생각했다.

■「키노」와 같은 지면이 망한다면 일년 후에 또 나옵니다. 그러나「오늘예감」같은 지면은 없어지면 적어도 향후 5년동안 또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각오를 새롭게하라고 충고하는 말로 생각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상업잡지의 끈질긴 생명력을 강조하는, 혹은 그 존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로도 들렸다. 어쩌면 그가「키노」와 만난 것, 그리고「키노」가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키노」는,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새로움'에는 근접했을지 몰라도 '전투성'과 '진보성'에는 못미친다는 평가 따위에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키노」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엉뚱하게 생각했었다.「키노」가 유일무이한 영화전문 비평지로 나서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편집장 정성일' 그리고 '비평가 정성일'을 동일시했던 오해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대중의 새로운 요구를 제도권 안에서 받아안으며 최대한 전진적인 정보와 비평을 제공하고자 하는, 상업지 안에서의 일목요연한 실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키노」의 어쩌면 뻔한 결과의 실험이, 그 안에 가지고 있는 비판적 영화판 읽기의 힘을 얼마나 열심히 발휘하는지 주목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가 읽어보기를 권했던「키노」편집글의 일부로 그의 명백한 창간의도를 발견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가 말한 만큼의 실천이 뒤따르는지 예의주시하도록 하자.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말 믿고 싶기 때문이다.

■ 이제 더이상 충무로는 한국영화의 유일한 근거가 아니며, 기업은 더욱 깊숙히 개입하고 있고, 직배영화는 더 많은 이익을 거둬가고 있으며, 더 적은 독립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더 많은 우리 영화들이 증발해 버렸고, 그보다 더 많은 영화감독들이 영화의 곁을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축제를 망치지 않을 것이며, 묵시록을 비켜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의지의 낙관주의와 지성의 비관주의를 알려준 지나간 교훈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숨을 불어놓고 입을 맞출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그냥 '영화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정말 쉽지않은 일을 자신만만하게 기획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