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매거진』 1996.11.시론

드라마 PD들의 영화감독 선언

새로운 이미지 탄생을 기대한다

영화는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모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종착역과도 같다.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서 한계를 느끼는 예술가들은 모두들 영화에 도전했었다. 그것은 때로 끔찍한 실패를, 때로 믿을 수없는 성공을 가져오기도 한다. 라디오 방송작가였던 오손 웰즈는「시민 케인」으로 일거에 모더니즘 영화를 '발명'하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MTV 아티스트들은 5분짜리 클립을 만들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90분의 이야기 구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멸해 버렸다.

그런데 바로 지금 96년 한국에서는 갑작스레 TV드라마 PD들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80년대에 정지영, 박철수 등 영화감독들이 TV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은 TV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적응 부족과 함께 TV 모니터와 영화 화면 사이의 차이를 간과한 까닭에 인물과 카메라가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어서 의도한 미학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10년 후 김종학, 황인뢰, 고석만 등 각 방송사의 내로라 하는 PD들이 영화감독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이들은 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커다란 영화화면이 주는 매력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들은 대부분 대작 중심이었으며, 스펙터클이 넘쳐나고, 게다가 극적 반전과 수많은 등장 인물들이 브라운관을 누비는 '영화'들이었다는 점은(이미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는 영화의 개념이었다!) 기억한다면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들은 영화 예술자로 들어서고 싶은 기대의 지평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솔직히 아무도 TV 드라마의 PD를 예술가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이것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영화를 닮으려는 프로젝트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TV와의 교류는 그런 방식이서서는 안될 것이다. 50년대 말 할리우드 영화가 진부해지기 시작했을 때 PD들이 영화감독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영화의 미학과 수사학을 새롭게 만들어낸 시기가 있었다. 델버트 만의「마티」는 칸 영화제에서, 시드니 루멧의「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그들은 TV의 미학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 거꾸로 TV의 장점과 그 수사학적 효과를 생생하게 살리면서 영화 이미지 자체를 단숨에 동시대적 의미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들은 TV를 잊어버리기는커녕, TV가 부정해야 할 대상이라고 규정하는 대신 더 나아가 영화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TV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사유 체계를 구체화시키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긴장과 가능성을 찾아냈다.

PD 출신 감독들이 아직 영화를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섣부른 전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에게서 진정 새로운 이미지를 배우고 싶어한다. 그래서 영화의 이미지를 더욱 풍요롭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창작의 비밀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버리고 그저 영화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모두에게 손해일 것이다. 우리는 좀더 멀리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영상의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영화와 TV는 더 많이 서로 교류해야 할 것이며 서로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더 다양한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