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매거진』 1996.12.시론

제1회 인권영화제

영화와 삶을 잇는 실천의 축제

우리는 갑자기 표현의 자유를 얻은 것 같은 환상을 가졌다. 지난 10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영화에 대해 '사전심의는 위헌'이라고 판결 내리면서 우리는 정말로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숨에 바뀌지 않는다. 그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것은 매우 아이로니컬하게도(어쩌면 당연히!) 지난 11월 2일에서 8일까지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제1회 인권영화제였다. 1주일 동안 39편의 각국에서 보내온 인권에 관한 영화(또는 비디오 작품)가 비디오로 상영됐다. 오프닝으로 상영된, 30명의 프랑스 영화감독들이 각 나라의 대통령들에게 희생자들에 대한 사면 요청을 보내는 영화 편지「잊지 말자」와 폭력과 전쟁, 아동학대와 여성문제, 인종차별, 미디어, 동성애 문제를 다룬 중요한 작품들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쿠바에서 온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의「어느 관료의 죽음」은 사회주의 관료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으며, 볼리비아의 우카마우 집단이 만든「지하의 민중」은 미국과 볼리비아 군사독재 정권이 결탁하여 어떻게 토착 민중들을 탄압해 왔는가를 물어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만든 것은 이 인권영화제가 행사기간 내내 '행사 중지'의 위협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영화제는 '인권의 의미를 다시 물어보고 응원하기 위해서(만일 우리 정부가 인권을 보호하고 계몽하고 있다면)' 지지하고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부정의 방법으로 널리 알리는 데에는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은 인권영화제의 중지에 대한 사유가 '영화제 기간중에 상영된 영화들이 지나친 폭력과 섹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이지만 인권영화제의 핵심을 찌르는 표현이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탄압하는 두 가지 무기는 폭력과 섹스이기 때문이다. 인디펜던트 이미지가 만든「도둑맞은 아이들」은 끔찍하다. 아르헨티나 군부는 진보 운동을 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했다. 그 중에는 수감중에 출산하는 여인들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출소해도 아이를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멋대로 입양되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도둑맞은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으며, 그들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번 인권영화제 기간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작품도 세 편 상영되었다. 장기수 문제를 다룬 푸른영상의「분단을 넘어선 사람들」과, 노동악법 철폐운동을 하다가 자살한 대우정밀 해고자 조수원 씨의 죽음의 과정을 찾아가는 노동자뉴스 제작단의「해고자」, 아직도 감옥에 있는 양심수 100명의 얼굴을 차례로 보여주는 퓨처아트의 애니메이션「그리운 얼굴들」이다.

인권영화제의 진정한 소망은 어쩌면 '인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영화제를 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아직은 아니다. 인권영화제라는 이름만으로, 온갖 영화제가 열리는 이 나라에서 '행사 중지'의 위협을 받는 여기서는 더더욱 아니다.

인권영화제는 우리로 하여금 영화와 삶 사이의 가교를 잇는 그 실천의 축제가 될 것이다. 영화는 그저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그 속에서 당신의 아이들, 친구들, 부모, 그리고 아내, 더 나아가 당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모두가 만나 서로 함께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권영화제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