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촌 Anti-Tech Cinema Festival』 1998.11.01.본인인터뷰

영상촌 Anti-Tech Cinema Festival
KINO 편집장 정성일 씨와의 인터뷰

정성일 편집장님께

'Anti-Tech Cinema Festival'이란 이름으로 영화제를 하고자 합니다만 정 편집장님께 간단한 인터뷰를 했으면 하여 이렇게 난데없이 편지를 띄웁니다. 이번 저희 영화제의 주제는 동봉하는 영화제 기획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근 키노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도그마 95와 그러한 움직임이 나오게 된 배경에 초점을 맞춘 정말 뜬구름 같은 주제입니다. 때문에 저희는 나름대로 연구하고 또 머리를 짜보기도 하여 Anti-Tech Cinema란 별로 멋지지 않은 영화제 제목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직 어리고 또 미숙한 점이 많은 대학생의 신분이기 때문에 이번 영화제를 놓고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영화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말입니다. 그러던 중 저희는 먼 선배님이신 정 편집장님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줄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영상촌의 처음은 씨네마베리떼로 정편집장님도 대학생활 중에 거쳐가신 신방과의 한 학회였습니다. 때문에 저희가 다소 무리한 부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 편집장님 아니 선배님께 이번 영화제에 대해 저희가 묻고싶은 몇가지 질문에 응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한가지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저희는 이번에 정말 열심히 할 각오로 있습니다. 처음엔 '구로자와 아키라 회고전'과 같이 그냥 널리 알려진 영화제를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도그마 95가 소개된 키노의 기사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도그마 95로 영화제를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나와 있는 작품이 너무 없고 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영화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저희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어간 Anti-Tech Cinema Festival을 해보게 된 것입니다. 이번 영화제는 정말 도박이고 또 비난과 야유의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만 정 선배님께서 저희 영화제에 도움(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을 주신다면 거기서 힘을 얻고 열심히 하여 영상촌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멋진 영화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밝히는 바입니다. 부디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까마득히 먼 동아리 후배들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

- 영상촌이 이번 Anti-Tech Cinema Festival 영화제를 꾸리면서 가장 고심한 부분은 영상촌의 목소리가 너무 큰 만큼 영화제가 너무 우리들만을 위한 축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영화제 만들기를 위해 우리 영화제의 근본이 되었던 도그마 95에 대한 기사가 실린 '키노'의 편집장이시자 성균관대 신방과 78학번이신 정성일 선배님을 직접 찾아가 도그마95에 대한 얘기와 그 영화사적 의미를 집어보는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를 직접 주선하고 또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정 선배님의 특이한 말투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영화에 대한 열정에 매우 큰 흥미와 감동을 느꼈다. 8시에 남산에 있는 키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약속한 우리는 약간의 착오로 예정시간보다 다소 늦은 8시 40분 경에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녁을 먹기엔 다소 늦은 그 시간에 식사를 마친 정 선배님은 늘 듣던 대로 배트맨 T셔츠를 입고 우리가 있는 방으로 와주셨다. 차분한 말로 인사를 나눈 우리는 1시간 45분 동안 난방이 잘된 키노 사무실에서 정 선배님의 열띤 강의를 들었다.

Q) 이번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우리는 도그마 95와 같은 영화들이 영화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써 영화 본연의 모습이란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A) 인터뷰 질문지를 받고 처음에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 본연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하나의 호명이 아니라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브레히트의 "영화는 상품이다. 예술은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영화는 에술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에 큰 감흥을 받은 적이 있다. 영화 본연의 모습은 상품일 수 있으나 거기에 감독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어떠한 에술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어떠한 토대 위에서 자신의 의지를 갖고 실천하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만을 추구하는 예술이 아니지 않는가? '타이타닉'이 있으면 '파업전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영화이다.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가치관이 모두 다른 만큼 영화는 그 가치관들 끼리 부딪히고 얽히고 섥히는 가운데서 고민되고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1995년 코펜하겐에서 '도그마 95- 순수의 서약'이 나왔다. 이 서약은 기존의 영화 테크놀로지에 반기를 들고 영화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 하는 몇몇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서약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서약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서약이 그들의 의견을 어떠한 식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A) 도그마 95는 영화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취재 차 세계를 돌아다니며 내가 느낀 것은 오늘날 세계 영화의 중심은 헐리우드 영화라는 것이었다. 프랑스에 가보아도 대중들은 누벨바그와 같이 재미없는 영화에는 관심이 없었던 반면 헐리우드 최신 개봉작을 개봉한 영화관에는 줄을 서서 표를 구하고 있었다. 도그마 95란 어떻게 보면 이러한 메이저(헐리우드)영화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 스스로가 마이너 영화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마이너이고 싶어서 그와 같은 운동이 나왔다는 것인가?

(A) 아니다. 이들이 이러한 운동을 하게 된 데에는 영화 테크놀로지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벨바그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손에 들고 직접 거리의 풍경을 찍을 수 있는 보덱스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그마 95를 영화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낳은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운동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손쉽게 캠코더를 구하고 또 그것을 손쉽게 볼 수 있는 비디오의 보급이 낳은 또 다른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도 대학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해 영화를 찍고 있지 않는가? 마찬가지다! 굳이 영화를 기존의 틀에 맞춰 관객들에게 보다 큰 호응을 얻기 위해 찍어야만 하는가? 그건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빨간마후라'를 보라! 그것도 도그마 95에 충실한 영화다. 그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고 그들이 찍었겠는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이 가진 실수는 도그마 95가 가진 정신을 몰랐다는 것이다. 도그마 95의 정신이 있었더라면 그 영화는 '빨간 마후라'가 아닌 '백치들'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영화 테크놀로지가 발전되어 도그마 95를 낳았다는 것인데, 역으로 도그마 95에 의해 기존의 영화 테크놀로지는 퇴보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가? 왜냐하면 이 서약은 너무 규제가 강하고 기존의 테크놀로지를 거부하고 있는 점이 너무 많질 않는가?

A) 아니다. 운동은 늘 있어왔다. 누벨바그, 네오 리얼리즘, 뉴저먼 시네마 등등... 모두 시대의 흐름에 대한 젊은이들의 본능과도 같은 운동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도그마 95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도그마 95 운동의 특징은 메이저 영화라는 부르조아 영화 체계의 흐름을 한가닥 절단하여 그 모순을 파악하고 연구하고, 거기서 얻은 것을 토대로 동참하는 영화작가들이 자기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그러한 틀을 스스로 지어버린 것은 메이저 영화에 대한 저항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위기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Q) 키노 (1998년)7월호에는 20세기 최후의 뉴 웨이브란 말로 도그마 95를 형용해 놓은 것을 보았다. 정선배 개인적으로는 이 도그마 95에 긍정적이라는 것인가?

A) 아까도 얘기했듯이 이건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라는 문제를 떠나 하나의 운동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운동이 그동안 유럽영화사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던 덴마크에서 나왔다는 데에 매우 큰 흥미가 있다. 솔직히 여러분들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 많이 알아봤자 스페인, 스웨덴 정도의 영화사 정도만 알고 있지 않는가? 덴마크에서 이런 논제가 던져졌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Q) 그렇다면, 이 운동이 과거 영화사에 획을 그은 누벨바그나 네오 리얼리즘과 같이 하나의 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A) 그건 내가 알 수 없다. 그것은 시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Q) 그렇다면 그 판단은 관객들이 내리는 것인가? 우리가 봤을 때 이러한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그리 많은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데...

A) 아니다. 단순히 관객들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이러한 운동에 대한 판단은 바로 각국에서 영화를 예술로 인식하고자 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가져야할 논제이어야 한다고 본다.

Q) 그렇다면 선배님도 그러한 일을 하고 계신 분인가?

A) 그렇게 하려고 노력만 하고 있을 뿐이다(웃음). 그 지식인들이 각자의 견해를 밝히는 과정에서 이 운동이 가질 의미는 무궁무진하다. 영화양식에 있어 많은 것을 제약받는 '도그마 95'지만 그 안에서의 기발한 창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그 장소가 요즘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맞춰 세계 영화제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크게 다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Q) 얼마 전 PC통신을 통해 정선배님이 대학 영화 동아리를 비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앞으로 대학 영화동아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할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 해주길 바란다.

A) 나는 요즘의 대학 영화동아리에 대해 언제든지 틀렸다고 할 것이다. 지금 대학 영화동아리들은 잘못되어 있다. 심의 때문에 들어오지 못한 영화들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이익을 챙기고 있지 않은가? 만약 심의에 반대한다는 취지에서 영화제를 한다면 거기에 대한 확실한 의지와 영화제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받고 있다. 물론 영화제를 하는 데에는 장소섭외, 포스터 등 어느 정도의 돈이 들 수 밖에 없다. 그 돈을 충족시키기 위해 요금을 받는 것까지 뭐라하지 않는다. 다만 돈을 받는 취지를 밝힐 줄 모르고 그저 그 돈을 각자 개인들의 술값 등으로 탕진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심의 때문에 들어오지 못한 영화들을 보러 온 사람 중에는 나도 심의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온 사람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내는 돈의 의미는 어찌보면 대학 영화 동아리들이 여는 영화제 본연의 의미에 동참하고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대학 영화 동아리들이 영화제가 끝난 후에 그들이 왜 그러한 영화제를 가졌는가에 대한 세미나와 받은 요금의 출처를 밝힌 영화제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게 되버리면 받은 요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영화제를 주최한 행위자가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이다. 단지 불법이란 것을 무기로 상업성을 추구하고자하는 부도덕함에서 나온 행위인 것이다.

Q)(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인정하는 바이고 굳이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왜 더 큰 목소리로 대학 영화 동아리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런 말씀을 하셔도 될 위치에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A)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1년에 한두번은 꼭 고등학교 영화 써클의 모임 등에 나간다. 그들은 아직 청소년들이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스스로 그런 문제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 10월 25일 KINO 사무실에서

정성일 선배님은 영화 동아리에 대한 얘기를 끝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우리를 현관까지 마중해 주었다. 여러 가지 좋은 얘기를 들은 나는 정 선배님의 뒷모습을 유리문 너머로 보면서 다음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이러한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영화제 때 우리가 왜 영화 테크놀로지라는 것을 부인하려는 입장을 취하려 했는지 또 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이러한 영화제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몰랐었는 지에 대해 굉장히 큰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쪼록 정 선배님과의 인터뷰는 매우 유익했으며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제 작업 중 가장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끝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정성일 선배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