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 1998.04.01.(62호)본인인터뷰

INTERVIEW 4 : 문화와 대학

prologue

유명한 영화 잡지『KINO』의 편집장인 정성일 씨가 우리 학교 출신이라는 것은 그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다. 이발소에는 살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아줌마가 있어서 싫고 미용실은 아줌마들의 눈치가 보여 민망하다며 결국 직접 머리를 자른다는 그. 첫 인상은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 마냥 푸근했다. 하지만 느릿느릿한 특유의 말투는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었고 인터뷰 내내 진지한 그의 모습에서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문화는 전복하는 힘'이라는 말을 빌리자면, 그 카리스마에는 '전복'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지만, 그 냄새가 향하는 곳은 '힘'아 아니라 '문화'일 것이리라.

대안없는 현실, 그 대안을 찾아 '개겨 보십시오'

 78학번 정성일 선배는 본교 신문 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회사원이 되었다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그 생활을 접고 영화 평론의 길에 들어섰다. 그 후『로드쇼』편집장을 거쳐 현재 영화 전문 잡지『KINO』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많은 글을 통해 영화 평론가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한국 영화 연구1 - 임권택』등이 있다.

글 : 김지윤 / 편집위원 생명 자원 공학부 97학번

인물 사진 이대규 . KINO 편집실 /

심야 영화 - '무늬만 일탈'일 뿐인 '제도화된 공간' 속으로의 안주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참 못 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영화보고 노래방 가고 콘서트 몇 번 가 보는 정도죠. 대학생들의 놀이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성일  저도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하죠. 참 대학생들이 못 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못 노는 모습에서도 대표적인 문화, 못 논다는 모습의 알레고리적 현상, 그게 뭘까요? 바로 심야 영화죠. 심야 영화관은 어떤 영화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꽉꽉 메워져요. 심야 영화 본 적 있어요? 어땠어요?

『킹덤』요. 뭐, 그저 그랬어요.

정성일  심야 영화 보러 안 가는 사람들, 바로 제 또래의 직장인들이죠. 직장에 다니는 사람을 사회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제도화된 시간 속에 들어서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죠. 심야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런 제도화된 시간으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해요. 그렇지만 밤이 완전한 해방구는 아닙니다. 밤은 제도화된 낮에 휴식을 제공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어디까지나 낮의 자장 안에 놓여 있는 거죠. 입시라는 제도에 매달린 고등학생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밤에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대학생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낮 시간을 재편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 외의 사람들이 밤에 도전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할 거에요.

제 또래의 친구들에게 물어봅니다. "심야 영화관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이냐"고. 열이면 열, 애인들 연인들끼리 가는 장소가 아니냐고 합니다. 가 보셔서 알겠지만 심야 영화관에는 연인이 거의 없어요. 연인끼리 가면 오히려 '왕따'가 되죠. 우르르 떼지어서 오든가 아니면 혼자 오든가, 부류는 두가지에요. 그런데 의외로 혼자서 오는 사람이 많아요. 자, 다시 생각해 봅시다. 심야 영화는 밤에 가서 보는 영화죠. 그 영화를 보는 것은 일종의 일탈을 꾀하는 겁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른 제도로 들어가는 것이죠. 왜? 영화는 제도화된 공간 속에서, 제도화된 방법으로 시간을 재편하여 그것을 보여주는 낮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분장만 바꾼 거에요. 바람난 여자처럼요. 똑같은 여자랑 데이트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것(심야 영화)에 대한 환영을 가지고 일탈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든요.

사실 저는 그런 현상은 대학생들이 노는 문화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노는 것은 저항하는 겁니다.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나, 놀기 위해서 일하나" 하는 말들을 하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기가 자의식을 실현할 수 있는 노동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놀면서 일하는 거'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는 문화도 제도 속에 편입되어 있어야 편암함을 느낍니다. 그건 창조적이지 않죠. 어딘가 자꾸 귀속되고 싶은 거에요. 자신과 문화가 만나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생산해 내지 못한 채 심야 영화관이라는 또 다른 '제도화된 공간' 속으로 안주하는 것, 그것이 이 심야 영화가 보여주는 패배주의적 무의식의 알레고리입니다. 심야 영화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는 이유는 기꺼이 거기에 전염되고 싶은 유혹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 풍토에서 얼터너티브를 정확히 표현해 보면 어떤 말이 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연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님의 번역이 제일 정확한 것 같아요. '개겨 보기'. 미국의 시애틀 록 같은 것은 정말 얼터너티브에요. 그것이 좌절되는 순간 권총 자살까지도 하는. 우리 나라의 얼터너티브는 그저 개겨 보는 정도지요. 사실 그것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있죠. 제대로 개기지도 못하는 곳에서 어떻게 마찰이 생겨나고, 저항이 생기며 비판과 토론이 이루어 지겠습니까? 그러니 소모적이며 소비적이며 패배주의적이 됩니다.

'놀고 있는' 대학생들, 지지한 자기 비판이 필요하다!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죠. 제가 아무리 바빠도 꼭 가는 두 군데가 있어요. <구로 청소년 학교>랑, 어느 고등학교의 영화 서클입니다.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대학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아이들 이야기가, 요즘 대학생들 너무 개판이에요. 책에서 읽은, 좋은 세상을 지향하는 모습과는 너무 다르대요.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대요. 그럼 아이들한테 "그렇게 개판인데 너희는 어떡하겠느냐"고 그러면, "과격하게 다시 시작할거야"라고 해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더 개판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야 정말 고딩들이 얼터너티브가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죠. 언제나 희생양은 필요해요. 지금 이 세대가 지놉적인 것 같기도 하고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려들 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럴 때 막가 보는 거죠. 세계관도 없고 아무런 생각없이. 그러면 점점 비판적이 되고 대안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여전히 변증법이 옳다고 생각해요.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대학생들은 숙청돼야 할 대상이에요. 쉽게 말해 떠도는 잠귀나 유령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어요. 이 고등학생들이 먼 훗날에 대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에요. 곧 옵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들이 비판하고 대립하고 그 속에서 토론할 때 긍정적인 놀이 문화가 생겨나지 않을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노는 문화라는 것이 어떤 건가요?

정성일  제도 안에서 나와 제도를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적 생산 질서에서 비껴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건 놀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도 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 안에서는 무엇이 잘 되고 잘못되었는지 몰라요. 나올 때만 가능한 거죠. 그럼 나오는 방법은 뭐겠어요? 자본주의적인 생산을 멈추는 것, 본래적 생산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저는 그것이 노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책상 앞에서는 대안이 생겨날 수 없어요. 용기 있게 앞으로 나오는 것이 필요하죠.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되잖아요. 그나마 1980년대가 낫지 않았는가 하는 말들도 하는데.

정성일  음, 여건이라... 그렇다면 과연 1980년대에는 그럴 여건이 있었는가,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요. 대학 다닐 때 운동하고 졸업하자마자 취직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서 그들이 운동을 했나요. 아니죠. 그렇게 생각할 수 없죠. 언제나 한 번도 그런 여건이 주어진 적은 없어요.

1980년대보다 지금이 더 빡빡하지 않나요?

정성일  점점 정치적 국면에서 경제적 국면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정치적으로는 쉽게 단결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쉽게 쪼개지죠. 그러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변해가고, 이제는 정치적 권력보다 경제적 계급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은 혜택받은 계급이에요. 제도화된 계급이죠. 그러니까 사실은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이 싫을 수 있겠죠. 왜? 정치적 투쟁은 "잡느냐, 잃느냐"하는 권력에 대한 투쟁이지만 경제적인 투쟁은 다른 국면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기득권자로서는 뛰어들기 힘든 거에요. 권력을 이야기하는 1980년대의 투쟁은 어쩌면 간편했을 수도 있어요. '되찾기 위한 싸움'이라는 명분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미 기득권에 들어와 있어요.

68 혁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가 뭐라 생각하세요? 소르본느를 없애버린 거에요. 파리에 있는 모든 대학은 파리 1대학, 2대학, 3대학 하는 식으로 번호로 구분됩니다.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을 기꺼이 서울 1대학, 2대학, 3대학 하는 식으로 만들자는 어떤 주장도, 저는 지금의 대학생들로부터 아직 들은 적이 없어요. 저는 1980년대가 사회 비판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거꾸로 자아 비판의 시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아 비판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요. 그런데 그것을 두려워 해요.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자신의 신분이 이미 잘못인데... 저는 분명히 지식인의 자아 비판 없이는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1980년대에 아주 나쁜 것 하나를 배웠어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공격이 전략과 전술을 세련되게 발전시켜 온 데 비해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미숙했다는 점 말입니다. 1990년대의 세대는 아무 비판ㅇ벗이 그것을 고스란히 계승한 거에요. 그럴 수 있었던 자본의 가장 큰 장치가 뭐였겠어요. 문화였죠. 그래서 문화는 우리에게 독약이었던 거죠. 왜냐하면 문화 안에서는 아무리 투쟁적이어도 자본주의가 쳐놓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죠.

68혁명의 가장 커다란 힘이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정성일  자기 자신들은 제국주의자라는 비판이었죠. 프랑스의 3색주의-자유, 평등, 박애-가 휘날렸던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프랑스는 절대 두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았었어요. 베트남과 알제리였죠. 그런데 1950년대 미국에 베트남을 뺏기고 1960년대 알제리도 뺐겼죠. 빼앗긴 상실감, 그것이 드골리즘이라고 불리는 보수 반동주의를 더 팽창시켜 놨거든요. 이 시점에서 젊은 지식인들이 문화 혁명에 귀 기울인 겁니다. 문화 혁명의 수많은 폐해에 대해서 이야기들 하지만 단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건, 모택동이 말한 "일어나서 지도부를 부숴라"라고 말한 혁명의 전언이에요. 권력을 가진 자가 일어나서 자기들을 부수라고 말한 거죠. 그건 그들에게 처음 본 혁명이었던 거죠. 그리고 가장 보잘것없던 나라, 베트남이 가장 큰 제국주의 미국과 전쟁을 시작했죠. 그런 것들을 보고 유럽이 느낀 거에요. 우리가 정말로 자기 비판 없이는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만약 우리와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저는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아 비판. 가장 큰 교훈이지요.

대학인의 '개겨보기'-울타리 속 관념주의, 거기에서 또 다른 권력이 생성한다

롤랑 바르트가 인터뷰한 것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선생님은 지식인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롤랑 바르트가 대답해요.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은 언제나 역사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남는 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의 쓰레기를 파먹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죠." "그러면 권력자들은 왜 그렇게 쓰레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롤랑 바르트가 대답하죠. "쓰레기들은 전염병을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들은 전염병을 퍼뜨릴 때만이 자기 힘을 발휘합니다." 바르트의 말에 일정 정도 진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쓰레기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전염병을 일으키느냐가 문제죠. 정말로 죽어 가는 병을 퍼뜨려 점점 더 썩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방부제의 역할을 할 것인지. 독을 독으로 치료한다는 말이 있죠. '퍼머시(pharmacy)'라는 단어 속에는 약과 독약이라는 의미가 같이 들어 있죠. 나는 대학생들이 이제는 자신들도 기득권 계급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자신들도 같이 탄압받고 있다고 생각하죠. 안전하게 탄압받고 있는 거에요. 진짜.

안전하게 탄압받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정성일  1990년대 들어서서 더 이상 거리로 나오지 않고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는 적당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학교라는 적당한 울타리를 만들어 준 거에요. 대학생들은 그 곳이 해방구라고 생각하지만 권력자가 보기에는 울타리일 뿐이죠. 마치 유태인들을 가둬 놓고 지네들끼리 살라고 내버려 둔거나 마찬가지죠. 이 안에서 어떤 소리가 나든 아무 관계 없어요. 울타리를 쳐 줬기 때문에 전염되지 않아요. 계급으로 쪼개놨기 때문에 노동 계급들이 더 이상 전염되지 않는 것처럼. 울타리 안에서 점점 더 과격해지는 겁니다. 과격해지면 관념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글은 멋있어지지만 현실과는 괴리되지요. 그건 지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지식은 권력이 될 수 밖에 없어요. 또 다른 권력이 형성되는 겁니다.

울타리 안에서의 저항이라는 말이군요.

정성일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울타리를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생물학 실험이 알려주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튀어나오지만 서서히 물을 끓이게 되면 그냥 거기 있게 되요. 마찬가지죠.

앞서 자아 비판을 말씀하셨는데요.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성일  그것은 세 가지로 다시 말할 수 있겠죠. 첫 번째는, 실천은 금지되었는가. 나는 1980.90년대 들어서 오히려 비판에 대해서는 점점 더 개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1970년대는 시위를 10분 이상 하면 기적이었어요. 이제는 거리로 나가죠. 더 이상 금지되어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두 번째, 실천은 강령을 바꿨는가. 권력과 대립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바꾼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들이 있을 거에요. 이미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죠. 마지막 세 번째 질문,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천은 권력을 닮아가고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이게 저의 관심사지요. 이것은 실천을 안전한 방식으로 바꾼 거에요. 그 안전한 방식의 여과장치로 활용한 것이 문화였어요. 굉장히 많은 지식인들이 말했어요. 이제는 정치가 아니고 문화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변질되었던 거죠. 문화라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정치나 경제보다 긴 생명을 가질 수 있겠죠. 하지만 문화란 그림자 같은 거에요. 그림자를 변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서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바꿔야 해요. 그런데 지식인들은 그림자만 바꾸려 해요. 그게 안전하거든요. 그림자를 향해서 아무리 화염병을 던지고 격문을 쓴다하더라도 결국 그림자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거든요.

앞에서 심야 영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오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 것 같은데, 그들은 어떤 폐쇄적 마니아들이 아닐까요?

정성일  아뇨. 그들은 어딘가에 귀속되어 있고 싶은 겁니다.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 거지요. 시공간의 동질성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원하지 않아요. '분자'적 인간에서 '몰(mole)'적 인간으로 되기를 원하는 거지요.

그들이 자신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정성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빛'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둡기 때문에 다 끊어지는 거니까 빛으로 모아야 하겠지요. 서로 마주 봐야 해요. 서로가 서로를 보는 그런 장소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견해. 직므 가장 필요한 건 친구에요. 친구는 자신의 선한 의지로 만들어지죠. 친구는 생성되어 가는 개념이에요. 철학적, 정치적 친구가 필요하지요. 경제적인 면에서는 친구가 존재하지 않아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잖아요. 서로 경쟁하게 된다고 봐요.

친구란 한쪽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정성일  아니죠. 한쪽이 희생되면 그건 권력이죠. 친구는 같이 사는 거에요.

그게 안되는 사람은요? 버려 두는 거에요?

정성일  굉장히 힘든 질문이군요. 이 순간에 잘못 대답하면 주사파로 몰린다는 것도 알아요. (웃음) 저는 인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죠. 인간의 역사를 바꿔 온 것은 인간이 아니라 계급이에요. 인간에 대해 신뢰를 보낼 때 우리는 종종 배신감을 맛보게 됩니다. 인간은 굉장히 모순된 존재니까. 그래서 저는 그것을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반대로 '같은 목표를 항해 연대할 수 있는가"이런 물음을 하고 싶은데.

문화란 축제의 정신과 진화의 몸짓이다

요즘 대중 문화라고 하지만 그것을 또 하나의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록 카페를 가면 제대로 못 논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같은 거...

정성일  그렇게 못 노는 애들은 양로원에 보내야 되요. 하하.

대중 문화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정성일  대중 문화에 대해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힘찬 대중 문화가 뭐 같아요. 축제에요. 축제 속에는 계급 정신이 없어요. 축제의 형태로, 축제의 정신으로 전환돼야 하지 않을까요. 축제를 통해 생산적인 일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노는 겁니다. 그런 목표를 갖고 함께 노는 문화를 만들어야죠. 그것을 대중 문화가 해야 돼요. 대중 문화라는 것이 함께하는 것이잖아요. 마니아 문화라는 건 위험할 수 있어요. 마니아 문화의 바탕은 지식이죠. 지식은 곧 권력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죠. 시간도 결국 돈이고..., 모든 것이 화폐적 가치로 매겨진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 동아리도 마니아 문화의 하나 아닌가요?

정성일  그렇게 되면 동아리가 잘못 나아가고 있는 거죠.

『KINO』역시 일종의 마니아 문화 아닌가요?

정성일  아마도『KINO』 독자들의 상당수는 마니아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이 마니아 문화는 정말 아니에요. 마니아라는 말에 상당한 거부감도 있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KINO』가 영화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opnion leader)들이 보는 잡지였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그 리더들이 어떤 중요한 사안이 생겨났을 때 거기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 친구들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대중들에게 어떤 입장과 견해를 주고, 그럼으로써 그 친구들을 연대하게 하고 거기에 대해 일정한 테제를 말할 수 있다면 생산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단순한 흥미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함께한다는 의미인가요?

정성일  영화의 역사가 100년이 되지요. 그런데 모든 문화는 그 양식들이 역사성을 확보하면서 어느 정도 기호화되고 코드화하는 면이 있어요. 현대 미술이나 현대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것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또한 그 현대 음악이나 미술이 과거보다 못하다고 할 수도 없구요. 오히려 더 낳은 면들도 많아요. 거꾸로 현대 미술이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공부해야 해요. 그것이 문화의 힘이고 역사고, 문화는 반복되는 거에요. 그렇다면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영화를 포착하려고 하는 개념들, 그것을 파악하려는 전략들, 전술들, 미학들을 그저 흘낏 관심 갖는 사람들도 쉽게 알 수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무런 노력없이 이상에 도달하려는 거와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문화는 천박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빈다. 그것은 계급과는 달느 의미에요. 오히려 대중들이 100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끊임없는 계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있어요. 화랑이나 미술관에 가서 그 그림이 주는 감동을 쉽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기쁨인데, 또는 현대 음악이나 12음 기법들을 듣고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원초적인 것들에만 집착을 하죠. 훈련받지 않은, 곧 즉흥성에 휩싸인 것들. 현대 음악가나 미술가들이 잘못하는 게 아니에요. 못 알아듣는 우리의 잘못이죠. 저는 영화에 대해서도 이런 생각들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대학 문화 신문』을 보니까 대학 문화의 위기에 대해 연재를 했더라구요. 그러면서 이제 대학 문화도 기획성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좀 상업적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성일  대학 문화의 위기에 대해 지난 여름에서 올 여름까지 있었던 하나의 현상을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왕가위 감독의『해피 투게더』가 공륜에서 개봉 금지 처분을 받았어요. 그러자 배낭 여행을 갔던 학생들이 비디오 캠코더를 가지고 극장에서 찍어 오거나 비디오를 구해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어요. 2학기에 돌입하자마자 많은 학교가『해피 투게더』를 상영했죠. 저는 옳지 않은 불법에 대해 싸우는 방법은 '불법'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불법을 통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외치는 겁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것을 상영하면서 돈을 받았어요. 그 돈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일에 쓴다거나 해야 했는데 대부분 동아리 물품을 사거나 그랬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다음에 토론이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런 학교는 몇 군데 안 되요. 표현의 자유, 공륜의 심의에 대해 부당하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왕가위 감독에게 이 영화를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상영한다는 팩스 한 장 보낸 학교가 없단 말입니다.

 그 때, 그리고 지금

고등 학교 대 직접 영화 찍으셨다구 그러던데...

정성일  그 땐 영화관에 가면 정학 맞는 그런 시대였어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상상도 못했죠. 영화관에 가다걸리면 문교부에 명단이 올라가고 그게 다시그 학교로 넘어와 정학을 시키는 아주 이상한 제도가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돌아다녔으니 퇴학감이죠.

그럼 최종 목표는 영화 만드는 건가요?

정성일  네.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성일  '진정성', 저의 진성성이죠. 1998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제 방식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요. 그것에 대해 기꺼이 비판하거나 공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라는 장을 통해 나누고 싶어요.

대학 다니실 대는 어땠나요?

정성일  그 당시는 문화에 목말라 있던 시대에요.통금 때문에 10시 반이면 다들 헤어지고 제대로 된 음반 하나 구입하기 어려웠던 그런 시절이에요. 거의 문화의 볼모지라고 해야하나. 군대 다녀오니간 학교가 살벌해요. 하루라도 시위가 없으면 이상한 그런 시절이었어요. 제대하고난 복학생들이 하는 일은 대리 출석해주는 거. 요즘은 많이 달라졌죠. 살벌하지도 않고.

인터뷰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은요?

정성일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하하, 그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