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1998.05.(339호)작품

상상력이 훔친 뜨거운 시선 -「내가 쓴 것」

마르그리뜨 뒤라스에 의하면 소설과 영화, 그리고 회화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건 시선이다. 음악에는 선율이 있고 연극에는 제스처가 있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 그리고 회화에는 시선이 있다. 이 모호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정의 속에 존 휴즈 감독의 '내가 쓴 것'이 자리잡는다.

모든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한 점의 회화 '성 안나와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에서 시작한다. 영화에서 사방으로 흩어진 채 계속해서 설명되는 이 그림은 동시에 이 영화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양을 붙들기 위해서 막 절벽으로 떨어질 듯한 아기 예수, 그리고 아기 예수를 붙들려는 마리아, 그것을 무정하게 쳐다보는 성 안나, 이 세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미술 비평가인 크리스토프는 이 한 장의 회화로부터 위기에 처했지만 무기력한 예수와 예수를 구원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결여된 마리아와, 질투를 숨긴채 그것을 표독스럽게 쳐다보는 성 안나를 읽어낸다. 모든 회화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주석을 여기에 덧붙인다.

소설가인 제레미와 성악가인 소렐 부부는 서로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되풀이 한다. 그런 어느 날 남편 제레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소렐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친구인 크리스토프로부터 남편이 아내 몰래 자서전적인 소설을 쓰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전화를 받는다. 그 소설은 남편 제레미가 자기와 소원한 관계로 지내는 동안 파리에서 프란시스라는 여성을 만나 경험하는 음란한 섹스에 관한 기나 긴 '포르노 소설'이었다. 소렐은 이 소설을 제레미의 메모와 그 동안의 행적과 맞춰보면서 말 그대로 일기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배신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떤다. 그러다가 불현듯 두 개의 지명에서 철자를 쓰면서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발견한다. 이 알 수 없는 실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여기에 그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세 개의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한다. 그 하나는 소설의 시선이다. 정말로 이 소설을 남편이 쓴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또 하나는 이 영화 전체 사이를 계속 암시하는 다빈치의 회화 속의 세 명의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세 명의 주인공들과 퍼즐을 만들면서 서로 마주보는 시선이다. 그리고 소설과 회화의 두 개의 시선을 교란시키는 영화의 시선이 그 사이를 파고든다.

존 휴즈는 '내가 쓴 것'을 한편으로는 멜로드라마로 만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추리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불륜과 섹스, 포르노 그래픽한 상상력 옆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교를 부린 영화 이미지들이 서로 뒤엉켜 한몸을 이룬다. 이것은 당신의 상상력을 한 껏 끌어올리는 한판 승부이다. 이 영화 전체의 퍼즐을 모두 맞추는 순간 이것은 동시에 회화이자 소설이며 영화를 이루는 당신의 상상력 속의 삼위 일체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