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3.04.17.시론

영화관람석

검열과 상업성의 횡포... 작가주의 바로세워야

91년 무자비한 검열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두번째 광주 영화(첫번째는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인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나라가 `잃어버린' 28분 13초를 되찾았다. 3년 만에 공연윤리위원회 재심에서 영화 전편이 무수정 통과된 것이다.

영화에는 '극장판'이라는 것과 '감독판'이라는 것이 있다. 극장판이란 영화관에서 일반 관객에게 상영하는 것이며, 감독판이란 이른바 어떤 형식의 '검열'도 받지 않은 감독 자신의 뜻대로 편집한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이 두 판이 같아야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흔히 원형이판본이 존재하게 된다. 그 하나는 검열에 의해서다. 정치적이거나 성적 묘사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일부 삭제가 아니라 아예 원본 자체를 알아볼 수 없게 난도질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는 상업적 이유에서다. 감독의 생각과는 아무 관계없이 제작사가 상영시간을 줄이거나 심지어 원래의 '심각한' 의도를 멜러드라마나 코미디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농민전쟁의 역사를 그린 1900은 농민의 역사를 대부분 잘라버린 미국판(4시간 3분)과 그 반대로 멜러 부분을 대폭 축소한 일본판(3시간 40분), 그리고 감독판(5시간 11분)이 따로 있다. 그의 마지막 황제도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에서 개봉된 것은 `단축판'(2시간 43분)이지만 유럽에서는 감독판(3시간 39분)이 소개되었다.

미국 마피아와 노조, 그리고 국회 사이의 결탁의 역사를 그린 셀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더 복잡하다. 우리나라 극장판은 미국 텔레비젼 방송용 재편집판(2시간 19분)이고, 비디오는 극장판(3시간 47분)으로 나왔지만 아직도 감독판(5시간 20분)은 본 적이 없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에어리언2는 감독판이 2시간 34분이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작자가 2시간 17분으로 잘랐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서기 2019년-블레이드 런너는 오히려 감독판이 더 짧다. 제작자가 상업성을 이유로 결말을 덧붙여 해피엔딩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촌스러운 내레이션까지 더해 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경우가 한국영화에도 있다. 임권택 감독의 티켓은 마땅히 감독판으로 다시 소개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극장판과 감독판이 동일하지만 대사는 정반대이다. 원래는 모두가 현실에 패배하고 절망적으로 헤어졌다는 대사인데 검열에서 모두 잘 살았다는 내용으로 전면수정됐다.

대종상은 이런 '저주받은' 걸작들을 차례로 복원시켜서 감독판으로 한해에 한편씩 오프닝으로 소개할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다. 과거의 복원이란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 것이고, 또한 그것이 한국영화의 작가주의를 세우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