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3.12.10.작품

영화관람석

삼총사 (The Three Musketeers), 1993

 알렉상드르 뒤마의 모험소설 <삼총사>가 1921년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주연의 무성영화 이후 무려 일곱번씩 다시 만들어져야 할 만한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까? 대답은 물론 있다. 여기에는 상업영화가 가져야 할 온갖 잡동사니들이 남김없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정과 로맨스, 왕비와 음모, 악당들과 매혹적인 악녀, 모험과 결투, 위기 또 위기, 그리고 언제나처럼 해피 엔딩.

 SFX 특수촬영과 정면승부하기를 포기한 월트 디즈니는 뒤마의 소설에서 탈출구를 마련하고 유난히도 이 영화에 정성을 쏟아부은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디즈니 상품과도 잘 어울리고, 스팅로드 스튜어트 그리고 브라이언 애담스의 주제곡 <모두를 위한 사랑>도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내내 흐를 것이다. 만일 그런 것들이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디즈니의 이번 전략은 그런대로 꾹 참고 견딜 만하다.

 하지만 시종일관 화면이 요란스러운데도 무언가 허전하다. <나 홀로 집에>와 <라스트 모히칸>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존 로스는 어디서 함정에 빠져든 것일까? 칼부림과 사랑이 이어져도 자꾸만 어설픈 중언부언처럼 꼬일 뿐이다. <엑설런트 어드벤처>의 스티븐 헤렉 감독은 도대체 무엇을 빼먹고 온 것일까? 쉴새없이 음모와 위기가 꼬리를 물고 서로 물어뜯을 듯이 달리는데도 점점 영화는 늘어진다. <패신저 57>을 쓴 데이비드 로허리의 시나리오는 어디서부터 긴장을 놓은 것일까? 미처 숨쉴 사이도 없이 도끼로 내려치듯이 화면이 바뀌는데도 그 장면이 그 장면 같다. <다이 하드>로 아카데미 편집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존 링크의 가위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그의 무성의일까, 아니면 도리없는 필름들 때문일까?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웅장한 사극의 선율도 있는 대로 긴장을 만들어내다가 번번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터져버린다. 핑크 플로이드 멤버의 친구이자 <>과 <의적 로빈 훗>의 작곡가인 마이클 케이먼은 장면마다 음악으로 꽉꽉 채우지만 그럴수록 걷잡을 수 없는 혼란만 더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누구의 탓일까? <삼총사>의 가장 탄복할 만한 점은 영화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이미 죽어서 더 이상 변명할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 알렉상드르 뒤마에게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정말 모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이 우리보다 선수쳐서 뒤마의 소설을 아무런 매력도 없는 낡은 연애소설처럼 진부하게 다룬다.

 오직 관심은 스펙터클뿐이다. 달타냥과 삼총사가 프랑스혁명 전야 왕정제의 마지막 파수꾼들이라는 사실도 잊고, 바스티유감옥의 그 끔찍한 고문도 구경거리로 바꿔쳐 할리우드적 상상력으로 17세기 프랑스를 동화 속에 가둬버린다. 그러니 이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촬영감독 딘 새뮬러만이 동분서주하며 <늑대와 춤을>에서 보여준 솜씨로 이 모든 것을 카메라에 간신히 담아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역사 바깥에서 마지막 장면을 해피 엔딩의 원칙 외에는 어떻게 찍어야 할지 거의 포기해 버린 것 같다. 역사는 만화가 아니며, 아마도 그 순간 가장 크게 웃은 사람은 죽은 알렉상드르 뒤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