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4.06.10.작품

영화관람석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

삶과 꿈, 가족과 미래, 고향과 여행, 어머니와 연인, 집과 희망, 현실과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말썽을 부리며 함께 가져갈 수 없다고 싸우기 시작하면 그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모순되는 낱말들이 쌍을 이루며 있는 법이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길버트 그레이프>는 막다른 골목에서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21살의 청년의 어둡고 무거운 통과제의에 관한 동화다.

원제를 직역하면 `무엇이 길버트 그레이프를 잡아먹을 듯이 괴롭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의 리스트에는 미국 아이오와주, 인구 1,091명의 질식할 것만 같은 엔도라의 작은 마을과 그의 가족들이 차례로 열거된다. 길버트 그레이프(자니 뎁)는 아버지가 목매달아 자살한 이후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 어머니는 쇼크로 걸식증에 걸려 225kg이나 되는 뚱보가 되었고, 정신박약아인 남동생은 의사로부터 18살 생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34살의 누나는 시집도 안가고 집안 일에 매달리고, 16살 여동생은 멋내는 일에 정신이 팔려 가족 일에 관심도 없다. 길버트는 가끔 화도 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식료품 가게 점원으로 살아간다. 그런 길버트 앞에 할머니와 함께 전국을 떠도는 소녀 베키(줄리엣 루이스)가 나타나고, 길버트의 삶에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어떻게?

<개같은 내인생>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두번째 미국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의 조심스럽고 진지한 탐사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외국인으로서, 유럽에서 온 방문객으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메리칸 드림의 꿈같은 신뢰(!)를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 어떤 정치적 논쟁의 개입이나 영화적 인용을 피해서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을 찾아가 평범한 한 소년의 내면 세계로 파고든다. 이 소년의 세계 중심에 있는 것은 가족이며, 그 가족은 조금씩 무너져 가는 집처럼 무기력하고 벅찬 짐일 뿐이다. 그래서 그레이프가 꿈꾸는 미래는 모두로부터 홀가분하게 떠나버리는 것이다.

할스트롬은 이 비참한 이야기를 솜사탕처럼 포장해서 동화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달콤하게 보여도 그 내면에 깊이 깔려있는 절망까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어머니는 죽고, 집은 불타고, 길버트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떠난다. 해피 엔딩의 결론? 그렇지 않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시작한 첫 장면 이후 내내 길버트를 괴롭히던 줄거리에 이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똑같은 화면 구도로 마무리되는 것은 그에게 또다른 고통의 시간적 순환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조종에 지나지 않는다. 할스트롬이 지켜보는 미국은 해체되어 가는 가정의 무게 앞에서 비틀거리고 있으며, 구원이란 로맨스뿐이고, 역사없는 시간의 순환 속에서 세상의 질서에 말없이 순응하는 젊은 세대의 미래가 있을 뿐이다. 그걸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라 부르며 자유와 기회의 나라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한' 여행객 할스트롬은 물끄러미 지켜보며 시종일관 안쓰럽게 생각한다. 이제 또 무엇이 그레이프를 잡아먹을 듯이 괴롭힐 것인가? 그건 어제처럼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일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그레이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