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4.06.17.작품

영화관람석

화이트 (Blanc), 1994

다시 한번 같은 방법으로 질문해보자.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으로 지금 유럽통합을 설명할 수 있을까?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화이트>는 세 가지 색(프랑스 삼색기 파랑·하양·빨강), 세 가지 정신(자유·평등·박애), 그리고 세 명의 여자(줄리·도미니크·발렌틴)에 관한 두번째 이야기이다.

폴란드 미용사 카롤(즈비그뉴 자마초프스키)은 아내 도미니크(줄리 델피)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당한다. 무일푼이 된 카롤은 가방에 숨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다. 마침내 부자가 된 카롤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짜내서 자살극을 벌인다. 아내 도미니크는 남편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비로소 카롤은 만족한다. 그러나 그 대신 그는 감옥에 가야 한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여전히 사랑과 싸운다. 다만 그의 변명이 자유에서 평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유는 일상생활 속에서 망령처럼 찾아와 위협하고 음산하게 중얼거리지만, 평등은 아주 가끔 익살맞게 찾아오거나 일시적인 깨달음처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주인공 카롤은 사랑 때문에 미처 평등을 돌이킬 겨를이 없다.

이 우화의 바탕에는 무서우리만큼 가혹한 유럽통합에 대한 공포가 내리누르고 있다. 이것은 그저 파리와 바르샤바를 오가는 연애활극이 아니다. 이야기는 법정에서 시작해서 감옥에서 끝나고, 영화는 이혼에서 시작해서 이별로 끝난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얻기 위해 주인공 카롤은 모든 것을 바친다. 그는 법정에서 이혼에 항의하며 소리지른다. 평등하다는 것은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키에슬로프스키는 기꺼이 불평등한 주인공 카롤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사랑을 얻기 위해서, 평등해지기 위해서, 기회를 얻기 위해서 주인공 카롤이 타락하는 곳은 파리가 아니라 바르샤바이다. 그는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과 동유럽 자본주의의 현실(두개의 동유럽 사이의 시대정신을 오가며!)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벌이며 성공한다. 성공이라고? 적어도 주인공 카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도덕과, 우정과, 신뢰와, 명성을 파리에 두고 온 아내를 위해서 버리고 기꺼이 무덤에 묻히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가 발딛고 서 있는 고향은, 친구들은, 대지는, 조국은, 사회주의는 모두 어쩔 셈인가?

아, 아 평등해지기 위해서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이미 또 다른 사람들과 불평등해지는 것이다. 아내 도미니크와 평등해지기 위해서 카롤은 역설적으로 그의 친구들과 불평등해진다. 그러나 카롤은 돌아볼 시간조차 없다. 그걸 키에슬로프스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비관주의로 그려낸다. 그에게서 자유가 형식이었다면, 평등은 장르이다. 카롤과 도미니크의 사랑과 평등은 코미디와 누아르(갱·청부살인·요부 그리고 실패)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그걸 지켜보는 키에슬로프스키는 쓰게 웃는다. 이제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혹시 키에슬로프스키는 대혁명의 정신이 사문화된 법조문이며, 심지어 유럽통합의 메커니즘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힘겨운 내기는 마지막편 박애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