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4.07.15.작품

영화관람석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1994

모든 이야기는 결혼에서 시작해서 결혼으로 끝난다. 인생도 그러하고, 영화에서도 그러하다. 그것만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마이크 뉴웰 감독의 <네번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영국의 전통적인 결혼식장을 무대로 그 결혼의 상대를 선택하려는 끈질긴 밀고당기기의 `운명에 관한' 코미디이다.

찰스(휴 그랜트)는 그날따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여동생과 허겁지겁 친구의 결혼식에 도착한다. 그리고 거기서 낯선 미국인 여자 켈리(앤디 맥도웰)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그날 결혼 피로연이 끝나고 침대까지 달려간다. 그러나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고 헤어진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두번째 친구의 결혼식에서다. 이번에는 켈리가 낯선 약혼자와 함께 나타난다. 이상하게 서운하고 씁쓸해진 찰스. 세번째 만남은 켈리의 결혼식에 찰스가 손님으로 초대된다. 그리고 마지막 만남은 찰스의 결혼식에 이혼한 켈리가 손님으로 찾아온다. 그 다음은?

재능있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무대 연출가이고, 영국 텔레비젼 드라마의 일류 프로듀서이며, 무엇보다도 전형적인 영국영화의 스타일을 지키고 있는 보수주의자 마이크 뉴웰은 여기서 자신의 미덕을 한껏 살리고 있다. 정확하게는 8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 8명의 남자친구들과 8명의 여자들과 5명의 주례를 선 성직자와 11벌의 웨딩드레스와 16명의 결혼한 이들의 부모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교통정리하면서 던지는 질문은 아주 단순하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계십니까?

이건 주제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90년대이다. 마이크 뉴웰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무너져가고 있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이다. 그는 여기서 결혼의 모습과 이데올로기를 파헤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피엔딩이란 바로 결혼 속에 숨어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어떤 등장인물도 그의 이런 생각에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그는 90년대의 자유연애와 동성연애, 그리고 계약결혼을 향해 웃음으로 맞선다. 그래서 때로는 끈질기게 여자 주인공 켈리가 13살 때 남자와 첫 경험을 한 다음 33번째 남자와 결혼하기까지의 경험담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남자 주인공 찰스는 이 여자 저 여자를 나비처럼 떠돌다가 그 여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어쩔 줄 모르다가 불현듯 해결방법을 찾아낸다. 결국 그들은 결혼하는 것만이 구원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의 미덕이 신세대의 사랑풍속도를 이겨낸 것일까? 그러나 바로 그 해피엔딩의 순간을 마이크 뉴웰은 지나치게 즐긴다. 그는 이 순간을 지나치게 상상했거나, 아니면 그 스스로도 마음 속으로는 별로 믿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는 것은 `난데없는'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뻔한 포옹과 예상된 입맞춤이 시간을 질질 끌며 맥이 풀린 다음에야 막을 내린다. 어렵게 결심해서 결혼에 이른 신세대 부부 앞에서 마이크 뉴웰은 가장 따분한 주례사를 늘어놓은 셈이다.